1. 소개2.
플라티니 그 이후,
1990 FIFA 월드컵 유럽예선3. 저주의 연속,
1994 FIFA 월드컵 미국 유럽예선4.
구세주의 등장5. 프랑스 축구의 저주받은 세대에 해당되는 선수들6.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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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1950년대의 프랑스 축구를 월드컵 3위와 유로4강으로 이끌었던 첫 황금세대, 1980년대 자국에서 열렸던 UEFA 유로 1984에서 대표팀 역사상 첫 메이저 대회 우승 및 2번의 연속 월드컵 4강을 이루어낸 미셸 플라티니와 마누엘 아모로스의 두 번째 황금세대 이후에 나온, 80년대말~90년대초의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을 일컫는다. 에릭 칸토나, 장 피에르 파팽, 다비드 지놀라, 폴 르갱 등의 스타 플레이어들이 줄줄이 쏟아져 나왔지만, 정작 그들이 치른 두 번의 월드컵 예선에서는 모두 광탈하는 바람에 이러한 말이 붙었다.결국 이들이 모두 국가대표에서 물러나고 나서야 프랑스는 지네딘 지단, 유리 조르카에프, 마르셀 드사이, 릴리앙 튀랑, 로랑 블랑, 엠마누엘 프티, 티에리 앙리, 디디에 데샹[1] 등의 세 번째 황금세대[2]가 찾아왔고, 사상 첫 월드컵 우승에 16년 전에 이어 두 번째로 유로 대회 우승을 차지하며 전성기를 달리게 된다.
하지만 빛이 강하면 그림자도 어둡듯 2002년 한일 월드컵 대회에서는 월드컵 역사상 가장 전설적인 이변인 세네갈 쇼크를 당해버려 월드컵 디펜딩 챔피언 징크스의 시발점이 되었고, 다음의 2006년 대회는 지단의 불명예스런 마지막 월드컵으로 얼룩졌으며[3] 2010년 대회는 선수단 내부의 분열과 감독과 선수들간의 불화까지 곁들여져서 결국은 조별리그 탈락에 선수단 전원이 이코노미석으로 귀국하는 나이즈나의 굴욕 사건의 수모까지 겪었으며 이후로는 선수들 개개인이 일으킨 불미스러운 사건들로 인해 '사고뭉치 군단', '인성교육이 필요한 팀'이란 낙인이 찍혀지기도 했다.[4]
이와 같은 듯 다른 예로 이탈리아 축구의 저주받은 세대가 있다.
2. 플라티니 그 이후, 1990 FIFA 월드컵 유럽예선
UEFA 유로 1984에서 대표팀에 첫 우승컵을 안기고, 월드컵에서도 프랑스를 2회 연속 4강까지 올리며 캐리한 전설 미셸 플라티니가 32세라는 젊은 나이에 그라운드를 떠나고[5] 프랑스는 급격한 하락세를 보이면서 유로 1988 예선에서 탈락하고 만다. 슈퍼스타 플라티니 한 명이 은퇴했을 뿐인데 이토록 경기력이 나빠진 모습에 프랑스의 축구 팬들은 비난을 숨기지 않았고, 그러던 와중에 플라티니의 뒤를 이어 갈 새로운 스타들이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했다.훗날 올드 트래포드의 왕으로 군림하게 되는 에릭 칸토나, 발리슛의 장인이며 프랑스산 고성능 폭격기에다 발롱도르 수상자였던 장 피에르 파팽, 프랑스의 마술사라고까지 불린 다비드 지놀라 등이 대표적인 선수인데, 이렇게 무시무시하고 초강력한 공격수들이 셋이나 등장하니 그제야 팬들은 "이젠 플라티니가 없어도 프랑스는 다시 강해질 수 있겠지?" 하고 마음을 놓았다.
그러던 와중에 1990 FIFA 월드컵 이탈리아 유럽 지역예선이 시작되었고, 프랑스는 스코틀랜드, 유고슬라비아, 노르웨이, 키프로스와 함께 한 조에 편성되며 이 정도 대진이면 어렵지 않게 본선에 오를 수 있어보였다.
그러나 뜻밖에도 프랑스는 예선에서 좀처럼 힘을 쓰지 못했다. 홈에서 열린 첫 경기부터 노르웨이를 상대로 후반 39분이 되어서야 파팽의 페널티킥으로 결승골을 뽑으며 겨우겨우 이기더니, 이후 나머지 세 나라와 원정에서 가진 경기에서는 최약체 키프로스와만 겨우 비기고[6] 유고슬라비아와 스코틀랜드에게 모두 털리며 스코틀랜드와 유고슬라비아에게 밀려 3위로 반환점을 돌았다.[7] 이후 나머지 네 경기에서는 2승 2무로 승점 6점을 쌓으며 순위권을 추격했지만, 결과적으로 2위 스코틀랜드에게 승점이 1점 모자라 유로 1988 8개국 본선(8강)에 진출 실패에 이어 90월드컵 24개국 본선에 진출 실패를 당하고 말았다.
3. 저주의 연속, 1994 FIFA 월드컵 미국 유럽예선
스웨덴, 불가리아, 오스트리아, 핀란드 그리고 이스라엘과 함께 6조에 속한 프랑스는 제라르 울리에가 팀을 이끌고 지역예선에 올랐다. 당시 국대 구성원들을 보면GK: 파비앵 바르테즈, 베르나르 라마, 브루노 마르티니
DF: 조슬랭 앙글로마, 로랑 블랑, 바질 볼리, 베르나르 카소니, 마르셀 드사이, 비센테 리자라쥐, 장뤽 사쉬, 프랑크 실베스트레
MF: 디디에 데샹, 유리 조르카에프, 장필립 뒤랑, 장미셸 페리, 로랑 푸르니에, 제롬 냐코, 뱅상 게랑, 크리스티앙 카랑뵈, 폴 르갱, 코랑탱 마르틴스, 레날 페드로스, 크리스티앙 페레즈, 엠마누엘 프티, 프랑크 소제
FW: 에릭 칸토나, 다비드 지놀라, 자비에르 그라블렌, 파트리스 로코, 장피에르 파팽, 파스칼 바이뤼아
정말이지 월드컵 우승후보라고 손꼽힐정도의 스쿼드를 자랑했고 구성원의 4분의 3이 당시 전성기였던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 파리 생제르맹 FC의 소속이거나 소속이였던적이 있을정도로 탄탄했다.
이렇게 오른 지역예선에서 프랑스는 불가리아 원정경기에서 0:2로 패한다. 이후 절치부심하고 치른 두번째 홈경기였던 대 오스트리아전에서 장 피에르 파팽과 에릭 칸토나의 골로 2:0으로 승리, 1승 1패가 된다. 그리고 세번째 경기였던 대 핀란드전을 역시 2:1로 승리[8], 2승 1패가 된다. 이때까지 프랑스는 핀란드와 프랑스에 승리하고 스웨덴에 졌던 강호 불가리아와 2승 1패를 기록 중이었다. 다만 다득점에 앞서고 있었기에 조 2위를 유지중이었다.
1위는 핀란드와 불가리아 그리고 이스라엘에 연거푸 승리, 3승을 기록하고 있던 스웨덴이었다. 그리고 프랑스는 4번째 조별경기였던 대 이스라엘과의 원정경기에서 로랑 블랑의 멀티골과 칸토나와 로셰가 각각 골을 기록, 이스라엘에 4:0으로 승리, 이미 같은 이스라엘에 2:0으로 이겼던 불가리아에 뒤이은 3위를 유지했다. 그리고 오스트리아와 가진 원정경기 5차전에서 1:0으로 승리했고 그 오스트리아는 불가리아를 3:1로 이겨 드디어 불가리아를 제치고 조 2위에 올랐다. 여기에 홈에서 열린 스웨덴과의 조별예선 6차전 경기에서 2:1로 승리[9], 공동 1위까지 올랐다.
그러나 1993년 8월 22일 조별예선 7차전 대 스웨덴전 원정경기를 치르기 전까지 무려 4개월 동안 경기가 없던 프랑스였던데다 이 기간에 스웨덴과 불가리아는 각각 2승과 1승 1무를 기록, 다시금 프랑스를 위협했다. 그리고 프랑스는 스웨덴 원정에서 89분에 동점골을 내주고 1:1의 무승부를 거두었지만, 다음 경기인 핀란드 원정에서 2:0으로 쉽게 승리하며 본선진출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핀란드전 2:0 승리 직후의 순위표
순위 | 국가 | 경기수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득실차 | 승점 | 비고 |
1 | 프랑스 | 8 | 6 | 1 | 1 | 14 | 5 | +9 | 13 | 본선 진출권 |
2 | 스웨덴 | 8 | 5 | 2 | 1 | 15 | 5 | +10 | 12 | |
3 | 불가리아 | 8 | 4 | 2 | 2 | 13 | 8 | +5 | 10 | |
4 | 오스트리아 | 7 | 3 | 0 | 4 | 12 | 10 | +2 | 6 | |
5 | 핀란드 | 8 | 1 | 1 | 6 | 4 | 14 | -10 | 3 | 예선탈락 확정 |
6 | 이스라엘 | 7 | 0 | 2 | 5 | 5 | 21 | -16 | 2 | 예선탈락 확정 |
이때까지는 승리 시 주어지는 승점이 3점이 아니라 2점이었다. 따라서 프랑스는 남은 두 경기 중 한번만 이겨도 불가리아가 승점을 따라잡을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본선진출이 확정된다. 심지어 프랑스의 남은 두 경기는 전부 홈경기다! 그러니까 프랑스가 어이없게 홈 2연패를 해버리는 말도 안되는 일이 벌어지지 않는 이상은 본선진출이라고 보면 되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상황속에 1개월 후 1993년 10월 13일 이스라엘을 홈으로 불러들였다.
1994 FIFA 월드컵 유럽예선 6조 1993년 10월 1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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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심: {{{#000000 알란 스노디}}} [[북아일랜드|{{{#000000 (북아일랜드)}}}]] | ||
관중: 32,700명 | ||
2 : 3 | ||
프랑스 | 이스라엘 | |
32′
프랑크 소제 43' 다비드 지놀라 |
21' 로넨 하라지 83' 이얄 베르코비치 90' 루벤 아타 |
그런데 이스라엘의 르우벤 아타가 경기 종료 직전 역전골을 터뜨려 프랑스가 이스라엘에 2:3으로 패배하면서 본선 진출이 미뤄졌다. 이스라엘은 이전까지 단 1승도 못한 최약체였고 이 경기는 이스라엘이 본 지역예선에서 거둔 유일한 승리였다. (이스라엘의 최종 성적은 1승 3무 6패)[10][11]
최종전 직전의 순위표
순위 | 국가 | 경기수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득실차 | 승점 | 비고 |
1 | 스웨덴 | 9 | 6 | 2 | 1 | 18 | 7 | +11 | 14 | 본선진출 확정 |
2 | 프랑스 | 9 | 6 | 1 | 2 | 16 | 8 | +8 | 13 | |
3 | 불가리아 | 9 | 5 | 2 | 2 | 17 | 9 | +8 | 12 | |
4 | 오스트리아 | 9 | 3 | 1 | 5 | 14 | 15 | -1 | 7 | 예선탈락 확정 |
5 | 이스라엘 | 9 | 1 | 3 | 5 | 9 | 24 | -15 | 5 | |
6 | 핀란드 | 9 | 1 | 1 | 7 | 6 | 17 | -11 | 3 |
마지막 경기는 프랑스 vs 불가리아. 두 팀이 동시에 스웨덴의 승점을 넘는 경우는 불가능하기에 스웨덴은 본선 진출이 확정되었다. 이스라엘이 찬물을 확 끼얹긴 했지만 여전히 본선진출 가능성은 반드시 승리해야 하는 불가리아보다는 비겨도 되는 프랑스가 더 높은 상황이었고 비록 뜬금패를 당하긴 했으나 어쨌든 홈 어드밴티지를 무시하긴 어려우므로 여전히 대부분은 프랑스의 본선진출을 예상하고 있었다. 그러나...
1994 FIFA 월드컵 유럽예선 6조 1993년 11월 1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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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르크 데 프랭스|{{{#000000 파르크 데 프랭스}}}]] ([[프랑스|{{{#000000 프랑스}}}]], [[파리(프랑스)|{{{#000000 파리}}}]]) | ||
주심: {{{#000000 레슬리 모트람}}} [[스코틀랜드|{{{#000000 (스코틀랜드)}}}]] | ||
관중: 48,402명 | ||
1 : 2 | ||
프랑스 | 불가리아 | |
31′ 에릭 칸토나 | 37', 90' 에밀 코스타디노프 |
종료 직전 역전골을 내주고 머리를 감싸쥐는 에릭 칸토나.
최종 순위표
순위 | 국가 | 경기수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득실차 | 승점 | 비고 |
1 | 스웨덴 | 10 | 6 | 3 | 1 | 19 | 8 | +11 | 15 | 월드컵 본선 진출 |
2 | 불가리아 | 10 | 6 | 2 | 2 | 19 | 10 | +9 | 14 | |
3 | 프랑스 | 10 | 6 | 1 | 3 | 17 | 10 | +7 | 13 | 예선 탈락 |
4 | 오스트리아 | 10 | 3 | 2 | 5 | 15 | 16 | -1 | 8 | |
5 | 핀란드 | 10 | 2 | 1 | 7 | 9 | 18 | -9 | 5 | |
6 | 이스라엘 | 10 | 1 | 3 | 6 | 10 | 27 | -17 | 5 |
칸토나의 선제골에도 불구하고 에밀 코스타디노브에게 경기 종료 직전, 역전골을 내주고 1:2 역전패를 당하면서 94월드컵 24개국 본선에 진출 실패했다. # 1:1로 비기기만 해도 본선진출이었고 경기가 90분에 다다른 시점에 공을 가지고 있던 쪽은 불가리아가 아닌 프랑스였기에 그 공을 지키면서 시간을 끌기만 해도 됐던 것인데 그걸 못했다. 공을 가지고 있다가 어이없는 크로스로 공을 내줘 코스타디노브의 극장골의 시발점이 된 다비드 지놀라는 울리에 감독에게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인신공격을 받았고,[12] 프랑스 국민들에게는 완전 역적 취급을 당하며 1995년 영국으로 떠나 프리미어 리그로 가기 전까지 힘든 세월을 보냈다. 이 한 골로 인해 2,3위 순위가 뒤바뀌게 되었고 최종적으로 스웨덴이 1위, 불가리아가 2위로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다. 그리고, 프랑스를 떨구고 24개국 본선에 오른 불가리아와 스웨덴은 4강까지 진출하며 3, 4위전에서 대결을 펼치게 된다.
사실 이 경기 이후, 파리에서의 약 2년동안 지놀라는 클럽에서 이전과 변함없이 좋은 활약을 펼쳤으나 프랑스 국민들의 그를 향한 시선은 싸늘하게 식어버린지 오래였다. 울리에의 후임으로 부임한 에메르 자케 감독은 지놀라의 이런 기량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를 다시 중용하고자 했지만, 프랑스 국민들의 거센 반대로 인해 무산되었다.
지놀라 개인의 실책이 임팩트가 너무 커서 묻힌 부분이지만, 사실 프랑스는 팀 단위로 예선 후반부를 스스로 말아먹긴 했다. 당장 후반부 경기 중 무려 세 경기에서[13] 종료 직전 실점으로 승점을 잃었다.
그로부터 23년 후, 프랑스, 스웨덴, 불가리아는 러시아 월드컵 예선 A조에서 다시 만났다. 프랑스는 조 1위로 본선에 직행하고, 스웨덴은 네덜란드를 조 2위로 물리친 뒤 플레이오프에서 이탈리아를 떨어뜨리고 32개국 본선에 직행했다. 불가리아는 홈에서 네덜란드와 스웨덴을 이긴 것 말고는 별 활약이 없어서 조 4위로 떨어졌다.[14][15].
4. 구세주의 등장
이 저주받은 세대의 프랑스에 한명의 구세주가 등장하였으니 그가 바로 지네딘 지단이었다. 1994년 8월 17일, 체코와의 친선전에서 교체 멤버로 데뷔했다. 그리고 0:2로 지고 있던 경기에서 2골을 넣어 2:2로 만드는 등 놀라운 활약을 보이면서 프랑스 축구계를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플라티니의 은퇴 이후, 프랑스 축구를 구해줄 영웅의 탄생을 갈망하고 있던 프랑스 축구팬들이나 축구계에게는 그야말로 가뭄 중의 단비와 같은 소식이었고 프랑스는 이번에야말로 프랑스 축구가 세계정상으로 복귀하게 될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더욱이 에메 자케의 지휘 아래 파트리크 비에라, 티에리 앙리, 다비드 트레제게 같은 신예들의 등장으로 자국의 팬들의 기대치가 엄청 높아졌고 지단을 중심으로 유기적인 플레이를 하여 상대 팀을 곤경에 처하게 만들고 이러한 플레이를 바탕으로 자국에서 열린 첫 32개국 본선 월드컵 대회에서 조국에 첫 우승컵을 선사했다.
물론 이후 세네갈 쇼크와 2006년 독일 월드컵 결승에서의 좌절,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발생했던 팀 내분과도 같은 우여곡절도 있었지만 다시 한번 심기일전하며 폴 포그바와 앙투안 그리즈만, 블레즈 마튀이디, 킬리안 음바페와 같은 우수한 선수도 발굴해 성공적인 세대교체도 이뤄지면서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서 두번째 우승을 일궈내었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서도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그 고질적인 징크스인 월드컵 디펜딩 챔피언 징크스를 완전히 깨부수며 결승에까지 진출해 세번째 우승이자 이탈리아[16]와 브라질[17]에 이은 세번째 2연속 월드컵 우승까지 거둘 것으로 예상됐으나 그 결승 상대인 아르헨티나와의 치열한 접전 끝에 승부차기에서 아쉽게 져서 준우승을 기록했다.
5. 프랑스 축구의 저주받은 세대에 해당되는 선수들
- 베르나르 라마 - 늦은 나이에 빛을 본 그는 30살의 나이에 뢰 블레의 주전으로 등극했으나 정작 팀은 암흑기였고 이후 프랑스 축구가 부활하던 시기에는 파비앙 바르테즈에게 밀려 서브 키퍼였다.
- 에릭 디 메코
- 바질 볼리
- 조슬랭 앙글로마
- 알랑 로슈
- 레날 페드로스
- 다비드 지놀라
- 프랑크 소제
- 폴 르갱
- 장피에르 파팽 - 1990년대 당시 세계 최고의 포워드로 손꼽혔고 그 누구보다도 가장 주목을 받았던 발롱도르 수상자였다. 자신의 황금기이자 전성기였던 시절 FIFA 월드컵에 나가지 못한 것이 천추의 한이 되어버린 비운의 선수였다.
- 에릭 칸토나 - 위의 파팽은 그래도 1986 FIFA 월드컵 멕시코에 나갔고 골도 넣어본 데에 반해 칸토나는 정말 월드컵 출전 경험이 아예 없다.
6. 관련 문서
[1]
현재 프랑스 대표팀 감독. 그는
20년 후의 대회에서 감독으로 조국의 두번째 우승을 만끽하는 영광을 누린다. 또한
명선수는 명지도자가 될 수 없다의 반례의 예시가 되기도 하였다.
[2]
이 중
로랑 블랑,
에마뉘엘 프티,
디디에 데샹 등은 저주받은 세대 당시에도 뛰었던 선수들이다.
[3]
물론 준우승을 했기 때문에 딱히 나쁘다고만 평가할 필요는 없다.
[4]
그나마 저 때는 예선에선 나름대로 선전해서 메이저 대회 진출은 꼬박꼬박했지만, 정작 이 시기에는..
[5]
그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 프랑스는 우승후보로 꼽혔지만 당시 서독에 의해서 4강에서 멈췄고, 플라티니는 월드컵 우승 실패로 인해 큰 좌절감을 느끼며 축구를 할 수 있는 의욕을 잃어버렸다고 한다.
[6]
심지어 이 무승부는 키프로스가 유일하게 승점을 따낸 경기였다(...).
[7]
게다가 유고슬라비아는 한 경기를 덜 치른 상태였다.
[8]
대 오스트리아전과 같이 득점자는 파팽과 칸토나
[9]
이때가 1993년 4월 28일이었고 이후 4개월간 프랑스는 경기가 없었다.
[10]
이 패배는 조별리그에서 프랑스만이 유일하게 이스라엘에 패했다는 점이 결정타였다. 스웨덴만이 이스라엘과의 2경기 모두 승리했고 나머지 나라들은 첫 경기에서는 무승부였으나 두번째 경기에서는 승리했다. 오직 프랑스만 유일하게 두번째 경기에서 패한 것.
[11]
이와 유사한 상황이
2023년 U-20 아르헨티나 월드컵에서 일어났다. 세네갈, 콜롬비아, 그리고 일본과 함께 C조에 들어간 이스라엘은 첫 경기였던 콜롬비아전을 패했고, 세네갈과 비겼던 상황에서 세네갈에 승리하고, 콜롬비아에 패해 이스라엘전에서 반드시 이겨야 했던 상황에 처한 일본을 상대로 맞이해서 조별리그 유일한 승리를 거두고 일본을 조별리그 탈락시키고 만 것이다.
[12]
지놀라가
뉴캐슬 유나이티드 FC로 이적하면서 울리에를 고소하여 법정 싸움까지 가게 되었고, 2012년 지놀라가 고소를 취하하며 서로에게 상처만 남은 길고 긴 시간이 되었다.
[13]
스웨덴전 89분 실점으로 1-1 무승부, 이스라엘전 90분 실점으로 2-3 패배, 불가리아전 90분 실점으로 1-2 패배
[14]
참고로, 이 당시 스웨덴은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가
유로 2016을 끝으로 국대에서 하차한다고 밝혀 '종이 호랑이' 정도 밖에 안된다는 분석이 많아 '본선진출은 안될 것이다' 라고 한 여론이나 전망이 우세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고보니 본선진출에 실패한건 네덜란드였고 스웨덴은 플레이오프에 올라가면서 이탈리아와 대결하게 된다. 플레이오프 당시에도 '운좋게 올라오긴 했다만 이탈리아에겐 못 이긴다' 라며 이탈리아의 우세를 점쳤다. 그러나 스웨덴은 보란듯이 이탈리아를 털어내고 32개국 본선에 진출을 확정지었다.
[15]
그런데, 그렇게 본선에 오른 스웨덴은 32강 조별리그에서 유일하게 독일에게 패한 팀이 되었다는것. 급기야
2022년 카타르 월드컵 지역예선 플레이오프에서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가 이끄는
폴란드와 대결, 두골을 얻어맞고 은퇴까지 번복하고 복귀한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까지 투입했지만 0-2로 패해 32개국 본선에 진출 실패하고 말았다.
[16]
1934년 -
1938년 2연속 월드컵 우승.
[17]
1958년 -
1962년 2연속 월드컵 우승.
[18]
단 이탈리아는 프랑스보다 더 문제가 심각하다. 여기는 시스템 자체의 문제가 더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