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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4 04:51:42

페르난도 발렌수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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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난도 발렌수엘라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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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난도 발렌수엘라
(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스티브 칼튼
( 필라델피아 필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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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난도 발렌수엘라
(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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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난도 발렌수엘라
(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릭 러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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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난도 발렌수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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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난도 발렌수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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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난도 발렌수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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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칼튼
( 필라델피아 필리스)
페르난도 발렌수엘라
(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스티브 칼튼
( 필라델피아 필리스)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등번호 34번
켄 브렛
(1979)
페르난도 발렌수엘라
(1980~1990)
영구결번
캘리포니아 에인절스 등번호 36번
셔먼 코벳
(1988~1990)
페르난도 발렌수엘라
(1991)
크리스 비슬리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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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난도 발렌수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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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난도 발렌수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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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
페르난도 발렌수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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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캇 쿠퍼
(1995)
페르난도 발렌수엘라
(1997)
션 로우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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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Gai7l6pXAAA4P2G.jpg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No. 34
페르난도 발렌수엘라
Fernando Valenzuela
본명 페르난도 발렌수엘라 앙과메아
Fernando Valenzuela Anguamea
출생 1960년 11월 1일
소노라 주 나보호아
사망 2024년 10월 22일 (향년 63세)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
국적
[[멕시코|]][[틀:국기|]][[틀:국기|]] |
[[미국|]][[틀:국기|]][[틀:국기|]]
학력 나보호아 고등학교
신체 180cm / 81kg
포지션 투수
투타 좌투좌타
프로입단 1979년 국제 아마추어 자유계약 ( LAD)
소속팀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1980~1990)
캘리포니아 에인절스 (1991)
볼티모어 오리올스 (1993)
필라델피아 필리스 (1994)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1995~1997)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1997)
지도자 멕시코 야구 국가대표팀 투수코치 (2006~2013)
기록 노히트 노런 (1990.6.29.)

1. 개요2. 생애 및 선수 경력
2.1. 초년 시절2.2. 충격적인 데뷔2.3. 신인 시절 이후2.4. 토사구팽2.5. 은퇴 이후
3. 사망4. 연도별 성적5. 여담6.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멕시코 출신의 전 야구 선수. 별명은 'El Toro'.[1]

독특한 역회전 브레이킹볼인 스크류볼을 수준 높게 구사해서 유명해진 투수로, 데뷔 첫해인 1981년에 MLB 역사상 유일하게 신인왕 사이 영 상을 동시에 수상했고, 여기에 실버 슬러거까지 수상했다.

그러나 무리한 혹사로 인해서 몸이 망가진데다가 친정팀 다저스에 버려지는 등 선수 생활의 말년이 행복하지는 못했던 투수이다. 게다가 그의 몰락 이후론 사실상 스크류볼의 맥이 끊겼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스크류볼이 역사에서 사라졌다.[2]

상대적으로 길지 않은 전성기와 이적 탓에 등번호 34번은 오랫 동안 공식적인 영구결번으로 지정되지 않았지만, 다저스에서는 발렌수엘라의 이적 이후인 1991년부터 어떤 선수에게도 34번을 지급하지 않고 있어 준영구결번으로서 우대받고 있었고, 2023년 2월 4일 결국 공식적으로 영구결번이 되었다.

미국내의 범 히스패닉 커뮤니티에 있어 스포츠 영웅 이상의 위상을 가지는 인물이다.

통산 성적은 173승 153패, ERA 3.54, 삼진 2,074, 완투 113번, 완봉승 31번을 기록하였다.

2. 생애 및 선수 경력

2.1. 초년 시절

12남매의 막내로 태어나서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낸 후, 멕시코 야구 리그에서 뛰기 시작했다. 이 때가 그의 나이 17세. 이 모습을 본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의 스카우트 마이크 브리또[3]는 어린 나이지만 엄청난 구위와 특히 스크류볼을 빼어나게 구사하는 모습을 보고 즉시 데뷔해도 메이저리그 상위권 투수라고 평을 내릴 정도였다. 12만 달러라는 1라운드 최상위권 신인 계약금을 주며 그를 영입했다.

1980년에 잠시 메이저리그의 맛을 봤는데, 이 때도 17.2이닝 동안 단 한 점도 내주지 않으면서 2승을 거두었다. 이후 1981 시즌의 4선발로 낙점이 된다.

2.2. 충격적인 데뷔

파일:external/s-media-cache-ak0.pinimg.com/a3a9cb0cb572495e7c01bf6231fc9d9d.jpg
[4]

1981 시즌 시작부터 발렌수엘라는 MLB 역사상 최고의 임팩트를 선사했는데, 일단 데뷔전으로부터 8연승을 했는 데다가 모두 9이닝 투구[5]였고 무려 5번이 완봉승이었다.[6] 당시 평균자책점은 놀랍게도 무려 0.50이었다.

독특한 투구폼에 마구에 가까운 스크류볼을 구석구석 찌르면서 타자를 제압하는 이 왼손잡이 투수의 돌풍에 많은 사람들이 열광했다. 당장 그의 야구 카드는 매진되었고, 매 경기마다 관중으로 가득찼을 정도. 나이 21세의 어린 나이에 순박한 눈망울을 지닌 선수의 위력적인 투구에 많은 이들이 경탄을 금치 못했다.

특히, 이 무렵부터 증가하는 멕시코 계열 이민자들이 모두 페르난도 발렌수엘라를 보기 위해 야구장을 찾으면서 그가 소속된 로스앤젤레스 다저스는, 재키 로빈슨의 영입 이후 흑인 관중 유치에 성공하며 대박을 터뜨린 것과 같은 효과를 얻는데 성공했다. 비록 그가 이 폭풍같던 8연승 이후 약간 주춤하기는 했지만, 그것은 리그 도중에 일어난 파업 탓도 있기 때문이었고, 위력 자체는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특히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의 역사적인 라이벌 뉴욕 양키스와의 월드시리즈 3차전에서 먼저 4점을 내주고도 끈질기게 버티면서 완투, 팀의 5:4 승리를 이끌고 자신은 완투승을 따내면서 먼저 2패를 기록하고도 내리 4연승으로 로스앤젤레스 다저스가 뉴욕 양키스를 누르고 월드시리즈 챔피언이 되는데 크게 기여했다.

파업으로 인해 전/후기 단축시즌으로 치러진 1981년의 정규시즌 성적은 192.1이닝(시즌 리그 1위), 13승(시즌 리그 공동 2위) 7패, ERA 2.48 180탈삼진(시즌 리그 1위). 완투가 11번이었고, 이 중 완봉승이 8번이었다. 이 돌풍으로 인해 빚어진 신조어가 바로 페르난도마니아(Fernandomania)다. 신인왕은 당연했고, 신인으로는 역사상 최초로 사이 영 상을 수상했다. 거기에 실버 슬러거 수상까지. 그야말로 루키시즌에 전인미답의 성적을 남겼으며, 신인왕과 사이영상을 동시에 탄 선수는 발렌수엘라가 현재까지도 유일하다.

2.3. 신인 시절 이후

파일:external/www.prism.gatech.edu/shapeimage_1.png

비록 신인 시절의 초특급 성적을 재현하지는 못했지만, 그 뒤로도 마이크 소시아와 배터리를 맞추면서 팀의 주축 투수로 맹활약했다. 1982년부터 1987년까지 6시즌동안 매년 250이닝 이상 던지면서 팀을 위해 정말 죽어라 던졌다. 다만 그 결과에 맞는 승수를 챙긴 적은 생각보다 드물었다. 우승 이후, 썩 강한 전력까지는 아니었는지, 아니면 이상하게 그가 나온 경기에서 타선이 터지지 않은 탓도 있었다.

데뷔 당시의 선풍적인 활약도 그랬고, 이 시기 동안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최고 투수 중 한 명임에는 분명했다. 1986년에는 무려 21승을 거두면서 사이영 상 2위에 오르기도 했고, 팀을 위해 정말 죽을 힘을 다해 헌신했다. 많은 이닝을 던지기 때문에 당연한 거기도 했지만, 매년 10완투 이상을 해 냈고, 특히 1986년에는 무려 20완투를 기록하기도. SI에서 뽑은 1980년대 최고의 좌완 투수에 압도적 득표로 선정되었다.

2.4. 토사구팽

그러나 매년 250이닝 이상 던지는 혹사와 몸에 다소 무리가 가는 독특한 투구폼, 여기에 야구의 구종 중에서도 몸에 무리가 간다고 일반적으로 알려진 스크류볼[7]이 주무기인 페르난도의 몸은 점차 망가지기 시작했다. 급기야 1988년 팀이 7년 만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하지만, 이 때 플레이오프에서는 제대로 뛰지 못하면서 이탈했다.

1988년 시즌 후반부터 다저스는 마치 발렌수엘라가 1981년에 그랬듯, 그야말로 오렐 허샤이저 원맨팀에 가까울 정도로 허샤이저가 역사에 남을 위대한 시즌을 보냈는데, 그 유명한 6게임 연속 완봉 포함 59이닝 무실점 기록과 함께, 7차전까지 혈투를 벌인 챔피언십 시리즈의 대활약으로 MVP, 월드 시리즈 역시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으로 불리던 당대 최강팀 오클랜드마저 허샤이저의 위력앞에 무기력하게 무너져버렸고, 대선배 샌디 쿠팩스가 보여준 퍼포먼스에 못지않다는 찬사를 받았다. 이렇게 허샤이저의 맹활약 때문에, 포스트시즌에서 그동안 다저스와 리그의 대투수로 군림하던 발렌수엘라의 공백을 느끼지 못한 것은 그에게 있어서 불운이었다. 이는 곧 페르난도의 효용성이 사라졌다는 뜻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점차 평균자책이 나빠지고, 성적이 좋지 못하자 1991년 스프링캠프 도중 다저스는 그를 방출한다. 문제는 방출 과정. 방출 자체야 프로니까 그럴 수도 있다고 하지만, 하필 시즌 개막 직전에 그를 버리면서 팀을 구하는데 상당히 애를 먹은 것. 간신히 여름이 되어 애너하임 에인절스에 입단했지만, 몸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았는데 실력 발휘가 되기는 그른 일이었다. 또, 정말 몸 상태가 좋지 않기도 했다.

결국 1992년 시즌을 통째로 날린 그 뒤로는 저니맨의 길을 걸었다. 받아주는 메이저리그 팀이 없을 때는 멕시코 태평양 리그로 돌아가서 뛰기도 했는데, 이 생활을 1991년부터 1995년까지 이어갔다. 마지막으로 불꽃을 태운 것은 고국인 멕시코와 가까운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이 시즌 13승 8패 3.62의 성적을 거두면서 최후의 불꽃을 태웠다. 그러나 이듬해 다시 부진에 빠지면서 결국 메이저리그 커리어는 접어야 했다. 그렇다고 야구를 완전히 접은 것은 아니어서 나이 44세인 2004년부터 2시즌 정도 멕시코 태평양 리그에 다시 선수로 뛰곤 했다.

혹사와 스크류볼 구사 때문에 전성기가 일찍 저문 감도 없지 않다. 하지만, 만일 그의 나이가 정말 알려진 것보다 5살 정도 많은 것이 사실이라면 말 그대로 나이에 따른 노쇠라고 보는 것도 타당하다. 즉 25세에 데뷔해서 30대 중반에 쇠퇴한 것이기 때문에 나이에 따른 기량 저하로 보면 되는 것. 하지만, 나이가 그대로라고 하더라도 토미 라소다 감독 아래에서 혹사 당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2.5. 은퇴 이후

1991년의 좋지 못한 기억 때문에 한 동안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와 인연을 끊었다. 방출된 후, 1999년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에서 다시 그를 스프링 캠프에 초청했지만, 이를 거절했다고 한다.

하지만 발렌수엘라와 다저스의 화해는 2003년 다저스의 스페인어 전용 라디오 해설자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비로소 이뤄졌다. 이후 2021년에는 다저스 구단에서 새롭게 선보인 시티 커넥트 유니폼의 메인 모델로 다시 한 번 등장하기도 하였고, 결정적으로 2023년 2월 4일, 비공식 결번이던 그의 선수 시절 번호 34번이 공식적으로 다저스의 영구 결번으로 확정되며 완전히 악감정이 없어진 분위기다.

2006, 2009, 201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멕시코 대표팀의 투수코치를 맡았다.

2024년 10월 2일, 다저스 공식 SNS를 통해 올 시즌 남은 기간 동안 해설자 자리에서 잠시 물러나 건강 회복에 집중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3. 사망

그러나 해설자를 잠시 그만둔다는 소식이 전해진지 불과 20일이 지난 2024년 10월 22일, 다저스 구단이 발렌수엘라가 향년 63세를 일기로 별세했다는 소식을 알렸다. # LA의 한 병원에서 사망했다고 하는데, 간암 투병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공교롭게도 발렌수엘라가 별세한 10월 22일은 2024년 월드 시리즈의 개막으로부터 단 사흘 전이었고, 심지어 월드 시리즈 매치업이 발렌수엘라가 우승한 1981년 월드 시리즈와 같은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뉴욕 양키스의 매치업이고, 심지어 이 두 팀이 마지막으로 월드 시리즈에서 만난 것도 1981년이라 43년 만에 두 팀의 재회가 성사됐는데 43년 전 월드 시리즈의 주역이 세상을 떠나게 되면서 팬들이 더 큰 안타까움을 표했다. 롭 맨프레드 커미셔너도 추모 성명에서 " 다저 스타디움에서 페르난도를 기릴 것"이라고 전하며 1차전에서 발렌수엘라를 추모하는 행사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 당초 이 날의 시구와 시포를 오렐 허샤이저와 스티브 예거가 하기로 결정했는데, 두 사람은 추모의 의미에서 일반적인 시구 대신 마운드에 새겨진 34번의 앞에 공을 문지르는 퍼포먼스 형식으로 시구를 마무리했다. 그리고 다저스는 발렌수엘라가 우승을 했던 1981년처럼 적들의 안방에서 우승을 거두며 먼저 떠난 레전드의 영전에 우승 트로피를 바칠 수 있게 되었다.

사망 후 그의 후임으로는 전 다저스 소속 내야수였던 루이스 크루즈가 자리를 이어받게 되었다고 한다.

4. 연도별 성적

파일:MLB 로고.svg 페르난도 발렌수엘라의 역대 MLB 기록
<rowcolor=#FFFFFF> 연도 G W L S HLD IP ERA H HR BB HBP SO WHIP ERA+ fWAR bWAR
1980 LAD 10 2 0 1 0 17⅔ 0.00 8 0 5 0 16 0.736 - 0.6 0.9
1981 25 13 7 0 0 192⅓ 2.48 140 11 61 1 180 1.045 135 4.9 4.8
1982 37 19 13 0 0 285 2.87 247 13 83 2 199 1.158 122 6.1 5.0
1983 35 15 10 0 0 257 3.75 245 16 99 3 189 1.339 96 4.2 2.7
1984 34 12 17 0 0 261 3.03 218 14 106 2 240 1.241 116 5.2 3.7
1985 35 17 10 0 0 272⅓ 2.45 211 14 101 1 208 1.146 141 5.4 5.4
1986 34 21 11 0 0 269⅓ 3.14 226 18 85 1 242 1.155 110 6.2 5.4
1987 34 14 14 0 0 251 3.98 254 25 124 4 190 1.506 101 2.3 4.1
1988 23 5 8 1 0 142⅓ 4.24 142 11 76 0 64 1.532 79 -0.2 -0.1
1989 31 10 13 0 0 196⅔ 3.43 185 11 98 2 116 1.439 100 1.6 1.3
1990 33 13 13 0 0 204 4.59 223 19 77 0 115 1.471 80 1.7 -0.1
<rowcolor=#FFFFFF> 연도 G W L S HLD IP ERA H HR BB HBP SO WHIP ERA+ fWAR bWAR
1991 CAL 2 0 2 0 0 6⅔ 12.15 14 3 3 0 5 2.550 36 -0.2 -0.4
<rowcolor=#FFFFFF> 연도 G W L S HLD IP ERA H HR BB HBP SO WHIP ERA+ fWAR bWAR
1993 BAL 32 8 10 0 0 178⅔ 4.94 179 18 79 4 78 1.444 91 1.4 0.5
<rowcolor=#FFFFFF> 연도 G W L S HLD IP ERA H HR BB HBP SO WHIP ERA+ fWAR bWAR
1994 PHI 29 1 2 0 0 45 3.00 42 8 7 0 19 1.089 145 0.2 1.4
<rowcolor=#FFFFFF> 연도 G W L S HLD IP ERA H HR BB HBP SO WHIP ERA+ fWAR bWAR
1995 SD 33 8 3 0 2 90⅓ 4.98 101 16 34 0 57 1.494 82 0.0 0.6
1996 33 13 8 0 2 171⅔ 3.62 177 17 67 0 95 1.421 110 1.6 2.8
<rowcolor=#FFEF00> 연도 G W L S HLD IP ERA H HR BB HBP SO WHIP ERA+ fWAR bWAR
1997 SD/ STL 18 2 12 0 0 89 4.96 106 12 46 5 61 1.708 81 0.1 -0.5
MLB 통산
(17시즌)
453 173 153 2 4 2930 3.54 2718 226 1151 25 2074 1.320 104 40.9 37.3

5. 여담

2013년 류현진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에 입단하면서 발렌수엘라와의 '닮은꼴' 선수로 비교하는 이들도 있다. 사실 꽤 많은 부분이 비슷하긴 하다. 둘 다 좌완 투수이며, 프로 데뷔 첫해[9]에 리그 정상에 오를 정도의 탁월한 성적을 거두었고, 다소 비만해 보이는 체형의 선수였다.[10] 거기에 결정구가 좌완임에도 불구하고 우타자 바깥쪽으로 빠져나가는 스크류볼/서클 체인지업 이라는 점까지 상당히 비슷한 부분이 많다.[11]

6. 관련 문서



[1] 스페인어로 황소라는 뜻인데, 정말 황소처럼 우직하게 던졌다. [2] 발렌수엘라의 롱런 실패와 유리몸화가 스크류볼의 부상 위험도가 높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많다. [3] 이 스카우트가 발굴한 선수 중에는 2013년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에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야시엘 푸이그도 있다. 그리고 브리또는 은퇴하기 전 다저스에게 훌리오 유리아스를 남겨주고 떠났다. [4] 오른쪽은 토미 라소다 당시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감독이다. [5] 허나 완투는 아닌데 이유는 한 경기가 연장전을 갔기 때문이다. [6] 3연속 완봉승 포함. [7] 스크류볼의 명수로 유명했던 뉴욕 자이언츠의 명예의 전당 헌액자인 좌완투수 칼 허벨은 야구선수를 그만둔 40대 이후에도 왼팔이 안으로 구부러지지 않을정도로 심하게 비틀려있었다. [8] 재키 로빈슨은 워낙 옛날 선수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만 미국 사회 전체로는 발렌수엘라보다 재키 로빈슨을 훨씬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9] 류현진의 경우 한화이글스 시절인 2006년 해당. [10] 단 키는 188~189cm인 류현진이 180cm 정도였던 발렌수엘라보다 더 크다. [11] 류현진의 체인지업은 해외 스카우터가 ' 스크류볼' 로 분류하기도 했었을 정도로 스크류볼과 비슷한 움직임을 보여주기도 한다. 물론 스크류볼은 절대 아니다. [12] 공 가운데. 즉, 메이저리그 공인구로 치면 커미셔너 서명이 들어가는 곳. [13] 다저스 로고볼 기준. [14] 실제로 메이저리거 사인볼의 경우는 메이저리그 공인구 여부, 파란 볼펜 사용 여부, 스윗스팟에 얼마나 정가운데에 사인이 되었는지, 그리고 친필사인 인증서 여부에 따라 가치가 결정된다고 한다. 스윗스팟에 사인이 되지 않은 공은 일찌감치 가치면에서는 거칠게 말해 광탈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진짜 자신의 사인볼을 소장하고 싶은 팬들이 보고 싶어서였던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