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전 황실 여성 등장인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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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18223d><colcolor=#ffffff> 후궁여의전의 등장인물 파림 미약 영귀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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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파림 미약 (巴林 湄若) | ||
배우 | 장자닝 | ||
파벌 | 여의파 | ||
거주지 | 함복궁[1] | ||
품계 | 영(穎)귀인 → 영빈 → 영비 → 영귀비 | ||
가족 | 남편 건륭제 애신각라 홍력, 자녀 6황녀(조졸), 8황녀(조졸) | ||
민족 | 몽골 파림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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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드라마 여의전의 등장인물.2. 작중 행적
몽골 출신. 건륭제의 수녀간택에서 뽑혔다. 성격은 착하고 솔직하며 외모는 북방형 미인이라고 한다. 집안 때문에 존중을 받는 편. 위연완의 딸 7황녀 경완을 키우고 있다. 양녀인 경완과의 관계는 매우 좋으며, 전작 후궁견환전에서의 경비를 떠올리게 하는 캐릭터. 이후 이 부분 때문에 경완의 친모 연완과 갈등의 골이 깊어진다. 드라마에서는 원작의 파림씨와 흔귀비 대미약을 합쳐 하나의 캐릭터로 만들었다. 드라마에는 대미약이 등장하지 않으며, 파림씨의 이름이 미약이고 흔귀비 소생이나 조졸한 6황녀, 8황녀 역시 파림 씨의 딸로 설정되었다.몽골 파림왕의 딸로 몽골 출신이라는 자부심이 상당하다. 홍력의 총애를 받으며 6황녀를 임신하지만 어화원에서 여의와 여의의 자녀들과 어울리다가 김옥연의 개 부귀가 달려드는 바람에 놀라 사산하였다. 여의를 잘 따르고 같은 몽골 출신이자 입궁 시기가 비슷한 각빈 배이과사씨 등과 어울린다. 출신이 낮고 총애를 위해 천박한 행동도 마다않는 위연완은 멸시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위연완의 어머니가 여의를 저주하고 13황자의 사산에 관여한 것이 밝혀지면서 (사실은 위연완이 한 짓으로 자기 동생의 목숨을 담보로 어머니를 협박하여 자신의 죄를 뒤집어 씌운 것이다.) 답응으로 강등되자 그 딸인 7공주 경완을 양육한다. 싫어하는 위연완의 딸이지만 자신의 딸로 여기며 정성껏 양육한 듯하다. 그녀의 영향을 받은 경완은 친모인 연완을 싫어하고 자신의 어머니는 파림씨라고 생각한다.
유비처럼 지략이 뛰어난 후궁이다. 유비가 빅픽처를 그린다면 미약은 그 순간에 아이디어를 짜낸다. 12황자 영기가 한부 사람으로 위장한 암살자에게 잡히자 자신이 직접 “난 한부에서 당신을 본 적이 없다. 한부 사람이 맞느냐”고 물었고 암살자는 미약을 보고 공주님이라 했다. 즉 한부 사람이 아니란 것을 처음부터 알고 증거를 대준 것.
또한 연완이 고륜화경공주 경슬의 세자를 구한 덕에 신형사에서 풀려나자 연완의 궁에 방문한다. 홍력 앞에서 “연완이 너 공주의 아들을 구했다며? 근데 왜 그 시간에 거기 있었어?”라고 웃으면서 묻는다. 질색하는 연완을 대신해 춘선이 그곳은 우리들의 거처와 멀지 않고 7공주님을 볼 수 있을 거란 희망에 차서 가있었다고 대답하자 “응? 지금은 가을이라 찬바람이 부는데 내가 갓난아기인 공주를 데리고 정원을 노닐 거라 생각했니? 그리고 그때는 한참 아기들의 낮잠시간인데?”라며 응수한다.[2][3] 또한 홍력 앞에서 절하며 자신을 불쌍히 여겨 달라는 연완 앞에서 “황상, 위답응은 치료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오늘 제 처소에서 저녁을 드신다고 하셨죠? 식겠습니다. 어서 가세요.”라며 홍력을 잡아 끌고간다(…)
여의가 연금된 후 황귀비가 된 연완과는 대립하는 사이. 몽골 후궁들은 영비인 미약의 말만 따르고 미약 역시 뒷배경이 없는 연완을 무시한다. 경완의 거처를 두고 다툴 때 위연완이 황귀비의 권한으로 영비를 벌하려고 했으나, 영비 뒤에 있는 몽골 세력을 무서워한 궁인들이 움직이지 않아 벌할 수 없었다. 후에 귀비로 진봉된다.
여의가 죽었을 때 “위씨가 자기 죄에 대한 벌을 받았습니다. 이제 우린 남은 여생을 즐기면 되는 것인데 어찌 이리 빨리 가버리시는 겁니까.”라며 슬퍼하였다. 위연완 사후 내궁의 일인자가 되었다.
원작에서도 위연완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여의 파벌로 위연완을 적대하고 멸시했지만 몽골 비빈들의 숫자가 많아지고 나서는 후궁의 질서를 위해 어느 정도 중립의 위치를 고수한다.[4] 연완이 경완을 데려가자 그때부터 유비 해란, 용비와 몽골 비빈들과 함께 연완을 골로 보내버린다. 연완이 죽기 직전 수양딸 경완을 몽골로 시집보낸다. 자신의 모족에 시집가기에 더할 나위없이 기뻐한다.[5]
소설에서는 유비 가리엽특 해란과 그리 친하지 않다고 묘사된다.[6] 둘이 손을 잡은 것은 유비가 경완을 데려올 수 있게 도와줬기 때문이다. 그러나 드라마에서는 용비와 함께 유비 다음 가는 여의파의 수장이다. 당연히 모든 몽골 비빈들이 여의파이다. 위연완과 가까운 경빈 육씨 역시 적대한다.
3. 실제 역사
실제 역사의 영귀비 파림씨는 도통 경차도위 납친의 딸이다. 건륭 13년(1749년) 나상재(那常在)에 책봉되었고 4월에 귀인으로 진봉했다. 건륭 16년에 영빈(颖嫔)을 거쳐 24년(1759년) 영비가 되었다. 건륭 31년에 당시 황귀비였던 효의순황후가 17황자 영린을 낳자 건륭제의 명으로 영린을 양육하였으며 가경 3년(1798년)에 태상황 건륭제의 명으로 귀비로 진봉되었으니 이 때 파림씨의 나이가 68살이 되던 해였다. 가경 5년(1800년) 영귀태비의 70살 생일을 맞아 영린이 장수를 축하하는 의미로 침궁을 방문하였으나 황제의 허락 없이 제멋대로 태비들의 처소에 드나든 것이 문제가 되어 가경제는 동생을 처벌하였고 건청문 출입을 금지시킨다. 이 일로 파림씨는 큰 충격을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하였다.[7]4. 기타
드라마에서는 위연완의 딸 화정공주 경완을 키우고 경완이 생모를 싫어하는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17황자 영린을 양육했고 영황귀비 위씨와는 사이가 좋았다고 한다.[8]
[1]
드라마에서는 저수궁
[2]
미약은 몽고 파림부의 공주이다. 당연히 몽골에서도 청 황실 못지 않게 암투가 있을 것이고 몽골에서는 출세할 수 있는 청으로 딸을 시집보낼려고 할 것이기에 암투의 승리자로 청 황실에 시집 온 미약의 노련함을 보여준다.
[3]
청나라로 딸을 보낸 몽골 왕공들은 그것을 영광스럽게 여긴다. 잘만 하면 딸이 황자를 낳아 자신들의 외손이 청의 황제가 될 수 있고 딸은 태후가 될 수도 있는데다, 청 황실로 보낸 딸의 존재 자체가 청나라와 확고한 동맹의 증표가 되고 몽골 비빈들은 존중받고 대우받으니 보내서 나쁠 것이 없다.
[4]
그래봤자 공개적인 자리에서 위연완을 적대하지 않는 것 뿐이다.
[5]
그러나 역사대로라면 경완은 시집 가고 1년 뒤에 숨을 거둔다.
[6]
원작에서는 몽골 비빈들의 파벌이 따로 있다. 그러나 여의파를 적대하지 않고 따른다. 몽골 비빈들에게는 자식이 없기에 모두가 경완을 소중히 여긴다.
[7]
자기가 낳은 아들이 아님에도 열심히 키웠고 친자식처럼 생각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8]
심지어 계황후와 영황귀비도 사이가 좋았을거라 추측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