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4년 심지(心地)가 창건했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고
1605년 중창되었다가 1695년 삼창하였다. 이 절에는
영조의 출생과 관계되는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숙종의 부탁을 받은 현응은 농산과 함께 백일
기도를 하였고 기도가 끝나는 날 농산이
숙빈 최씨의 꿈에 나타났다. 이렇게 태어난 아들이 후일의 영조였다는 것이다. 숙종은 이에 대한 보답으로 파계사 주변 40리 이내의
조세를 받아 쓰라고 하였으나, 현응은 이를 거절하고 선대의
위패를 모시기를 청하였다. 이는 지방 유림(儒林)의 행패를 막으려는 것이었다. 당시에도
사대부들에 의한
불교 탄압이 극심하였다.
1979년
관음보살상을 개금(蓋金)[1]할 때
불상에서 나온 영조의
어의(御衣)는 이 설화의 신빙성을 더해 준다.
시내버스는
간선버스로
101(-1)번이 유일하며 종점이기도 하다. 시내버스 종점은 파계삼거리에 있는 파계사 주차장에 있으므로 사찰로 가려면 종점 주차장에서 내린 후 좀 더 들어가야 한다.
지선버스는
칠곡3번 파계사 방면,
팔공3번이 있으며, 모두 파계사 서쪽의
칠곡군 동명면에서 온다. 그러나
칠곡3번은 1일 2회만 운행하고,
팔공3번은
주말,
공휴일 한정으로 50분 간격으로 다니며 그것도 12월부터 2월까지는 운행하지 않는다.
파계삼거리로 올라가는 길부터 파계사에 이르기까지, 주변에 많은 카페와 식당 등이 형성되어 있다. 산 속에 위치하면서도 도로가 잘 되어 있고, 분위기 좋은 카페와 식당이 많아 팔공산으로 드라이브 오는 사람들이 많이 찾고 있다.
2023년 11월 19일 오후 5시 50분경 동구
신용동
팔공산로
파계사에서
동화사로 가는 방면 내리막길에서
드라이브 중이던
i30 차량이
연석을 들이받고 전복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낙엽에 미끄러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로 인해 10대 여학생 1명이 현장에서 사망했으며 또다른 10대 여학생은 인근 대학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치료를 받던 중 사망했다. 20대 운전자도
심정지 상태로
대구파티마병원에 실려 갔으나 11월 20일 오전 결국 사망했다. 함께 동승한 10대 남학생 2명도 중상을 입고 인근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이들은 각기 연인과 지인 사이로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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