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5D3462 0%, #611594 20%, #611594 80%, #5D3462); color: #FFF"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
초대 | 제2대 | 제3대 | 제4대 | 제5대 |
아르탁세스 1세 | 아르타바스데스 1세 | 티그라네스 1세 | 티그라네스 2세 | 아르타바스데스 2세 | |
제6대 | 제7대 | 제8대 | 제9대 | 복위 | |
아르탁세스 2세 | 티그라네스 3세 | 티그라네스 4세 | 아르타바스데스 3세 | 티그라네스 4세 | |
에라토 | 에라토 | ||||
제10대 | 제11대 | 제12대 | 제13대 | ||
에라토 | 아리오바르자네스 | 아르타바스데스 4세 | 티그라네스 5세 | ||
에라토 | }}}}}}}}}}}} |
아르탁세스 왕조 13대 샤 Տիգրան | 티그라네스 5세 |
||
제호 | 한국어 | 티그라네스 4세 |
아르메니아어 | Տիգրան | |
그리스어 | Tigránēs | |
고대 페르시아어 | Tigrāna | |
존호 | 샤 | |
생몰 년도 | 기원전 16년 ~ 36년 | |
재위 기간 | 6년 ~ 12년 |
[clearfix]
1. 개요
아르메니아 아르탁세스 왕조 13대이자 마지막 샤.2. 생애
기원전 16년 헤로데 대왕의 아들 알렉산드로스와 카파도키아의 왕 아르켈라오스의 딸 글라피라의 아들로 출생했다. 그는 모계가 아르탁세스 왕조의 혈통인 점을 기리기 위해 '티그라네스'라는 이름으로 명명되었다. 그는 예루살렘의 헤로데 궁정에서 자랐지만, 기원전 7년 아버지가 사망한 후 헤로데 대왕이 어머니를 카파도키아로 돌려보내면서 헤로데의 단독 양육을 받았다.헤로데가 기원전 4년 예리코에서 사망한 뒤, 그는 어머니를 따라가기로 했다. 카파도키아에 도착한 뒤 유대교를 버리고 그리스 다신교로 개종했다. 아르켈라오스는 그를 로마로 유학보내 그곳에서 교육받게 했다. 서기 6년 아우구스투스 황제에 의해 아르메니아 왕으로 선임되었지만, 아르메니아 귀족들은 그를 단독으로 섬기기 거부하고 전왕 티그라네스 4세의 아내 겸 공동 왕이었던 에라토를 궁정으로 불려들어 그와 함께 통치하게 했다.
12년 아르타바노스 2세와 내전을 벌이고 있던 파르티아 샤한샤 보노네스 1세는 전세가 불리해지자 아르메니아로 이동하여 티그라네스 5세와 에라토를 몰아내고 아르메니아 왕을 칭했다. 그 후 로마에 머물던 그는 18년 보노네스 1세가 파르티아군에 의해 아르메니아에서 축출되자 티베리우스 황제에게 자신을 복위시켜달라고 청했다. 그러나 티베리우스는 이런 일로 파르티아와 전쟁을 벌이고 싶지 않아 묵살했고, 폰토스 왕자 제논을 ' 아르탁세스 3세'로서 왕위에 올렸다.
타키투스에 따르면, 그는 36년경 고발을 받고 티베리우스의 말년을 특정짓는 공포 통치의 희생자가 되었다고 한다. 그가 고발된 혐의는 기록이 미비해 분명하지 않다. 다만 아르메니아의 새 왕이 된 이베리아 왕자 미트리다테스가 파르티아의 아르타바노스 2세와 한창 전쟁을 벌이던 때였으니, 파르티아와 내통했다는 혐의가 적용되었을 가능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