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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앤서니 화이트 (Anthony White) |
생년월일 | 1954년 5월 23일 |
신장 | 188cm |
체중 | 113kg |
출생지 | 미국 버지니아주, 로어노크 |
별명 | 미스터 USA |
피니쉬 무브 | |
커리어 |
AWF 북미 헤비급 챔피언 1회 CWA 헤비급 챔피언 1회 EWA 헤비급 챔피언 1회 NWA 조지아 헤비급 챔피언 1회 IWCCW 헤비급 챔피언 2회 WCWA 브라스 너클스 챔피언 1회 NWA 미드 애틀랜틱 헤비급 챔피언 1회 NWA 웨스트버지니아/오하이오 헤비급 챔피언 1회 NEPW 헤비급 챔피언 1회 뉴잉글랜드 프로레슬링 명예의 전당 2009년 헌액 PWI 선정 올해 가장 개선된 레슬러 (1980) 1996년 PWI 500 올해 최고의 싱글 레슬러 500인 중 64위 선정 2003년 'PWI 연도' 500대 레슬러 171위 SICW 태그 팀 챔피언 1회 SCW 사우스웨스트 브라스 너클스 챔피언 1회 L&G 프로모션 캐리비안 헤비급 챔피언 2회 유니버설 슈퍼스타 오브 아메리카 US 태그 팀 챔피언 1회 WCWA 텔레비전 챔피언 1회 WCWA 텍사스 태그 팀 챔피언 1회 WWWA 인터콘티넨탈 챔피언 2회 WWC 북미 태그 팀 챔피언 1회 WWF 태그 팀 챔피언 1회 2006년 WWE 명예의 전당 헌액 2007년 세계 보디빌딩 WBBG 명예의 전당 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 최강 레슬러 (1981) |
1. 개요
WWE, WCW에서 활동했던 프로레슬러.2. 커리어
1974년에 NWA에 데뷔한 이래 프로레슬러 생활을 시작했다.1979년에는 WWE에 데뷔하여 제시 벤추라랑 대립하는 것을 비롯해 싱글활동을 하다가 1983년에 락키 존슨과 태그팀을 맺고 태그팀 전선에서 활동을 시작했고, 태그팀 타이틀을 획득하기도 했다.
1982년에는 NJPW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1984년에는 AWA에서 잠시 활동했다.
그러다가 1984년에 WWE에 복귀해 1987년까지 싱글 커리어를 이어갔다.
그후 1988년엔 푸에르토리코의 단체에서 활동했다.
1990년엔 WWE에 2차 복귀를 했는데, 아프리카 원주민 기믹인 사바 심바로 활동했다.
사바 심바 시절에는 창과 방패를 들고 다녔으며, 숫 사자 갈기같은 전통모자를 쓰고 다녔다.
사바 심바로 활동할 당시 아킴과 대립을 하기도 했지만, 이전에 비하면 활동이 적었고, 1991년 9월에 I.R.S한테 패한 것을 마지막으로 WWF에서 자취를 감췄다. 사바 심바 자체도 WWE 역사상 이상한 기믹, 실패한 기믹중 하나이기도 했다. 컨셉 자체는 같은 아프리카 원주민 기믹인 카말라랑 겹쳤지만 팬들한테 오래도록 기억에 남은 카말라랑 달리 인지도도 낮았고, 푸쉬도 받지 못했다. 대립 상대에 있어서도 언더테이커랑 대립하기도 했던 카말라와 달리 언더테이커보다 위상이 낮은 아킴과 대립을 했다. 사바 심바 시절에는 아킴과 대립한 것이 그나마 푸쉬 받은 때였다.[1]
WWE를 떠난 직후 IWCCW에서 1992년까지 활동했다.
1992년에는 WCW에 입성했는데, 바바리안과 팀을 맺고 데뷔했다.
1993년 부터는 WCW를 떠나 인디단체들을 돌기 시작했다.
1997년에는 WWE에 잠시 나타났는데, 자신의 태그팀 파트너였던 락키 존슨의 아들인 락키 마이비아의 앞에 나타났다.
2006년에는 WWE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인디단체를 돌기 시작했지만 중간에 WWE에 복귀하기도 했는데, 2008년 7월에는 WWE의 브랜드인 ECW에 등장하여 이때부터 마크 헨리랑 동행하기 시작하여 태그팀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러나 2009년 마크 헨리가 RAW로 이적했는데 반면 토니 아틀라스는 그대로 ECW에 남음으로써 마크 헨리와의 동행이 끝났고, 이렇게 마크 헨리와의 동행이 끝난 토니 아틀라스는 싱글 커리어를 이어가게 된다.
그러다가 2010년 4월 WWE에서 방출되었다.
3. 기타
브루저 브로디 피살사건때 사건의 목격자였지만 살인에 대한 결정적인 증언을 하지않아 가해자인 호세 곤잘레스는 의도적인 살인이 아닌 선제 공격을 한 브로디에 맞서다가 살해하게된 정당방위가 되어 짧은 형량만 살다가 출소하게 되었는데 곤잘레스가 토니 아틀라스를 협박해서 증언을 못하게 틀어막았다는 설이 있다. 비록 아무리 곤잘레스가 현지인이고, 브로디가 외국인이라 재판에서 곤잘레스한테 유리한 면이 있었던게 사실이긴 해도, 결정적인 증언이 없어서 살인이 정당방위가 되었을 정도면 정말로 곤잘레스가 토니를 협박해서 증언을 못하게 했을 가능성이 있다. 다만 브로디는 키가 200cm가 넘는 거인이었고, 반면 호세는 그렇지 않았기에 이렇게 체급 차이가 큰 둘이서 서로 싸우게되면 당연히 호세한테 대놓고 불리한 싸움인게 사실이라 체급이 작은 쪽인 호세가 정당방위를 인정받는데 있어서 유리한 면도 있었던게 맞다.[2]
[1]
사실 카말라는 오랫동안 아프리카 토인 기믹을 해왔지만 토니 아틀라스는 그 정도는 아니었다고 한다.
[2]
다만 토니 아틀라스를 협박한 것이 WWC의 오너 카를로스 콜론이라는 말도 있다. 즉, 호세 곤잘레스에게 살인을 사주한 것이 바로 카를로스 콜론이라는 것. 칼리토&프리모 형제의 아버지로도 유명한 그는 멕시코의 지역 유지일 테니 토니가 그를 두려워해서 증언을 하지 않는 것도 충분히 있을 만한 일이었다. 만약 카를로스 콜론이 사주했다면 토니 아틀라스의 증언으로 곤잘레스가 유죄가 되면 배후까지 드러날테니 카를로스가 자신이 배후에 있다는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토니를 협박했다고 한다면 충분히 맞아떨어진다. 물론 어디까지나 가능성 있는 가설일 뿐 확실한 건 아니다. 토니 아틀라스가 증언을 하지 않은 동기도 불분명하고. 또한 토니 아틀라스가 협박을 받았다는 설이 가설이듯이, 증언을 안한 동기가 불분명한 만큼 사실 그냥 브루저 브로디의 거만함이 마음에 안들고 그렇게 악감정이 생긴 와중에 살인이 일어나자 일부러 증언을 안했을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브루저 브로디는 생전에 거만함 때문에 그를 싫어하는 레슬러들도 많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