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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ff,#000><colcolor=#000,#ddd> Tank desant Танковый десант |
1. 개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소련군만 구사했다고 잘못 알려진 보전협동 공격전술. 전차만으로는 작전을 수행할 수 없으니 보병들을 탱크에 올려 기동하다 전투 돌입 시 하차해 엄호하는 것이다.[1]2. 상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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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ff,#000><colcolor=#000,#ddd> T-62에 탑승하여 탱크 데산트 중인 소련군 보병 |
보병은 전차와 보조를 맞춰서 움직이기 힘든데, " 장갑차는 모자라니 보병들을 탱크에 올라타게 해서 수송하면 된다!" 또는 "병사들을 전차 위에 올려 전투 중 기관총처럼 이용한다"라던가 심지어 " 보병을 추가장갑으로 이용한다"라는 식의 발상이었다고 오해받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로는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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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ff,#000><colcolor=#000,#ddd> 1978년 찍힌 동계 훈련 당시 촬영된 사진[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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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72에서 하차중인 소련군 병력 |
데산트란 말 자체가 영어의 descent에 해당하는 하차라는 의미다. 포탑이 회전하는 중인 전차 위에서 보병이 전투를 벌이겠다는 발상[4] 자체는 매우 위험하기 때문이다. 탱크 데산트는 기본적으로 나눠진 제대 중 무너진 적에 대해 본격적인 침투에 나서는 2제대부터 접적지역(接敵前進) 1km 이전에서 필요에 따라 행하도록 되어있는 별도의 전술적 행동이다. 당연히 소련뿐 아니라 미군, 영국군, 독일군 등등에서도 쓰였다.
알려진 것처럼 보병을 무작정 갈아넣는 전술이 아니었단 이야기. 이건 우라돌격과 같다. 당연히 모든 보병을 일정 수준 이상의 방호력을 갖추면서 기계화시킬 순 없고, 아무리 2제대부터라도 전차만 내보내면 위험하다. 종심 침투 시 보병을 트럭에 태워 차량화해 후미에서 따라오도록 하면 보병 입장에서도 발이 편하고 수송도 효율적으로 할 수 있다. 하지만 저항이 예상될 땐 트럭에게서 필요한 수준의 방호력을 절대 기대할 수 없으며 시야가 제한되고, 하차 후 전투 대형을 갖추는데 한 세월이 걸려 전차와 보병 모두 위험해진다. 때문에 기갑 위에 보병을 승차시켜 경계를 시키며 전투가 시작되면 즉시 반응할 수 있도록 하며, 주변에 엄폐물이 없을 시 전차를 엄폐물로 쓸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영상으로 보기(성인인증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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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ff,#000><colcolor=#000,#ddd> 오키나와 전투 당시 미 해병들을 수송중인 M4A3 (1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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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아프리카 전역 당시 병력을 수송중인 밸런타인 보병전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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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소전쟁 당시 보병을 수송중인 3호 전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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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중인 스위스군의 G13 대전차자주포[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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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ff,#000><colcolor=#000,#ddd> 퓨리에서 재현된 미군의 보병-전차 합동 작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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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ff,#000><colcolor=#000,#ddd> 미군의 전차 탑승 교범 |
한국전쟁 때도 있었는데 대표적인 것이 지평리 전투. 당시 지평리에서 중공군에게 포위된 미 2사단 23연대 전투단을 구출하기 위해 미 1기병사단 5기병연대의 M4 셔먼, M46 패튼 전차 25대가 출동했다. 이때 전차 보호를 위해 보병 165명을 전차에 총알받이로 태웠다. 9번의 격전 끝에 전차는 3대만 격파되고 22대가 지평리에 도착한데 반해, 보병들은 겨우 23명만 살아 있었다. 중공군들은 고지 위의 참호 속에 있고, 전차병들은 두꺼운 철판 속에 안전하게 보호된 상태에서, 전차 위에 얹혀 있던 미군 보병들만 죽어나간 것. 적어도 중공군의 육탄 공세를 막는데는 확실히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보병들의 희생률이 너무 높아 이건 아무리 봐도 자살공격이라 전투가 끝나고 나서 미군내에서도 비판이 일어 났으며, 당시 보병 중에서 전투를 위해 탱크에서 뛰어내려 싸우다가 다시 출발할 때 못 따라가 낙오되는 경우가 속출했다.
하지만 탱크 데산트는 지평리 사례에서도 확인 되듯이 전차 입장에서는 확실한 방호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보병들에겐 확실히 미쳐 돌아가는 작전 방식이라서 문제지.[9]
간혹 이걸 평시에 벌어지는 단순한 전차 얻어타기와 착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전시에는 전차와 보병이 작전상 합류하면 작전 끝날 때까지 생사고락을 함께 한다. 전차에 배치된 보병이 다 죽어가면서도 전차를 호위한다던지, 전차가 보병을 구하기 위해 위험한 육박전을 벌이는 이야기가 전사책을 펼치기만 해도 대량으로 나온다. 앞서 이야기한 전차장 재량이라는 것도 자신의 전차부대에 작전상 배속된 보병 중에서 승차보병을 고를 수 있는 자유가 있다는 뜻이다.
여담으로, 태평양 전쟁 때 미 해병대와 미 육군은 보전합동전술을 확실하게 깨우칠 수 있었다. 적 보병/강화진지/함정이 가득한 밀림과 상륙해안의 십자포화에서 스튜어트든 셔먼이든 전차가 아군 보병과 이격되면 확실하게 파괴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차와 동반한 보병 소부대가 산화하면서 전차를 지킨 전투가 많았고, 그렇게 살아남은 몇몇 보병과 전차가 전선을 돌파해 상황을 바꾸기도 했다. 보병부대와 전차간 소통이 원활하도록 전차의 뒤에 유선전화 수화기를 달아서, 동반하는 보병이 전차장과 통화할 수 있도록 했다.
탱크 데산트는 아니지만 상통하거나 다른 경우로 드물게 애초부터 보병 수송을 목적으로 한 IFV나 APC에도 내부가 너무 좁고 불편하거나, 날씨가 너무 덥거나, 지뢰/IED 등에 대한 방어력이 믿음직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차량 안의 승차공간은 비워놓고 외부에 타고 돌아다니는 경우가 종종 있다. 베트남 전쟁 당시 M113이나 M551 셰리든 위에 올라타고 다니던 미군이나 체첸에서 BTR 위에 올라타고 다니는 러시아군 등의 사진을 종종 볼 수 있다. 체첸전 등의 경우 RPG 등에 의한 콘보이, 기계화보병의 피해가 커지자 좁은 차량 내부에 모여있다가 한 번에 몰살당할 바에 차량 밖에서 경계를 하다 전투가 벌어지면 즉시 하차해 신속히 대응하는 게 유리하다는 전훈의 반영이라는 이야기다. 2010~2020년대 돈바스 전쟁에서도 이런 모습이 종종 보이는데, 이 쪽은 포병의 대전차 집속탄/지능탄에 당하는 경우가 많아서 나온 방법이라 한다.
3. 사장된 이유
- 국가간의 정규전이 극히 제한되었다. 대부분은 비정규전 수준이기 때문에 수송차량 확보가 어느정도 여유가 있는 편 이다. 즉 대규모 전쟁과 장기전으로 이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사장된 거 처럼 보일 뿐 이다.
- 하차하지 않은 상태에서 기습 공격시 전차 옆 보병들의 생존률이 낮다. 전차는 적에게 고가치 표적인 만큼 포병 사격부터 대전차 미사일/대전차포 등 집중 공격이 쏟아질 텐데, 전차 위 보병은 이 중 아무거나라도 기습적으로 얻어 맞으면 확실히 큰 피해를 입는다.[10] 현대에는 전차 기술이 발달하면서 APS가 탑재되는 경우도 늘고 있는데, 이는 결국 적의 위험한 발사체(대전차 고폭탄 탄두 등)를 이쪽에서 쏜 산탄 등으로 막는다는 개념이라 탱크 데산트로 보병과 전차의 거리가 지나치게 가깝다면 전차는 포탄을 요격하고 살아 남아도 전차 옆 보병은 전차가 쏜 산탄과 공중에서 폭발한 포탄 파편에 전멸할 수도 있다!, 또한 APS보다 이전 기술인 활성반응장갑의 경우에도 사실상 폭탄이기 때문에 활성반응장갑의 반응도 보병에게 상당히 위험하다. 실제로 체첸 전쟁에서 BTR위에 보병을 잔뜩 싣고 가다가 대전차 지뢰를 밟아 수십 명이 죽은 참사도 있어서 해당 동영상을 가지고 이제는 이런식으로 운용하지 말라고 교육용 자료로도 쓰이는 판이다.
- 당연히 탱크 위에 올라타서 진격하는 측도 바보가 아니라 군대마다 적군과 조우하기 1km 전후에서 보병들은 하차하는 게 정석인데, 적이 뭐 알아서 친절하게 1킬로 앞에 있다고 알려주는 것도 아니고 적의 척후나 게릴라가 선봉매복해 있다던지, 예상치 못한데서 기습당하거나 하면 탱크랑 보병 둘 다 똑바로 대응 못하고 몰살당하기 쉽다. 미군의 경우 베트남전 당시 본인들 계산으론 여전히 '후방'인 곳에서 저렇게 설렁설렁 얻어타고 전선으로 전진하다 땅굴이나 밀림 등에 매복해 있던 베트콩 복병의 RPG등을 맞고 떼죽음 당하는 일을 겪으면서 후방 행군중이라도 보병이 탱크 위에 대충 얻어타고 다니는 일을 지양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사소한 요소 같지만 혹시나마 피격당했을 때 전차병이 생존해 있으면 빨리 뛰쳐나와야 할 해치 같은 부위에 얻어타고 있던 보병 시체까지 올라가면 문을 빨리 열지 못하고 버벅거리는 사례마저 있다.
- 2차대전 이후 위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보병 차량의 발달 및 높은 생산량. APC나 IFV 등의 비교적 안전한[11] 수송수단이 늘어나면서 더 이상 위험을 감수하고 보병을 전차에 태워서 기동할 필요 없이 기계화보병을 동원할 수 있다. 2차대전까지는 아직 여러 나라가 기병 병과가 존재했고 말과 마차를 동원해 병참을 해결하던 시기로, 미국을 제외한 모든 참전국가가 차량 부족, 즉 장갑차가 아니라 그냥 '엔진 달린 탈것'의 부족에 허덕였다. 그래서 미국이라면 앞서 누차 언급한 것처럼 보전합동 전술의 일환 내지 전장 상황에 따른 임시조치일 이런 것이, 운송 수단이 태부족한 국가들에서는 물자가 달리는 전쟁 후반이 되면 보병을 하차전투 직전까지 전차와 동반하도록 해주는 탈것이 되는 경향이 커졌다.
- 전차와 항공기의 발달. 전차의 방호력과 화력이 증대되고 관측 및 표적 획득 능력이 월등해졌고, 항공기 또한 지원 요청에 더욱 빠르게 반응해[12] 정확하게 월등한 화력을 퍼부어 준다. 때문에 보병이 탱크와 같이 행군할 필요가 적어졌다. 거기다 탱크들도 변화하는 전장 환경으로 주변에 열화상 조준기, 연막탄 발사기 등등 첨단장비를 장착하고 현대화를 통해 반응장갑 등이 추가되면서 보병들이 걸터앉을 만한 자리가 줄어든 것도 사실이다.
- 그냥 전차 위에 타는 것 자체가 위험하다. 탈 필요가 없으면 안 타는 게 당연하다. 전차의 야지 주행 속도는 차가 좀 느리게 가는 것과 별반 다를 게 없고,[13] 애초에 밖에 사람이 타라고 만든 게 아니기 때문에 어떤 보호장치도 없다.[14] 그러니 조금만 험한 지형을 만나도 위아래로 급격하게 출렁이게 되고 이 때문에 보병들이 전차 위에서 떨어져서 부상을 입는 사례도 속출. 잘못되면 궤도에 깔리는 수가 있다. 또한 포탑의 대형화로 차체 위에는 탑승할만한 공간이 거의 없고 포탑 상부는 회전하기때문에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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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ff,#000><colcolor=#000,#ddd> 보병을 승차시킨 채 이동중인 우크라이나군의 T-64[15] |
4. 개그
탱크 데산트가 소련에서 반응장갑이 개발되기 전 사용된 단백질 재질의 증가장갑으로서, 자유자재로 탈부착이 가능하며 지역 정찰과 점령은 물론 공격까지도 가능한 매우 효율적인 전차 방어체계라는 의견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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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ff,#000><colcolor=#000,#ddd> 2차 세계대전 당시 탱크 장갑 일람 독일: 측면 추가장갑(사이드 스커트) 미국: 모래주머니 소련: 보병 보병 "님 방금 보병이라고 했음?" "ㅇㅇ. 보병이라고." |
이게 옛날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도 가난한 나라들 탱크가 이렇다. 2017년 필리핀군이 반응장갑 없이 반군세력과 격전을 벌일 때, 온갖 쇠붙이와 나무를 주렁주렁 매달고 전투를 벌였다.
[1]
예외적으로 연합군이 일본군의 자돌폭뢰조를 상대할 땐 기관단총을 든 병사들이 전차에 올라탄 상태로 싸웠다. 혹은 포탑 뒤에 달린 대공기관총을 다루기 위해선 병사가 탱크 차체 위에 올라타야 했다.
[2]
물론 전투 돌입시 하차 후 전투가 원칙이나, 전차에 올라탄 보병이 강 도하를 하거나, 점 표적의 목표물이 소수로 있을 때엔 하차하지 않고 전차 위에서 소총/기관총 사격을 해서 전차 엄호, 보병 방호도 했다. 출처는 소련군 교범(1971) 전차 탑승한 보병 간의 행동/전투강령.
[3]
https://warspot.ru/2258-rozhdennyy-dlya-globalnoy-voyny-geroy-lokalnyh-konfliktov
[4]
돌아가는 포탑에 맞아 상해를 입는 사건은 지금도 각국 기갑부대에서 자주 일어날 만큼 위험한 일이다.
[5]
스위스군은 애초에 탱크 데산트를 적극적으로 채택하여 G13 상부에 탑승하는 병사들에게 고무 군화를 지급했다.
[6]
그래서 이스라엘군은 전차병을 4명으로 유지한다. 3명으로 줄이면 할 일은 그대로인데 일할 사람이 줄어드니까.
[7]
당시 완전히 기계화된 군대는 미군밖에 없었기 때문에 어느 국가든 말까지 이용했다. 그 기계화된 미군도 전차에 사람 태우고 다니는데 다른 나라가 안 그랬을 리가 없다.
[8]
한 미군 보병은 "우린 전차병들을 존경한다. 용감하니까. 나라면 절대 그렇게 하진 못할 것 같다. 전차는 겉보기에는 안전해 보여도, 불이 붙으면 그 곳에서 타죽을 수밖에 없다. 아주 끔찍하게 말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사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전차병의 사망률은 보병의 사망률보다 낮았지만, 전차병이 죽는 원인은 주로 화재 아니면 유폭이라는 끔찍한 상황이고 전차병 스스로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불가항력이라 여겨졌으므로 이런 죽음에 대한 공포는 총에 맞아 죽는 것보다 더 클 수밖에 없었다. 당장에 퓨리 초반에서부터 관련된 장면이 나오는데, 교전 중 전차 내부에 발생한 화재로 전차에서 탈출한 전차 승무원이 전신이 불타는 고통을 끝내고자 권총 자살한다. (이는 여객기 사고로 인한 사망률이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률보다 현저히 낮음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으로 여객기 사고를 더 공포스럽게 여기는 이유와 동일하다.)
[9]
지평리 전투에서 포위당한 미 23연대는 3일간 중공군 3개 사단을 격파하고도 전사가 52명인데에 비해, 그들을 구조하던 부대에서 더 많은 사상자가 나왔다. 심지어 탱크마저 중간에 9번의 전투로 탄약을 다 쓰는 바람에 지평리에 도착해서 아무런 도움이 안 되어 다음날 그냥 다시 돌아갔다.
[10]
현대 전차전 교리상 일단 전차끼리 조우시 첫발로 날아오는 건 다목적으로 유용한
대전차고폭탄일 확률이 매우매우 높다. 보병을 식별했다면 당연히 동축기관총도 같이 날아올 것이고.
[11]
소총 사격이나 각종 파편으로부턴 확실히 방호가 가능하다.
[12]
특히 헬기의 발달이 컸다. 공격 헬기는 지상군의 머리 위에 상주하면서 사주 경계를 제공하며 필요시 정밀한 화력을 퍼부어 줄 수 있고, 수송 헬기는 보병들이 편리하고 비교적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이 될 수 있다.
[13]
그래도 현대 MBT들은 야지 시속 40, 평지 시속 60 이상은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평지라도 이정도면 느리게 가는 것도 아니다.
[14]
물론 용접등의 마개조를 거치거나, 일부 전차에는 보병용 손잡이가 달리기도 했다.
[15]
뒤쪽의 승용차는
부차 학살당시 러시아군 전차에 짓밟힌 차량이다. 자세히 보면 전차에 승차하고있는 보병 3명은 처참히 짓밟힌 저 차량을 보고있다.
[16]
양 진영에서는 방어용으로 예비 궤도도 많이 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