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D 트로펜스 | ||
Clube Desportivo Trofense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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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252569><colcolor=#fff> 이름 |
킹 Qui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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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조아킹 마누엘 삼파이우 다실바[1] Joaquim Manuel Sampaio da Silv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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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75년 11월 13일 ([age(1975-11-13)]세) | |
브라가 현 빌라노바드파말리캉 | ||
국적 |
[[포르투갈| ]][[틀:국기| ]][[틀:국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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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 키 182cm / 체중 80kg | |
직업 |
축구선수 (
골키퍼 / 은퇴) 축구코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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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 | <colbgcolor=#252569><colcolor=#fff> 유스 |
후이바넨스 AC (1988~1989) SC 브라가 (1989~1994) |
선수 |
SC 브라가 (1994~2004) SL 벤피카 (2004~2010) SC 브라가 (2010~2013) CD 아베스 (2013~20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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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치 |
CD 아베스 (2019~2020 / 골키퍼 코치) 히우 아브 FC (2021 / 골키퍼 코치) FC 티렌스 (2021~2022 / 골키퍼 코치) CD 트로펜스 (2022~ / 골키퍼 코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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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 | 32경기 ( 포르투갈 / 1999~20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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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포르투갈의 축구선수 출신 축구 지도자.2. 선수 경력
파말리캉 태생으로 1989년부터 SC 브라가의 유스팀에 입단했고, 1994년 처음으로 1군팀에 콜업되었다. 하지만 아직 나이 어린 유망주였기 때문에 1군 출전은 거의 없었다. 오랫동안 기량을 갈고닦은 킹은 1998-99 시즌부터 본격적으로 출전 시간을 늘려가기 시작했고, 성인 국가대표팀에도 뽑히는 등 성장을 이어갔다. 1999-00 시즌부터는 확고하게 브라가의 주전으로 자리매김했고, 2003-04 시즌까지 브라가에서 활약하며 총 208경기를 소화했다.2004년 여름 이적시장에서 SL 벤피카로 이적했다. 이적 첫 해에는 주제 모레이라와 경쟁하며 출전 시간을 나눠가졌고, 후반기에 주전으로 자리매김하며 팀의 우승에 기여했다. 덕분에 2005-06 시즌도 주전으로 활약할 것이 기대되었으나 부상으로 인해 모레투에게 주전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2006-07 시즌부터는 벤피카의 주전 수문장으로 자리매김했으나 킹의 폼과는 별개로 벤피카의 경기력은 만족스럽지 않았고, 급기야 2008-09 시즌에는 부상 여파로 인해 중간에 주전 자리를 내주더니 한때 서드 키퍼까지 밀리는 등 최악의 시기를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절치부심하여 후반기에는 다시 주전 경쟁에 뛰어들었고, 리그컵에서는 준결승전과 결승전에 선발 출전, 결승전 승부차기에서 무려 3개의 선방을 보여주면서 벤피카에게 리그컵 트로피를 안겨줬다. 그리고 2009-10 시즌, 다시 주전으로 자리매김한 킹은 유로파 리그와 타사 드 포르투갈은 줄리우 세자르[2]와 주제 모레이라에게 넘겨주고 리그에 집중했는데, 리그에서 무려 30경기 20실점 16클린시트라는 미친 활약을 선보이며 벤피카의 5년만의 리그 우승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리그컵에서도 결승전에 선발 출전, FC 포르투를 상대로 클린시트를 기록해 더블을 달성했다.
그렇게 커리어 하이를 갱신한 킹이었지만 30대 중후반을 향해 가는 킹의 나이를 우려한 벤피카와 킹은 재계약과 관련해 이견을 보였고, 결국 2010년 여름을 끝으로 계약이 만료되며 벤피카를 떠나게 되었다.[3] 벤피카를 떠난 킹의 선택은 친정팀 SC 브라가로, 3년 계약을 맺고 복귀했다. 그러나 불운하게도 복귀 첫 시즌부터 아킬레스건 부상을 입어 출전 없이 1년을 통째로 날려야 했다. 부상에서 회복한 킹은 2011-12 시즌을 앞두고 기존 주전이던 아르투르 모라이스가 SL 벤피카로 이적하면서 주전 자리를 되찾았고, 리그, 리그컵, 유로파 리그를 합쳐 41경기 42실점 12클린시트라는 좋은 활약을 보여줬다. 특히나 리그에서 경기당 1실점에 불과한 활약을 선보이며 브라가의 리그 3위에 공헌했다. 하지만 계약 마지막 해이던 2012-13 시즌에는 베투가 영입되며 다시금 주전 경쟁에 직면했고, 결국 전반기에는 주전 자리를 완전히 내주며 백업으로 밀려났다. 그나마 후반기에 주전 자리를 다시 가져오긴 했으나 노쇠화는 피할 수 없는 건지 전시즌에 비해 폼이 많이 내려왔고, 결국 킹은 2013년 5월에 이 시즌을 끝으로 은퇴할 것을 발표했다. 킹은 5월 11일 리그 29라운드 CD 나시오날전에서 은퇴경기를 치렀고, 이 경기에서 1:3으로 패한 것을 끝으로 현역 생활을 마무리했다.
그러나 얼마 후 킹은 은퇴를 번복했고, 브라가와의 계약은 이미 만료되어 FA로 풀려있던 상황에서 세군다 리가의 CD 아베스에 입단했다. 아베스에서 킹은 녹슬지 않은 기량을 선보이며 40줄에 가까워가는 나이에도 경기당 1실점에 가까운 실점률을 유지, 아베스의 수호신으로 맹활약하면서 2013-14 시즌과 2014-15 시즌에 두 시즌 연속 리그 최우수 골키퍼상을 수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번번이 승격과는 연을 맺지 못했으나, 끝내 2016-17 시즌에 아베스는 리그 2위를 기록해 1부리그 승격에 성공했으며, 킹은 그해 37경기 32실점 16클린시트라는 활약으로 팀 승격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승격이 결정된 시점에서 킹의 나이는 만 41세였다.
다만 나이가 나이다보니 다시금 프리메이라 리가 무대로 돌아온 2017-18 시즌에는 아드리아누 파치니와의 주전 경쟁에 직면했다. 시즌 초에는 파치니가 주로 출전하다가 5라운드부터 킹이 다시 장갑을 꼈고, 중간중간에는 팀 주장단의 일원으로서 완장을 차고 경기에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킹의 폼도 그렇게 좋지는 않았고, 1월 말부터는 다시금 파치니가 주전 골리로 올라서게 되었다. 하지만 주전에서 밀려난 대신 타사 드 포르투갈 준결승전부터는 컵대회 전담 골리로 장갑을 끼게 되었으며, 준결승전 두 경기에 모두 선발 출전했다. 5월 20일 스포르팅 CP와의 결승전에서는 주장 완장을 차고 선발 출전, 스포르팅의 맹공을 저지해내면서 아베스의 기적적인 2:1 승리에 기여했다. 벤피카와 브라가에서 리그와 리그컵은 들어봤으나 유일하게 타사 드 포르투갈 우승 트로피만 없었던 킹은 그렇게 커리어의 끝에서 자신의 힘으로 처음이자 마지막 타사 드 포르투갈 트로피를 들어올리게 되었다. 아베스 역시 1930년에 구단이 창단된 이래 약 87년 7개월여만에 구단 역사상 첫 컵대회 우승이라는 대업을 이룩했다.
그리고 타사 드 포르투갈 결승전을 끝으로 킹은 두 번째 은퇴를 선언했다. 은퇴 선언 당시 나이는 42세. 아베스에서 노익장을 보여주면서 늦은 나이까지 맹활약했고, 끝내 트로피까지 들고 영광스럽게 은퇴하게 되었다.
3. 국가대표 경력
청소년 대표팀 시절부터 포르투갈의 차세대 골리로 주목받았으며, 순차적으로 청소년 대표팀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그리고 1999년 8월 18일 안도라와의 친선경기에서 후반전에 비토르 바이아 대신 교체 출전하며 A매치 데뷔전을 치렀다. 이후 UEFA 유로 2000을 앞두고 백업 골리로 대표팀에 몇 차례 승선했고, 유로 2000 본선 명단에도 이름을 올렸다. 어차피 주전은 바이아, 백업은 페드루 에스피냐가 자리를 잡아둬서 킹은 서드 키퍼에 머물긴 했지만, 그래도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인 독일과의 경기에서 팀이 3:0으로 넉넉하게 앞서자 후반 종료 직전에 에스피냐 대신 교체투입되며 메이저 국제대회 데뷔전을 가지기도 했다.유로 이후 비토르 바이아가 부상으로 고생하는 사이 주전 자리를 꿰차기도 했으나, 이번에는 히카르두와의 주전 경쟁에 직면했다. 그러더니 월드컵을 앞두고 도핑 테스트에서 난드롤론이 검출되면서 킹에게 6개월 출장 정지 처분이 내려졌고, 결국 2002년 3월 A매치부터 로스터에서 빠지고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명단에서도 탈락했다.
출장 정지가 끝난 이후 다시금 대표팀에 이름을 올렸으나 이미 히카르두가 주전 자리를 완전히 꿰찬 상황이었고, 킹은 세컨 골리로 가끔씩 경기에 나서는 정도의 입지에 불과했다. UEFA 유로 2004와 2006 FIFA 월드컵 독일에서도 히카르두에 이은 세컨 골리로 벤치만 지켰다. 2006 월드컵 이후 UEFA 유로 2008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히카르두의 폼이 꾸준히 하락하면서 킹에게 다시 기회가 오는 듯 했으나 루이스 펠리페 스콜라리 감독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히카르두를 신임했고, 유로 2008 명단에 이름을 올렸으나 개막 직전에 손목 부상을 당하면서 결국 로스터에서 낙마하고 말았다. 거기에 스콜라리의 신임을 받고 주전으로 나선 히카르두가 결국 8강전에서 경기를 터뜨리는 실책을 두 차례나 범했으니 킹 입장에서는 더더욱 아쉬울 따름.
유로 2008 이후 스콜라리의 사임과 함께 히카르두도 주전에서 밀려났고, 신임 감독인 카를로스 케이로스 체제에서 킹은 드디어 국대 No. 1 골리로 낙점되었다. 그러나 2008년 11월 19일 브라질전 2:6 참패 후 케이로스의 눈 밖에 났는지 이후 주전은 커녕 백업으로도 대표팀에 소집되지 못했으며[4], 그대로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 명단에서도 탈락했다. 더구나 킹은 2009-10 시즌에 상술한대로 벤피카에서 커리어 하이 시즌을 보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케이로스는 서드 키퍼로 그리스 리그에서 뛰던 다니엘 페르난드스를 데려간걸 보면 그냥 킹에 대한 신뢰 자체를 잃은 듯. 결과적으로 주전 에두아르두 카르발류는 맹활약하긴 했으나, 케이로스의 못미더운 전술은 대회 내내 비판받았고 결국 포르투갈은 16강에서 스페인을 만나 일찌감치 짐을 쌌다.[5]
월드컵 이후 킹은 국대 복귀를 노렸으나 이번에는 아킬레스건 부상이 발목을 잡았고, 그 사이 대표팀이 파울루 벤투 체제로 바뀐 가운데 2011년 8월 A매치에서 오랜만에 대표팀에 승선했으나 백업 역할에만 머물렀다. 이후 대표팀에 소집되지 않으면서 그대로 국가대표에서 은퇴했다.
4. 지도자 경력
은퇴 당시부터 디렉터로서 아베스에 남는 것이 합의되어 있었고, 아베스가 2019-20 시즌부터는 아베스의 골키퍼 코치로 활동하게 되었다. 그러나 세계를 휩쓴 코로나19라는 직격탄을 맞으면서 아베스의 재정은 급격하게 휘청거렸고[6], 결국 2019-20 시즌이 끝나기도 전에 재정 문제로 인해 3부리그로 강등당하는 것이 확정되었다. 게다가 아베스가 구단에 쌓인 부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2020-21 시즌 불참을 선언, 사실상 해체되었고 선수들도 뿔뿔히 흩어지게 되었다. 골키퍼 코치로 팀에 있던 킹도 이때 아베스를 떠나게 되었다. 선수와 지도자로서 아베스의 마지막 불꽃을 함께하게 된 셈.이후 2021년 1월, 히우 아브 FC의 골키퍼 코치로 부임했다. #
2021년 7월, FC 티렌스의 골키퍼 코치로 부임했다. # 이후 티렌스에서 활동하다가 2022년 11월에 조르즈 카스킬랴 신임 감독의 제안을 받고 CD 트로펜스의 골키퍼 코치로 이직했다.
[1]
포르투갈어 표기법에서 m의 경우 단어 중간에는 'ㅁ'으로, 어말에서는 'ㅇ'으로 옮기므로 Joaquim은 '조아킹', Sampaio는 '삼파이우'로 옮긴다. 또한
로망스어와
게르만어권의 인명이나 지명의 관사는 발음의 변화를 반영하지 않고 뒤 요소와 붙여 적는다.
[2]
브라질 국적의 1986년생 골키퍼로, 흔히 알려진
줄리우 세자르와는 포지션과 국적은 같으나 다른 인물이다. 그 줄리우 세자르는 1979년생으로 당시 30세였고,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소속이었다.
[3]
킹을 내보낸 벤피카는 당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 자리잡지 못하던
로베르토를 영입해 모레이라, 세자르와 경쟁시키며 한 시즌간 써먹고
레알 사라고사에 1년만에 되팔았다. 이후 로베르토는 저니맨으로 라리가 여러 중하위권 팀들을 돌아다니며 활약하다 2022년에 은퇴했다.
[4]
하지만 킹을 탓하기에는 이날 킹의 경기력은 그렇게 나쁜 편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잘 한것도 아니지만 적어도 실점 상황에서 킹의 책임이 있는 상황은 별로 없었다. 오히려 케이로스 본인의 수비 전술이 더 문제시 되어도 할말 없을 상황. 안그래도 당시 케이로스는 덴마크에게 지고 스웨덴, 알바니아와 연달아 비기는 등 형편없는 경기력을 보여주며 우려를 사던 상황이었다.
[5]
케이로스는 월드컵 이후 도핑 검시관에게 폭언을 퍼부어 징계를 받더니, 유로 예선에서의 부진까지 겹치면서 얼마 못가 짤렸다.
[6]
이미 아베스는 2017-18 시즌 타사 우승으로
UEFA 유로파 리그 예신 티켓을 얻어냈으나, 유럽 클럽 대항전 라이센스를 취득하는데 실패해 진출권을 포기해야만 했다. 이미 재정 상황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던 것. 그렇게 경제적 규모가 크지도 않은 포르투갈 리가의 승격팀이 냅다 컵대회를 우승해버렸으니, 못일어날 일은 아니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