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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5 21:38:41

비토르 바이아

비토르 바이아의 역임 직책
{{{#!folding ▼
포르투갈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
주앙 핀투
(1989~1996)
비토르 바이아
(1996~2002)
페르난두 쿠투
(2002~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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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토르 바이아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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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포르투갈의 공영방송국(RTP)이 포르투갈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가장 위대한 포르투갈인 100명'을 선정. 단, 중복 투표가 포함됨.
TOP 10
1위 2위 3위 4위 5위
안토니우 드 올리베이라 살라자르 알바루 쿠냘 아리트리데스 드 수사 멘데스 아폰수 1세 루이스 드 카몽이스
6위 7위 8위 9위 10위
주앙 2세 인판트 동 엔히크 페르난두 페소아 세바스티앙 주제 드 카르발류 바스쿠 다 가마
11위~100위
11위 12위 13위 14위 15위
살게이우 마이아 마리우 소아르스 파도바의 안토니오 아말리아 호드리게스 에우제비우
16위 17위 18위 19위 20위
프란시스쿠 사 카르네이루 조르제 누누 핀투 다 코스타 누누 알바르스 페레이라 주앙 페레이라 드 알메이다 주제 무리뉴
21위 22위 23위 24위 25위
아고스티뉴 다 시우바 에사 드 케이로스 에가스 모니스 디니스 1세 페르난두 노브레
26위 27위 28위 29위 30위
주제 에르마누 사라이바 아니발 카바쿠 실바 움베르투 델가도 조제 아폰수 루이스 피구
31위 32위 33위 34위 35위
마르셀루 카에타누 페드루 누네스 안토니우 비에이라 플로르벨라 이스팡카 페르디난드 마젤란
36위 37위 38위 39위 40위
마리아 지 루르드 핀타실구 주앙 1세 소피아 드 멜로 브레이네르 안드레센 안토니아 페레이라 파더 아메리쿠
41위 42위 43위 44위 45위
안토니우 다마지우 아폰수 드 알부케르크 마누엘 1세 주제 사라마구 아라곤의 이사벨
46위 47위 48위 49위 50위
카타리나 에우페미아 카를루스 파레지스 주제 소크라트스 페드루 알바레스 카브랄 루이 드 카발로
51위 52위 53위 54위 55위
브리테스 지 알메이다 알베르투 주앙 자르딩 알마다 네그레이루스 바스쿠 곤살베스 알바루 시자 비에이라
56위 57위 58위 59위 60위
벨미로 데 아제비로 수사 마르틴스 마리아 두 카르모 세아브라 안토니우 안드라지 카를루스 1세
61위 62위 63위 64위 65위
마리자 비제우의 엘레노르 호자 모타 안토니우 테이셰이라 레벨루 아폰수 3세
66위 67위 68위 69위 70위
비토르 바이아 바르톨로메우 디아스 오텔루 사라이바 드 카르발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허만 호세
71위 72위 73위 74위 75위
마리아 2세 카를루스 로페스 아폰수 코스타 폰테스 페레이라 드 멜루 가구 코티뉴
76위 77위 78위 79위 80위
히카르두 아라우주 페레이라 마누엘 소브리뉴 시몽이스 마누에우 마리아 바르보자 드 보카주 헬리오 페스타나 조르주 삼파이우
81위 82위 83위 84위 85위
안토니우 샹팔리모 안토니우 로부 안투느스 질 비센트 마리아 헬레나 비에이라 다 실바 미겔 토르가
86위 87위 88위 89위 90위
나탈리아 코레이아 에드가 카르도주 페르낭 멘데스 핀투 루시아 수녀 알프레도 다 실바
91위 92위 93위 94위 95위
요한 21세 다미앙 드 고이스 주앙 4세 조아킹 아고스티뉴 아델라이드 카베치
96위 97위 98위 99위 100위
알메이다 가헤트 안토니우 젠틸 마르틴스 안토니우 바리아슈에스 파울라 레고 마리아 조앙 피레스
출처
같이 보기: 위대한 인물 시리즈
}}}}}}}}} ||
Futebol Clube do Porto
파일:c4d419398c07bcb1.jpg
<colbgcolor=#0050a3><colcolor=#ffffff> 이름 비토르 바이아
Vítor Baía
본명 비토르 마누엘 마르틴스 바이아
Vítor Manuel Martins Baía
출생 1969년 10월 15일 ([age(1969-10-15)]세)
포르투갈 제2공화국 빌라노바드가이아
국적
[[포르투갈|]][[틀:국기|]][[틀:국기|]]
신체 185cm
직업 축구 선수 ( 골키퍼 / 은퇴)
소속 <colcolor=#ffffff> 선수 FC 포르투 (1988~1996)
FC 바르셀로나 (1996~1998)
FC 포르투 (1999~2007)
국가대표 80경기 ( 포르투갈 / 1990~2002)

1. 개요2. 클럽 경력3. 국가대표 경력4. 은퇴 이후5. 플레이 스타일6. 기록
6.1. 대회 기록6.2. 개인 수상
7. 여담

[clearfix]

1. 개요

포르투갈의 전 축구선수. 선수 시절 포지션은 골키퍼.

주앙 핀투, 페르난두 고메스와 함께 FC 포르투 역대 최고의 선수이자 포르투갈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로 불린다.

2. 클럽 경력

지역의 유소년 클럽에 있다가 1983년 거함 FC 포르투의 유스팀으로 적을 옮겼고 1988년에는 1군으로 콜업되어 서서히 입지를 넒혔다. 1988-89 시즌 제 베투, 요제프 무이나르치크와의 경쟁에서 15경기 출장을 잡아낸 바이아는 시즌이 끝나고 무이나르치크의 은퇴와 동시에 완벽한 주전 골키퍼로 올라섰다.

1996년 FC 바르셀로나로 떠날 때까지 바이아는 주전자리를 사수했고 모든 대회를 합쳐 315경기에 출전했는데 리그 우승 5회, 슈퍼컵 우승 4회, 리그컵 우승 2회를 차지했으며 매시즌 0점대 실점률을 기록했다. 1996-97 시즌을 앞두고 바이아는 안도니 수비사레타의 은퇴 이후 확실한 대체자를 구하지 못한 FC 바르셀로나에 입단한다. 첫 시즌 바이아는 주전자리를 확보하며 UEFA 컵 위너스컵, 코파 델 레이 우승에 기여했으나 무릎 부상이 발생했고, 설상가상으로 감독이 자신을 영입한 바비 롭슨에서 루이 판할로 교체되며 뤼트 헤스프를 영입하자 백업 멤버로 전락했다.

결국 1999년 바이아는 친정팀인 FC 포르투로의 복귀를 선택했고 후반기를 보냈다. 그러나 바르셀로나 시절 입은 부상이 재발했고 시즌을 통째로 날리는 등 2001-02 시즌 후반기가 거의 다 돼서야 그라운드에 복귀할 수 있었다. 2002년 포르투에는 매우 중요한 인물이 영입되었는데, 주제 무리뉴가 바로 그였다. 무리뉴의 선임으로 포르투는 유럽을 휩쓰는 강팀이 되었고, 베테랑 바이아는 후방을 든든히 지켰다.

2002-03 시즌 포르투는 UEFA 컵에서 셀틱 FC을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파일:13744811.jpg
빅 이어에 키스하는 바이아
2003-04 시즌에는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 AS 모나코 FC를 격파하며 빅 이어를 차지했다. 바이아는 이 과정에서 무수한 선방을 해내며 팀의 성공에 기여했고 2004년 UEFA 최고의 골키퍼로 선정되는 영광을 누리기까지 했다. 무리뉴가 첼시 FC로 떠나고도 2004-05 시즌까지 바이아는 포르투의 No.1 골키퍼였으나 2005-06 시즌 브라질 출신의 에우통이 팀에 입단하자, 서서히 자리를 내주었고 2006-07 시즌 완전히 백업 멤버가 되면서 시즌 종료 후 현역에서 은퇴했다.

3. 국가대표 경력

파일:2018-10-14 16.35.37.jpg

1990년 미국을 상대로 국가대표팀에 데뷔했으며 주요 대회로는 UEFA 유로 1996, UEFA 유로 2000, 2002 한일 월드컵에 참가했다.
박지성에게 결승골을 허용하는 바이아

2002 한일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을 상대로 수 차례 선방쇼를 보여주었으나 결국 박지성에게 결승골을 허용한다.[1] 2002년 한일 월드컵이 끝난 뒤에도 바이아의 독주는 계속될듯 싶었으나, 감독이 루이스 펠리페 스콜라리로 교체되자 예상치 못한 전개로 국가대표팀 골키퍼 주전자리가 흘러가게 된다. 특히 유로 2004를 목전에 두고 2003/04 시즌 유럽 최우수 골키퍼상, 2004 IFFHS 선정 세계 최고 골키퍼 및 포르투갈 리그 우승과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골키퍼였던 바이아를 두고 히카르두를 콜업한 스콜라리를 두고 당시에도 기용에 의문을 표하는 목소리가 많았고, 이후 바이아는 다시 콜업되지 못하며 자연스레 국가대표 커리어가 끝나게 된다.

4. 은퇴 이후

은퇴 이후에는 FC 포르투의 앰버서더로 활동하고 있다.

이스타디우 두 드라강에서 개최된 맨체스터 시티 vs 첼시 2021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 경기에서 빅이어를 들고 등장했다.

5. 플레이 스타일

FC포르투에서만 26번의 트로피를 들어올린, 키퍼로서 축구사에 손꼽힐 정도로 많은 수상경력을 가진 우수한 골키퍼였다. 또한 포르투갈 국가대표팀 황금세대의 일원이었던 선수로, 다수의 포르투갈 올해의 선수상을 받기도 했다.

180대 초중반이라는 포지션상 불리한 여건의 신장이었음에도 놀라운 반사신경과 빠른 판단을 바탕으로 한 안정감이 가장 큰 덕목이었던 선수였다. 데뷔 직후 포르투에서만 묵묵히 7시즌 가까이 보낸것만 해도 이를 증명한다. 특히 페널티킥 선방에 일가견이 있어 유로 2000 8강 튀르키예전, 02-03 UEFA컵 4강 라치오전 등 중요한 경기에서 결정적인 선방들을 이끌어냈다.

또한 리더십 인성 또한 훌륭해 소속팀과 대표팀에서도 여러차례 주장으로 활약했다. 특히 바이아의 뛰어난 인품과 화술은 코치진과 동료들이 그의 실력만큼이나 신뢰하는 것이었는데 바이아가 현역시절부터 갈고 닦은 깔끔하고 스마트한 이미지는 현역 시절 뿐만이 아니라 은퇴 이후에도 바이아가 훗날 FC 포르투 엠버서더로 활동하게 해주었다.

6. 기록

6.1. 대회 기록

6.2. 개인 수상

7. 여담



[1] 그의 활약이 없었으면, 아니면 한국에 2002 월드컵 엔트리보다 더 뛰어난 골잡이가 있었으면, 포르투갈은 최소 3:0 이상의 끔찍한 패배를 맛 볼 수도 있었다. [2] 해당 멤버들은 페르난두 쿠투, 세르지우 콘세이상, 후이 코스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