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이사키오스 두카스 콤니노스 (Isaac Doukas Komnenos) |
출생 | 1155년 |
사망 | 1195년 |
직위 | 키프로스 총독 |
반란 대상 | 안드로니코스 1세, 이사키오스 2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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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동로마 제국 콤니노스 왕조와 앙겔로스 왕조의 반란자. 키프로스의 지배자로서 황제를 자칭해 콘스탄티노폴리스 정부와 대립했으나, 1191년 리처드 1세가 이끄는 영국군에게 패한 뒤 룸 술탄국으로 망명했다.2. 생애
요안니스 2세의 3남 이사키오스 콤니노스의 외손자이다. 이사키오스 콤니노스는 동생 마누일 1세가 집권할 때 잠시 억류되었다가 풀려난 뒤 조용히 살면서 테오도라 카마테리나 사이에서 딸 이리니를 낳았다. 이리니는 두카스 집안의 어느 남성과 결혼하였고, 1155년경 이사키오스 두카스 콤니노스를 낳았다. 그는 키프로스에 사유지를 두었고, 킬리키아 아르메니아 왕국의 공주와 결혼했다. 이후 마누일 1세로부터 이사우리아와 타르수스의 총독에 임명되었으나, 킬리키아 아르메니아 왕국과 교전하던 중 붙잡혔다. 당시엔 마누일 1세가 사망한 뒤 제국이 혼란스러워졌기 때문에, 아무도 그를 신경쓰지 않았다. 이로 인해 그는 감옥에서 오랫동안 풀려나오지 못했다.그러다 예루살렘 왕국의 황후이자 그의 고모인 테오도라 콤니니가 안드로니코스 1세를 설득하여 몸값을 지불하게 하였고, 그는 겨우 풀려날 수 있었다. 그는 키프로스로 돌아간 뒤 1183년 또는 1184년 자신이 총독으로 임명되었다는 황제의 위조된 칙령을 내세우며 섬의 지배자가 되었고, 얼마 안가 스스로 황제를 칭했다. 그는 폭압적인 방식으로 섬 주민들이 반란을 꿈꾸지 못하게 했다. 1185년 안드로니코스 1세가 몰락한 뒤 새 황제가 된 이사키오스 2세는 키프로스를 되찾기 위해 함대를 보냈다. 그러나 이사키오스 두카스 콤니노스는 마가레이테스라는 이름의 시칠리아 해적의 도움을 받아 제국 함대를 격파했다.
1191년, 예루살렘을 되찾기 위해 원정을 떠난 리처드 1세의 함선 일부가 도중에 폭풍우를 피해 키프로스로 표류했다. 그런데 이사키오스는 함선들을 약탈하여 재물을 갈취했다. 리처드는 재물을 돌려달라고 했지만, 이사키오스는 무시했다. 이에 열받은 리처드는 키프로스에 상륙하여 이사키오스의 군대를 섬멸했다. 이사키오스는 리처드에 항복한 뒤 시리아 해안가에 있는 마르카브 성에 감금되었다. 3년 후 겨우 풀려난 그는 룸 술탄국으로 망명하였고, 그들의 힘을 빌려서 동로마 황제가 되려 했다. 그러나 1195년경 독살로 의심되는 증세를 보이다 사망했다. 역사가 니키타스 호니아티스에 따르면, 그가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누구도 슬퍼하지 않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