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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02 19:09:46

퀸투스 파비우스 픽토르


퀸투스 파비우스 픽토르
라틴어: Quintus Fabius Pictor
생몰년도 기원전 270년경 ~ 기원전 200년
출생지 미상
사망지 미상
계급 파트리키
가문 파비우스 가문, 픽토르 가문
국가 로마 공화정
경력 원로원 의원, 법무관, 델포이 파견 대표단(기원전 216년)
가족 가이우스 파비우스 픽토르(조부)
가이우스 파비우스 픽토르(아버지)
퀸투스 파비우스 픽토르(아들)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사촌)
참전 제2차 포에니 전쟁

1. 소개2. 생애3. 역사가로서

1. 소개

제2차 포에니 전쟁 시기에 활동한 고대 로마의 귀족이자 장군, 역사가. 고대 로마 시대의 역사가 중 최초의 인물로 거론되는 이 중 한명이다.

2. 생애

노멘인 '파비우스'에서 드러나듯, 로마 건국부터 파트리키(전통혈통귀족) 계급을 대표한 대귀족 씨족 파비우스 가문 출신이다. 사촌형은 그 유명한 지구론자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로, 코그노멘으로 사용한 픽토르는 기원전 306년경 조부 가이우스 파비우스 픽토르가 로마의 여신 중 복지, 건강, 번영을 담당한 살루스를 모신 신전을 담당, 관리, 장식한 배경으로 얻게된 명예로운 별칭이다.

아버지 가이우스 파비우스 픽토르는 기원전 269년 집정관을 지냈고, 집안 어른과 사촌들은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카이쿠스의 대대적인 시민권 확대, 평민, 무산자, 해방노예 권리 향상 및 사법 정비, 시민권 권리 보장에 격렬히 반대한 완고하고 고집 센 로마귀족이다.

기원전 230년대부터 갈리아 키살피나[1]에서 벌어진 갈리아인, 리구리아인과 로마 사이에 벌어진 전투에 참전했다. 기원전 233년, 사촌형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 아래에서 하급 장교, 사령관 휘하 부관으로 복무했던 것으로 보이며, 이때의 경력과 가문의 위세를 내세워 기원전 218년 이전 법무관을 지냈다.

기원전 218년 제2차 포에니 전쟁 발발 전, 원로원에 정식 합류한 것으로 보이나, 가문의 명성과 달리 원로원 의원으로서는 상당히 무능하고 불명예스러웠던 경력을 가지고 있어 동료들에게 인정받지 못했다. 이렇게 된 이유는 기원전 217년 벌어진 트라시메누스 호수의 전투에서 지휘관으로 참전해, 그 무능함을 드러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이런 배경에도 가문이 로마 공화국 안에서 코르넬리우스 가문과 함께 최고라고 해도 좋을 파비우스 가문인 까닭에, 기원전 216년 칸나이 전투 후 열린 델포이 신전 방문 사절대표단 중 1명으로 선정돼 파견됐다. 이는 그가 어릴 적부터 로마 원로원 내부에서 그리스어 구사 능력이 탁월하고, 그리스인들의 풍습을 잘 알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때 그에게 큰 도움을 준 이가 사촌형 파비우스 막시무스였는데, 이런 연줄에도 파비우스 픽토르는 자기 역할을 훌륭히 수행했다고 평가받았다.

포에니 전쟁이라는 로마 건국 이래 최대 전투, 국란 중에 활동했음에도, 델포이 신전 파견 이후의 경력과 삶 모두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그의 동명이인 아들은 기원전 189년 사르데냐을 담당한 법무관을 지냈다고 한다. 아들 퀸투스 파비우스 픽토르는 기원전 167년 사망했는데, 그 역시 가문의 명성과 달리 집정관, 감찰관과 같은 고위직을 차지하지 못했다.

3. 역사가로서

이전 로마인들과 달리 파비우스 픽토르는 후대 로마인들의 역사 기술과 연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평가받는다. 그 이유는 그가 기술한 단편의 저서들이 후대 로마인 사가들에게 주요 사료로 활용되고, 그가 그리스식 역사학 기술과 연구방법을 로마세계에 선구적으로 도입했기 때문이다.

파비우스 픽토르의 기록은 현재 일부 단편 외에는 거의 소실됐다. 그러나 그는 여타 로마인들과 달리 거의 최초로 그리스어로 자국 역사를 기술했고, 그 방식 역시 그리스인 역사가들의 방법을 고스란히 활용했다.

로마 공화국의 이상적인 모델에 대해 "동맹국들과 충실한 관계를 쌓는, 잘 정돈된 국가"를 내세우면서 관습적이고 완고하며 고리타분한 스타일의 사고를 남아 있는 자신의 저서에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고 평가받는다. 그래서 그는 제2차 포에니 전쟁에 참전했음에도 자국의 전쟁을 비난하고, 원로원 내에서 자신이나 출신 가문과 사이가 나쁜 인물이나 가문에 대해 매우 당파적이고 비방적으로 서술했다. 이런 까닭에 그는 본인과 선대 모두와 사이가 껄끄러웠던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카이쿠스와 같은 인사들에 대해 "무능하다", "부패하다" 등으로 폄하했다.
[1] 알프스 이쪽의 갈리아라는 뜻으로, 현재의 이탈리아 북부의 롬바르디아 에밀리아로마냐 지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