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 문서: 쿵푸팬더/줄거리
쿵푸팬더가 무협인가 무협이 아닌가에 대한 논란 문서다.
1. 무협이다.
한국은 무협소설의 인기가 대만 중국 다음 가는 국가이며 창작 활동이 활발한 무협을 잘 아는 나라이다. 일본은 일찍이 특유의 챤바라(チャンバラ-칼싸움)물이 확고히 자리를 잡았기 때문에 중국식 무협은 인기가 없다. 그래서 본토로 무협을 수출하거나 중국인들에게 한국산 무협에 대해 이야기하니까 무시하길래 실제 작품을 보여주니까 퀄리티에 데꿀멍하더라는 에피소드를 통해 나름 자부심도 품는 편이다. 그 자부심의 근거는 '협'에 대한 공통적 이해. (대만인들이 한국인들의 협을 이해했다고 보면 된다.)무협이 흥행하는 ('의협'이라고 하면 일본도 찬바라라든가 가부키모노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추신구라) 서양에 대해서는 스타워즈나 중국 무술 영화에 영향받은 격투 액션 영화 식으로 자기네 식 어레인지를 하거나 이연걸이 《리셀웨폰 4》에서 악당 역으로 출연해서 중국 무술로 잘 싸우다가도 결국 (서양인의 사고 방식과 입맛에 걸맞는) 순수한 힘과 맷집에 패배하는 에피소드를 들어 서양에선 무협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식으로 조금 내려다보는 시선을 가지는 사람도 있었다.
근데 그런 헛된 자부심이 '쿵푸팬더 한 방에 박살' 났다. 《쿵푸팬더》는 전달하는 메시지나 메타포, 소재 등등에서도 무협의 본질을 제대로 소화하고 있고 시장적 성공에 대해서도 규모에서 밀리는 한국의 어떤 무협 소설이나 영화도 견주기 힘들다. 사실 서양에선 방대한 동양 고전에 대한 연구가 이미 완성 단계에 접어들었다. 도올이 핏대를 세우며 '세상 모든 지식은 영어와 일어에 다 들어있다' 고 번역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 있다. 또한 양덕후에게 쿵푸 영화나 일본 애니메이션이 침투하기 시작한 것도 40년이 넘었고 홍콩 반환 뒤 무술 감독들이 할리우드에 진출한 것도 10년이 넘었다. 심지어 오래 전부터 무술계에서도 '비전 완전 공개'를 내세우며 세계적으로 문호를 넓히는 추세다. 서양이 쿵푸 문화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은 우리만의 착각일 뿐이다. 물론 이 영화에 동양계 사람들이 제작에 참여했을 테니 온전히 서양만의 작품이라고 하기에도 무리라고 보인다.
무협이 아니라는 주장은 애써 작품을 폄하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 《 취권》과 《 소림사》 등의 70년대 무협에서부터 도의 설정을 읽어내고 유가와 도가 원전의 내용을 엮어내 설명하는 논문들이 서양에는 부지기수이다. 또 모든 배움은 단순한 것에서부터 복잡한 것으로 전개된다. 아이들에게 신데렐라 원전을 읽힐 수 없듯이 동화책으로 된 라이트판을 주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리고 《 7인의 사무라이》를 배경으로 동양사상을 대충 조잡스럽게 양념 정도로 섞었다 비웃음 당했던 《 스타워즈》부터 30년간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칭송받고 그것을 시발점으로 동양사상을 접한 서양인들이 얼마나 많았는가를 생각하면 이를 직접적으로 표출한 《쿵푸팬더》에 대한 위와같은 이야기는 폄하 밖에는 되지 않는다.
그리고 무협은 그리 대단한 게 아니다! 누군가를 위해 올바른 일을 한다는 것, 그리고 그 계기가 무엇이건 주인공이 만민을 대신해 바른 일을 (비록 수단 자체는 올바르지 않을지언정) 하는 이야기를 중국인들이 써내려간 이야기가 무협이고, 이 테이스트는 전세계가 공유하는 것이다. 복수극과 무협 간의 차이는 단지 중국풍이냐 아니냐는 것.
무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俠이니 무엇이 옳고 그른지 잘 나타나지 않는 《쿵푸팬더》는 무협이 아니라는 식으로 주장한다면, 중국 내부에서도 가볍게 만들어진 수많은 무협영화들은 전부 그냥 동네 건달의 깽판물이라는 것인가? 시대배경 확실하고 나라를 위해 역적과 외적을 때려잡는 《 사조영웅전》은 무협이고, 개인의 원한으로 움직이는 쉬커의 《 칼》은 찬바라 물인가? 게다가 애초에 중국의 협이라는 개념은 지극히 개인적인 정의감이나 은원으로부터 시작된다. 무엇보다 쿵푸팬더는 武로서 俠을 이룬다는 무협의 가장 기본적인 개념을 충실히 지켜냈다. 다른 형식의 무협은 무협일 뿐. 훌륭한 무협물이다.
2. 무협이 아니다.
이 영화의 원전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은 무협소설이 아니라 무협 영화, 그것도 성룡과 이연걸이 주연한 '취권' 과 '소림사' 등의 70년대의 것이다. 긴 호흡으로 중국의 역사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어 표피적으로라도 문화적 맥락에 대해서 습득할 수 있는 소설에 비해서 영화는 의도적 삭제, 희화화를 거치기 때문에 그 이해의 깊이가 다를 수 밖에 없다. 그냥 코믹 액션 영화로 기억되는 '취권' 도 사실 황비홍이 주인공이다. '쿵푸팬더' 에서도 많은 내용에서 현실에 대한 일정 부분의 왜곡, 단순화[1]를 피할 수 없었다. 나름의 완성도는 충분히 가지고 있지만 70년대의 '쇼브라더스' 제작의 많은 무협 영화의 리메이크라는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기는 힘들다.더구나, 무협이 가져야 하는 '俠'의 이미지는 제로. 중국의 무협, 한국의 무협, 일본의 무협이 갖고 있는 '무엇이 옳은가'에 대한 고민을 등장인물 중 아무도 하지 않는다. 과연 포가 추구한 것이 포 나름의 정의나 옳음일까 그냥 짱쎈 쿵푸마스터일까? "힘으로 악당을 때려잡고 좋은 일을 한다"를 무협이라고 부른다면 다이하드의 존 맥클레인도 훌륭한 협사다. 하지만 무협의 '俠'이 무언지 떠올려본다면, 택시 드라이버의 트래비스와 존 맥클레인은 완전히 다른 장르의 주인공이 된다.
십삼매, 포청천 등의 청대 소설, 중화민국 시절 (대만으로 넘어간 이후에도!)의 무협소설에 기본으로 깔린 것은 '무도하고 강한 자들에 대한 열등의식의 표출'이다. 변발한 만주인에게, 노란머리 양코배기들에게, 아무것도 아닌 줄 알던 공산당에게 당한 이들이 써내려간 환상이 무협소설인데, 과연 우그웨이, 시푸, 포에게 그런 게 있을까? 타이렁이라면 모르겠지만 타이렁의 고뇌가 영화의 시놉시스에서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은 상황이다. 메시지는 제로, 메타포는 그저 이름들 뿐이고 (臥虎藏龍)을 직역한 수준에서 한치도 못나갔다. 홍콩에서 4자 한자제목을 완전히 다른 영어제목으로 바꾸는 수준도 못하고 있다. 喋血雙雄이 The killer, 笑傲江湖가 Swordman, 黃飛鴻을 Once upon a time in China로 바꾸는 수준의 이해까지도 안된다는 거.) 소재야 중국무술쓰는거지만 무공의 형이나 이름, 하다못해 그 무공의 역사라든가 전통 따위는 개뿔도 없다. (중국 무협에서 왜 수천년 역사를 깔아대는지 그 '메타포'를 생각해보시라.)
참고로, 무협에서의 유가나 도가는 그저 중국풍의 양념이다. (무협이 '언제' 나온 것인지를 확인해보아야 한다.
3. 관련 문서
[1]
예를 들어 명백히 중국식 승려 복장을 하고 있는 우그웨이가 수련한 곳은 도교의 심벌인 태극 모양의 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