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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2-12-11 04:26:44

코티스 3세(보스포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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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포로스 왕국 티베리우스-율리우스 왕조 12대 군주
Κότυς | 코티스 3세
파일:코티스 3세(보스포로스).jpg
제호 한국어 코티스 3세
그리스어 Κότυς
라틴어 Cotys III
별명 필로카이사르 필로로마이오스 에우세베스(Philocaesar Philoromaios Eusebes: 카이사르를 사랑하고 로마를 사랑하며 경건한 자)
생몰 년도 미상 ~ 234년
재위 기간 서기 228년 ~ 서기 234년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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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보스포로스 왕국 티베리우스-율리우스 왕조 12대 군주.

2. 생애

보스포로스 왕국 티베리우스-율리우스 왕조 10대 군주 사우로마테스 2세의 아들이다. 형제로 레스쿠포리스 2세가 있었다. 레스쿠포리스 2세는 210년 사우로마테스 2세 사망 후 왕위에 오른 뒤 225년 또는 226년에 그를 배제하고 아들 로메탈케스를 공동 통치자로 내세웠다. 그러나 228년을 끝으로 두 사람의 주화는 더 이상 주조되지 않았고, 그가 뒤이어 왕위에 올라 자신의 동전을 주조하기 시작했다. 학자들은 그가 두 사람을 살해하고 왕위를 찬탈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그는 즉위 후 알란 족의 침략에 맞서기 위해 사르마티아인들과 동맹을 맺고 사르마티아 여인과 결혼했다. 또한 아들로 추정되는 사우로마테스 3세를 229년 공동 왕으로 세웠다. 그러나 사우로마테스 3세의 주화가 232년을 끝으로 더 이상 생산되지 않은 걸 볼 때, 그 해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기원전 233~234년에는 레스쿠포리스 3세의 주화가 주조되었고, 1913년 헤르손에서 발견된 비문에서 언급된 체도스비오스 왕이 비슷한 시기에 등장했다는 설도 제기되었다. 하지만 그와 레스쿠포리스 3세, 체도스비오스의 관계는 밝혀진 바 없다.

한편, 보스포로스 왕국의 경제 상황은 계속 악화되어서 금화에 사용되는 금 함유량이 지속적으로 줄어들었다. 말년에는 아예 금화 주조가 중단되었고 은화와 청동 화폐로 전환되었다. 234년 이후로 그의 주화가 더 이상 주조되지 않은 것을 볼 때 이 시기에 사망한 것으로 보이며, 인닌티마이오스가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