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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포로스 왕국 티베리우스-율리우스 왕조 16대 군주 Ἰνινθίμηος | 인닌티마이오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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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호 | 한국어 | 인닌티마이오스 |
그리스어 | Ἰνινθίμηος | |
라틴어 | Ininthimeus | |
생몰 년도 | 미상 ~ 239년? | |
재위 기간 | 서기 234년 ~ 서기 239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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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보스포로스 왕국 티베리우스-율리우스 왕조 16대 군주.2. 행적
234년부터 자신의 화폐를 주조하기 시작한 이 왕의 기원에 대해 티베리우스-율리우스 왕조의 일원이었을 것이라는 주장과 사르마티아 또는 알란족 혈통의 외국인 찬탈자였을 거라는 설이 병립하고 있다. 찬탈자였다는 설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그가 전임자들과 다른 탐가(tamga: 추상 인장)를 사용했다는 걸 지목하지만, 다수의 학자들은 그것만으로 외부 세력 출신이라고 보기 힘들며, 티베리우스-율리우스 성씨를 계속 체택하고 방어 요새를 꾸준히 중축하는 등 유목민족의 침략에 대비한 것을 볼 때 왕가의 일원일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하지만 그와 전왕 코티스 3세, 레스쿠포리스 3세와의 관계는 기록이 없어서 알 수 없다.그는 통치 초기부터 알란, 사르마티아, 고트족 등 여러 외세의 공격에 맞서기 위해 판티카파에움에 일루라톤 요새를 추가로 건설하는 등 여러 요새를 세웠다. 또한 경제 사정이 악화된 점을 감안해 금화 주조를 완저히 중단하고 아프로디테 또는 이슈타르 여신의 초상을 담은 은화와 청동화를 주조했다. 그러나 238년에서 240년 사이에 알란족이 대대적으로 쳐들어와서 크림 반도 전역이 파괴되는 걸 막지 못했으며, 수도 고르기피아는 239년 함락되어 철저히 파괴되었다. 그는 이때 죽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레스쿠포리스 4세가 왕위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