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네스 R. 셰드릭 Kenneth R. Shadric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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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31년 8월 4일 |
미국 켄터키주 할런 카운티 | |
사망 | 1950년 7월 5일 (향년 18세) |
대한민국 경기도 화성군 오산면 서정리 | |
복무 | 미합중국 육군 |
최종 계급 | 미국 육군 이병 |
복무 기간 | 1948~19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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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군인.2. 생애
켄터키주 할런 카운티 출신으로 와이오밍에서 성장했다. 어린시절 자전거, 사냥을 즐겼다. 고등학교 성적도 최상위권 성적이였으며 축구팀을 창설하기도 했다. 하지만 팀은 유니폼을 살 여유가 없었고, 셰드릭의 아버지는 옷 한 벌을 사는 데 5달러를 주었지만, 1948년 10월 사물함에서 도난당했다. 이후 학교를 자퇴했다.1948년 육군에 입대해 일본에 있는 제24보병사단 34보병연대 대전차반에 소속되었다.
규슈에서 근무하다가 6.25 전쟁이 터졌고 찰스 B. 스미스가 이끄는 제24보병사단 제21연대 1대대가 주축인 스미스 특수임무부대(Task Force Smith)는 이다츠게 비행장을 출발해 7월 1일 08시 45분 부산에 도착하였으며, 이날 20시에 기차로 부산에서 출발하여 7월 2일 08시에 대전에 도착한 후 북진하여 오산 죽미령에 방어 진지를 구축하고 이른바 오산 전투를 통해 북한군을 7시간 정도 지연시켰으나 많은 피해를 입고 퇴각했다.
스미스 특수임무부대에 이어 두번째로 한국에 전개하여 7월 2일 한국 땅을 밝은 제24보병사단 제34보병연대는 오산에서 남쪽으로 16km 떨어진 평택과 안성에서 진격하는 북한군을 지연시키는 작전에 계속 맞서 싸웠다. 제34보병연대는 소형 정찰대의 일부로 셰드릭을 오산에서 남쪽으로 8 km 떨어진 서정리 마을로 북진시켰다. 찰스 E. 페인 중위의 지휘 아래 바주카 팀과 보병으로 구성되었던 이 작은 부대는 마을의 묘지에서 북쪽으로 가는 길에 북한의 T-34를 발견하였다.
셰드릭과 다른 바주카 부대원은 오후 4시경 장거리로 은폐되어 있는 위치에서 탱크에 바주카를 발사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별 피해를 주진 못했다. 당시 사진작가인 찰스 R. 턴불 병장이 바주카를 쏘고 사진을 찍었고 찍은 직후 숙였다가 섀드릭이 피해결과를 확인하려 일어선 순간 T-34의 기관총 사격으로 2발의 총알이 가슴, 팔을 명중해 치명상을 입었다. 얼마 있다가 사망했고 당시 종군기자였던 마거리트 히긴스에 의해 6.25 전쟁 첫 미군 전사자로 잘못 알려졌다.
정리하자면 케네스 R. 셰드릭은 미군의 첫 전투였던 오산 전투에 참여한 스미스 특수임무부대 소속이 아니고 34연대 소속으로 오산 전투 이후 벌어진 평택 전투에서 전사를 하였는데 오산 전투에서 전사한 6.25 전쟁 첫 미군 전사자로 잘못 알려진 것이었다.
참고로 오산 전투에서 전사한 6.25 전쟁 첫 미군 전사자의 신원은 아직도 확인되지 않았다.
셰드릭의 가족은 라디오 방송에서 그의 이름을 들은 이웃으로부터 죽음을 알게 되었고, 며칠 후 전보를 통해 군으로부터 소식이 왔다. 이후 셰드릭의 가족에게 수많은 기자들과 추모하는 사람들이 근처로 오기 시작했다. 이후 최초의 사망자는 아니었음을 나타내는 증거들이 나왔고 갑론을박이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