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의 前 축구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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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eeeee,#191919><colcolor=#000000,#e5e5e5> 이름 |
칼레 스벤손 Kalle Svenss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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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칼오스카르 스벤손 Karl-Oskar Svenss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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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25년 11월 11일 | |
스웨덴 배스테를뢰브 | ||
사망 | 2000년 7월 15일 (향년 74세) | |
스웨덴 헬싱보리 | ||
국적 |
[[스웨덴| ]][[틀:국기| ]][[틀:국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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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지션 | 골키퍼 | |
신체조건 | 178cm | 76kg | |
소속 | <colbgcolor=#eeeeee,#191919><colcolor=#000000,#e5e5e5> 선수 |
헬싱보리 IF (1943~1959) 군나르스토르프 IF (1959~1961) 헬싱보리 IF (1961~1962) |
국가대표 | 73경기 ( 스웨덴 / 1949~19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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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스웨덴의 전 축구 선수.2. 생애[1]
2.1. 선수 생활
2.1.1. 클럽
스벤손은 18살부터 헬싱보리 IF에 소속되었고 1944년에 알스벤스칸 데뷔전을 치른 촉망받던 골키퍼였다.스벤손은 1962년에 은퇴할 때까지 거의 모든 커리어를 헬싱보리에서 보냈지만 의외로 클럽에서 메이저 트로피는 없다.
2.1.2. 국가대표
스벤손은 1946년부터 스웨덴 대표팀에 선발되었지만 병에 걸린 것도 있었고 토르스텐 린드베리와의 주전 경쟁에서도 밀려서 처음에는 대표팀에서 입지가 좁았다. 1948 런던 올림픽/축구에서도 대표팀이 금메달을 딸 때 스벤손은 골문을 지킬 수 없었다. 그러나 1949년부터 스벤손은 대표팀의 주전 골키퍼로 도약했다.1950년 월드컵에서 스웨덴의 골문을 지킨 스벤손은 5경기 18실점으로 실점은 좀 많았지만 결과적으로 스웨덴의 3위를 이끌었고 그 활약으로 리우칼레(Rio-Kalle)라는 별명도 얻었다. 스벤손은 1952년 올림픽에서도 주전 골키퍼로 활약했지만 4강에서 스웨덴은 헝가리에 0:6으로 대패했다. 스웨덴은 서독을 꺾고 동메달을 얻었다.
스벤손은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에서도 주전 골키퍼로 나섰고 이번에는 결승전까지 진출해 스웨덴의 사상 첫 FIFA 월드컵 우승에 단 한 게임만을 남겨놓게 되었다. 그러나 스웨덴의 수비진은 결승전 상대였던 브라질의 화력을 막아내지 못했고 바바와 펠레에게 2골씩을 허용했다.
펠레와 스벤손의 공중볼 경합 |
결국 스웨덴은 브라질에 2:5로 패하며 월드컵 우승의 꿈을 이루지 못했고 스벤손은 월드컵 결승전을 끝으로 대표팀에서 은퇴했다.
3. 플레이 스타일 & 평가
스벤손은 운동 능력이 뛰어나고 카리스마 있던 골키퍼였다. 그는 좋은 위치 선정과 반응 속도로 슈팅을 막아냈다.스벤손은 스웨덴 대표팀에서의 성과로 따지면 군나르 노르달,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를 능가하는 역대 최고의 선수로 꼽힌다. 그는 스웨덴 대표팀에서 FIFA 월드컵 준우승과 올림픽 금메달, 3위를 모두 가지고 있는 유일한 선수이다.
4. 뒷이야기
- 스벤손은 헬싱보리 IF에서 뛸 때 경기가 없을 때엔 소방관으로 일하기도 했다. 그는 58살까지 소방관 일을 했다.
- 헬싱보리의 홈구장에는 2명의 선수 조각상이 있는데 하나는 스벤손, 다른 하나는 헨리크 라르손의 조각상이 있다. 원래 1999년에 스벤손의 나무 조각상을 만들었지만 시간이 지나 망가지면서 2017년에 청동상을 다시 세웠다.
5. 수상
5.1. 클럽
5.2. 국가대표
5.3. 개인
- 골트불렌 1회: 1952
[1]
출처: 위키피디아, 11v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