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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3 10:42:59

칼 야스트렘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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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MLB 로고.svg 명예의 전당 헌액자
파일:external/baseballhall.org/Yastzremski%20Carl%20Plaque_NB.png
칼 야스트렘스키
헌액 연도 1989년
헌액 방식 기자단(BBWAA) 투표
투표 결과 94.63% (1회)

칼 야스트렘스키의 수상 경력 / 보유 기록 / 역대 등번호
{{{#!folding [ 펼치기 · 접기 ]
파일:MLB 아메리칸 리그 로고.svg 1967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MVP
프랭크 로빈슨
( 볼티모어 오리올스)
칼 야스트렘스키
( 보스턴 레드삭스)
데니 맥레인
(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파일:MLB 아메리칸 리그 로고.svg 1963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외야수 부문 골드 글러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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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욕 양키스)
알 칼라인
(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짐 랜디스
( 시카고 화이트삭스)
칼 야스트렘스키
( 보스턴 레드삭스)

알 칼라인
(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짐 랜디스
( 시카고 화이트삭스)
빅 다발리요
(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알 칼라인
(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짐 랜디스
( 시카고 화이트삭스)
파일:MLB 아메리칸 리그 로고.svg 1965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외야수 부문 골드 글러브
빅 다발리요
(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알 칼라인
(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짐 랜디스
( 시카고 화이트삭스)
칼 야스트렘스키
( 보스턴 레드삭스)

알 칼라인
(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톰 트레시
( 뉴욕 양키스)
토미 에이지
( 시카고 화이트삭스)
알 칼라인
(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토니 올리바
( 미네소타 트윈스)
파일:MLB 아메리칸 리그 로고.svg 1967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외야수 부문 골드 글러브
토미 에이지
( 시카고 화이트삭스)
알 칼라인
(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토니 올리바
( 미네소타 트윈스)
칼 야스트렘스키
( 보스턴 레드삭스)

알 칼라인
(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폴 블레어
( 볼티모어 오리올스)
칼 야스트렘스키
( 보스턴 레드삭스)
레지 스미스
( 보스턴 레드삭스
미키 스탠리
(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파일:MLB 아메리칸 리그 로고.svg 1968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외야수 부문 골드 글러브
칼 야스트렘스키
( 보스턴 레드삭스)
알 칼라인
(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폴 블레어
( 볼티모어 오리올스)
칼 야스트렘스키
( 보스턴 레드삭스)

레지 스미스
( 보스턴 레드삭스
미키 스탠리
(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칼 야스트렘스키
( 보스턴 레드삭스)
폴 블레어
( 볼티모어 오리올스)
미키 스탠리
(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파일:MLB 아메리칸 리그 로고.svg 1969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외야수 부문 골드 글러브
칼 야스트렘스키
( 보스턴 레드삭스)
레지 스미스
( 보스턴 레드삭스
미키 스탠리
(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칼 야스트렘스키
( 보스턴 레드삭스)

폴 블레어
( 볼티모어 오리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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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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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카고 화이트삭스)
폴 블레어
( 볼티모어 오리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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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MLB 아메리칸 리그 로고.svg 1971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외야수 부문 골드 글러브
켄 베리
( 시카고 화이트삭스)
폴 블레어
( 볼티모어 오리올스)
미키 스탠리
(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칼 야스트렘스키
( 보스턴 레드삭스)

폴 블레어
( 볼티모어 오리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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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 베리
( 시카고 화이트삭스)
폴 블레어
( 볼티모어 오리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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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욕 양키스)
파일:MLB 아메리칸 리그 로고.svg 1977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외야수 부문 골드 글러브
드와이트 에반스
( 보스턴 레드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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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조 루디
(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칼 야스트렘스키
( 보스턴 레드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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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카우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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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스턴 레드삭스)
프레드 린
( 보스턴 레드삭스)
릭 밀러
( 보스턴 레드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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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볼티모어 오리올스, 1966년)
칼 야스트렘스키
( 보스턴 레드삭스, 1967년)
미겔 카브레라
(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2012년)

윌리 맥코비
(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칼 야스트렘스키
( 보스턴 레드삭스)
프랭크 로빈슨
( 볼티모어 오리올스)

파일:sportsillustrated_logo.png
1967년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선정 올해의 스포츠맨
파일:1967_Sportsman_of_the_Year.png
짐 련 칼 야스트렘스키 빌 러셀

보유 기록
단일 구단 최다 출장 3,308경기
역대 최장 원 클럽 맨 23년[1]

보스턴 레드삭스 등번호 8번
짐 패글리아로니
(1960)
칼 야스트렘스키
(1961~1983)
영구결번
}}} ||
}}} ||
파일:Carl Yastrzemski at Boston Red Sox.jpg
<colbgcolor=#bd3039><colcolor=#ffffff> 보스턴 레드삭스 No. 8
칼 마이클 야스트렘스키
Carl Michael Yastrzemski
출생 1939년 8월 22일 ([age(1939-08-22)]세)
뉴욕 주 사우스햄튼
국적
[[미국|
파일:미국 국기.svg
미국
]][[틀:국기|
파일: 특별행정구기.svg
행정구
]][[틀:국기|
파일: 기.svg
속령
]]
신체 180cm | 79kg
포지션 좌익수, 1루수
투타 우투좌타
프로입단 1959년 아마추어 자유계약 ( BOS)
소속팀 보스턴 레드삭스 (1961~1983)
가족 아들 칼 야스트렘스키 주니어
손자 마이크 야스트렘스키
1. 개요2. 생애3. 플레이 스타일4. 은퇴 후5. 명예의 전당 입성
5.1. 명예의 전당 통계(Hall of Fame Statistics)
6. 기타7. 연도별 성적8.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의 전 야구 선수.

보스턴 레드삭스의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초대 공식 주장이며, 역대 최고의 타자 중 한명인 보스턴의 전설적인 대타자 테드 윌리엄스의 후계자로 불리는 인물. 극악의 투고타저 시기를 관통하며 꾸준한 성적을 올려 높은 누적 성적을 기록했으며, 특히 1967년 야스트렘스키가 올린 성적은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고의 단일 시즌 임팩트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별명은 Yaz.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으며 통산 성적은 23시즌 동안 타율 .285, 출루율 .379, 장타율 .462, 3419안타, 452홈런, 1844타점, BB/K 1.32 wRC+ 130을 기록했다.[2]

2. 생애

칼 야스트렘스키는 테드 윌리엄스가 데뷔한 1939년 뉴욕 주 사우스햄튼에서 폴란드계 이주민[3]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이러니하게도 야즈는 어릴 적 뉴욕 양키스의 팬으로서 핀 스트라이프 저지를 입고 뛰는 것이 꿈이였다고 한다. 실제로 고교 졸업반이었던 야즈에게 뉴욕 양키스의 스카우터가 찾아왔고 양키 스타디움에 초대를 받기도 했으나, 클럽하우스에서 아무도 자신을 상대하지 않는 등 좋지 않은 인상을 받았고, 더군다나 당시 양키스는 요기 베라, 로저 매리스, 미키 맨틀 등의 스타 선수가 넘쳐났기에 자신의 자리가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물론 양키스가 야즈의 아버지가 요구한 10만 달러에 발길을 돌리기도 했다.

노터데임 대학교에 진학한 야즈에게 이번에는 보스턴 레드삭스의 스카우터가 10만 8천 달러의 계약금을 들고 찾아왔고, 야즈는 양키스의 앙숙인 보스턴의 유니폼을 입게 되었다. 보스턴의 유니폼을 입은 야즈는 1960년 스프링 캠프에서 테드 윌리엄스를 마주치게 되었고, 야즈의 재능을 알아본 윌리엄스는 야즈의 성장을 위해 충고와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1961년 야즈는 메이저 리그에 올라왔고, 보스턴은 야즈에게 당초 맡아왔던 유격수가 아닌 윌리엄스의 자리였던 좌익수를 맡겼다. 이렇게 보스턴의 좌익수 자리는 명예의 전당 선수에서 끊김없이 명예의 전당 선수로 넘어가게 되었다.

데뷔 시즌이던 1961년 신인으로선 나름 괜찮은 성적인 .266 .324 .396 11홈런 80타점을 기록했던 야즈는 그동안 윌리엄스를 보아왔던 팬들에게 레드삭스의 좌익수로 어울리지 않는다며 억울하게 야유를 받기도 했지만, 이듬 해인 1962년 .296 .363 .469 19홈런 94타점을 시작으로 1963년에는 .321 .418 .475 14홈런 68타점에 183안타로 아메리칸 리그 최다 안타를 기록함과 동시에 처음으로 타격왕을 획득하면서 보스턴의 새로운 간판 스타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1966년 시즌이 끝나고 야즈는 헝가리 복싱 국가대표팀의 코치를 역임했던 진 버드를 만나게 되었고, 그와 함께 체계적인 프로그램 속에서 훈련에 임하였다. 그리고 1967년, 야즈는 메이저 리그를 평정했다.

데뷔 이래 교타력에 비해 장타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줄곧 받아왔던 야즈는[4] 1967년을 앞두고 버드와 함께 웨이트 트레이닝에 몰두하여 장타력 상승을 시도했고, 훈련이 효과를 제대로 보면서 장타력이 대폭발해 .326 .418 .622 44홈런 121타점을 기록했다. 또한 189안타로 아메리칸 리그 최다 안타를 기록함과 동시에 타격왕, 홈런왕, 타점왕을 석권하며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5]한 것을 넘어 도루를 제외한 클래식 스탯[6]을 모두 독식하며 무려 7관왕을 기록했다. 타격 7관왕은 메이저리그 역사상 4번밖에 없으며, 이 중 두 번이 데드볼 시대이고, 마지막 사례가 야즈의 1967년이며 1967년 야스트렘스키 이후 57년이 지난 현재까지 메이저에서는 나오지 않았다.[7] 그 해 아메리칸 리그 MVP는 당연히 야즈의 몫이였다. 이런 야즈의 활약을 두고 야즈의 팀 선배인 테드 윌리엄스"1967년의 야스트렘스키는 베이브 루스이자 호너스 와그너였으며, 타이 콥이었다."라는 평을 남겼다. 사실 야스트렘스키의 성적은 극악의 투고타저 시즌에서 홀로 독보적인 수준이었기에 그 당시에도 윌리엄스가 그저 팀 프랜차이즈 후배를 띄워주기 위해서 이 말을 한 것은 아니었다는 평가였으나, 세이버메트릭스가 확산된 이후 이 해의 야즈가 얼마나 대단한 성적을 올렸는지가 다시금 입증되었다.[8] 윌리엄스의 말이 실로 과장이 아니었던 것이 1967년 야스트렘스키의 bWAR은 12.5였는데 이는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타자 역사상 공동 3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며, 이 위의 기록은 1921년과 1923년의 베이브 루스 뿐이다. 참고로 투수 역대 최고 임팩트인 페드로의 1999-2000시즌이나 21세기 비약물 최고의 타격 시즌인 애런 저지의 2022, 2024시즌보다도 잘한 것이다. 전년도 꼴찌였던 보스턴 역시 야즈의 활약에 힘입어 치열한 경쟁을 이겨내고 정규 시즌 우승을 차지했으며, 21년 만에 월드시리즈에 진출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의 월드시리즈에서 밥 깁슨에게만 3승을 내주면서 7차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우승을 내줘야만 했다.[9]

이듬 해인 1968년은 밥 깁슨이 ERA 1.12를 찍는 등 라이브볼 시대 최악의 투고타저 속에서 .301 .426 .495 23홈런 74타점을 기록한 야즈는 아메리칸 리그 유일의 3할 타율로 역대 최저 타율 타격왕[10]을 차지했다. 이렇게 투고타저가 심해지자 결국 메이저 리그 사무국이 결단을 내려, 1969년부터 투수 마운드의 높이를 15인치에서 10인치로 낮추고 스트라이크 존을 좁히는 등 룰을 개정하게 된다.[11]

1970년 야즈는 아깝게 자신의 통산 네 번째 타격왕을 놓쳤는데 캘리포니아 에인절스의 알렉스 존슨이 .3289, 야즈가 .3286으로 단 3 차이에 불과했다.

1975년 야즈는 다시 포스트시즌에 나서 챔피언십시리즈에서 타율 .455, 월드시리즈에서 타율 .310의 활약을 펼쳤고, 보스턴 역시 칼튼 피스크의 홈런에 힘입어 시리즈를 7차전까지 끌고 갔지만 끝내 신시내티 레즈에 우승을 내주어야 했다.

1977년부터 야즈는 자신의 좌익수 자리를 후일 보스턴의 2대 공식 주장이 되는 짐 라이스에게 넘기고 1루수로 뛰었는데, 이렇게 보스턴의 좌익수 자리는 다시 한 번 명예의 전당 선수에서 끊김없이 명예의 전당 선수로 넘어가게 되었다.

1978년 보스턴은 양키스의 추격을 허용해 정규 시즌 끝에 동률을 이루어 원 게임 플레이오프를 치르게 되었는데, 펜웨이 파크에서 열린 승부에서 야즈는 2회말 론 기드리를 상대로 선제 솔로 홈런을 뽑아냈지만, 7회초 버키 덴트의 타구가 그린 몬스터 위를 넘어가면서 보스턴의 포스트시즌 진출은 좌절되었다.

야즈는 1983년 은퇴했는데, 보스턴은 순금 10K 반지를 제작하여 우승 반지를 얻지 못한 야즈에게 은퇴 기념 반지를 선물했다.

3. 플레이 스타일

칼 야스트렘스키는 통산 3419안타, 452홈런을 기록했는데, 이는 아메리칸 리그 최초의 3000안타 - 400홈런이었다[12]. 또한 야즈가 기록한 3419안타는 메이저 리그 역대 7위의 기록이다. 참고로 야즈는 통산 안타 TOP 10 중 유일하게 단일 시즌 200안타를 기록한 적이 없는데, 이는 야즈의 전성기가 극단적인 투고타저 시기였기 때문이다.

또한 야즈는 전임 좌익수인 테드 윌리엄스가 수비에서는 다소 약했던 것과는 달리 그린 몬스터를 완벽히 꿰뚫어 보는 훌륭한 수비와 강견[13]을 바탕으로 외야수 부문 골드 글러브를 통산 7회 수상했다.

또한 보스턴 레드삭스에서만 23시즌을 뛰고 은퇴했는데 이는 볼티모어 오리올스에서만 23시즌을 뛰고 은퇴한 브룩스 로빈슨 한화 이글스로 이적하기 전 SSG 랜더스에서만 23시즌을 뛴 김강민과 함께 역대 1위이며, 3308경기 출전 기록은 피트 로즈의 3562경기에 이은 역대 2위이다.[14]
다만 .369 .447 .600에 빛나는 포스트시즌 통산 성적에도 불구하고 앞서 설명했다시피 우승 반지는 얻지 못했다.

4. 은퇴 후

1999년에는 메이저 리그의 20세기 최고 선수(All-Century Team) 100명 중 한 명으로 선정되었다.

야스트렘스키는 2004년 자니 페스키와 함께 월드시리즈 1차전의 시구를 담당했으며, 그 해 보스턴 레드삭스는 1918년 이후 86년 만에 밤비노의 저주를 풀며 우승하였다. 2007년 월드시리즈 1차전에서도 시구를 담당하였는데, 이 해에도 보스턴 레드삭스는 월드시리즈 우승을 거머쥐었다.

5. 명예의 전당 입성

야스트렘스키는 1989년 명예의 전당 입성 자격이 생긴 첫 해에 94.63%의 득표율로 자니 벤치와 함께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였다.

5.1. 명예의 전당 통계(Hall of Fame Statistics)

블랙잉크 그레이잉크 HOF 모니터 HOF 스탠다드
칼 야스트렘스키 55 206 215 60
HOF 입성자 평균 27 144 100 50
career WAR 7yr-peak WAR JAWS
칼 야스트렘스키 96.1 55.5 75.8
좌익수 HOF 입성자 평균 65.2 41.5 53.3

6. 기타

7. 연도별 성적

파일:MLB 로고.svg 칼 야스트렘스키의 역대 MLB 기록
<rowcolor=#ffffff> 연도 G PA H 2B 3B HR R RBI SB BB SO AVG OBP SLG OPS fWAR bWAR
1961 BOS 148 643 155 31 6 11 71 80 6 50 96 .266 .324 .396 .721 0.2 -0.3
1962 160 719 191 43 6 19 99 94 7 66 82 .296 .363 .469 .832 4.8 4.2
1963 151 668 183 40 3 14 91 68 8 95 72 .321 .418 .475 .894 6.3 6.6
1964 151 646 164 29 9 15 77 67 6 75 90 .289 .374 .451 .825 4.5 3.9
1965 133 571 154 45 3 20 78 72 7 70 58 .312 .395 .536 .932 4.6 5.0
1966 160 680 165 39 2 16 81 80 8 84 60 .278 .368 .431 .799 5.1 5.5
1967 161 680 189 31 4 44 112 121 10 91 69 .326 .418 .622 1.040 11.1 12.5
1968 157 664 162 32 2 23 90 74 13 119 90 .301 .426 .495 .922 9.3 10.5
1969 162 707 154 28 2 40 96 111 15 101 91 .255 .362 .507 .870 5.8 5.5
1970 161 698 186 29 0 40 125 102 23 128 66 .329 .452 .592 1.044 8.9 9.5
1971 148 620 129 21 2 15 75 70 8 106 60 .254 .381 .392 .772 3.8 4.0
1972 125 535 120 18 2 12 70 68 5 67 44 .264 .357 .391 .748 2.4 2.7
1973 152 652 160 25 4 19 82 95 9 105 58 .296 .407 .463 .870 5.4 5.5
1974 148 633 155 25 2 15 93 79 12 104 48 .301 .414 .445 .859 3.7 3.6
1975 149 634 146 30 1 14 91 60 8 87 67 .269 .371 .405 .776 2.9 2.8
1976 155 636 146 23 2 21 71 102 5 80 67 .267 .357 .432 .790 3.3 3.0
1977 150 643 165 27 3 28 99 102 11 73 40 .296 .372 .505 .877 5.0 5.2
1978 144 611 145 21 2 17 70 81 4 76 44 .277 .367 .423 .790 2.4 2.0
1979 147 590 140 28 1 21 69 87 3 62 46 .270 .346 .450 .796 2.2 2.3
1980 105 412 100 21 1 15 49 50 0 44 38 .275 .350 .462 .812 0.9 0.8
1981 91 390 83 14 1 7 36 53 0 49 28 .246 .338 .355 .693 0.5 0.5
1982 131 523 126 22 1 16 53 72 0 59 50 .275 .358 .431 .789 1.5 1.3
1983 119 437 101 24 0 10 38 56 0 54 29 .266 .359 .408 .767 0.4 -0.2
MLB 통산
(23시즌)
3308 13992 3419 646 59 452 1816 1844 168 1845 1393 .285 .379 .462 .841 94.8 96.5

8. 관련 문서



[1] 볼티모어 오리올스 브룩스 로빈슨과 동률. [2] 야즈의 OPS가 다소 낮아보일 수 있는데, 이는 야즈가 극단적인 투고타저의 시대에 선수 생활을 했기 때문이다. 다른 선수와 비교를 해보자면 통산 OPS가 .908인 켄 그리피 주니어의 통산 wRC+가 131이라는 것에서 이해를 할 수 있을 것이다. [3] 화이티 포드와 스탠 뮤지얼도 폴란드계 이주민이었는데, 뮤지얼은 1972년 폴란드 정부로부터 체육 훈장을 받기도 했다. [4] 사실 아예 부족한 것도 아니었고, 매년 두자릿 수 홈런은 꼬박꼬박 처줬다. [5] 이후 트리플 크라운은 나오지 않다가 45년이 지난 2012년에야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미겔 카브레라가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했다. [6] 타율, 출루율, 장타율, 안타, 홈런, 타점, 득점 [7] 한미일 프로야구를 기준으로 해도 타격 7관왕은 1967년 야즈 이후 2010년 이대호밖에 없다. [8] 마치 당대 모든 투수들보다 두 단계 이상 뛰어난 피칭을 하며 외계인 소리를 듣던 페드로 마르티네즈가 세이버 성적이 나온 뒤 더욱 높은 평을 받은 것과 유사하다. [9] 아쉬웠던 준우승 성적과는 별개로, 이 해에 그가 보여줬던 역대급 퍼포먼스는 1909, 1911년의 타이 콥, 1920, 1921, 1923년의 베이브 루스, 1924, 1925년의 로저스 혼스비, 1927년의 루 게릭, 1941년의 테드 윌리엄스, 1956년의 미키 맨틀, 2018년의 무키 베츠, 2022년, 2024년의 애런 저지와 함께 비약물 타자가 리그 전체에 압도적인 영향을 끼쳤던 단일 시즌 중 하나로 평가받으며, 간혹 베이브 루스에 이은 2위를 차지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비록 타율, 타점 등 클래식 스탯은 투고타저였기 때문에 부족했을 지언정, 타격 7관왕 및 역대급의 비율 스탯과 혼자의 활약으로 팀을 준우승의 자리까지 이끈 그의 활약이 여기 들어가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10] 세이버메트리션들은 1968년 야즈의 .301은 1930년 빌 테리의 .401과 마찬가지라고 평했다. 실제 야즈의 통산 타격 비율 스탯은 명예의 전당에 오른 선수 치고는 꽤 낮은 편인데, 이는 그가 투수들의 시대에 전성기를 보냈기 때문이다. [11] 타율만 부각돼서 묻히는 점인데, 이 해 칼 야스트렘스키가 기록한 war은 무려 10.5로 역대급 성적이었다. [12] 메이저리그 전체로는 스탠 뮤지얼, 행크 애런, 윌리 메이스에 이은 4번째. [13] 아메리칸 리그 외야수 부문 어시스트 1위를 7번이나 했다. 통산 195개의 외야 어시스트를 기록했으며, 좌익수로 기록한 177개의 어시스트는 밥 존슨, 구스 고슬린에 이은 역대 3위이다. [14] 다만 피트 로즈는 이곳 저곳을 떠돌아다닌 저니맨이었기에 한 팀에서만 최다 출장 경기 기록은 야스트렘스키가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