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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8-01 17:21:05

카타오카 니자에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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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오카 가문의 문장 나나츠와리마루니 니인(七つ割丸に二引)

1. 개요2. 역대 카타오카 니자에몬3. 15대 카타오카 니자에몬
3.1. 개요3.2. 생애3.3. 연기 스타일3.4.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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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카타오카 니자에몬 (片岡仁左衛門)

간사이를 연고지로 둔 가부키 명문가 카타오카 가문의 당주가 잇는 세습명이자 명적이다. 야고는 초대와 2대는 불명, 3대부터 5대가 토사야 (土佐屋), 6대가 토미마스야 (富桝屋), 7대부터 당대가 마츠시마야 (松嶋屋)이다.

당대 카타오카 니자에몬이 15대일 정도로 350년이라는 유래 깊은 역사를 갖고 있으며 이름이 갖고 있는 입지와 명예 또한 가부키계에서 선망이 높기로 유명하다. 그만큼 이 세습명을 잇는 배우는 가문에서 특히 장래를 촉망받고 가부키 배우로서의 연기력이 수준급에 달해야만 하는 인식이 있으며 이전의 계보를 보면 실제로 그러하다.

다만 어느 가문이나 비슷하겠지만 사실 가부키에서 세습명을 이은 인물이 많다는 것은 과거에 세습명의 명적 처리를 제대로 못한 것일 가능성이 어느 정도 있다. 카타오카 니자에몬 역시 야고가 세 번에 걸쳐 나눠져 있듯, 선대 배우와의 관계가 조금 복잡한 상태에 놓여있다. 또한 워낙 유명하고 뼈대 있는 명적이다 보니, 니자에몬을 이은 배우가 자신의 아들이나 손자, 아끼는 방자에게 보관 명적으로 이어둔다거나, 먼저 타계한 자신의 형이나 동생에게 사후 세습명으로 추존하는 등의 행동으로 이어진 결과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해당 명적을 추존한다는 것 자체가 해당 배우가 당시 업계에서 뛰어난 배우여야만 가능했기에 역대 니자에몬들이 당대 최고의 배우들이었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역대 카타오카 니자에몬은 남성 역의 타치야쿠, 여성 역의 온나가타, 여러 일본 무용에서 전부 최고도달점에 섰으며 여러 기네스북 기록과 일본 예술회 기록을 갖고 있으며 이는 당대인 15대도 마찬가지이다.

' 간사이 가부키 명문가 마츠시마야'라는 별칭이 있을 정도로 가문의 배우 대부분이 교토부, 나라현, 오사카부 출신으로 이곳에서 나고 자라며 가문의 역사를 지키고 있다. 간혹 습명 행사나 다른 가문의 피로 공연을 위해 도쿄를 오가기도 하지만 여러 사연이 있기에 가문의 배우들은 공연 때문에 잠깐 지내다가 공연이 끝나면 급히 간사이로 돌아가는 편이다.

이는 도쿄가 본고장이 아닌 이유도 있지만 도쿄로 거처를 옮긴 지 얼마 안 되어 끔찍하게 살해당한 12대 카타오카 니자에몬의 영향도 어느 정도 작용한다.

2. 역대 카타오카 니자에몬

초대와 2대 카타오카 니자에몬과 7대부터 당대의 니자에몬이 추존을 포함하여 실제 세습명으로 인정받은 경우이며 3대부터 6대는 100년이라는 세월동안 동시 명적, 보관 명적으로 쓰였기에 기록상으로 표기해둔 것에 가깝다.

3. 15대 카타오카 니자에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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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대 카타오카 니자에몬
十五代目 [ruby(片岡, ruby=かたおか)] [ruby(仁左衛門, ruby=にざえもん)] | Nizaemon Kataoka XV
파일:15대 카타오카 니자에몬.jpg
본명 [ruby(片岡, ruby=かたおか)] [ruby(孝夫, ruby=たかお)] (카타오카 타카오, Takao Kataoka)
예명 초대 카타오카 타카오
15대 카타오카 니자에몬(1998년 습명)
출생 1944년 3월 14일 ([age(1944-03-14)]세)
오사카부 오사카시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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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177cm, 60kg
학력 교토 시립 라쿠토 중학교 (졸업)
교토 외대 서구 고등학교 (중퇴)
가족 아버지 13대 카타오카 니자에몬(1903년생-1994년 사망)[5]
어머니 카타오카 키요코
3남 5녀 중 삼남
첫째 형 5대 카타오카 가토우(1935-)[6]
둘째 형 2대 카타오카 히데타로(1941-2021년 사망)[7]
여동생 카타오카 시즈카(1946-)[8]
배우자 카타오카 히카에(1966년 결혼)[9]
장남 초대 카타오카 타카타로(1968년-)[10]
장녀 카타오카 사치(1970-)[11]
차녀 카타오카 쿄코(1971-)[12]
장손 초대 카타오카 센노스케(2000년-)[13]
친손 카타오카 타카아키(2021년-)[14]
조카 초대 카타오카 신노스케(1967-)[15]
조카 6대 카타오카 아이노스케[16]
당숙 12대 카타오카 니자에몬(1882-1946년 사망)
고종사촌 누나 오노 요코[17]
내종질 션 레논
야고[18] 마츠시마야 (松嶋屋)
직업 가부키 배우
문장 파일:1000013.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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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개요

일본 가부키 배우.

가부키 가문 마츠시마야의 당주이자 중요 무형문화재 보유자. 간사이 가부키의 대부라고도 불린다.

3.2. 생애

파일:13대 카타오카 니자에몬 일가.jpg
마츠시마야 13대 카타오카 니자에몬 일가의 가족 사진[19]3남 타카오, 13대 니자에몬의 장모 츠네. 바로 뒷줄 좌측부터 차남 요시히토, 4녀 타마에, 3녀 사에코, 차녀 요시코. 그 뒷줄 좌측부터 13대 니자에몬의 문하생 두 명과 하수인 두 명. 장남 히데키미와 장녀는 친가댁에 맡겨져 있었다고 한다.]
1944년 3월, 오사카부 오사카시에서 가부키 가문 마츠시마야의 당주를 지내던 아버지 13대 카타오카 니자에몬과 어머니 카타오카 키요코 사이에서 3남 5녀 중 3남으로 태어났다. 출생명은 카타오카 타카오.
파일:13대 카타오카 삼부자.jpg
아버지 13대 카타오카 니자에몬의 분장실에서
둘째 형 2대 카타오카 히데타로와 함께
위로 이미 가부키를 하는 형 두 명이 있었기에 가문의 당주가 될 가능성은 희박하였다. 그러나 오사카부의 가부키좌인 나카좌에서 다섯 살의 나이에 첫 무대를 가진 타카오는 자신이 가부키를 좋아한다는 것을 깨달으며 하루에 학교를 다녀오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가부키 연습에 온종일 매진해 있었다.

이후 중학생, 고등학생 시절에는 아버지의 이름을 건 13대 카타오카 니자에몬의 순회 가부키 극에서 타치야쿠, 온나가타 등을 완벽히 해내며 '도쿄에 단쥬로가 있으면 오사카에는 타카오가 있다'라는 수식어까지 붙게 되었고 지역과 가문의 간판 배우로 출세하게 된다. 가문의 기대를 받게 된 것은 이때부터이다.

1966년, 22세라는 이른 나이에 결혼을 하며 한창 중요한 시기에 결혼을 해서 앞으로 부진할 것이라는 주변의 시선을 받았지만 때마침 1967년, 간사이 가부키가 침체에 빠지며 잠시 도쿄로 거점을 옮겼다. 그리고 1968년, 장남인 카타오카 야스오를 얻으며 후계까지 확보한 뒤, 도쿄, 오사카의 가부키 무대에 더욱 열중했다.

니마이메로 유명했던 배우답게 드라마, 영화에서 명연기를 펼쳤으며 그가 나온 드라마의 해당 회차는 시청률이 보장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었을 정도였다.

1993년에는 평소 앓던 지병으로 인해 휴연을 하며 타카오는 못 돌아온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지만 1년만에 회복하여 다시 무대에 복귀하였다. 이 시기부터 아버지인 13대 카타오카 니자에몬이 세 아들 중 누가 가문의 차기 당주에 적합한지 쇼치쿠의 회장과 의논에 들어갔다.
파일:12대 니자에몬 습명 피로.jpg
15대 카타오카 니자에몬 습명 피로 공연 中
1994년에는 아버지 13대 카타오카 니자에몬이 사망하였고 그의 유언대로 1998년, 3남인 카타오카 타카오가 15대 카타오카 니자에몬 습명받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이것 때문에 한동안 두 명의 형들과 사이가 안 좋았지만 금방 화해했다고 한다.
파일:12대 니자에몬 일가.jpg
2001년의 15대 카타오카 니자에몬 일가[20]
2000년에는 장손인 카타오카 마사히로[21]가 태어나며 56살의 나이에 할아버지가 되었다. 이때부터 손자를 위해 카타오카 가문의 가예 '카타오카 12집'의 개선에 나섰고 마사히로가 습명을 받은 이듬해에 완성하며 카타오카 가문 삼대 피로연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파일:마츠시마야.jpg
레이와의 마츠시마야 카타오카 가문[22]
2015년, 15대 카타오카 니자에몬은 무형문화재 보유자이자 인간국보로 인정받으며 일본 예술회의 회원이 되었다.

3.3. 연기 스타일

파일:12대 니자에몬.jpg
15대 카타오카 니자에몬의 사에다 다이가쿠노스케
전형적인 니마이메 배우이다. 우선 형들과 달리 키가 177cm로 가문의 배우들을 통틀어 상당한 장신이고 얼굴도 미남, 카리스마형이라 타카오의 얼굴을 보러 오사카까지 가부키를 보러 왔다는 팬들도 많았다고 한다.

이러한 외모와 중저음의 목소리, 그리고 아라고에를 겸비한 연기력까지 겹쳐져 4대 가문을 제외하고 그저 실력만으로 주인공 역을 많이 연기한 배우로 알려지기도 했다. 특히 스케로쿠는 나리타야의 선대 당주 12대 이치카와 단쥬로와 함께 배역으로 분쟁을 벌이다 결국 도쿄, 오사카에서 따로 개최한 일화는 유명하다.

무용도 수준급인데, 일본 무용과 가부키 배우 임원회 직함으로 일본 예술원 회원으로 인정받았다. 과거, 자신의 방자를 포함하여 카타오카 아카데미의 문하생들에게 무용을 가르쳤으며 그의 무용을 배우기 위해 일부러 오사카까지 오는 문하생과 부모가 많았다. 현재는 나이 때문에 조카인 6대 카타오카 아이노스케에게 원장직을 인계하였다.

나카무라야의 6대 나카무라 칸쿠로와 궁합이 잘 맞는 상대역이 그의 동생 2대 나카무라 시치노스케이듯, 15대 니자에몬도 타치야쿠로 설 때면 늘 상대역으로 따라오는 단짝 배우가 있는데, 그가 바로 온나가타를 주력으로 하는 5대 반도 타마사부로이다. 20대 시절부터 늘 엮여 함께 무대에 올랐으며 둘의 콤비가 쇼와 가부키의 간판이었을 정도. 젊은 시절 둘의 인터뷰.

15대 카타오카 니자에몬의 습명 이전까지 사용한 카타오카 타카오라는 이름으로 지낸 기간이 더 길고, 이 이름으로 활동하며 여러 공연 기록을 세웠기에 해당 이름으로 더 널리 알려져 있다.
연습 현장에서 후배들을 지도하는 15대 니자에몬[23]

3.4. 여담

파일:타카오 젊은 시절2.jpg 파일:타카오 젊은 시절.jpg }}} ||
젊은 시절의 15대 카타오카 니자에몬
카타오카 타카오로 배우 활동하던 시절, 후지 테레비의 신슈 텐마 사무라이, NHK 대하드라마 시리즈의 1965년 방영작 <태합기>에서 모리 나리토시 역, 1971년 방영작 <봄의 언덕길>에서 도요토미 히데요리 역, 1972년 방영작 <신 헤이케모노가타리>에서 다카쿠라 천황 역, 1975년 방영작 <겐로쿠 태평기>에서 아사노 나가노리 역, 1982년 방영작 < 네무리 쿄시로 원월살법>, 1983년 방영작 <네무리 쿄시로 떠돌이 비망록>에서 네무리 쿄시로 역[24], 1991년 방영작 <태평기>에서 고다이고 천황 역 등, 여러 배역으로 출연하였다.
파일:12대 니자에몬 에비조.jpg }}} ||
15대 카타오카 니자에몬에게 연기 지도를 받는
13대 이치카와 단쥬로 하쿠엔
나이가 여든을 넘어선 이후로는 본인의 주력 배역을 제외하면 무대에 그리 잘 서지는 않는 편이다. 그나마 7~8월 오사카 여름 대가부키에서 얼굴을 비치며, 후배 배우들의 육성에 노력하고 있다. 가부키의 대부로 불리며 세간에 그 실력을 인정받은 만큼 많은 가문의 유명 배우들이 그에게 직접 연기를 배우고 무용을 지도받는다. 특히 15대 니자에몬 본인이 한때 섰던 무대라면 늘 감독관으로서 참여하며 후배 배우들을 엄하게, 하지만 보다 정확하게 가르친다고.
파일:12대 니자에몬 삼대.jpg }}} ||
장남 초대 카타오카 타카타로
장손 초대 카타오카 센노스케와 함께
장남인 초대 카타오카 타카타로의 젊은 시절 모습과 장손의 현재 모습이 15대 니자에몬의 젊은 시절 모습과 닮아 있다. 덧붙여 신장이 177cm로 아버지, 형, 아들, 손자보다 월등히 큰 키를 갖고 있다. 큰 키에 대해서는 어릴 적, 아버지가 가르쳐준 스트레칭을 꾸준히 하며 형들이 공부할 때 본인만 지쳐서 일찍 자러 들어갔던 것이 오히려 도움이 된 것 같다며 키는 유전이라는데 본인만 유독 큰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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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녀 카타오카 사치와 함께 촬영한 CM
15대 니자에몬의 장녀와 차녀도 모두 배우로 진출하였는데 특히 장녀인 카타오카 사치는 다카라즈카 음악 학교를 졸업하여 다카라즈카 가극단에서 배우 생활을 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1] 본명은 호리코시 하루오. 훗날 나리타야의 양자로 입적되며 11대 이치카와 단쥬로를 지낸 인물이다. 현 나리타야의 당주인 13대 이치카와 단쥬로 하쿠엔의 친조부. [2] 11대 이치카와 단쥬로의 회고록과 14대 카타오카 니자에몬의 문하생의 회고에 의해 밝혀졌다. [3] 사실 가부키계에서 온나가타만 일평생 연기한 배우들은 결혼을 하지 않고 살아가는 경우가 꽤나 되며 간혹 남성을 밝히는 경우도 이따금씩 있다. 본인 의지로 결혼을 안 한 배우는 2대 나카무라 코산자와 2대 나카무라 시치노스케가 있으며 실제로 남성을 밝혀 자신의 어린 제자를 성추행한 5대 반도 타마사부로가 있다. [4] 특이 케이스에 속하는데 가부키계에서는 장남이 가부키를 그만두거나 요절하는 것이 아닌 이상, 조금이라도 일찍 배웠으며 가문의 기대를 한 몸에 받는 장남에게 세습명을 물려주는 장자 직계 세습을 암묵적으로 지켜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13대 카타오카 니자에몬은 자신의 아들들 중 누가 니자에몬의 세습명을 습명받기에 적임자인지 오랜 시간을 두고 지켜본 것이다. [5] 본명은 카타오카 치요노스케. 인간국보이자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이다. 도쿄 태생으로 당시 거점을 도쿄로 잠시 옮기던 11대 카타오카 니자에몬의 눈에 들어 그의 3남으로 입적된다. 이후 가문의 사람들과 함께 간사이로 돌아가 타치야쿠의 명배우로 활동한다. [6] 본명은 카타오카 히데키미. [7] 본명은 카타오카 요시히토. 폐질환으로 인해 오사카에서 사망했다. 6대 카타오카 아이노스케의 양부이다. [8] 여배우로 활동했으며 주로 TV 드라마에서 모습을 비췄다. 배다른 제일 첫째 언니도 연극 배우로 진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9] 초등학교 1, 2학년 때 같은 반을 했던 동급생으로 또래 여아들과 달리 괄괄한 성격으로 '여자 타잔'이라 불렸다고 한다. 중학교와 고등학교는 달랐지만 초등학교 때 같이 놀았던 기억이 연이 되어 15대 니자에몬이 22세이던 시절 결혼하였다. [10] 본명은 카타오카 야스오. 아버지인 니자에몬과는 달리 온나가타를 주로 연기하며 아버지의 상대역으로 무대에 서기도 했다. 인기 드라마 하얀거탑에 출연한 것으로 유명하다. [11] 다카라즈카 음악 학교에 입학하여 다카라즈카 배우이자 남역에서 스타로 활약했으며 가극단을 나온 뒤로는 연극과 뮤지컬 배우로 활동했다. [12] 여배우로 NHK 대하드라마 시리즈의 2003년 방영작 <무사시 (武蔵 MUSASHI)>에서 가부키의 창시자인 이즈모노 오쿠니를 연기하였다. [13] 본명 카타오카 마사히로. 장남인 초대 카타오카 타카타로의 첫째아들로 현재 아오야마가쿠인대학에 재학 중이며 타 가부키 배우들과 달리 대학의 홍보 영상에 자주 등장하여 아오야마학원과 가부키 배우들의 인연에 대해 인터뷰하기도 했다. [14] 장남인 초대 카타오카 타카타로가 재혼한 부인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다. 센노스케와는 무려 21살 차이가 난다. 탄생 당시, 본명에 카타오카 가문을 비롯한 많은 가부키 배우들이 자신의 아이가 거장 배우로 커나가길 바라는 뜻으로 넣는 ''가 들어가 화제가 되었다. [15] 첫째 형인 5대 카타오카 가토우의 장남으로 본명을 예명으로 사용하며 무대에 오르고 있다. 2012년,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로 인정되었다. 기혼자로 슬하에 딸이 한 명 있다. [16] 둘째 형인 2대 카타오카 히데타로의 양자이다. 아버지와 둘째 형이 사망한 뒤로는 15대 니자에몬이 스승으로서 그를 가르치고 있다. 아이노스케가 양자로 입적한 것이기에 족보상으로만 그의 숙부인 것이지, 사실은 둘 다 서로에게 존댓말하기 바쁘며 스승과 제자 사이에 가깝다. [17] 작은 고모의 딸이며 영국의 음악가 존 레논의 후처였다. [18] 가부키 배우로서 가지는 집안 이름. 세습명 구도를 중심으로 창시되며, 가부키계에는 10대 명문가를 포함한 40개 정도의 야고가 있다고 한다. [19] 1954년에 촬영된 것으로 앞줄 좌측부터 13대 니자에몬의 부인 카타오카 키요코, 5녀 시즈카, 13대 니자에몬, [20] 왼쪽부터 며느리 카타오카 히로코, 장손 초대 카타오카 센노스케, 장남 초대 카타오카 타카타로, 15대 니자에몬, 아내 히카에, 장녀 카타오카 사치, 차녀 카타오카 쿄코. [21] 초대 카타오카 센노스케. [22] 13대 카타오카 니자에몬의 27주기를 추모하는 자리였다. 앞줄 왼쪽부터 15대 카타오카 니자에몬, 첫째 형 5대 카타오카 가토, 둘째 형 2대 카타오카 히데타로. 뒷줄 왼쪽부터 장손 초대 카타오카 센노스케, 장남 초대 카타오카 타카타로, 5대 가토의 장남이자 조카 초대 카타오카 신노스케, 2대 히데타로의 장남이자 조카 6대 카타오카 아이노스케. [23] 특히 6대 카타오카 아이노스케가 연기하는 배역은 15대 니자에몬 본인이 맡았던 배역이기도 하기에 세밀히 지도한다. 나카무라 시도 또한 15대 니자에몬에게 더욱 꼼꼼히 배우려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덧붙여 초반에서 15대 니자에몬의 미에와 미세바를 볼 수 있다. [24] 1972년작 TV 드라마에서 타무라 마사카즈가 연기했었다. 영화판 배우인 이치카와 라이조 사후에 여러 유명 배우들이 거쳐 갔지만 모두 그저 그런 평가를 받았던데 비해 타무라의 쿄시로는 원작자 시바타 렌자부로가 극찬했을만큼 전설적인 명연기로 남았다. 카타오카 판 쿄시로는 이치카와 라이조의 쿄시로와 톤과 연기가 가장 흡사한데, 역대 네무리 쿄시로 중에서도 가장 인간적인 면모가 강한 독자적인 쿄시로를 연기해 냈다고 평가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