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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아고 모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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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벤투스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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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000><colcolor=#ffffff> 이름 티아고 모타
Thiago Motta
출생 1982년 8월 28일 ([age(1982-08-28)]세)
브라질 상베르나르두두캄푸
국적
[[이탈리아|]][[틀:국기|]][[틀:국기|]]
|
[[브라질|]][[틀:국기|]][[틀:국기|]]
신체 187cm / 체중 83kg
주발 왼발
직업 축구 선수 ( 수비형 미드필더 / 은퇴)
축구 감독
경력 <colbgcolor=#000000><colcolor=#ffffff> 선수 FC 바르셀로나 B (1999~2002)
FC 바르셀로나 (2001~2007)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2007~2008)
제노아 CFC (2008~2009)
인테르나치오날레 (2009~2012)
파리 생제르맹 FC (2012~2018)
감독 파리 생제르맹 FC U-19 (2018~2019)
제노아 CFC (2019)
스페치아 칼초 (2021~2022)
볼로냐 FC 1909 (2022~2024)
유벤투스 FC (2024~ )
국가대표 30경기 1골 ( 이탈리아 / 2011~2016)
1. 개요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2.2. 국가대표 경력2.3. 플레이 스타일
3. 지도자 경력4. 기록
4.1. 선수
4.1.1. 대회 기록4.1.2. 개인 수상
4.2. 감독
4.2.1. 개인 수상
5. 여담6. 같이 보기

[clearfix]

1. 개요

브라질 출생, 이탈리아 국적의 전 축구 선수이자 현재 유벤투스 FC 축구 감독.

선수 시절 인테르의 트레블 멤버이자 파리 생제르맹의 중원을 이끌었던 핵심이었다.

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

브라질에서 태어나 지역의 CA 주벤투지에서 처음 축구를 시작하였다. 1999년 17세의 나이에 스페인의 바르셀로나 B팀과 계약하였고, 유스팀에서부터 시작하였다. 2001-02시즌 1군팀으로 승격하였다. 왼쪽 미드필더로 기용되어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도 활약하였다.

이듬해 2002-03 시즌에는 리그 21경기에 출전해 3골을 넣는 활약을 보여 최우수 신인 선수에 선정되었다. 그러나 FC 바르셀로나 재적시에는 거듭된 부상에 시달렸고, 특히 2004년 9월 11일의 세비야 전에서 왼쪽 십자인대가 끊어져 7개월의 재활 기간을 가졌다. 2005년 4월 17일 헤타페 전에서 데쿠 대신 교체 투입되며, 환성과 박수로 그의 재기를 반겼다.

2007-08 시즌 개막전에서 팀이 많은 부상자가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후보선수로 밀렸고, 2007년 8월 31일 이적료 200만 유로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 이적하였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무릎 부상에 시달렸고, 불과 1년 만에 결별하였다. 미국에서 부상 치료를 할 동안, 영국의 포츠머스의 트라이얼에 참여하지만, 어느 팀에도 소속하지 않은 채 2008-09 시즌 개막을 맞았다.

2008년 9월 14일, 이탈리아로 건너간 모타는 제노아와 계약을 맺었다. 이탈리아에서 주위의 예상을 뛰어 넘는 놀라운 능력을 선보이며 지안 피에로 가스페리니 감독의 공격 축구를 지원하는 중앙 미드필더로 공수 모두 고른 활약을 보이며 팀의 5위 약진과, UEFA컵 진출권 획득에 기여하였다. 시즌 종료 후, 디에고 밀리토와 함께 인테르로 이적하였다.

2008-09 시즌 세리에 A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로 선정되었다.

2.1.1.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2009-10 시즌 개막전부터 출장하였고, 밀라노 더비에서 선제골을 넣어 팀 승리에 기여하였다. 친정팀 바르셀로나와 맞붙은 UEFA 챔피언스 리그 준결승 2차전에서 세르히오 부스케츠에게 파울을 범해 퇴장당했다. 퇴장으로 인하여 결승전 출전 정지 처분을 받아서 팀이 45년 만에 우승을 차지한 경기를 피치 밖에서 지켜봐야만 했다.

2010-11 시즌은 부상으로 중도 탈락하였으며 11월에 복귀하고 나서는 호조를 보여 복귀 후 7경기에서 4골을 기록하였다.

2.1.2. 파리 생제르맹 FC

2012년 1월 31일에 인테르 시절의 은사 레오나르두 아라우주가 GM을 맡고 있는 PSG로 이적하였다. 계약기간은 1년 반이다. 등번호는 28번이었으나, 2013-14 시즌부터 인테르 시절에 사용한 8번으로 바뀌었다.

모타는 파리에서 커리어 내내 준유리몸에 가까웠던 체질이 뜬금없이 철강왕이 되면서 애시당초 터프했던 플레이 스타일과 리그 1의 떡대 흑인 수비수들에게도 밀리지 않는 체격, 본인이 인테르 트레블의 일원이었음을 알리는 듯한 클래스있는 실력으로 파리의 핵심적인 미드필더로 자리매김하며 인테르 팬들에게 자신이 얼마나 실력있는 미드필더였는가를 입증하였다.

요앙 카바예가 PSG로 이적해올 당시만 하더라도 모타 아니면 마르코 베라티가 자리에서 밀려나리라 다들 예상했으나 도리어 주전에서 밀린 것은 카바예. PSG에서 공수 전환 능력, 준족, 침투 상황에서의 침착성에서 강점을 보이는 블레즈 마튀이디, 플레이메이킹, 시야, 패스에서 강점을 보이는 베라티와 더불어 터프한 플레이, 체격, 나쁘지 않은 개인 기량을 바탕으로 미들 라인 보호에서 뛰어난 면모를 보인 모타가 불러 일으킨 시너지 효과는 상당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겠다.

현재 2014-15 시즌에도 주전으로 나서고 있으나 다시 은근한 잔부상을 앓는 등, 파리서도 이전의 준유리몸 기질이 조금씩 도지는 듯하다. 2015-16 시즌에도 모타는 잔부상을 드러냈었다. 허나, 챔스에서는 당시 스쿼드 중 가장 클래스를 보여줬다고 언급할 만 하다.

2016-17 시즌에는 그제고시 크리호비아크의 존재로 밀리는것을 몇몇이 예상했으나, 애초에 모타급의 빌드업 능력이 없던 크리호비아크가 모타를 밀어낼리가 없었다. 다만 PSG가 전술적으로 과도기에 있는 시즌이라 그런지 전체적인 폼은 널뛰기라고 봐도 무방하다. 이번 2016-17 시즌이 계약 만료 기간이었지만 구단과 1년더 계약을 체결했다.

2017-18 시즌을 끝으로 선수 생활에서는 은퇴하고, 다음 시즌부터 PSG의 U-19 팀 감독을 맡는 것이 확정되었다. 리그앙 37R 스타드 렌과의 마지막 홈경기에서 PSG로부터 레전드로서 성대한 은퇴식을 치렀다.

포지션과 플레이 스타일이 많이 다르지만 커리어 전체를 볼 때 로드리고 데 파울의 행보와 많이 유사하다. 두 선수 모두 라리가 시절에 유망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몇년 간 제대로 자리 잡지 못했고 두 선수 모두 세리에로 이적해 본인의 기량을 만개시키고 리그 최정상급 미드필더까지 올라왔다는 점.

2.2. 국가대표 경력

국가대표로는 U-23 브라질 대표로 2003 CONCACAF 골드컵에 출전하여 2경기에 출장한 경험이 있지만, 정식 성인 국가대표는 아니었기에 타국가의 대표팀으로 선발 가능했다. 모타 본인은 이탈리아 국가대표로 참가하기를 희망하였다. 할아버지가 베네트 주 이민자로, 이탈리아 국적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 이탈리아 대표팀으로 발탁하려고 했지만 무산되었다.

이후 2011년 2월 9일, 독일과의 친선 경기에서 이탈리아 국가대표로 처음 소집되어 A매치에 데뷔하였다. 같은 해 3월 25일 유로 2012 예선 슬로베니아 전에서 결승골이 되는 A매치 첫 골을 기록하였다. 이후 유로 2012 이탈리아 국가대표로 선발되어 결승까지 진출했으나, 모타는 스페인과의 결승전에서 후반 교체 출전했지만 곧바로 부상으로 아웃되면서 때마침 교체 선수를 모두 사용한 이탈리아는 10명으로 남은 시간을 경기하며 수적 열세에 시달린 끝에 0-4로 참패하게 된다.

이후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최종 명단에 들어가 32세에 생애 첫 월드컵을 경험하게 된다. 조별리그 3경기에 모두 출전했으나 이탈리아는 2대회 연속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면서 대회를 마무리했다. 유로 2016에도 선발되어 8강전을 제외한 전 경기에 출전했다.

2.3. 플레이 스타일


신장 187cm의 건장한 체격을 가진 미드필더로, 이런 신체조건을 살린 허슬 플레이와 폭넓은 활동량, FC 바르셀로나 출신 답게 정확한 패스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원 홀딩, 4-3-3 전형에서 역삼각형 중원의 수비형 미드필더로 수비진 바로 앞에서 보여주는 역량은 뛰어난 수준으로, 숨막히는 수비력과 전방으로 빠른 속도로 전개하는 롱패스 능력을 갖추고 있는 피보테였다. 이런 역할의 스페셜리스트인 세르지오 부스케츠, 샤비 알론소 등과 비교해도 크게 떨어지지 않았던 편이었다.

게다가 단순히 패스만 잘하는 선수도 아니고, 중원에서 플레이메이커 롤을 수행하는 선수들의 보디가드 역할을 자처할 수 있다는 점에서 활용성이 높은 선수였다. 그러면서도 자신 또한 1차적 빌드업 과정을 도맡아 처리해줄 수 있는 현대 축구계에서 매우 선호받는 유형이다. 다만 인테르 시절 트레블을 달성한 주축 선수임에도 이런 유형의 선수들이 그렇듯 당시에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바르셀로나 시절에는 무려 그 지네딘 지단을 수비적으로 봉쇄한 전력이 있고, 선수 생활 말기인 파리에서도 패스 능력이 뛰어나지만 작은 체격으로 인한 피지컬 열세가 있는 마르코 베라티의 파트너로 뛰어난 활약을 펼친 전례도 있다.

저평가의 원인은 모타의 스타일 때문에 눈에 잘 띄지 않았던 것도 있지만, 부상이 잦았다는 것. 만약 부상이 아니었다면 훨씬 더 뛰어난 선수로 평가받아도 이상할 것이 전혀 없는 선수다.

3. 지도자 경력

2019년 8월 이탈리아축구협회 산하 지도자 양성기관인 코베르치아노의 UEFA 프로 라이선스 과정에 등록하였으며 안드레아 피를로, 루카 토니 등 교육과정 동기생들과 함께 2020년 9월 16일 라이선스를 취득하였는데 이론 시험 및 논문 작성과 발표를 합하여 110점 만점에 108점을 받아 107점을 받은 피를로를 제치고 수석을 차지했다.

3.1. 제노아 CFC

2019년 10월 21일, 19위에 위치하여 강등위기에 놓인 제노아에 부임, 첫경기 승리를 이끌며 기대감을 모았으나 12월 28일 팀이 최하위로 쳐지며 경질되었다.

3.2. 스페치아 칼초

2021년 7월 9일, 승격팀이었지만 확실한 팀컬러를 보여주며 중반기까지 중위권에 머무는 등 좋은 평가를 받은 전임 빈첸초 이탈리아노 감독이 ACF 피오렌티나로 옮겨가며 생긴 빈자리에 신임 감독으로 임명되었다. #

2021-22 시즌이 진행중인 2022년 1월 세리에 A 이달의 감독상을 받았다.

2022-23 시즌을 앞두고 스페치아와 계약 해지 후 팀을 떠났다.

3.3. 볼로냐 FC 1909

2022년 9월 12일, 시니샤 미하일로비치의 뒤를 이어 볼로냐 FC 1909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계약 기간은 2024년 6월 30일까지. #

2023년 세리에 A 2월 이달의 감독에 선정되었다. 4경기 3승 1패.

특색있는 전술로 볼로냐를 이끌었고 디 마르지오에 따르면 인테르, AC 밀란, 유벤투스가 차기 감독으로 꾸준히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2023년 6월 나겔스만 감독과 협상이 결렬된 PSG의 감독 주요 후보에 있다고 한다.

2023-24 시즌 주요 공격진인 무사 바로우 마르코 아르나우토비치를 모두 이적시켰지만 인테르, 나폴리같은 강팀들과 무승부를 거두며 안정적으로 상위권에 순항하고 있다.

볼로냐와의 계약이 23/24 시즌을 끝으로 만료되다보니 2023년 12월 말에 다니엘레 롱고에 의하면 로베르토 데 제르비와 함께 AC 밀란이 피올리 감독의 후임 감독 후보로 리스트업을 했는데, 티아고 모타를 최우선 후보로 낙점했다고 언급했다.

2024년 1월, 바르셀로나의 다음 감독 후보로 링크가 뜨고 있다. 최근 부진한 성적을 바탕으로 사비 에르난데스의 경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현역 시절 팀 동료이자 현 바르셀로나 스포츠 디렉터 이사인 데쿠가 그를 다음 감독으로 선호한다는 소식이 있었다. 데쿠는 모타와 매우 가까운 관계이고, 볼로냐에서의 코치 능력을 높게 평가했다고 한다.

2024년 2월, 보도들에 의하면 AC 밀란이 모타에게 시즌이 끝나면 정식적인 감독 오퍼를 넣을 예정이라고 전하였다. 최근 밀란의 디렉터로 선임 된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가 모타랑 PSG에서 같이 뛴 돈득한 관계이며, 모타가 만약 자신이 다름 팀으로 거취를 옮긴다면, 자신의 제자인 조슈아 지르크지도 덤으로 데려 온다고 했기에, 올리비에 지루의 거취가 확실치 않은 상황에서 밀란에게 매우 좋은 딜로 보여지고있다.

2024년 3월 유벤투스까지도 모타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들려오는 여러 보도들에 의하면 유벤투스가 모타를 진심으로 원하기에 여러번 접촉을 시도를 했다는 보도들이 나왔으며, 모타 또한 이번 시즌이 끝나고 유벤투스로 가고 싶다는 마인드를 보였기에 감독 이직은 시간 문제일 줄 알았으나... 막판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되어 버린 현 유벤투스의 감독 마시밀리아노 알레그리가 계약기간을 1년 남긴 상황에서도 유벤투스와의 감독 자리를 전혀 상호해지를 할 마음이 1도 없기에, 제발 이젠 나가줘... 유벤투스가 골치 아파하고 있는 상황이다. 참고로 알레그리의 연봉은 7m + 2m (보너스)에다 그의 코치진까지 합하면 최소 12m 정도로 나오고, 여기에 더해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전에 유벤투스 소속때 못 받았던 밀린 연봉 8m까지 지급을 해야하는 상황.

여기서 AC 밀란이 모타를 하이재킹 하려고 노린다는 충격적인 보도가 나왔다. 원래 밀란은 모타는 안중에도 없고, 훌렌 로페테기를 선임하려고 했고, 결국 오피셜까지 왔나 하던 찰나에... 밀란 팬들의 극심한 반대로 인해, 결국 밀란의 구단주와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가 이를 어쩔 수 없이 수긍을 해, 차선책으로 모타와 안토니오 콘테 그리고 로베르토 데 제르비를 노리고 있는 중이나, 콘테는 나폴리와 진하게 링크가 나오고있고, 데 제르비는 요즘 주축 선수들이 많이 빠졌다 해도 너무나 안 좋은 모습을 리그에서 보여주고 있기에, 팬들은 점점 더 모타를 외치는 중이다. 결국 훌렌 로페테기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FC와 계약했다.

밀란은 여기서 유벤투스가 혼란에 빠져있는 상황에서, 모타의 측근들과 은밀히 만나며 여러 애기를 오갔다고 전해졌다.

일단 36R SSC 나폴리전 승리하면서 챔스 진출이 확정되었다.

5월 17일, 파브리지오 로마노에 따르면 유벤투스가 모타에게 3년 계약을 제시했다고 한다. 유벤투스는 모타를 제외하고 아직 다른 감독들에게 오퍼를 넣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모타 또한 유벤투스와의 계약에 서명하기로 결정을 했다고 추가 보도를 하면서, 시즌 종료 후 유벤투스행이 유력해진 상황이다.

5월 23일, 로마노가 모타의 유벤투스행 Here we go!를 띄웠다.

3.4. 유벤투스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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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전술 스타일


모타볼이 궤도에 올라오며 볼로냐에서 성과를 내기 시작하자 모타가 이야기했던 2-7-2 라는 포메이션은 단순히 신기하게 포메이션을 읽는 법이 아니라 모타의 전술 철학을 함축적으로 담고 있는 것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공을 소유한 측면에서 풀백과 윙어가 각각 중앙 수비와 공격 침투를 가져가는 2명, 골키퍼부터 빌드업에 적극 가담하고, 센터백의 전진과 최전방 공격수의 수비 커버를 통해 중앙 지역에서의 수적 우위를 유도하는 7명, 한쪽 측면의 수적 우위 때문에 발생하는 공간으로 쇄도하는 반대편 측면의 2명이다.

티아고 모타의 전술의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수적 우위'와 '공간 침투'로 설명된다. 경기장을 넓게 볼 경우 모타의 팀은 공을 중심으로 선수들이 밀집하여 있는데, 중원 지역에서의 수적 우위를 위해 최전방 공격수가 수비와 압박에 가담하거나, 풀백이 좁혀들어오며 센터백을 전진시키기까지 한다. 이를 통해 경기의 주도권을 확보하고, 상대의 수비를 이끌어 내 빈 공간으로 침투하여 득점을 올리는 것이 모타 볼의 기본 원리이다.

공격 시에는 스트라이커가 적극적으로 전방부터 압박하며, 볼을 매우 빠르게 탈취하고 그 지점에서 수적 우위를 살려 공격하거나 반대편의 침투하는 자원에게 롱패스를 주어 빠르게 공격을 전개한다. 이 과정에서 스트라이커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한데, 압박을 통해 상대 패스를 끊어내거나, 속공 상황에서 기점이 되어야 하며, 어느새 다시 침투하는 등 기민한 움직임과 높은 활동량을 요구한다.

중원에서의 수적우위는 모타볼의 핵심이다. 공격상황에서의 역습, 수비상황에서의 대처 모두 중앙지역의 강력한 장악력에서 나온다. 모타 감독은 중원에서 빠른 볼 탈취와 패스 선택지를 늘리기 위해 센터백을 자주 전진시키는데, 이 빈자리를 수비형 미드필더와 풀백이 좁혀들어오면서 중앙을 커버하여 3백의 형태로 빌드업 한다. 센터백의 전진과 윙어의 인버티드 움직임 덕분에 중원에서 인원이 많아지면, 나머지 중앙 미드필더가 적극적으로 전진하여 찬스를 만들어낸다.

수비상황에서는 1차적으로 강력한 압박을 통해 끊어내고 공격을 지연시키면, 센터백이 다시 중앙으로 들어오며, 풀백 자원과 수비형 미드필더와 함께 컴팩트한 수비라인을 형성한다.

이처럼 모타볼은 전형적인 포지션 플레이가 아닌 다양하고, 변칙적인 플레이를 선수들에게 요구한다. 윙어를 미드필더로, 스트라이커를 최전방 수비수로, 센터백을 미드필더로, 풀백을 센터백으로 끊임없이 역할의 전환을 보여준다. 이 점은 볼로냐 감독 시절에 더더욱 두드러졌는데 모타가 추구하는 축구를 구현하기에는 중원의 퀄리티가 상대적으로 너무 떨어지다 보니 극단적으로 스트라이커와 센터백을 중원에 동시에 빌드업에 가담하게 하는 전술을 사용하기도 했다.[1]

이 때문에 측면 자원의 퀄리티와 스트라이커의 기량, 선수들의 전술적 이해도가 바탕이 되어야 하며, 시스템이 안정화 되기까지의 시간이 꽤나 걸린다는 점 때문에 제노아에서는 강등권에서 허덕이다 경질당하는 굴욕을 겪었다.

4. 기록

4.1. 선수

4.1.1. 대회 기록

4.1.2. 개인 수상

4.2. 감독

4.2.1. 개인 수상

5. 여담

6. 같이 보기

1 부폰 · 2 마조 · 3 키엘리니 · 4 오그본나 · 5 티아고 모타 · 6 발자레티 · 7 아바테 · 8 마르키시오 · 9 발로텔리
10 카사노 · 11 디 나탈레 · 12 시리구 · 13 자케리니 · 14 데 산치스 · 15 바르잘리 · 16 데 로시 · 17 보리니
18 몬톨리보 · 19 보누치 · 20 조빈코 · 21 피를로 · 22 디아만티 · 23 노체리노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체사레 프란델리


[1] 스트라이커는 보통 지르크지가, 센터백은 3백의 센터백들이 번갈아가면서 올라가 빌드업 및 공격에 가담하는 형태였다. 괴랄한 전술 탓에 센터백이 계속 뛰쳐 올라와 박스 바깥에서 중거리를 쏘는 광경이 종종 나오면서 소소한 화제거리가 되기도 했다. [2] 돈 발롱 어워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