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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6-28 15:45:55

충허

1. 개요2. 행적3. 여담

沖虛道長

1. 개요

소오강호 시대의 무당파 장문인. 소오강호 정파의 태산북두인 소림사 다음의 세력인 무당파의 수장이니 위치부터 정파의 큰 어른이다.

2. 행적

첫 등장은, 무당산을 지나가는 영호충과 사파 무리앞에 나타났다.[1] 일부러 무리앞에 아무것도 모르는 척 나귀를 타고 오다 도근선이 나귀를 쓰려뜨려 땅바닥에 팽개쳐지는 수난을 당했다. 영호충이 그들의 검법을 보고, 엄청난 고수들임을 느끼며 청허와 현고와 대련해서 이겨버린다. 이를 지켜본 충허가 영호충이 독고구검을 익혔음을 간파하고, 결투를 신청한다. 태극검을 시전하여 영호충을 처음으로 검술로 몰아붙이지만, 영호충의 요행수에 의해 패배한다.[2] 대련이 영호충의 판정승으로 끝난 뒤 잠깐 영호충과 이야기를 나눈다. 영호충을 뒷조사까지 해봤지만 아무런 사악함을 발견할 수 없어 악인이 아님을 확신하였다고 한다. 영호충에게 그의 흡성대법의 위험성을 역근경으로 치료해주겠다고, 화산파에 복귀를 청해보겠다는 등의 제안을 하며 사파와 관계를 끊으라 종용하지만, 영호충이 거절하면서 헤어진다.

영호충과 사파 무리가 도망친 소림사에서 방증, 좌냉선, 악불군을 비롯한 정파 인사들과 같이 등장한다. 여기서 임아행, 상문천, 임영영과 대치하며 그들을 소림사에 붙잡아 놓으려 한다. 임아행은 충허는 천하에 인정하는 사람 3명 반에 들어가는데, 동방불패, 방증, 풍청양은 3명에 속하지만 충허는 반만 인정한다 말한다.[3] 결투에서 힘이 빠진 좌냉선이 상문천에게 죽을 위기에 처하자 그를 살리기 위해 대신 상문천과 대치한다. 임아행은 처마 속에 숨어있던 영호충을 불려내어 충허와 대결하도록 한다. 충허는 영호충과 검술 대결은 일전에 붙어서 패했었고, 지금도 이길 방법이 없으니 패배를 자인해서 모두를 놀라게 했다. 이 대결이 임아행, 상문천, 임영영 등 일월신교 요인들의 처우와 향후 무림의 향방까지 걸린 중대한 대결이었고, 굳이 말할 필요도 없는 영호충에게 당한 패배도 가볍게 언급하는 담백함은 작중 인물 중에서는 정말 보기 힘든 케이스. 이에 임아행은 충허를 반에서 7할 정도로 인정하게 되었다는 답례를 했다.

영호충의 항산파 장문인에 취임했을 때, 방증과 함께 직접 축하하려 찾아온다. 영호충을 찾아온 이유는 좌냉선의 야심과 음모, 규화보전 벽사검법의 내력 등을 가르쳐주며, 영호충을 깨우침과 동시에 영호충이 오악검파의 장문인으로 나설 것을 권유하며 승낙받는다. 그런데 가포와 일월신교의 기습을 받아 위기에 처했는데 임영영이 도와주어 무사히 물리친다. 오악검파 합병식에 참석해서 뜻밖에 악불군이 장문인으로 된 것을 보며, 그래도 좌냉선보다 낫다고 만족해했다.

최후반부에 방증과 함께 쓰려진 영호충과 항산파를 수습하였다. 그리고 임아행과 일월신교의 진군을 저지하고자, 사제인 청허와 현고가 화약 전문가임을 활용하여 임아행을 폭탄을 숨겨놓은 옥좌로 유인해서 폭사시킬 계책을 짰다. 일월신교가 도착한 마당에 뜻밖의 도곡육선의 난입으로 계획이 어그러질 뻔해서 진땀 흘리다 방증의 도움하에 간신히 제압한다. 그러나 알고보니 임아행은 이미 사망한 뒤였고, 임영영은 소림과 무당에 화친을 청하면서 무당파의 보물을 돌려받으며 정사간의 대립은 평화롭게 마무리 되었다.[4] 3년 뒤 영호충과 임영영의 결혼식에서 방증과 이야기하던 중 도곡육선의 "천주만재 부부로 살자!"의 구호를 듣고, 미소를 지으며 등장이 마무리된다.

3. 여담



[1] 사제인 청허와 사질인 현고와 함께 자신은 병약한 나귀를 탄 노인, 사제들은 시골 농민으로 변장해서 아무도 정체를 눈치채지 못했다. [2] 영호충은 태극검을 깰 방법이 없어서 밀리다가 태극검의 약점이 가장 강한 빛무리 중앙이라 추측해서 찔려봤는데 요행으로 맞았던 것이다. 빛무리 중앙이 약점이 아니었으면 영호충의 팔이 잘렸다. 사실 충허의 태극검은 일부 실전되어 큰 약점이 존재하는 불완전한 태극검이다. 그래서 충허가 고심끝에 약점을 위력이 가장 강한 빛무리 중앙에 숨겨놓았는데 영호충의 도박수에 허를 찔린 것이다. [3] 이유는 인품과 무공 실력은 무당파의 장문인답게 뛰어나며 속세에 벗어난 초탈한 모습은 인정한다. 그러나 가르치는 재주가 없어서인지 제자를 두지 않아 그가 죽으면 태극검은 대가 끊긴다고 평가하며, 그의 태극검이 강해도 자기를 이길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런데 충허는 기분 나쁠만한 말을 쿨하게 고맙다고 웃어넘긴다. [4] 작중에서 80여년전 장삼봉이 남겨놓은 진무검과 태극권경을 일월신교가 훔쳐갔다. 그들은 훔쳐가는 와중에 무당파 고수 3명을 죽였고, 무당파는 반격에 나서 일월신교 장로 4명을 죽여 복수했지만 탈취당한 보물은 가져오지 못했다. 이후 무당파의 장문인들마다 일월신교에 탈취당한 보물을 찾아오는 것이 숙원사업이었다. 생각해보면 정파 장문인급 고수인 일월신교 장로 4명을 무당파가 단독으로 죽일 정도면 그만큼 무당파의 세력이 강력함을 알려준다. [5] 배분이나 위치나 나이 모두 영호충은 손자뻘 까마득한 아랫 사람임에도 아우 대접할 정도의 소탈함을 보인다. [6] 달리 말하면 개혁적이고, 진취적인 신진 세력을 막아서는 기득권 세력이란 오명을 씌울 수 있다. 이런 재해석된 관점이 소오강호 칼럼, 서브컬쳐 등의 주요 소재가 된다. 또 이렇게까지 강하게 재해석하지는 않더라도 방증, 충허가 다른 이들보다 담백하고 탈속한 면모를 보이는 것은 분명 사실이지만, 이것은 그들이 기득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니냐는 정도의 재해석을 제기하는 이들도 있다. 물론 이것은 같은 정파임에도 패악을 일삼는 좌냉선의 비인간성을 고려하면 다소 지나친 해석일 수 있으며, 오히려 그보다 정파와 사파 사이에서 분명하게 정파만의 입장을 고수하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인물이라고 보는 편이 좋다. 달리 말하면 자신과 반대 진영에 있는 사람과는 능력을 인정할지언정 절대로 함께 하지 않는 완고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오히려 신진세력에 명백한 견제와 탄압의 사례는 김용의 다른 작품인 천룡팔부에서 소봉이 젊은 나이에 방주가 되어 인망을 얻자 이를 시기하고 나선 정의파 우두머리인 전관청 백세경 등의 중상모략일 것이다. 소봉의 축출은 김용의 작품들 중에서 파벌간 분쟁이 가장 극렬하게 나온 사례이다. [7] 난쟁이라는 뜻이다. [8] 그런데 정작 실제로 손을 더럽히지 않고 이익을 챙긴 건 충허 본인과 방증대사다. 악불군은 일단 배후에서는 악행을 저질러 왔고, 임평지를 제자로 들인 이상 그 의도가 어찌했든 지속적으로 숭산파의 견제를 받으며 약왕묘에서 절체절명의 위기에까지 몰린 적도 있었다. [9] 소오강호보다 약 100여년 이후인 녹정기의 무당파는 지나가는 말로 내분이 심각하다 나오며, 서검은구록은 주요 빌런인 장소중과 다른 무당파 사형제들의 관계를 보면 이하생략. 반대로 소오강호 시절에 거의 주저앉다시피한 화산파는 벽혈검 시대에 들어서 선검선원 목인청 이후로 크게 성하여 철검문과 함께 천하제일의 문파로 군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