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대학교(국립) 관련 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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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국립 충청대학교 농과대학 정문[1] |
1962년 3월부터 1963년 2월까지 존재했던 국립 종합대학교.
충청남도 대전시에 위치한 도립 충남대학교[2]와 충청북도 청주시에 위치한 도립 충북대학[3]을 병합하여 국립으로 전환한 뒤 1963년 3월 국립 충청대학교(國立 忠淸大學校)로 개편했다.
현재 청주시에 위치한 사립 전문대인 충청대학교와는 전혀 다른 학교이며, 역사도 공유하지 않는다.
2. 역사
2.1. 출범 배경
제2차 대학정비안 발표 기사 (경향신문 1961.8.16 보도) |
1961년 5월 16일 군사정변에 의하여 무단으로 정권을 장악한 박정희 등 주도 세력은 국가재건최고회의를 정점으로 하는 군사정부를 수립하고 약 3년간의 군정통치를 실시하였다. 군사정부는 부패 척결 등 공약을 발표하고 각종 개혁에 착수하였는데, 교육 부분에서는 대학정비를 핵심 목표로 삼고 교육 관련 법령을 제정하여 학교와 학과를 통폐합하는 조치를 취하였다. 문교부는 대학교육을 정상화한다는 명목을 내세워 1961년 7월 22일에 제1차 대학정비안, 다시 8월 16일에는 기존 방안을 구체화한 제2차 대학정비안을 차례로 발표하였다. 특히 2차 대학정비안은 대학의 구조조정에 대한 방침으로 공립대(도립대)는 가급적 국립대에 흡수하기로 결정되었다. 당시 도립이었던 충남대와 충북대 역시 통폐합 문제가 거론되기 시작하였다.
2.2. 국립 충청대학교의 출범
이정호 총장(좌)과 최재갑 학장(우) |
취임 후 처음으로 청주캠퍼스를 방문한 이정호 총장 (충청대학보 제18호 1962.5.14 보도) |
문교부는 1961년 12월 9일에 '학교정비기준령'을 공포하여 통폐합 및 학생 정원의 조정에 관한 기준을 명시하였고, 이달 중순에는 전국 대학 총학장들을 소집한 자리에서 1962년 3월 1일부터 충남대와 충북대를 통합하여 국립충청대학교를 운영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그에 따라 대전에는 문리과대학과 공과대학을, 청주에는 농과대학을 각각 두고 충남대학교의 농과대학, 충북대학의 약학과와 체육학과를 폐과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충북대학의 조건상 학장 직무대리는 문희석 문교부장관을 찾아가 폐과에 대해 항의했지만 소용없었다.
마침내 1962년 3월 1일에 국립대학설치개정령에 따라 도립 충남대학교와 도립 충북대학이 통합되어 국립 충청대학교가 새롭게 문을 열었다. 문교부는 충청대의 설립과 함께 4월 16일, 기존 충남대 총장 이정호 교수를 충청대 총장으로 정식 임명하였다. 이후 5월 14일에는 최재갑 교수를 농과대 학장( 충북대)으로 발령하였다.
2.3. 출범 1년 만에 다시 분리되다
충청대학교 분리 기사 (경향신문 1962.12.28 보도) |
충청대학교로 통합된 이후 농과대학의 교수, 직원, 학생 그리고 충북도민들은 교육 당국의 구조조정과 인사에 대해 계속해서 거세게 반발하였다. 이에 충북대학의 분립 독립 의지를 밝히고 폐과된 약학과와 체육학과를 부활하겠다는 염원을 모아 '충북대학 독립 투쟁 위원회'를 조직하고 본격적인 부활 운동을 전개하였다. 거도적인 부활운동은 군사정변에 참여했던 이종근 최고위원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결실의 여지를 보이게 되었다.
위와 같은 노력에 힘입어 마침내 1962년 12월 27일 임시각의에서 '국립대학교설치령 중 개정의 건'이 의결되어 충청대학교를 통합한 지 1년 만에 다시 분리한다는 개편안이 채택되었다. 이에 따라 1963년 3월 1일부터 충청대학교를 폐지하고 국립 충북대와 국립 충남대를 각각 분리해 독립적으로 운영하게 되었다. 충북대에는 체육학과와 약학과가 부활하였고 농과대학장 최재갑 교수가 연이어 그대로 제5대 학장을 맡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충남대에도 농과대학이 부활하였다. 이로써 국립 충청대학교는 출범 1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오늘날 충남대와 충북대로 이어지게 되었다.
3. 상징
3.1. 교가
충남대학교 교가 | 충북대학교 교가 |
특이하게 교가가 한 곡이 아닌 두 곡인 것으로 추정된다. 기존의 도립 충남대학교 교가와 도립 충북대학의 교가를 그대로 가져왔으며, 충남대 교가는 충청대학교 교가로, 충북대 교가는 충청대학교 농과대학 교가로 제목을 수정하고 가사는 후렴구의 "충남대학교"를 충청대학교로, "충북대학교"를 충청대학 혹은 농과대학으로 수정한 것으로 추정된다.
4. 학부
충청대학교(1962년) 시기 기구표 |
충청대학교는 공과대학, 농과대학, 문리과대학 등 3개 단과대학과 대학원으로 구성되었다. 이 중 대학 본부와 2,000여 명 규모의 대학원, 공과대학과 문리과대학은 대전에 위치하였고 500명 규모의 농과대학은 청주에 그대로 남게 되었다. 충북대 개신캠퍼스는 기존 5개 학과 중 농과대학 소속 3개 학과가 존속하고 약학과와 체육학과가 없어졌지만, 대신에 충남대 농과대학이 폐지됨으로써 그곳에 있던 농업토목과와 농산제조학과가 이전 추가되었다.
5. 대학 언론
충청대학보 충북판 제18호 (1962.5.14) |
대학 언론으론 '충청대학보'가 있었다. 총장(기존 충남대)과 농과대학장(기존 충북대)은 "학보사 운영은 독립하여 한다"는 합의안을 냈고, 청주 캠퍼스는 충북판이라는 부제를 사용했다. 이에 학보사 사장은 총장이, 발행인은 농과대학장이 되었다. 제22호까지 계속되었다가 충청대가 다시 분리되면서 충남대는 다시 충남대학보로, 충북대는 다시 충북대학보로 돌아갔고 현재까지 양 대학의 대학 언론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6. 기타
충청대가 분리된지 41년 만인 2004년, 충남대와 충북대가 다시 통합을 추진하였다. 통합 양해각서까지 체결했지만 양 대학 간 반대 의견이 많았고, 특히 충북대에서 통합을 두고 교수, 총학생회, 총동문회등 많은 구성원들이 반대를 하였다. 이에 통합 추진이 계속 답보 상태에 빠져들다 끝내 무산되었다. 만약 통합이 되었으면, 41년 만에 국립 충청대학교가 부활한거나 마찬가지였으나, 당시 이미 사립 전문대인 충청대가 "충청"이라는 교명을 사용하고 있었기에 예전 이름으로는 돌아가지 못했을 것이다. 통합 무산이 된 지금은 별로 의미 없는 소리이긴 하다.충북대는 충청대를 반 흑역사로 여기는 듯 하다. 군사정권에 의해 충남대에 강제병합, 학과 폐지에 이어 대학 본부나 대학원 등 학교 인프라가 대전에 치중되어 있었고 청주 캠퍼스에 하나 남은 농과대학도 인원이 줄었기 때문이다. 이때의 트라우마가 아직 남아 있는지 이번 글로컬대학 30사업을 위해 충북대가 통합을 추진했을 때 일부 구성원들이 통합 대상으로 충남대는 왜 제외되었는지 고창섭 총장에게 질문하자 이에 총장은 "만약 충남대와 통합을 하면 우리가 '을' 입장에서 대전에는 총장, 청주에는 캠퍼스 총장(부총장급)이 근무할 가능성이 높아 고려하지 않았다."라고 설명했다. 여기에서 보듯 충청대 시절 소외되었던 트라우마는 현재 진행형인 것을 알 수가 있다.
7. 참고 문헌
- 『충북대학교 70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