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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우/선수 경력/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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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우의 연도별 시즌 일람
2014년 2015년 2016년

1. 시즌 전2. 페넌트 레이스
2.1. 3월 ~ 5월2.2. 6월2.3. 7월2.4. 8월2.5. 9월~10월
3. 2015년 한국시리즈4. 시즌 후5. 시즌 총평6. 관련 문서

1. 시즌 전

2014 시즌에 1달간 결장한 게 아쉬웠는지, 시즌을 앞두고 아프지 않고 144경기 전 경기 출장하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2. 페넌트 레이스

2.1. 3월 ~ 5월

4월 4일 잠실 LG전 9회초 1사 1루 상황에서 봉중근을 상대로 투런 홈런을 때려내 LG의 팀 노히트 노런[1]을 깼다. 2010년 6월 10일 김광현의 노히트 노런을 9회 2사에서 깼으니 두 번이나 상대의 노히트 노런을 9회에서 깬 셈이다.

5월 17일 기준으로 야마이코 나바로와 함께 홈런 14개로 그 부문 공동 선두에 올라 있으며 타율 0.320(14위), 타점 39개(3위)로 활약해 주었다.

5월 20일, 4타수 2안타 3타점 1홈런을 기록했고 타점 부문에서 이호준과 공동 선두가 되었다.

2.2. 6월

6월 3일 롯데와의 경기에서 개인통산 1000안타를 달성하였다.

6월 17일 두산과의 경기에서 노경은을 상대로 9회말 1사 1,3루 상황에서 끝내기 쓰리런을 쳤다. 이 홈런으로 개인통산 700타점을 달성하였다.

6월 24일 롯데와의 경기에서 팀이 4대12로 지고있을 때 홈런을 쳤다. 이 홈런은 이 시즌 자신의 20호 홈런이며 역대 26번째로 3년 연속 20홈런이라는 기록을 남긴 홈런이다. 참고로 2009~2011년에 이어 개인 통산 2번째로 달성한 3년 연속 20홈런이다.

2.3. 7월

7월 14일 넥센과의 경기에서 그냥 제대로 미쳐 날뛰었다. 이날 기록은 4타수 4안타 1볼넷 4타점에 2루타 3개 홈런 1개... 하지만 14일 경기를 기점으로 점점 부진하여 채태인과 함께 세트로 까였다.

2.4. 8월

8월 5일 수원 kt전에서 약속의 8회에 쓰리런을 때려박음으로써 심재민의 승계주자들을 모조리 불러오는 정의구현포를 보여주며 부활을 선언했다.

8월 9일 넥센 히어로즈전에서 4타수 3안타 홈런1개 포함의 맹활약을 펼치며 삼성을 승리로 이끌었다. 덤으로 9회초에 득점권 상황서 삼진을 당한 박병호랑 비교되어 더 좋게 평가받는 분위기.

그리고 8월 중순 잠실 두산전 때 오승환 소속팀에서 스카우터를 파견했다! 최형우 외에 김현수도 보고 갔다고. 공교롭게도 이번 시즌 후 해외진출이 가능해지는지라 이와 관련된 기사도 나오고 있다.

8월 21일 NC전에서 해설진에 의하면 "일본 가냐?" 이용철의 질문에 "네!"하고 대답했다 한다. 그러나 이날 경기에서 최형우는 4타수 0안타 1볼넷 기록, 타석마다 항상 자기 앞에 주자가 출루해 있었음에도 2아웃에는 외야뜬공, 1아웃에는 내야뜬공으로 희생플라이도 치지 못했을 뿐더러 볼넷으로 출루해놓고 홈에서 주루사하는 등 공수주로 부진하여 팬들에게 실컷 까였다.

8월 26일 경기에서도 찬스 때마다 거하게 삽질하고 거기다 수비까지 실책을 저지르면서 들과 함께 대역전패의 원흉으로 지목되면서 또 미칠 듯이 까였다.

8월 29일 LG전에선 결산보고용 솔로포 하나 치셨다. 득점권에서는 덕아웃이 편하신지 최근 득점권만 되면 삼진 당하고 들어가신다.

8월 30일 LG전에서 7회말에 2점짜리 홈런을 쳐서 역대 22번째 개인통산 200홈런을 달성하였다. 이 홈런으로 2년 연속 30홈런-100타점, 개인 통산 3번째 30홈런 100타점의 기록을 수립했다. 또한 이날 5타수 4안타 4타점의 매우 훌륭한 활약을 펼쳤는데 부진 탈출의 시작일지 스탯 관리인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2.5. 9월~10월

9월 2일 마산 NC전에서는 4회 초 좀처럼 보기 힘들었던 밀어서 담장을 넘기는 투런 홈런을 때려냈다. 시즌 31호 홈런에 108타점째로 타점 3위에 올랐다. 2위인 테임즈와는 2타점 차이.

9월 6일 기아와의 대구 경기에서 32호 홈런을 치며 자신의 시즌 최다 홈런 기록을 경신했다. 타점도 110타점으로 잔여 경기를 무리없이 소화할 시 개인 한 시즌 최다 타점 기록 경신도 유력시되고 있다.

체력저하인지 집중력 부족인지는 모르지만, 8월 중순부터 9월까지 누적스탯은 두말할 필요 없이 3할 30홈런 100타점 타자이나 세세하게 들여다보면 이기는 경기에서 의미없는 타점, 홈런을 기록하는 경우가 많고 정말 중요한 상황에서 국밥을 말아먹는 경우가 한두게임이 아니라서 스탯관리의 신, 국밥집 사장님으로 비난을 많이 받고 있다. 아무리 시즌 초 형우 라이온즈였다지만, 시즌 후반 계속된 부진(?)에 김상수와 함께 욕이란 욕은 다 먹고 있고 좋은 모습을 보여줘도 스탯관리라고 까인다.[2]


9월 13일 목동 넥센전에서 5타수 3안타 2타점으로 활약했다.

9월 22일 대구 NC전에서는 팀의 4번 타자로 선발출장하여 4타수 4삼진이라는 충격의 스탯을 기록하였다.[3] 이날 경기는 선두 삼성과 2위 NC가 2.5경기의 살얼음판 같은 격차로 순위를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중요성이 매우 컸다. 이날은 2회 말에 홈런을 기록한 요즘 홈런에 맛들린박석민의 활약과 오랜만에 차르봄바에서 차쇼모드로 돌아온 차우찬14K를 기록하면서 2:0 승리를 거뒀기에 망정이지 선두 자리를 위협받을 수도 있는 경기였다. 점점 깊어지는 부진에 삼성 라이온즈 갤러리 등에서 까이는 강도가 강해지고 있다.

9월 29일 대전 한화전에서 4번 지명타자로 출전하여, 1회부터 흔들리는 상대 투수 김용주를 상대로 1사 1,2루 찬스에서 찬물을 끼얹는 병살타를 기록했고, 그 이후에도 7회 1사 만루 상황 송은범을 상대로 유격수 팝플라이를 치는등 찬스는 찬스대로 날리며 찬물을 끼얹었다. 차우찬과 함께 7:6 패배의 일등공신. 삼성 라이온즈 갤러리에서는 최혐오, 최국밥, 극혐우 등으로 부르며 차우찬과 함께 어마어마한 까임을 받는 중. 그도 그럴 것이 한화의 선발투수는 군대에서 갓 전역한 신인급 좌완투수 김용주였으며, 1회초 흔들리는 가운데서 득점을 만들어줬다면 삼성의 분위기로 게임을 끌어갈 수 있었다. 정인욱이 차우찬이 2이닝 6실점 최악투를 한 가운데 내려간 상황에서 4이닝 무실점으로 추격조로써의 면모를 100% 보여주었는데, 7회말 6:4로 따라간 상황 1사 만루에서 송은범의 몸쪽 공을 받아쳐 유격수 팝플라이를 기록하면서 결국 무득점. 9회에도 야마이코 나바로의 7:6 턱밑까지 따라붙이는 솔로홈런에 송은범과 맞섰는데, 초구를 때리며 힘없는 1루 땅볼로 물러났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선수 탓을 거의 하지 않는 류중일 감독도 이날 패배 후 1회초 최형우의 병살타로 분위기가 완전히 넘어갔다고 말했다.

9월 30일 대전 한화전에서도 4번 지명타자로 출전하여 3타수 무안타 1볼넷을 기록하였다.

성적 자체는 또 욕을 거하게 먹어야 할 상황이지만 이번 경기는 최형우 혼자서만 욕을 먹어야 할 경기가 절대 아니었다. 타선은 전체적으로 무력했고[4] 여기에 2.2이닝 9실점 7자책점이라는 절망적인 투구를 보여준 뉴클로이드의 핵실험이 일차적인 패인이었기 때문이다.

10월 2일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 치르는 마지막 경기에서 4회 두 번째 타석에서 3루타를 치고 채태인의 안타로 선취 득점을 기록했다. 그러나 7회 1사 만루에서 여지없는 삼진으로 단 한 경기만에 까방권 소멸..... 10월 3일 경기에서도 이상하게 주자가 없을때만 안타를 쳐댔지만 후속 타자들이 불러들이지 못하며 경기가 끝날때까지 피말리는 투수전을 유지했다.

3. 2015년 한국시리즈

그러나 한국시리즈에서는 극도의 부진을 보이며 5년 연속 우승 실패의 주범 중 하나가 되었다.

1차전 5타수 무안타.

2차전에는 4타수 1안타 그나마 체면은 지켰다.

3차전에서도 4타수 1안타, 장타 하나를 쳤지만 득점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이날은 팀 전체 타선이 잔잔했던 날이라.

4차전에서 4타수 무안타로 시원하게 경기를 말아먹었다.

5차전도 감독 믿음으로 출전했으나, 그에 대한 보답으로 4타수 무안타로 부진하며 패배의 원흉이 되며 결국 삼성의 한국시리즈 패배의 역적 중 한 명이 된다.

최형우의 성적은 다음과 같다.

21타수 2안타(2루타1) 0타점, 0볼넷, 7삼진 타율 .095 / 출루율 .095 / 장타율 .143 / OPS 0.238 득점권타율 .000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한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겠다는 일념의 국밥집 영업에 감탄한 두산팬들은 아예 최형우 타석이 오기만을 기다렸고 나오면 박수치고 환호했다.[5][6]

그리고 3년 뒤 최형우를 능가하는 새로운 국밥 또 2년 뒤 박건우급의 새로운 국밥이 또 등장하는데...

4. 시즌 후

결국 후반기 부진으로 외야수 골든글러브 수상에도 실패했다. 골글 수상자인 유한준, 김현수, 나성범 중에서 최형우보다 홈런이 많은 타자는 단 한명도 없었으며, 타점 역시도 나성범을 제외하면 모두 최형우보다 낮았다는 걸 생각할때 후반기에 얼마나 이미지가 심각하게 추락했는지 알 수 있는 부분. 게다가 저 성적으로 골글에서 떨어졌는데도 삼성팬들의 동정표조차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이승엽 김재호의 골글 수상 논란에 묻혀서 이슈조차 되지 않았다. 사실 김현수, 나성범, 유한준 모두 20홈런 이상 쳤고 타율은 최형우보다 더 좋았던 데에다 한국시리즈 말아먹은 게 너무 커서 그럴 만하다는 의견이 많다.[7]

시즌 후 7억원에 연봉계약을 맺었다. 삼성 팬들은 협상을 길게 끌었다는 점과 고액의 연봉[8] 때문에 냉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으며, 타팀 팬들은 5년전의 이대호 연봉조정 사건을 예로 들며 거품 연봉이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5. 시즌 총평

현재까지 총평을 하자면 전반기에는 팀 승리의 절반 이상을 본인 방망이에서 거둔 리그 최강의 4번 타자였지만 후반기, 특히 9월에는 정말 스탯 관리라고밖에 할 말이 없는 성적을 거두었다. 나바로가 1년 내내 지독하게 운 없는 시즌을 보내고 박석민이 전반기에 제 역할을 못 하는 상황에서 분투하며 타선을 이끌었는데[9][10] 후반기엔 득점권에만 가면 침묵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많은 팬들의 속을 끓게 만들었다. 하필 NC가 거세게 1위 자리를 노리고 있을 때 부진하는 바람에 팬들의 집중포화를 맞은 것도 있다. 부진한 기간은 박석민이 더 길었지만 후반기 대폭발하는 바람에 최형우가 욕을 더 먹었다. 최형우가 마침 부진하게 된 시점도 일본 진출 관련 기사가 나올 때인지라 가만히있어도 욕먹는 처지가 된건 당연했다.

최형우가 날아다니던 전반기에는 삼성도 같이 날아다녔고, 죽을 쓰던 후반기에는 NC의 거센 추격을 허용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삼성이라는 팀에서 최형우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득점권 1할대를 기록하던 후반기에도 그 반대급부로 주자가 없을 때 테임즈급 성적을 기록했지만, 나가봐야 뒤에서 불러들이지를 못하니 의미가 없는 안타가 될 수밖에. 때문에 본인이 먹을 욕에 남이 먹어야 할 욕까지 더해져서 혼자 다 먹은 경향이 있다. 한 마디로 테이블 세터가 그만큼 제 역할을 해주지 못하는 상태에서 최형우가 사실상의 테이블 세터 역할을 했다는 이야기다. 이는 제 역할을 못하는 테이블 세터를 비난할 문제지 최형우가 스탯 관리하는 거라고 까기는 뭐하다는 것.

어쨌든 시즌 성적 3-30-100을 다시금 기록했고, 개인 최다 홈런과 타점 기록을 갱신하며 나름 괜찮은 시즌을 보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많은 팬들은 그 아름다운 전반기를 보고 40홈런이나 OPS 10할도 가능할 것이라고 봤지만 그 기세를 시즌 끝까지 유지하지 못한 게 아쉬운 점. 이거 때문에 두산 김현수와 NC 나성범과의 외야 골든글러브 경쟁 향방을 알 수 없게 되었다. 김현수와는 홈런과 타점에선 근소하게 앞서지만 타율과 OPS같은 비율스탯에선 근소하게 뒤지고 WAR에서도 0.85 차이로 뒤졌기 때문. 그래도 기자들 좋아하는 홈런-타점에서 앞서고 1위팀 소속이라 더 유리한 입장이긴 하다. 그러나 두산의 우승이 확정될 경우 한국시리즈보다는 못하지만 준플레이오프, 플레이오프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김현수가 생각보다 상당히 유리해질 수 있다. 무엇보다 서울팀 두산 담당 기자들의 저력은 무시 못한다.

참고로 최형우의 정규시즌, 포스트시즌 성적은 당시 평균 시즌 기록과 비교해서 2003년의 마해영과 상당히 유사한데, 2003년 시즌 초반 무서운 기세로 4월과 5월을 초토화했던 두 선수였다. 그러나... 2003년의 마해영은 6월 초순부터 홈런은 커녕 안타도 치지 못하는 등 성적이 크게 떨어지더니 급기야 선발 엔트리에 제외되는 상황도 간간히 나오기 시작했고, 그리고 최형우는 그나마 마해영보다는 낫지만 6월 중순부터 올스타브레이크까지 타율, 장타율이 크게 떨어져 똑딱이 취급을 받기도 하였다. 이후 7월 중순부터 두 선수가 조금 살아났지만 9월 들어서 두 선수 모두 처참한 수준이었다. 특히 당해 4번을 치던 마해영은 8~9월 들어서 타순이 8번까지 내려가는 등 엄청난 부진을 보였고, 이때 2003년 삼성은 최악의 투수난으로[11] 투수들의 연쇄 보직파괴가 일어난 시점이었는데다가 이승엽, 마해영이 슬슬 망테크를 타기 시작하자 1~2위를 다투었던 팀이 급기야 3위까지 떨어졌다. 그리고 2015년 삼성 역시 사실상 우승 확정이라는 소리가 무색하게 8월에 NC에게 1위를 한때 허용하기까지 할 정도로 최악의 타격, 투수 컨디션을 보였다. 그리고 마지막 똥줄타는 정규시즌 5연패 달성 기간에는 극도로 불안했다. 그리고 그때도 어김없이 최형우는 성적을 국밥에 말아 드셨다.
물론 두 선수 모두 시즌 끝나고 최종 성적은 상당히 좋은 편이었다.
마해영(03) : .291 .371 .568 146안타 38홈런 123타점
최형우(15) : .318 .402 .563 174안타 33홈런 123타점

다만 달별로 기복이 심했고, 시즌 후반 찬스를 말아먹는 모습이 여러번 보여 삼성 팬들에게 찍혔고, 포스트시즌에서 그것이 거하게 터지는 바람에 엄청난 까임을 받았다.[12] 결국 2015 시즌 삼성의 조롱거리로 전락한 상황. 두산에게 1승 4패로 삼성이 패배하며 5연패에 실패했고, 덩달아 역적급 활약을 펼친 최형우는 포스트시즌 한정 금지어가 되었다. 2015년 삼성의 금지어 3순위급이 되었다.(1순위 도박 3인방 / 2순위 김상수) 한국시리즈에서도 결국 제대로 역적짓을 하면서 120억 타령은 그만하라고 까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실한 것은, 삼성 타선에서 최형우라는 타자의 존재가 매우 크다는 것이다. 시즌 후 여러 선수들이 이탈해버린 지금 최형우는 사실상 왕조를 일구었던 삼성 클린업 중에서 최소한의 활약이 보장되는 유일한 타자가 되었다. 박석민은 FA로 NC 다이노스로 떠나버렸고, 야마이코 나바로 치바 롯데 마린스로 떠났다. 이승엽은 한국 복귀 후 꾸준히 좋은 모습을 보여주긴 했지만 나이 문제가 가장 많이 걸리는 선수다. 박해민은 타격에 있어서는 다소 아쉬운 모습을 보이고 있고, 무엇보다도 얼마 뒤에 군대 가야 한다. 그나마 클린업에 배치될 수 있는 타자로 채태인이 있는데, 타선의 중심으로는 뭔가 아쉬운 감이 있다. 그리고 그 채태인도 트래이드를 통해 넥센으로 이동했다. 막강한 위력을 자랑했던 삼성 타선이 주축 선수들의 이탈 이후 물타선으로 변할지는 최형우의 활약에 따라 판가름난다.

시즌 후에는 2016년 시즌 후 FA 자격을 얻어 일본 진출을 다시 도모하겠다고 선언한다. 팬들은 2년 후 일본도 국밥을 맛보냐는 반응과 저거 진짜로 120억 달라고 할 놈이라고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그 다음해엔 지금껏 모든 삽질은 덮어버리고도 남게 되는데...

6. 관련 문서



[1] 임지섭이 7이닝, 이동현이 1이닝을 이어 던지고 봉중근이 등판했다. [2] 스탯 관리라고 득타율도 낮냐고 물을 수도 있는데, 득타율도 3할대로 절대 낮은 편이 아니다. 리그 수위권인 건 당연하나 부진했을때 지는 게임을 세세히 보면 클린업의 부진으로 말아먹은 경기가 한두 게임이 아닌지라... [3] 심지어 이날 경기에서 지명타자로 출전했다. 그럼에도 땅볼 하나를 치지 못했다. [4] 전역 후 첫 선발출장한 배영섭이 2안타 1타점 포수 이흥련이 1안타 2타점을 기록하며 가장 좋은 활약을 보여준 선수들이다. [5] 승부가 일찌감치 기운 5차전에서는 2년 전 손시헌이 그랬던 것처럼 최형우가 솔로 홈런 하나 쳐서 삼성팬들 더 빡치는 거 보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을 정도 [6] 최형우의 대삽질 덕분에 타자들 중 만만치 않게 말아먹은 김상수 박석민은 그냥 묻혔다. [7] 다만 이용규보다 득표수가 낮은 건 논란이 있었다. [8] 진짜로 최형우를 보내고 보상금을 받기 위해 7억원이나 준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 많다. 그 이하는 적고 그 이상은 보상금 문제로 노리는 팀이 적어질 수 있기 때문. [9] 부진했을 시점에서도 득점권 타율이 3할대 리그 5위였다. 결국 2할대로 추락했다가 본능적으로 득타율을 3할 2리로 마감하였다. [10] 나바로는 낮은 BABIP로 타율이 지속적으로 낮았을 뿐이다. 부진했다는 전반기에도 출루율은 타율보다 1할 가량 높았고 OPS는 9할 밑으로 안 내려왔다. [11] 당시 삼성의 승리 방식은 10점 내주고 공포의 핵타선으로 11점을 따서 이기는 등 타선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반면 투수진은 배영수 임창용이 선발로 나서서 두 자릿수 승수를 거두기는 했으나 평균자책점(배영수 4.51 임창용 3.55)이 높은 편이었고, 마무리 투수였던 노장진은 전년도에 중무리로 굴려진 결과 구원투수 10패와 평균자책점 4.12를 찍는 등 투수진이 부실하였다. [12] 최형우야 뭐 말할 거 없고, 마해영은 당시 신생팀이나 다름없던 SK 와이번스와의 준플레이오프에서 삼중살을 치는 등 찬스를 제대로 말아먹으며 삼성의 플레이오프 탈락에 한 몫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