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장문 배경
대부분 사람은 징크스를 위험천만한 무기를 다루는 미치광이로 보았으나 몇몇 이들의 기억 속에는 현실에 비해 지나치게 큰 포부를 품은 '비교적' 순진했던
자운 출신 소녀로 남아 있었다. 귀엽고 사랑스러웠던 아이가 무분별한 테러를 일삼는 악동으로 변하게 된
계기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혼돈을 초래하는 데 천부적인 재능을 보인 징크스는
필트오버에 등장한 후 순식간에 전설의 반열에 올랐다. 징크스가 처음 악명을 떨치기 시작한 건 필트오버 시민들을 상대로 몰래 벌인 '장난' 때문이었다. 주로 부유한 상인 연합과 연줄이 있는 자들을 대상으로 한 징크스의 장난은 적당히 짜증 나는 정도부터 범죄 수준의 위험한 장난까지 종류도 다양했다. 메이 백작 동물쇼에서 풀어준 이국적인 동물들로 진보의 날 거리를 가득 메우기도 했고, 필트오버를 대표하는 다리에 와작와작 지뢰를 깔아 몇 주간 교역을 마비시키기도 했다. 심지어 모든 도로 표지판의 위치를 엉뚱한 곳으로 옮겨 놓은 적도 있었다. 오직 혼란을 일으킬 목적으로 마구잡이로 표적을 정했지만, 이 수수께끼의 악동이 벌인 장난은 분주한 도시를 마비시키기에 충분했다. 자연스레 보안관들은 이를 지하도시의 화공 펑크족 소행으로 여기게 되었고 자신의 광기 어린 장난이 다른 사람의 작품으로 둔갑되는 걸 견딜 수 없었던 징크스는 이후 범죄 현장에 빠지지 않고 모습을 드러냈다. 덕분에 곧 화학공학 폭발물과 상어 대가리 모양의 로켓 런처, 연발총을 든 파란 머리의 자운 출신 소녀에 관한 소문이 떠돌기 시작했지만, 당국은 터무니없는 이야기라며 묵살했다. 자운 출신의 불량배 따위가 그런 치명적인 무기를 손에 넣는다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징크스의 요란스러운 장난은 계속됐고 범인을 잡으려는 보안관들의 노력은 계속 실패로 돌아갔다. 징크스는 파괴의 현장에 화려한 그라피티를 남기기 시작했다. 그 안에는 범죄와의 전쟁에 새롭게 참전한 집행자, 바이를 향한 도발의 메시지도 있었다. 징크스는 더욱 명성을 떨쳤고, 그 정체에 대한 자운 사람들의 의견은 둘로 갈리기 시작했다. 어떤 이들에게는 오만한 필트오버 놈들에게 저항하는 영웅이었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두 도시 간의 갈등을 악화시키는 위험천만한 미치광이에 불과했다. 이후 몇 달간 범죄의 강도는 점점 심해져 갔다. 그리고 징크스는 최고의 한탕을 예고했다. 필트오버 최고의 보안을 자랑하는 천공의 금고 벽에 자신을 상징하는 화려한 핑크색으로 그림을 그렸던 것이다. 그림에는 집행자 바이의 '아주' 우스꽝스러운 캐리커처와 금고털이 계획이 상세하게 나와 있었다. 범행 예고일이 다가오자 필트오버와 자운에서는 묘한 기대감이 흘렀다. 하지만 체포당할 것이 뻔한 상황에서 징크스가 정말 나타나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예고한 범행 당일, 바이와 케이틀린을 비롯한 보안관들은 금고 바깥에 함정을 준비해 두었다. 그러나 징크스는 이미 며칠 전 배달된 거대한 동전 상자에 몸을 숨겨 금고에 침입한 뒤였다. 내부에서 소란이 일자 바이는 또다시 징크스에게 당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득달같이 달려갔다. 곧 천공의 금고 내부는 잿더미가 되었지만, 말괄량이 징크스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징크스는 오늘날까지 필트오버의 눈엣가시 같은 존재로 활개 치고 있다. 그로 인해 화공 펑크족들에 의한 모방 범죄가 늘었고, 보안관들의 무능함을 꼬집는 풍자극도 수없이 만들어졌다. 심지어 필트오버와 자운 시민들 사이에서 새로운 표현까지 생겨났지만, 아직 본인 앞에서 대놓고 '핑크색이 잘 어울리는 바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다. 징크스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인지, 바이에게 집착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는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하지만 징크스의 범죄가 현재 진행형이며 날이 갈수록 대담해진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
2. 결혼식의 불청객
징크스는 속치마를 싫어했다. 물론 코르셋도 싫어했다. 그러나 훔친 드레스 속 빈 곳을 어떻게 이용했는지를 생각하며 씩 웃었다. 길게 땋은 파랑 머리는 필트오버의 최신 유행인 우스꽝스러운 깃털 모자로 가렸다. 미소를 유지한 채 주변의 공허한 눈을 한 이들에게 소리치지 않으려고 애쓰며 결혼식 하객들 사이를 으스대며 걸었다. 한 명씩 어깨를 잡아 흔들며 정신 차리라고 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마어마한 노력이 필요했다. 징크스는 샌드빅 백작 저택 꼭대기의 천문대를 마구 폭발할 생각으로 이곳에 왔다. 그러나 결혼식이라는 난장판을 벌일 천혜의 기회를 놓칠 수는 없지 않은가. 백작은 딸의 결혼 잔치를 호화롭게 만드는 데 돈을 아끼지 않았다. 주요 가문의 우두머리들, 칭송받는 마법공학 기능장 등 필트오버 최고 명사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뚱뚱한 니코데무스마저도 속임수를 써서 초대장을 얻어냈다. 정장을 입고 한껏 부풀린 가슴과 말똥말똥 빛나는 눈으로 뷔페 테이블을 탐욕스럽게 바라보는 최고 보안관의 모습은 속을 두툼하게 채운 거대한 포로 인형 같아 보였다. 작은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흘러나왔는데, 워낙 느리고 무거운 멜로디라 하품이 나올 것만 같았다. 징크스는 발을 구르고 멀미가 날 정도로 빙빙 도는 자운의 음악이 훨씬 좋았다. 회전하는 활동요지경과 기묘한 각도의 렌즈가 설치된 마법공학 조명들이 빙글빙글 도는 댄서들의 영상을 바닥에 투영했다. 한 번도 굶주림이나 고통, 상실을 겪은 적 없는 아이들이 이를 보고 웃으며 기뻐했다. 마임과 손재주 기술사들이 군중 사이를 돌아다니며 카드 속임수로 하객의 유흥을 돋았다. 징크스가 보기에는 형편없었다. 경계 구역 시장의 지하동굴 고아들이 말 그대로 등쳐먹고도 남을 수준이었다. 벽에는 필트오버 유명인사들의 초상화가 구리로 된 기하학적 번개무늬 세공 장식이 돋보이는 떡갈나무 액자에 끼워져 걸려 있었다. 초상화 속 남녀는 아래 있는 사람들을 거만한 눈빛으로 깔보듯 내려다보고 있었다. 혀를 쑥 내밀고 지나가는 징크스를 보고 모든 이들이 쯧쯧대며 돌아섰으나 징크스는 씩 웃고 말았다. 형형색색의 유리창 덕에 모자이크 바닥은 무지개 무늬로 아롱졌고, 징크스는 밝은 정사각형 모양만을 따라 팔딱팔딱 한 발로 테이블을 향해 뛰어갔다. 테이블에는 자운 사람들 백 가구는 너끈히 먹일 양의 음식이 한가득 차려져 있었다. 제복을 입은 웨이터가 세로로 홈이 새겨진 유리잔들이 놓인 은쟁반을 들고 지나갔다. 유리잔들은 금빛 탄산음료로 가득했다. 징크스는 양손에 하나씩 잔을 들고 씩 웃으며 빙글빙글 돌았다. 거품이 휙 날아가 가까이 있던 손님들의 드레스와 프록코트를 더럽혔고, 징크스는 킬킬댔다. “원샷!” 징크스가 잔에 남아있는 것을 다 마셔버렸다. 징크스가 어색하게 몸을 구부려 잔들을 모자이크 바닥 위, 다가오는 댄서들의 길목 한가운데에 올려놓았다. 그러고는 즉석에서 만든 ‘바이는 똥 멍청이’ 노래를 흥얼거리며 트림을 해댔다. 사교계 여인들이 그녀의 교양 없는 태도를 비웃기 위해 돌아보자 징크스는 짐짓 창피한 척, 놀란 눈으로 입을 가렸다. “미안, 모르고 일부러 그랬는걸.” 징크스가 다시 깡충깡충 뛰다가 다른 웨이터의 쟁반에서 생선 같아 보이는 이상한 것을 집어 위로 휙 던졌다. 적어도 하나는 입에 넣는 데 성공했고, 깊게 강조된 가슴골 안으로 들어간 몇 개는 진흙에서 뭔가 반짝거리는 것을 찾아낸 지하동굴 채집꾼처럼 기뻐하며 빼냈다. 부스러기 하나하나에 손가락을 흔들어 대며 징크스가 말했다. “생선 선생들아, 도망칠 수 있을 줄 알았지? 틀렸어!” 징크스는 음식을 입에 쑤셔 넣고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이렇게까지 위에 뭐가 많은 것에 익숙하지 않았고, 아래쪽에 뭘 넣었는지를 생각하면서 키득거렸다. 목 뒤쪽 털이 곤두섰다. 시선을 위로 옮기다 방 한쪽 구석에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한 남자를 보았다. 약간 뻣뻣해 보였으나 잘 생겼고, 멋있는 정장을 입고 있는 남자였는데, 보안관인 게 너무 빤해서 목에 팻말을 두른 거나 마찬가지일 정도였다. 징크스는 몸을 돌려 방을 채운 손님들 무리 쪽으로 향했다. 뷔페 테이블에 도달한 징크스는 거대한 웨딩케이크를 보며 감탄의 숨을 내쉬었다. 마법기계공학 탑을 본떠 잼과 페이스트리를 곁들여 만든 스펀지케이크에 분홍 퐁당과 생크림, 캐러멜로 장식한 걸작이었다. 징크스가 손을 내밀어 펀치 그릇에서 국자를 하나 꺼내 스펀지케이크에 구멍을 파냈다. 떼어낸 조각은 바닥에 버리고 국자는 깨끗이 핥은 후 테이블 위에 다시 던져 놓았다. 자신을 이상하게 쳐다보는 손님들을 보고 이를 씩 드러내며 가장 광기 가득한 미소를 보냈다. 날 미쳤다고 생각할까? 뭐, 맞는 말인지도 모르지. 징크스가 어깨를 으쓱했다. “상관없어!” 가슴팍에 손을 넣어 와작와작 지뢰 네 개를 꺼냈다. 세 개는 케이크에 낸 구멍 속에, 하나는 펀치 그릇에 넣었다. 테이블을 따라 걷다 지뢰 두 개를 더 꺼내 다양한 요리 위에 놓았다. 하나는 구리 수프 그릇 안에 들어갔고, 다른 하나는 사과를 빨고 있는 돼지의 사과를 대체했다. 가슴에 숨겨두었던 무기가 빠져 훨씬 헐렁헐렁해진 드레스의 지퍼를 내리는 순간, 징크스가 보안관으로 찍어두었던 잘생긴 남자가 손님을 헤치며 그녀에게 즉시 달려오는 것을 보았다. “올 때도 됐지!” 역시 자기 쪽으로 달려오는 잘 차려입은 보안관 여자 셋 남자 하나를 보며 징크스가 덧붙였다. “와! 친구들도 데려왔네!” 등허리의 오목하게 들어간 부분에 손을 뻗어 가는 허리에 둘렀던 페티코트를 묶은 끈을 당겼다. 코르셋이 풀리면서 드레스 아래쪽 반이 바닥에 떨어졌고, 주변의 모든 사람은 놀라움으로 숨이 턱 막혔다. 분홍 레깅스에 탄띠를 두른 바지, 조끼 상의를 드러낸 채, 징크스가 모자를 벗어 던지며 머리를 풀러 헤쳤다. 그러고는 아래로 손을 뻗어 드레스 아래 숨겨져 있던 생선대가리 로켓 런처를 들어 어깨에 올렸다. “여러분 안녕!” 징크스가 뷔페 테이블로 올라와서 허벅지의 권총집에서 전기충격기를 꺼내며 소리쳤다. “모두 배가 고파야 할 텐데…” 징크스가 빙그르르 돌더니 돼지 입에 물린 지뢰에 치직치직 화염을 쐈다. “이 뷔페 정말 죽을 만큼 맛있으니까!” 와작와작 지뢰가 폭발하면서 가까운 손님들이 불에 그을린 고기와 지방을 뒤집어썼다. 연쇄 폭발이 잇달았다. 수프 그릇이 공중으로 날아가 뜨거운 소고기 수프가 하객 수십 명 위에 쏟아졌다. 다음은 펀치 그릇이었고, 웨딩케이크가 폭발의 대미를 장식했다. 케이크 속 지뢰 세 개가 동시에 폭발하면서 탑처럼 쌓인 과자가 로켓처럼 공중으로 발사했다. 과자는 스테인드글라스 천장에 닿을락 말락 하다 호를 그리며 바닥으로 다시 떨어졌다. 하객들이 흩어지는 가운데 거대한 케이크가 폭발하고 설탕 과자 조각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끈적끈적한 크림과 지글거리는 펀치가 흘러내린 난장판 속에서 하객들은 소리를 지르며 폭발을 피해 비틀비틀 흐느적흐느적 도망쳤다. “이봐요, 진짜로,” 징크스가 얼굴에 흘러내린 파란 머리칼을 후 불며 말했다. “소리치는 거 도움이 될까? 전혀 안 될 텐데.” 징크스가 엉망이 된 뷔페 테이블로 깡충깡충 뛰어가 생선대가리 런처로 로켓을 발사해 가장 가까운 창문을 폭파해버렸다. 석궁 쇠 화살들이 날아와 벽에 박혔지만 징크스는 웃어넘기고 부서진 창틀을 넘어 아래 정원으로 뛰어내렸다. 그러다 황급히 멈춰 섰다. 미리 탈출 경로를 대강 계획해 놓았지만, 샌드빅 저택 입구에 반짝반짝 빛나는 거대한 원반 바이크가 눈에 띄었지 뭔가. 저걸 훔치면 엄청 재밌겠는데? “어머, 이건 해봐야 해…” 생선대가리 로켓 런처를 어깨에 올리고 넋이 나가 있던 샌드빅의 하인들을 팔꿈치로 밀어내고는 원반 바이크의 수공예 가죽 안장에 안착했다. “그래서, 이거 어떻게 시동을 거는 거야?” 앞에 놓인 계기판을 어지럽게 수놓은 상아 손잡이, 가장자리가 놋쇠로 된 다이얼, 보석 같아 보이는 버튼들을 보며 징크스가 말했다. “이것저것 좀 해보지 뭐!” 가장 가까운 곳의 레버를 잡아당기고 앞에 보이는 가장 크고 빨간 버튼을 눌렀다. 시동이 걸리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기계가 요동치며 회전하기 시작했다. 넓은 원반의 가장자리에서 파란색 빛이 빙빙 도는 사이에 저택의 정문이 휙 열렸다. 근엄한 목소리들이 멈추라고 소리쳤다. 흥, 퍽이나! 안전장치 받침대가 번쩍이는 프레임으로 쑥 들어가고 흥분에 들뜬 함성을 지르는 징크스와 함께 원반 바이크가 메가 슈퍼 자살특공대 로켓처럼 저택에서 멀어졌다. “또 봐!” 어깨너머로 징크스가 소리쳤다. “파티 잘해!” |
3. 구 배경
3.1. 유니버스 이전
아무도 징크스를 체포할 수 없다. 이해도 공감도 얻을 수 없는 그녀의 장난질은 이미 심각한 범죄이며, 그녀가 난장판을 벌이고 떠난 자리는 지저분하다 못해 흉물스러운 지경이다. 이 범죄자는 앞일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한순간도 자신의 광기와 충동을 제어하지 못한다. 따분함을 가장 경멸하며 세상에서 제일 따분한 도시인 필트오버를 능욕할 때 가장 행복하다. 아무도 흉내 내지 못하도록 매번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범죄를 저질러야 한다는 것이 그녀가 가진 단 하나의 철칙. 몇 가지 독특한 살상 무기가 징크스의 장난감. 폭발이 화끈하면 화끈할수록, 폭음이 시끄러우면 시끄러울수록 금상첨화다. 재수 없는 필트오버의 공무원들을 더 많이 능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징크스는 일부러 체포망에 가까이 갔다가 아슬아슬하게 벗어나는 것을 즐긴다. 필트오버 최고의 법집행관들, 특히 바이에게 쫓기는 일도 징크스에겐 그저 또 하나의 놀이일 뿐이다. 필트오버는 예로부터 평화, 질서, 진보를 상징하는 도시였다. 하지만 누구도 본 적 없는 새로운 악당이 나타나 해괴망측한 불법행위를 저지르며 그 고요함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이 얼굴 없는 범죄자는 끊임없이 소동을 벌여 시민들을 두려움에 떨게 하고, 도시 전체를 위기에 빠뜨렸다. 이유도 영문도 알 수 없는 사건들이 꼬리를 이었다. 서커스 분장을 한 동물들이 시립 동물원에서 풀려나 거리를 휘저었다. 비행선이 불에 타 추락하고, 하늘엔 미친 고양이와 하트 모양의 연기 자국이 남았다. 그리고 필트오버에서 가장 큰 페인트 공장이 폭발했을 때는, 주위의 건물들이 모두 핑크색으로 물들었다. 범행이 되풀이됨에 따라, 수수께끼의 범인에 대한 목격담이 하나 둘씩 들려왔다. 출신을 종잡을 수 없는 젊은 여성. 사용하는 무기가 필트오버 마법공학을 이용한 것 같다는 진술도 있었고, 옷차림이 자운의 길거리 패션과 비슷하다는 소문도 있었다. 나타나는 곳마다 소란을 일으키는 그녀를 사람들은 곧 징크스라고 부르게 되었다. 징크스의 범행은 날이 갈수록 정도가 심해졌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필트오버 보안관 케이틀린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그녀를 쫓아 도시 전체를 이 잡듯 뒤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징크스는 대담하게도 필트오버에서 가장 경비가 삼엄한 장소인 시 재무국을 털겠다고 예고했다. 바이의 얼굴을 우스꽝스럽게 묘사한 낙서가 재무국 건물 앞면을 완전히 뒤덮었고, 범행 날짜와 시간이 예고되어 있었다. 누가 봐도 징크스다운 방식으로 필트오버에서 가장 끈질긴 집행자에게 도전장을 내민 셈이었다. 막을 수 있으면 막아보라는 공개 도발이었다. 바이는 골칫덩이 징크스를 반드시 잡아넣겠다고 다짐하고, 재무국 바깥에 숨어 징크스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약속대로 만면에 기분 나쁜 미소를 띤 징크스가 나타나 건물로 들어갔다.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바이가 필사적으로 그 뒤를 따랐다. 직원들이 모두 대피한 재무국 건물 안에서 징크스는 사방에 폭발을 일으키며 끝없이 낄낄거렸고, 바이는 벽을 부수고 또 부수며 그녀를 추격했다. 지하 금고 안에서 바이는 마침내 징크스를 몰아세웠지만,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징크스가 미치광이처럼 웃으며 로켓을 수없이 쏘아댔고 건물이 통째로 무너져 둘을 덮쳤다. 상처투성이 바이가 무너진 건물에서 겨우 기어 나왔을 땐 징크스는 이미 흔적도 없었다. 바이에게 정말 굴욕적이었던 건 징크스가 동전 한 닢도 훔쳐가지 않았다는 사실. 징크스는 대신 ‘가장 사랑하는’ 집행자에게 작별인사를 남겨두었다. 부서진 건물에서 올려다본 필트오버의 지평선 위로 짧은 도발의 메시지가 펼쳐져 있었다. ‘넌 날 절대로 못 잡을 걸?’ 바이가 도발의 메세지를 읽는 동안 저 멀리서 징크스의 깔깔대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바이에겐 숙적이 등장하고, 필트오버의 시민들에겐 끔찍한 악몽이 시작된 날이었다. "자아, 내가 마음 쓰는 게 뭔지 말해줄까? 헤헤, 그런 것 따위 없어!" ~ 징크스 |
3.2. 유니버스 이후
자운 출신의 충동적이고 격정적인 범죄자 징크스. 난장판을 벌이는 재미로 살며, 결과 따위는 안중에 없다. 살상 무기를 다수 보유한 그녀가 떠난 자리는 화려하고 요란한 폭발로 공포의 아수라장이 된다. 징크스는 지루함을 끔찍이 싫어하고 가는 곳 어디에나 특유의 대혼란을 화끈하게 일으킨다. 징크스가 어디 출신인지 정확히 아는 이는 아무도 없으나 그녀를 둘러싼 전설적인 이야기는 수없이 많다. 징크스가 나쁜 무리와 어울렸던 어린 갱 멤버였는데 죽음을 너무 많이 겪은 나머지 트라우마가 생겼다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적의 손에 고통을 너무 많이 받았다는 이들, 단순히 지하 동굴의 연기로 미쳤다고 하는 이들도 있다. 징크스의 인상서와 비슷한 소녀를 기억하는 자운의 노인도 몇 있으나, 그들이 얘기하는 소녀는 필트오버의 파괴왕이 된 징크스와는 사뭇 다르다. 착하고 순수했던 그 소녀는 뛰어난 아이디어를 지닌 수선공이었는데 다른 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다 끝이 별로 안 좋았다고 한다. 심지어 징크스는 인간이 아니라 자운이 지하로 파묻혔을 때 죽은 수천의 복수를 위해 필트오버에 재앙을 낳으러 온 파멸과 복수의 화신이라고 수군대는 이들마저 있다. 그녀가 처음 등장한 것은 ‘악동들의 밤’으로, 매해 필트오버의 팔팔한 소년 소녀들이 가족과 이웃에게 치는 짓궂은 장난이 허용되는 전통이 있는 날이다. 징크스는 이날을 빌미 삼아 수많은 범죄 중 첫 신호탄을 터뜨렸다. 메이 백작 동물쇼에서 풀어준 가축들이 우르르 도망쳐 나오는 통에 많은 다리가 막혔고, 수많은 도로가 폭발물에 막혀 폐쇄되었고, 도시의 모든 신호등이 새로운 곳에 옮겨졌다. 징크스는 거리마다 혼돈을 퍼뜨리고 도시를 마비시키는 데 성공했다. 좋은 날이었다.보안관들은 이 범행들을 화공 펑크족의 소행으로 단정 짓고 익히 알려진 말썽꾼 수십을 모아 자운으로 돌려보냈다. 자신의 광기 어린 범죄가 남의 공이 돼 버렸다는 사실이 불쾌했던 징크스는 이후 모든 범죄 현장에 반드시 모습을 드러냈다. 파란 머리의 신비스러운 자운 소녀에 대한 목격담들이 돌았으나, 화학공학 폭발물과 상어 이빨 모양의 로켓 런처, 연발총을 들고 다닌다는 얘기들은 터무니없다고 일축됐다. 그도 그럴 것이, 자운의 펑크족 따위가 어찌 그리 치명적인 총기를 소지할 수 있겠는가. 날로 심해지던 범행은 징크스가 도시 곳곳에 놓았던 폭발물을 동시에 터뜨리면서 광란의 절정을 찍었다. 필트오버의 가문들이 세운 시의 예술 구조물들이 다수 파괴됐고 그 잔해가 새벽까지 하늘을 불타는 불꽃으로 물들였다. 늦은 시간 탓에 다친 이는 아무도 없었으나 많은 가문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위대한 업적이 무너진 것을 보고 분노했다. 징크스의 연쇄 범죄는 몇 주나 계속됐고, 보안관들의 체포 시도는 매번 허사로 돌아갔다. 징크스는 범행 현장에 욕설과 조롱의 낙서들을 남겼다. 범죄와의 전쟁에 새롭게 힘을 보탠 필트오버의 법집행관 바이에게 보내는 메시지였다. 이 분홍색 낙서들로 마침내 필트오버에 새롭게 등장한 말썽꾸러기 징크스의 이름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범죄가 대담해질수록 징크스는 더욱 전설이 되어갔고, 자운 사람들의 징크스에 대한 의견은 둘로 갈렸다. 필트오버 사람들에게 복수하는 영웅 또는 위험한 미치광이로 보안관들이 지하 도시 자운에 총력을 기울이게 할 위험한 미치광이. 그 순간은 생각보다 빨리 왔다. 징크스가 태양 관문을 파괴하여 배의 흐름을 몇 시간 늦추는 바람에 필트오버 지배 가문들의 수익에 어마어마한 손해를 입혔을 때였다. 필트오버 사람들을 열 받게 하는 방법을 정확히 알게 된 징크스는 도저히 무시할 수 없는 일을 했다. 바로 필트오버의 부를 위협한 것. 그녀는 필트오버 재무부 중에서도 가장 경비가 삼엄한 천공의 금고 벽에 집행자 바이의 캐리커처를 그려놓고 자신이 정확히 언제 그곳을 털지 적어놓았다. 범행을 예고한 날짜가 다가오는 몇 주 동안 필트오버와 자운에는 묘한 기대심리가 생겨났다. 체포가 거의 확실한 상황에 징크스가 나타날 배짱이 없으리라 많은 이들이 의심했다. 당일이 되자 바이, 케이틀린을 비롯한 보안관들은 물 샐 틈 없이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재무부 주변에 징크스를 위한 함정을 마련해 놓았다. 시계탑의 종이 예고된 시간에 울렸으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과연 징크스가 겁을 먹은 것이었을까? 실은 이들보다 한발 앞서 있었다. 비록 무모하기 짝이 없는 행동을 하는 듯해 보이는 징크스였으나 이미 며칠 전부터 실행에 옮긴 계획이 있었다. 태양 관문 요금소의 동전 상자를 변형해 이 안에 몸을 숨겼고, 이 동전 상자는 이틀 전 금고로 배달됐던 것이다. 징크스는 이미 금고 안에서 난장판을 벌이고 있었다. 도금한 벽마다 특유의 분홍색 낙서를 남겨놓고 샹들리에로 공중그네를 타며 모든 금고 상자에 깜짝 폭발물을 놔두었다. 안에서 들려오는 소음을 듣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깨달은 바이는 팀과 함께 진입하라는 케이틀린의 명령을 무시하고 건물 안으로 쏜살같이 달려갔다. 징크스와 바이의 전투로 폭발과 파괴의 향연이 펼쳐진 금고들은 산산조각이 났다. 징크스와 바이는 마침내 가장 깊숙한 곳의 가장 안전한 금고에서 서로를 대면하게 되었다. 그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바이가 다른 이들보다 훨씬 앞서 징크스를 추격했기 때문이다. 둘이 지하에 갇혀 버린 상태에서 징크스는 금고 천장에 로켓을 쏘아 올려 건물 전체를 붕괴시켰다. 위쪽에 있던 보안관들은 건물이 무너지기 전에 도망쳤지만 바이는 안에 갇혀버렸다. 바이는 징크스가 침입하기 위해 이용했던 상자에 몸을 숨겨 가까스로 압사를 피했다. 결국 폐허 더미를 주먹질로 뚫고 나온 바이는 무너진 건물 어딘가 징크스의 시체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으나 파괴의 흔적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징크스의 마지막 낙서였다. 자신을 잡을 테면 잡아보라고 바이에게 도전하는 낙서. 파랑 머리 말괄량이 징크스의 흔적은 전혀 없었고, 무엇보다 굴욕적인 것은 금고에서 동전 한 닢도 가져가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징크스는 아직 체포되지 않았고, 여전히 필트오버의 골칫거리다. 징크스는 자운의 화공 펑크족의 모방범죄를 비롯하여 필트오버와 자운의 수많은 풍자극과 격언 등에 영감을 주었다. 그녀가 궁극적으로 이루려는 게 무엇인지, 왜 그렇게 바이에게 집착(넷플릭스 시리즈 '아케인'에서 바이 와 징크스가 자매라는 사실이 나온다.)하는지는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있으나 하나만은 분명하다. 계속되는 징크스의 범죄가 날이 갈수록 대담해진다는 사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