直 播 法[1]
1. 개요
옮겨심기(정식)을 하지 않는 것. 밭작물에도 해당되지만, 벼를 모판에서 먼저 키우지 않고 처음부터 논에 심는 것을 주로 지칭한다. 굳이 순우리말로 번역하자면 '바로 뿌림'이라고 바꿔 부를 수 있다.전통적으로 물이 흥건한 논에 처음부터 씨앗을 뿌리고 키우는 수경직파법(水耕直播法)과, 밭작물을 키우는 것처럼 물이 없는 논에 씨앗을 뿌리고 키우는 건경직파법(乾耕直播法)으로 나뉜다. 밭에서 하는 직파법은 간작직파(間作直播)라는 명칭으로 따로 불렀으며 그 방법은 건경직파법과 비슷했다.
이 분류 방법 말고도 또한 흩뿌리기, 이랑과 고랑을 만들어 둘 중 한 부분에만 뿌리기, 땅에 묻어 심기 등 심는 방법으로도 구분할 수 있다.
2. 상세
수경직파법은 파종까지의 정지작업과 거름주는 일이 이앙법과 같다. 서북부 및 북부지방 등의 추운지방에서 취하던 방법으로 함경북도 전역, 함경남도와 평안북도의 대부분, 그리고 평안남도, 황해도, 강원도, 경기도 및 충청북도의 산간지대에서 관개수가 있는 논에서 실시되었는데 이들이 거의 모두 추운 지역이었기 때문에 수경직파법은 한지형(寒地形)이라고도 불리었다. 그러나 최근 비닐의 등장과 더불어 보온과 육묘기술이 발달됨에 따라 이 방식은 거의 실시되지 않게 되었다. 한편 수경직파법에 의한 벼농사기술은 조선인에 의해 만주국에 전파되어, 1940년경 그곳의 50만에 걸친 넓은 면적의 수도작을 개선하는 데 기여하기도 하였다.건경직파법은 건답직파법(乾畓直播法)이라고도 하며 우리나라 서북부지방에 발달한 도작법(稻作法)[2]이다. 전적으로 천수(天水)에만 의지하여 논벼를 재배하는 것으로, 벼의 생육 초기( 4월)는 강우가 매우 적고 건조하므로 논을 밭과 같은 상태로 정지하고 벼를 밭벼와 같이 파종하여 밭작물과 같이 취급하다가 장마철에 들어서서 관개수를 넉넉히 얻을 수 있게 되면 비로소 물을 넣어 담수하고 보통 논벼와 같이 재배하는 방법이다. 마른 땅에서 벼를 기르는데 쓰기 좋은 방법이라고 한해지형(旱害地形)이라고도 불리었으며 이 방법을 통한 벼농사는 세계적으로 매우 특이한 사례라고 한다.
심을 때는 흩뿌리는 방법이 제일 간단하나 시간이 적게 걸리며 대신 동물에게 먹히거나 추위를 견디지 못할 가능성이 더욱 높아지고, 묻어서 심는 쪽이 그 반대로 제일 외부로부터의 피해로부터 안전하나 시간이 오래 걸리고 번거롭다. 그리고 땅에 파도처럼 이랑과 고랑을 파서 농사를 할 때 이랑(높은 쪽)에 심는 것을 농종법(壟種法), 고랑(낮은 쪽)에 심는 것을 견종법(畎種法)이라고 하는데 이랑에 심으면 심고 추수하는 것이 비교적 용이하고 고랑에 심으면 바람의 피해가 적고 수분을 더 흠수할 수 있다. 물론 현재는 농업 기기와 기술의 발전으로 각 방법의 단점들이 어느 정도 개선된 상태이다.
2.1. 장점
모내기의 경우 모내기를 할 때 비가 안 오면 다 말라 죽기 때문에, 직파법이 상대적으로 가뭄에 강하다. 모내기는 한 번에 노동력이 많이 드는 대신[3] 햇빛 경쟁에서는 벼가 우위를 차지해 김을 매는 수고가 줄어드는데, 제초제나 멀칭[4]이 개발되어 옮겨심을 이유가 점차 줄고 있다.이식에 의하여 생육이 일시나마 중지되어 꽃눈의 분화가 늦어지거나 생육기간이 너무 길어지는 경우에 이용하는 것이 좋다. 추운 지방에서의 논벼의 직파가 그 예이다. 한편 작물 재배가 작은 규모로 집약화되어가는 경우에는 육묘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이식법이 확대되어가며, 인력 절감을 위한 기계화의 경우에도 직파법을 취하고 있다. 이 방법은 일반적인 재배법으로, 묘상 관리나 이식 노력 등이 필요하지 않고, 이식에 의한 뿌리의 손상을 막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사실 뿌리 채소와 같은 작물은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이식재배를 하면 이식에 의한 뿌리의 손상으로 말미암아 도리어 상품적 가치가 떨어지게 되므로 직파법을 사용하는 수밖에 없다.
2.2. 단점
직파법으로 재배하면 병충해, 한해, 냉해, 서리 등으로부터 어린 모를 보호하기 어렵게 되어 발아가 고르지 못하고 고르게 심지 못하면 한 군데는 빽빽하고, 다른 곳은 별로 없어서 생산량이 떨어지는, 다시 말해 재식밀도가 균일하지 않게 되는 문제가 있다. 이 때문에 멀칭을 하지 않으면 잡초와 작물이 같은 출발선상에서 시작해 작물이 불리해진다. 잡초 방제에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2.3. 작물에서
2.3.1. 벼에서
매우 간단한 방법답게 벼를 키우기 시작하면서부터 있던 방법이나, 고려 말기에 중국으로부터 모내기가 들어와 조선 중기에는 완전히 자리를 잃는다.[5] 그러나 간척지 논을 중심으로 직파법이 보급된 이후에는 다시 사용이 늘었다. 이른바 무논골점파법이라 하여 논에 볍씨를 뿌리는 기계가 보급되어 규칙적으로 볍씨를 뿌릴 수 있기 때문. 모내기에 일손이 많이 가는 농촌에서는 고령화로 노동력이 부족해지고 있어 쓰임이 늘고 있다.2.3.2. 기타 작물에서
- 깨의 경우에는 직파해서 한 군데에 하나만 심으면 줄기가 억세져서 베기 힘들고 너무 밀식하면 줄기가 약해지기 때문에 모종을 길러서 한 군데에 모종 3개를 심는다.
- 셀러리의 경우에는 발아온도가 20도인데 자라는 최적온도는 15도라는 변태성을 자랑해서 안에서 온도를 높여 발아시킨 후 옮겨 심는다.
- 수박 등과 같이 뿌리를 내리기 좋은 조건으로 직파재배를 하는 것이 생육에 좋거나 토양 조건이 나빠 이식 재배가 불리한 경우에도 직파법이 좋다.
3. 관련 문서
[1]
여담으로,
중국어로 직파(直播)라는
한자어는 zhíbō라고 읽으며,
농사에서 직파를 한다는 뜻뿐만 아니라
생중계를 한다는 뜻도 가지고 있고, 특히 스포츠 라이브 채널의 경우에는 직파파(直播吧, zhíbōba)라고 칭한다. 여기서 吧(ba)를 八(bā)로 바꾼 직파팔(直播八)이라는 이름의 스포츠 라이브 채널도 있다.
[2]
벼를 가꾸는 법
[3]
기계영농이 상당부분 현실화된 시점에서, 인력에 의존하던 과거와는 달리 옛날만큼의 인력이 필요하지는 않다. 가장 힘든 일은 모를 논에 심는 일인데 지금은
이앙기를 통해 시행하고 있다.
[4]
낙엽, 왕겨 등 유기물이나 비닐을 땅에 씌워서
잡초가 햇빛을 받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5]
다만 이앙법에 비해 가뭄에 강하다는 장점 덕에 조선 초기(
15세기)에 이앙법이 제한을 받고 잠시 장려된 적이 있다.
농사직설에도 물이 충분하지 못한 곳에서는 위태로운 방식이라고 경고하며 이앙법을 쓰지 않을 것을 장려하는 내용이 있었다. 이는 당시 수리시설이
영 좋지 못한 탓도 있었다. 사실 조선 중기 이후에도 1698년(숙종 24년)에 호조판서 이유(李濡)가 수원이 부족하고 건조한 곳에서의 이앙재배의 불리함을 지적하고 그것을 금지할 것을 진언하여 왕이 이에 따른 기록이 있으며, 1839년(헌종 5년)에도 이지연(李止淵)의 상소로 수리 시설이 불안한 전답에서의 이앙재배가 금지되기도 하였다. 특히 한반도는 하상계수가 세계최고급의 하천들이므로 수리와 관개를 아무리 잘해도 위험성이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