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첫컷 & 타이틀
아냐와 아티 슈피겔만이 1958년 찍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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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isoner on the Hell Planet
쥐에 등장하는 아트 슈피겔만의 4 페이지 분량의 단편 만화. 작가가 무명시절에 어느 만화책에 넣은 작품으로 특별히 그 자체로 주목받은 작품은 아니다. 하지만 작가가 죄책감을 극복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어머니 아냐 슈피겔만이 자살한 뒤 장례식의 과정, 죄책감과 번민으로 괴로워하는 작가의 모습이 판화를 연상케하는 그림체로 그려져 있다.
쥐 1권에서 아티가 블라덱의 집에 찾아갔을 때 말라로부터 블라덱이 해당 만화를 봤음을 듣고 놀란다. 블라덱은 원래 만화는 전혀 보지 않지만 표지의 사진 때문에 읽게 되었고, 읽은 후 울고 또 울었다고 한다.
아냐의 친한 친구로서 장례절차를 도우며 모든 것을 지켜본 말라 슈피겔만은 매우 정확하며 객관적이라고 평한다.[1]
2. 줄거리
아우슈비츠에서 유대인들이 입었던 죄수복을 입은 주인공 '아티'가 어머니의 자살을 독백 형식으로 증언한다. 주말을 여자친구 이사벨라[2]와 같이 보낸 아티가 집에 돌아오자 사람들이 집에 잔뜩 몰려 있었다.사촌 한명이 아티를 의사에게 데려간다.[3] 의사가 전해준 소식은 어머니가 자살했다는 이야기였다. 아티는 울어버린다.
집에 들어간 아티가 본 것은 방바닥에 엎드려 통곡하고있는 아버지 블라덱 슈피겔만이었다. 둘은 서로 껴안고 서로를 위로하다가 유대인 전통에 따라 그 날 밤을 이불도 없이 바닥에 누워서 보낸다. 다음 날, 어머니의 장례식을 치르는데 아버지가 이디시어로 된 장송곡을 읊자[4] 아티는 티베트 불교의 '사자의 서'를 따라 읊는다.[5]
여담이지만, 이 때 아티가 티베트 경전을 읊었다는 것은 주인공인 아티(=작가인 아트 슈피겔만)이 어떠한 문화적 전통에 속해있는지를 보여주는 아주 명확한 장치 중 하나이다. 1948년생으로 전후 베이비붐 세대 출신이었던 아트 슈피겔만은 딱 68운동 당시에 20대를 맞이한 전형적인 히피세대였고, 따라서 당시 급성장하여 젊은이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친 히피 문화를 통해 동양의 문화나 전통에 대하여 접했을 가능성이 높다.[6] 그런데 이와 같이 자유분방하고 반권위적인 문화적 배경에서 성장한 아티에 비해 아버지 블라덱은 2차 대전 이전 유대교 및 기독교 등 아브라함 종교적 색채가 어머니가 돌아가신 현재(1968년)보다 더 강했던 환경에서 성장한 인물이다.
즉 블라덱/아냐와 아티는 어쩌다보니 같은 시기에 살고 있는 것일 뿐, 사실상 전혀 다른 세상에 속해 있는 인물이라고 봐도 그리 과장된 표현은 아니며, 고작 한 세대만에[7] 이 정도로 엄청난 가치관과 인식의 격차가 발생해버렸다는 것이 블라덱/아냐 부부와 아티 사이에서 발생한 갈등의 중요한 원인 중 하나일 수밖에 없다는 것. 말하자면, 분명 서로를 지극히 사랑하는 부모와 자식인데도 불구하고 가치관과 인식의 차이가 거의 다른 나라, 다른 시대, 다른 세상 사람급으로 벌어져 버리니 도저히 서로를 이해할 수 없게 되었고, 이 때문에 갈등이 점점 심화되다가 결국 어머니의 자살이라는 파국에까지 이르게 되었다는 것. 그리고 아버지와 아들 모두 아내/어머니의 죽음에 엄청난 슬픔과 절망감을 느끼고 있는데도 그것을 표현하는 방법에서 또 차이가 발생했고, 따라서 앞으로도 이 부자는 완전한 단절까진 아니더라도 서로를 이해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아주 씁쓸한 상징인 셈이다.
이후 아버지는 마침내 자제력을 잃고 관 위에 올라가 아냐의 이름을 울부짖고 견딜 수 없어진 주인공은 장례식장을 빠져나온다. 그리고 복도에서 웅크려 울고 있는데 집안 친구가 와서 '이제 우는 구나, 너네 어머니가 살아계셨을 때 울지 그랬냐(=있을 때 잘 하지 그랬냐)'며 아티를 힐난한다. 아티는 애도하러 온 가족 친구들에게서도 적의를 느낀다. 죄책감과 역겨움에 아티는 방황한다. 이 때 자신의 어머니를 떠올리며 아티는 여러 단어들을 연상하는데, 폐경기 우울증, 하켄크로이츠, 히틀러, 수감자 번호(A573112) 엄마(Mommy)부터 개같은 년(Bitch)까지 있었다.
아티는 마지막으로 어머니를 본 순간을 기억한다. 한밤 중 침대에 누워있던 아티의 방에 어머니가 들어와 '아직 자신을 사랑하느냐'고 묻는다. 모자간의 정에 호소하는 듯한 그녀의 태도가 싫었던 아티는 돌아누워서는 성의 없이 "물론이죠, 엄마."라고 말했고, 어머니는 문을 닫고 나간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그야말로 자살위험자의 최후의 구조신호를 걷어차버린 것으로, 아티의 죄책감이 미칠 지경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감옥[8]에 갇힌 아티가 어머니를 향해 나를 여기(감옥)에 쳐넣고, 나의 모든 것을 부숴놓고 나를 죽였다며 어머니는 완전 범죄를 저질렀는데 나는 감옥에서 혼자 고통을 받아야 한다고 얘기하며 끝난다.[9]
3. 기타
- 이곳 저곳에 상징이 많이 숨겨져 있다. 어머니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고 아버지 블라덱 슈피겔만과 함께 부둥켜 안는 컷에서는 구석에 '가진 것을 지키세요'(Protect what you have)라는 글이 써져 있다든지,[10] 방황하는 아티의 모습 뒤에 Funeral(장례)이 절묘하게 가려져 Fun(쾌락, 즐거움 등등)으로 보인다든지[11], 아티가 입고 있던 죄수복이 컷이 지나면서 점점 선명해진다든지...
- 만화의 출발점이 판화라는 점을 다시 한 번 각인시켜주는 만화. 슈피겔만의 실험적인 요소가 돋보인 작품이다.
- 쥐에 수록된 국내 번역본은 오역이 하나 있는데, 상조회사에서 950 달러 옵션과 2000 달러 옵션을 설명해주는 전화를 사촌이 장례식 절차를 준비하는 대화로 오역했다.
- 아이러니하게도 작가의 아내 프랑소와즈 몰리와의 연을 이어준 만화이기도 하다. 서로 지인으로 소개받고 알게 된 지 얼마 안 됐을 때에 프랑소와즈가 본 만화를 읽고 큰 충격을 받고, 아트를 무작정 찾아가서 어떻게 그 경험을 이렇게 만화로 풀어낼 수 있었는지 물었던 게 계기가 되어 연애를 시작했다고.
[1]
만화의 내용이 화자인 아트 본인이나 가족, 친척들 그 어느 쪽도 미화하지 않고 그저 아트가 겪고 보았고 느꼈던 것을 (아트의 생각을 토해내는 결말부는 제외하고) 냉정하게 중립적으로 묘사했다는 의미다.
[2]
아무래도 프랑소와즈를 만나기 전에 만난 애인인 듯. 블라덱과 아냐가 그녀를 좋아하지 않았단 언급이 있다.
[3]
이 때 사촌은 아티가 어머니가 자살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을 것을 우려해
어머니가 좀 편찮으시다고 얘기하면서 의사에게 데려간다. 근데 엄밀한 의미의 사촌이라고 한다면 헤르만과 헬렌 부부의 아들 롤렉이나 이스라엘에 살고 있다는 피넥 슈피겔만의 (있는지 없는지 작중에 묘사도 안된) 아들 정도밖에 없는데 이스라엘에 있는 사촌들이 갑자기 순간이동이라도 해서 나타났을 리는 없고 롤렉 밖에 없다. 하지만 그냥 친척을 의미하는 뜻의 cousin으로 쓴 것일수도 있다.
[4]
"그 이름이 날로 성대하고 거룩하게 하소서... (주께서는) 악을 창조하고 다스리시니..."
[5]
"고귀하게 태어난 이여... 형상 없는 공 속으로의 여정에서, 뭇삶의 하나됨을 기억하시오..." 이 구절은 서구권에 잘 알려진 오래된 번역본인 에반스 웬츠(Evans Wentz)의 것에서도 확인되지 않아, 아티가 기억해내는 과정에서 일부 변형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때 아티는 나레이션을 통해 당시 자신이 무슨 생각이었는지 모르겠다고 서술한다. 아마 아버지처럼 충격으로 인해 반쯤 정신을 놓았던(아티의 회고로는 "pretty spaced out") 것으로 보인다.
[6]
아티의 회고에 따르면, 그는 당시 히피 전통을 따라 영신제(entheogen) 용도로
LSD를 자주 복용하면서, 붓다의 경지와 하나되겠다는 야망을 품고 있었다고 한다. 그 부작용으로 아티는 잠시 정신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나왔는데, 얼마 되지 않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것이다.
[7]
엄밀히 따지자면 아트 슈피겔만이 좀 늦둥이이긴 하지만...
[8]
아티의 어머니에 대한 죄책감, 트라우마, 그리고 그 트라우마에서 결국 벗어나지 못한 자기 자신의 상황을 의미한다.
[9]
덧붙여 해당 컷에서 한 재소자가 '잠 자려고 하는데 좀 조용히 해라'고 소리치는데, 이는 본작을 그리는 현재 시점에서까지 죄책감에 시달리는 아티의 죄책감이나 무의식을 상징한다는 해석이 있다. 앞서 말했던 '나는 감옥에서 혼자 고통을 받아야 한다'는 말과 같은 맥락.
[10]
북미 보험 회사(Insurance Company of North America)가 20세기 초에 집행했던 광고의 패러디
[11]
의도된 컷이다. 아트 본인은 이 장면이 자신의 죄책감을 덜어내는 데 도움을 주었다고 서술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