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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탄 제3대 국왕
지그메 도르지 왕축 འཇིགས་མེད་རྡོ་རྗེ་དབང་ཕྱུག Jigme Dorji Wangchuc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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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c1051d><colcolor=#feca00> 출생 | 1929년 5월 2일 |
부탄 트롱사 | |
사망 | 1972년 7월 21일 (향년 43세) |
케냐 나이로비 | |
즉위 | 1952년 3월 30일 |
재위기간 | 제3대 국왕 |
1952년 3월 30일 ~ 1972년 7월 21일 | |
왕후 | 케상 초덴[1] |
[clearfix]
1. 개요
부탄 3대 국왕이다. 1952년 5월 30일 즉위한뒤 약 20년동안 부탄을 통치했다.청소년기에는 영국정부의 도움으로 스코틀랜드, 스위스등 유럽국가에서 유학생활을 했었다. 이 유학생활이 세계관에 영향을 미쳐서 즉위이후 부탄을 영국 보호령의 은둔왕국에서 벗어나 본격적으로 세계 무대에 끼어들었다.
2. 업적
외교적으로는 '비동맹 중립외교노선'을 확립하며 아버지 지그메 왕축 전 국왕 시절까지 이어져왔던 고립주의를 탈피시켰고, 그외 국내에서도 여러 근대화노력을 기울였다. 1953년 부탄 국회의 설립은 부탄정치사에서 현재 입헌군주제와 민주주의로 가는길을 열어놨다는 평가를 받는다.[2]그리고 이 시기에 쿠데타가 있었는데 진압에 성공해서 총리를 몰아내고 국왕 친정을 확립했었다.
또한 토지개혁을 통해서 기존에 귀족들이 가지고있던 토지와 왕실 소유 토지 및 불교사원들의 소유토지를 철저히 조사한뒤 가난한 농민들에게 분배했으며[3], 기존 뿌리깊던 히말라야 지역의 봉건주의, 농노제 폐지등 신분제 개혁도 성공했고, 고등법원 설립, 사법부의 독립성 강화등 현대 민주주의에 맞는 개혁과 국립도서관 및 박물관 건립, 영국식 교육제도 도입[4] , 그리고 인도의 원조를 받아 부탄 전국에 도로를 깔아서 교통망을 만드는 등 부탄 국민들의 삶의 질 향상에도 큰 공헌을 했다.
또한 지그메 도르지 왕축 국왕시절에 부탄은 UN가입에 성공한다.
3. 여담
부탄의 수도는 지그메 도르지 왕축 재위 당시까지는 푸나카였지만 재위 이후 얼마안가 현재 수도인 팀푸로 옮기게 된다.지그메 도르지 왕축 국왕의 생일은 특이하게도 탄신일등 거창한 주제가 붙어있지 않고 스승의 날이라는 타이틀이 붙여져있다. 위에 언급한 현대식 교육을 도입한게 지그메 도르지 왕축 국왕이니 당연한 건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