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풀턴 레이놀즈 John Fulton Reynold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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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20년 9월 21일 |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랭커스터 | |
사망 | 1863년 7월 1일 (향년 42세) |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게티즈버그 | |
복무 | 미합중국 육군 |
최종 계급 | 미국 육군 소장 |
복무 기간 | 1841~1863 |
학력 |
랭커스터 카운티 군사학교 미국육군사관학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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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군인.2. 생애
펜실베이니아주 랭커스터에서 태어났고 당시 상원의원이였던 제임스 뷰캐넌의 도움으로 육군사관학교에 진학했고 1841년 포병 소위로 임관했다. 1846년 미국-멕시코 전쟁에 참전했고 몬테레이 전투, 부에나비스타 전투에서 공을 세워 소령까지 진급했다. 1857년부터 1년간 몰몬교와의 전쟁인 유타 전쟁에 참가했다.남북 전쟁당시 준장으로 빠르게 진급했고 새롭게 편성된 포토맥군 소속 펜실베이니아 의용여단장이 되었다. 반도 전역 버지니아, 펜실베이니아에서 전투를 치렀다. 프레더릭스버그 전투에서 공을 세웠고 비버댐크릭 전투에서 남군의 공격을 저지했다. 남군에게 생포되었으나 포로협정으로 풀려났다.
이후에도 공을 세워 소장으로 진급했고 챈슬러스빌 전투에서 포토맥군 지휘관 후커와 퇴각 관련해서 신경전을 벌였고 이에 후커를 해임할 것을 요청해 조지 미드로 교체되었다.
1863년 게티즈버그 전투당시 세머리티 언덕에서 그가 지휘하는 포토맥군 제1군단은 좌익을 맡고있었다. 시작되자 언덕을 두고 치열한 전투가 치러졌고 이에 양 군의 지원군이 뒤엉키며 혼란스럽게 진행되었다. 1군단역시 투입되었으며 허브스트 숲에서 남군 2개여단과 전투를 벌이던 중 남군 샤프슈터의 저격으로 머리에 총을 맞고 즉사했다.[1]
애브너 더블데이가 권한대행으로 1군단을 지휘해 남군을 격퇴시켰다. 사후 시신은 고향인 랭커스터에 매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