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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24 18:33:36

존 하트슨

존 하트슨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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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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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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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일스의 前 축구선수
파일:John Hartson.jpg
<colbgcolor=#eeeeee,#191919> 이름 존 하트슨
John Hartson
출생 1975년 4월 5일 ([age(1975-04-05)]세)
영국 웨일스 스완지
국적
[[영국|]][[틀:국기|]][[틀:국기|]] (
[[웨일스|]][[틀:국기|]][[틀:국기|]])
신체 185cm
직업 축구선수 ( 스트라이커 / 은퇴)
축구평론가
소속팀 루턴 타운 FC (1992~1995)
아스날 FC (1995~1997)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FC (1997~1999)
윔블던 FC (1999~2001)
코번트리 시티 FC (2001)
셀틱 FC (2001~2006)
웨스트 브롬위치 알비온 FC (2006~2008)
노리치 시티 FC (2007 / 임대)
국가대표 51경기 14골 ( 웨일스 / 1995~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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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영국 국적의 전 축구선수다. 셀틱 FC에서 전성기를 보냈다. 현재 BT 스포츠에서 축구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2. 클럽 경력

2.1. 루턴 타운 FC

1992년 루턴 타운과 프로 계약을 체결했고, 다음 해인 1993년 8월 24일에 열린 케임브리지 유나이티드와의 리그컵 경기에서 교체 출전하며 프로 데뷔전을 치렀다.

2.2. 아스날 FC

1995년 1월, 19세가 된 하트슨은 당시 영국 내 10대 이적료 기록을 경신하는 금액인 250만 파운드의 금액으로 아스날로 이적하게 되었다. 1월 14일, 에버튼과의 경기에서 데뷔전을 치렀고, 바로 다음 주에 열렸던 코번트리 시티와의 경기에서 데뷔골을 기록하며 팀의 1:0 승리에 크게 기여했다. 그는 이적 후 첫 시즌부터 주전 멤버로 활약했고, 레알 사라고사와의 UEFA 컵 위너스 컵 결승전에서 터트린 동점골은 백미였다.

다음 시즌 데니스 베르캄프가 아스날에 오면서 베르캄프의 파트너로 활약했고, 조지 그레이엄 이후로 부임한 브루스 리오크와 아르센 벵거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다. 1997년 2월에 웨스트햄 유나이티드가 그의 영입을 원하자 벵거는 그에게 남아주었으면 한다는 의사를 전달했지만, 하트슨은 제의를 받아들였다.

2.3.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FC

1997년 2월, 당시 웨스트햄 구단 최고 이적료 기록인 320만 파운드를 기록하며 웨스트햄에 합류했다. 2월 15일, 더비 카운티와의 경기에서 데뷔전을 치렀다. 2월 24일, 토트넘 홋스퍼와의 경기에서 데뷔골을 만들어냈다. 그는 겨울 이적시장 때 합류해서 남은 시즌 동안 리그 7경기에서 5골을 기록하며 18위에 머물러있던 팀은 14위까지 끌어올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

다음 시즌, 하트슨은 모든 대회에서 42경기에 출전해 24골을 기록하며 웨스트햄 최다 득점자로 등극했다. 하트슨 다음으로 많은 득점을 기록한 것이 에얄 베르코비치가 기록한 9골이라는 점을 보았을 때 하트슨은 웨스트햄의 절대적인 공격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하 이 시즌에 프리미어 리그에서 앤디 콜에 이어 득점 2위를 기록했다.

1998-99 시즌은 조금 부진한 시즌이었는데, 전반기 동안 20경기에 나서서 4골만을 기록했다.

2.4. 윔블던 FC

1999년 1월, 750만 파운드의 이적료를 기록하며 윔블던으로 이적했다. 당시 이 이적료는 윔블던 구단 역사상 최고 이적료였다고 한다.

윔블던으로 이적한 후 프리미어리그에서 나름 많은 골을 넣었지만, 부상으로 인해 많은 경기를 소화하지 못했다. 게다가 그의 커리어 첫 강등을 경험하며 2000-01 시즌 전반기까지 2부 리그에서 활약해야만 했다. 강등 직후 레인저스, 토트넘 홋스퍼 그리고 찰튼 애슬레틱으로 이적할 기회가 있었지만 부상으로 인해 메디컬 테스트에서 탈락하기도 했다.

2.5. 코번트리 시티 FC

2001년 1월 12일, 결국 코번트리 시티로 이적하게 되었다. 그는 이적 후 리그에서 12경기 6골을 기록하며 좋은 활약을 펼쳤다. 그러나 이 시즌에 코번트리가 강등되면서 다시 다른 팀을 찾아봐야 했다.

2.6. 셀틱 FC

2001년 8월, 하트슨은 600만 파운드의 이적료를 기록하며 셀틱에 입단하게 되었다. 8월 4일, 킬마녹과의 리그 경기에서 교체 투입되며 데뷔전을 치렀다. 10월 20일, 던디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 데뷔골을 기록했고, 해트트릭까지 기록하며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첫 시즌부터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고, 셀틱이 리그 우승을 기록하는 데 크게 공헌했다.

2002년 12월, 셀타 비고와의 UEFA컵 경기에서 골을 기록했다. 이날 셀틱은 1:2로 패배했지만, 홈에서 1:0으로 승리했기에 원정 다득점 원칙에 의해 준준결승에 진출하게 되었다. 이 결과로 셀틱은 1980년 이후 처음으로 크리스마스 이후에 유럽대항전 경기를 치를 수 있게 되었다. 2003년 3월, 준준결승에서 리버풀과 상대하게 된 셀틱은 홈에서 1:1로 비긴 뒤 안필드 원정에서 하트슨이 25야드 거리에서 골을 터트리는 등 맹활약을 하며 2:0으로 승리를 거두어 준결승에 진출했고, 팀은 준결승에서도 승리를 거두며 결승까지 진출하는 쾌거를 이루어냈다. 이후 4월에 열린 레인저스와의 올드 펌에서 결승골을 기록했지만, 부상을 당했고 시즌 아웃 판정을 받게 되었다. 이 부상으로 UEFA컵 결승을 뛰지 못하게 되었다.

2003-04 시즌도 좋은 활약을 했지만 잔부상이 발목을 잡았고, 결국 2004년 3월에 수술을 하게 되며 시즌아웃되었다. 그 시즌 셀틱은 리그와 스코티시컵 우승을 하며 더블을 기록했다.

2004-05 시즌 동안 모든 대회에서 50경기에 출전해 30골을 기록하며 환상적인 시즌을 보냈다. 이 시즌에 하트슨은 PFA 스코틀랜드 올해의 선수와 SWFA 올해의 선수에 선정되었다.

2005년 11월 6일, 폴커크와의 경기에서 셀틱에서 100번째 골을 기록했다. 이 시즌엔 41경기에 출전해 20골을 기록했다.

2.7. 웨스트 브롬위치 알비온 FC

2006년 6월 26일, 풋볼 리그 챔피언십 웨스트 브롬위치 알비온으로 이적했다. 이적료는 50만 파운드로 알려져있다. 8월 5일, 헐 시티와의 경기에서 데뷔전에서 멀티골을 기록하며 기분 좋게 시즌을 출발했다.

2007년 10월, 하트슨은 노리치 시티로 한 달 간 임대 이적을 떠났다. 12월 31일까지 연장할 수 있는 옵션이 포함되었지만, 새롭게 노리치 감독으로 부임했던 글렌 로더 감독이 이를 거부하며 하트슨은 임대 기간 종료 후 곧바로 웨스트 브롬위치로 복귀했다. 이후 체스터 시티의 임대 제안이 있었지만 그가 거절했다. 2008년 1월, 계약 기간이 6개월 남은 상태였지만, 웨스트 브롬위치와 상호합의 하에 계약해지를 하였다.

2008년 2월 7일, 그는 체중과 여러가지 건강상의 이유로 축구계에서 은퇴를 선언했다.

3. 국가대표 경력

하트슨은 웨일스 대표팀 소속으로 51경기에 출전해 14골을 기록했다. 웨일스 국가대표 역사상 11번째로 많이 득점한 선수로 기록되어 있다.

2006년 2월, 그는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했다.

4. 수상

4.1. 대회 기록

4.2. 개인 수상

5. 여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