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0000><colcolor=#ffffff> 조재중 谷沢 龍二|야자와 류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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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필 | ||
이름 | 야자와 류지 ([ruby(谷沢, ruby=やざわ)] [ruby(龍二, ruby=りゅうじ)]) | |
국적 |
[[일본| ]][[틀:국기| ]][[틀:국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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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번호 | 30번미국 유학 시절 | |
성우 |
[[일본| ]][[틀:국기| ]][[틀:국기| ]] |
나카오 미치오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김환진 (비디오) 안종덕 (SB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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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슬램덩크의 등장인물.안선생님의 변화를 불러온 계기가 된 인물로, 반면교사로 많이 활용된다. 자기중심적인 비뚤어진 생각에서 오는 과도한 개인 플레이, 재능을 과신하고 기본기를 등한시하는[1] 안일한 태도, 도피성 유학, 약물중독 등.
회상 에피소드가 처음 연재된 시기는 1995년 12월 2일.
2. 작중 행적
2.1. 대학 선수 시절
과거 안한수 감독이 『흰머리 호랑이』라 불리면서 대학교 농구부 감독을 지내던 시기에 가르침을 받은 제자이다. 당시 기준으로 센터도 무리 없이 소화 가능한 2미터의 신장에 빠른 몸놀림까지 가지고 있어서 장래가 촉망되던 인재였으며, 스파르타식 훈련으로 유명했던 안 선생은 그에게 많은 기대를 걸고 혹독한 기초 훈련을 시킨다.이런 훈련을 힘겨워하는 조재중을 안 감독은 "너를 위해 팀이 있는 게 아니다, 팀을 위해 네가 있는 거다."라며 몰아붙인다. 작중에서는 한 장면만 나오지만, 연습 도중 조재중이 실수를 하자 혼을 내며 왕복 달리기를 20회나 뛰게 하는 벌을 내린다.
반복적인 기초 훈련으로 인해 자신의 재능이 묻힐 것을 두려워함과 동시에 농구에 대한 열의와 흥미를 잃어버리기 시작한 조재중은 독단적으로 미국 유학을 감행한다.
2.2. 미국 유학 시절
그러나 그의 미국 농구 유학은 순탄치 않았다. 고생 끝에 한 대학 팀에서 뛸 수 있게 되었지만, 문제는 그 팀 자체가 팀 플레이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 막장 팀이었던 것.[2][3] 심지어 조재중의 강점이던 피지컬조차 미국 농구에서는 별다른 무기가 되지 못했다.[4]
무엇보다 자신의 재능만 믿고 기본기 훈련을 소홀히 해온 그는 미국 무대에서도 더 이상 성장할 수가 없었다. 거기에 안 선생님처럼 옆에서 멘탈을 바로잡아 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점도 악재로 작용했다. 한국이나 일본같이 유교 문화가 강한 나라에서는 코치나 감독이 선수들을 자식 대하듯 생활 태도나 버릇부터 바로잡으려는 지도 문화가 자리잡고 있지만, 미국과 같은 개인주의 문화에서 코치는 선수들의 개인 생활은 터치하지 않고 정말 운동만 가르치기 때문.
조재중이 떠나고 1년 뒤, 비디오를 통해 미국 대학에서 뛰는 조재중의 플레이를 본 친구들은 그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5]
まるで成長していない………
전혀 성장하지 않았어…
전혀 성장하지 않았어…
그러나 안 선생님은 이 문제점을 한 눈에 간파했다. 이대로 조재중을 놔두면 안 된다는 생각에 그와 친분이 있는 선수에게 연락처를 알려 달라고 부탁했는데, 요즘은 연락이 안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마 이 무렵 이미 미국 농구 유학에서 크나큰 좌절감을 맛보고 외부와의 연락을 끊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돌아와라 재중아. 내 감독 생활 마지막으로 너를 국내 최고 선수로 키울 생각이었다.
넌 아직 미숙해. 환경에 따라 잘 될 수도 안 될 수도 있어.
넌 아직 미숙해. 환경에 따라 잘 될 수도 안 될 수도 있어.
결국 견디다 못한 안 선생은 부재 중 메시지도 남기고, 조재중이 재학 중인 대학에 연락도 넣어 봤으나 최근 농구부에도 나오지 않는다는 답변만 받는다.
2.3. 사후
결국 조재중의 미국 유학은 출국한지 5년이 되던 어느 날 오토바이 사고로 인한 사망이라는 비극으로 끝난다. 사망 당시 나이는 24세. 조재중의 부고가 실린 신문 기사에는 그의 시신에서 약물 반응이 나왔다는 내용이 있었다. 이로 보아 농구를 그만두고 절망에 빠져서 술과 약물에 찌들었으며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 역시 될 대로 되라는 식의 폭주였을 가능성이 다분하다.생전에 안 선생에게 쓴, 부치지 못한 편지가 그의 자취방에 남아 있었고, 사후 그의 부모가 회수하여 그의 무덤을 찾은 안선생님에게 전한다. 그 편지에는 안 선생의 훈련을 무시했던 것과 동시에 미국 생활을 후회하는 내용의 글이 적혀 있었다.
안 선생님. 언젠가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 요즘 자주 머리에 떠오릅니다.
'널 위해 팀이 있는 게 아냐. 팀을 위해 네가 있는 거다.'
여기선 아무도 제게 패스를 하지 않습니다.[6]
선생님과 친구들을 배반하면서까지 미국에 왔는데, 이제와서 염치 없이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언젠가 저의 플레이로 모두에게 빚을 갚을 때까지 열심히 뛸 생각입니다.
농구의 나라 미국... 그 곳의 공기를 마시는 것만으로 전 높이 날아오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건지...
'널 위해 팀이 있는 게 아냐. 팀을 위해 네가 있는 거다.'
여기선 아무도 제게 패스를 하지 않습니다.[6]
선생님과 친구들을 배반하면서까지 미국에 왔는데, 이제와서 염치 없이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언젠가 저의 플레이로 모두에게 빚을 갚을 때까지 열심히 뛸 생각입니다.
농구의 나라 미국... 그 곳의 공기를 마시는 것만으로 전 높이 날아오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건지...
회한 어린 심경을 솔직하게 토로했지만, 자존심 때문인지 안 선생님에게 미안한 마음 탓인지 차마 직접 부치진 못했다. 자존심은 여전히 남아 있어서 '지금 당장 돌아갈 수는 없다, 반드시 바라던 선수가 되도록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라는 내용이 뒤에 나왔지만 결국 그의 희망대로는 되지 못했다. 자존심을 버리고 안 선생에게 돌아와 솔직하게 자신의 심경을 털어놓고 용서를 구했다면 좋은 결말이 되었을 수도 있는 걸 생각하면 안타까운 일. 이후 안 선생이 큰 문제를 일으키고 심지어 농구부를 나락으로 보낼 뻔했던 정대만을 바로 다시 받아준 것도 이 때의 경험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3. 평가
보충하자면, 조재중은 결코 재능 하나만 믿고 농구를 소홀히 하는 인물이 아니었다. 서태웅과 같이 농구에 대한 열정과 향상심만은 진심인 인물이었다. 하지만 이 사건은 그런 열정의 방향성이 잘못되었을 때 어떻게 되는가를 보여주는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조재중의 입장에서 보자면 안선생의 기초 위주 훈련은 대학 농구에서 이미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는 자신에게 맞지 않다고 느낄 만도 했고, 자신을 더욱 성장시키기 위해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는 것 자체는 틀렸다고 할 수 없다. 나쁘게 말하면 자의식 과잉이겠지만 이것도 선수가 재능을 개화시키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스스로의 재능을 믿고 언제나 자신감 있게 행동하여 성공한 좋은 예가 바로 주인공 강백호, 그리고 최종 보스 정우성이다. 이들과는 달리 조재중은 결과가 나빴다는 게 문제지만. 조재중과의 차이점이라면 강백호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철저히 기초를 단련했고, 정우성은 어릴 때부터 아버지와의 1:1을 통해 단련된 모태 바스켓맨이라는 것이다.이렇듯 조재중의 에피소드는 기초를 무시하면 제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도 빛을 발할 수 없음을 알려 줌과 동시에, 그 기초를 쌓는답시고 강압적이고 혹독한 방법으로 선수를 몰아붙였다간 반발과 좌절이 발생할 수 있음을 함께 알려 주는 아주 중요한 에피소드이다. 안 선생은 자신이 조재중을 너무 혹독하고 강압적으로 대했던 것이 그를 죽게 만들었다는 죄책감에 대학 농구계를 떠났으며, 조재중에게 걸었던 희망을 모두 버리지는 못한 채 발을 들인 고교 농구계에서는 이전의 스파르타식에서 정반대쪽으로 노선을 변경해 흰머리 부처님이라는 새로운 별명을 얻었다.[7] 조재중의 반발 + 일탈이 트라우마가 되었는지 극 초반에 '가끔 나온다.'는 언급과 같은 지역팀 감독임에도 정말 오래간만에 만난 것처럼 대하는 다른 팀 감독들의 반응, 회상 씬에서의 희박한 존재감을 보면 미련을 남긴 채 거리를 두고 있었던 듯하며, 작중에서는 '아직 종지부를 찍지 않고 있었던 것.'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서태웅이 미국 유학을 원한다고 하자, 반대를 하면서 자국 최고의 선수가 되라는 충고를 한 것은 바로 이 조재중의 전례 때문이다. "태웅이 넌 아직 윤대협에게 미치지 못한다."는 혹평도 서슴지 않는데 이는 재능 있는 선수가 조재중처럼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나온 것인 듯하다.
결국 안 선생의 말대로 서태웅이 자신이 미국 유학이란 말을 섣불리 꺼낸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말이었는지를 깨닫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전국대회에서 정우성의 실력에 압도적으로 밀렸기 때문이다.[8][9] 오히려 자존심이 세보였던 서태웅과 강백호가 안 선생의 지침을 잘 따랐다는 사실이 놀라운 것이다.
서태웅은 조재중과는 달리 자기 재능만 믿고 기초 연습을 소홀히 하지 않는 성격이기도 하고,[10] 무엇보다 안 선생의 부인이 차로 데려다주며 조재중 이야기를 해 준 것이 크게 작용했다. 이야기를 듣기 전의 서태웅은 윤대협에 미치지 못한다는 말 자체엔 반박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안 선생의 반대에 선뜻 납득하지 못하고 있었다.[11]
안 선생님은 서태웅과 강백호에게서 조재중에게서 본 것과 비슷한 재능을 느끼고 이후 그들의 성장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다.[12] 산왕전에서 강백호가 말도 안 되는 리바운드 능력으로 게임을 지배하자 "이보게, 재중군... 보고 있는가... 자넬 능가하는 뛰어난 인재가 여기에 있네."라고 독백하고, 이어 강백호가 실패한 레이업을 서태웅이 즉시 덩크로 연결하여 득점하자 "그것도 무려 둘이나"라고 재차 독백[13]라는 장면은 슬램덩크의 수많은 명장면 중에서도 백미. 특히 작중 내내 감정 표현을 좀처럼 하지 않는 안 선생님이 머리를 감싼 채 전율하는 장면이라 더 감동적인 대목이다.
[1]
비교 대상인
강백호는 놀랍게도 처음부터 대놓고 툴툴대면서도
채소연한테 잘보여야 된다는 나름의 목적 의식,
이한나의 초보자 집중 감시, 그리고 본인도 경험이 없어서 반박하지 못하는 분위기까지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결과적으로는 기본기를 체계적이고 철저하게 잘 쌓은 편이다. 되레 농구에 대해 아는 게 없어서 할 줄 아는 것도 기본기 훈련밖에 없었고, 당연히 해야만 하는 줄 알고 그냥 했던 게 행운인 셈. 나중에는 연습을 습관화시키고 나름의 보람도 찾는 등 지겨운 훈련을 열심히 해서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2]
조재중 정도의 신체 조건이라면 NCAA 하위 디비전이나 NAIA, NJCAA 등의 대학 하부 리그에서는 경쟁력이 있었겠지만, 이 정도 리그에서는 NBA 선수는 커녕 해외리그 용병,
G리그 선수로도 진출하기 어렵다. 농구 선수로서 장래를 꿈꾸기 어려운 이런 곳은 조재중에게 고려 대상이 아니었을 것이다.
[3]
스코티 피펜처럼 NAIA에서 시작해 NBA에서도 활약한 예외 사례도 있지만, 피펜은 NAIA에서 기적처럼 키가 엄청나게 성장한 덕에 NAIA를 폭격하면서 NBA의 관심을 받은 케이스이다. 애시당초 NAIA, NJCAA같은 곳에서 농구로 성공할 각이 보이는 선수들은 NCAA 디비전 1로 편입을 간다.
[4]
실제로 일본 농구에서 기술과 운동 신경이 최고 수준이었고 맨발 신장도 2m가 넘던 유망주
와타나베 유타조차 NCAA 1부에선 스몰 포워드 포지션에
3&D 전문 선수로 뛰었다. 그나마 수비로 대학무대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고 4학년 시즌엔 팀의 주 득점원으로 뛸 수 있었지만, 이런 와타나베조차 드래프트에선 미지명이 되어 서머 리그를 통해 투 웨이로 NBA에 진출했다. 결국 와타나베 정도의 우수한 피지컬과 능력치조차 미국 대학 농구에서는 크게 눈에 띌 수준이 아니었다는 얘기. 특히 와타나베는 고교 시절 미국 유학으로 미리 적응기를 거친 후에 대학 리그에 진출했음에도 이런 상황이었는데, 조재중 같은 처지라면 (와타나베급의 재능이었는지도 알 길이 없지만) 피지컬은 정말 아무 의미도 없었을 것이다.
[5]
원판
[6]
안선생님을 배반했다는 죄책감, 뜻대로 되지 않는 농구, 먼 타지에 홀로 생활하는데서 오는 외로움과 더불어 이러한 절망적인 상황은 자존심이 셌던 조재중을 더더욱 심적인 나락으로 빠뜨렸을 것이다.
[7]
강백호의 경우 채치수가 멘탈을 잡아주었고, 안 감독은 보살 스타일로 강백호에게 조언자 역할을 해주며 슛 훈련을 할 때도 강백호에게 차근차근 알려주었다. 채치수가 굉장히 엄한 스타일인데 안 감독이나 권준호, 이한나까지 엄한 스타일이었다면 강백호는 분명 뛰쳐나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을 것이다. 실제로 강백호가 초창기에 뛰쳐나간 것도 채치수의 강압적인 성향 때문이었다. 그 이전에도 채치수 때문에 농구부를 그만 둔 사람도 있을 정도다. 최소한 엄한 스타일이 있다면, 잘 다독이는 스타일도 필요한 법이다. 이른바
당근과 채찍 전략이다. 유명호 감독도 매우 엄한 스타일이지만 힘들다고 그만두겠다는 변덕규에게 따뜻한 말을 해주는 식으로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8]
정우성만큼 극적으로 체감하진 못했겠지만 이정환 급 강자인 3학년 강자인 마성지, 이현수, 또한 피지컬 괴물 신인인 김판석 등도 포진해 있었다. 해남전에서 폭발 모드 서태웅은 순간적으로 이정환의 마크조차 뚫는 저력을 보였으나 1학년의 경험과 체력 한계 등을 극복하지 못하고 후반에는 상대적으로 맥을 못 추는 모습을 보였다. 안 선생 말대로 이러한 다른 강자들을 만나 보는 것만으로도 시야가 상당히 트였을 것이다.
[9]
더군다나 서태웅은 학업을 등한시해서 미국 대학농구에서 뛰려고 해도 학업성적이 본국에서도 저조했던데다 미국에 가서는 영어로 공부를 새로 시작해야 되는 부담까지 있으니 미국 선수들의 피지컬적 우세보다도 오히려 성적 문제가 발생해서 못 뛸 가능성도 높다. 아무리 체육 특기생이라도 GPA가 빵점이면 대학에서 충분히 문제삼는다.
[10]
아침 일찍 등교 전에 동네 농구터에 나오는 것과 풍전과의 인터하이 첫 경기에서
남훈의 더티 플레이에 부상을 당한 후에도 득점 후 "수백만 번이나 쏘아온 슛이다" 라고 한 점등이 그 예다. 물론 그 부작용으로 수업 시간에 자주 잔다는 거지만..
[11]
서태웅: "제가 조재중보다 못하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12]
그래도 다행스러운 점은 서태웅이나 강백호나 안선생의 조언을 무시하지 않고 들었다는 것이다. 물론 그 둘이 치러야 했던 대가는 컸지만(서태웅: 미국 유학, 강백호: 지방 원정 합숙), 자신들이 성장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고 이는 커다란 결실로 돌아왔다. 서태웅은 인터하이가 끝난 뒤 청소년 대표팀에 선발되었고, 강백호는 야투 훈련을 잘 따랐던 까닭에 산왕전의 버저비터를 쏠 수 있었다. 안 선생도 이점을 흐뭇하게 여김과 동시에, 조재중이 더더욱 안타깝게 느껴졌을 것이다. 강백호 같은 경우는 오히려 농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초짜여서 가르치기 쉬웠다. 강백호는 자기보다 훨씬 뛰어난 선수들이 있기에 농구에 대한 자만심을 가지지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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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이어 이것을 시기한 강백호가 서태웅을 걷어차자 서태웅 역시 강백호를 걷어차고 둘은 채치수에게 꿀밤을 맞는 걸로 마무리. 특히 마지막 대사는 환호하는 북산 벤치를 음영으로 뒷배경 처리로 하고 안 선생님에게 스포트라이트 연출로 강조해 극적인 장면을 만들었다. 더불어 원서에선 과거 조재중을 지도하던 흰머리 호랑이 시절의 거친 말투로 쓰여져 무게를 더했다. 원서의 어감을 보다 더 살려서 번역하면 "야, 재중아 보고있냐? 널 뛰어넘는 최고의 선수가 여기 있단 말이다, 그것도 둘이나!" 정도로, 되레 거칠게 쏘아붙이면서 끝내 자신을 믿지 못한 재중을 향한 실망감과 안타까움이 배가되는 연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