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darkslategray><colcolor=#fff> 조윤숙 趙允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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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66년 9월 11일 ([age(1966-09-11)]세) |
학력 |
서울여의도초등학교 (졸업) 여의도중학교 (졸업) 서울예술고등학교 (졸업) 이화여자대학교 (무용과 85 / 학사) |
가족 | 남편 김성원, 슬하 2남 |
데뷔 | 1978년 TBC 아역 2기 |
활동 기간 | 1978년 ~ 1981년 |
팬카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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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전 배우.2. 생애
동양방송 아역 2기로 데뷔해 TV 어린이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동양방송 합창단으로도 활동했다.1978년 서울여의도초등학교 6학년 재학 중 황순원의 소설 소나기를 영화화한 고영남 감독의 《 소나기》에 주인공 연이(소녀) 역으로 출연했다. 당시 은행지점장으로 재직 중이던 아버지를 둔 조윤숙은 서울의 좋은 집안에서 곱게 자란 소녀라는 영화 속 이미지와 잘 부합했고 순수한 관능미를 발산하며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이 무렵 임권택 감독의 '저 파도 위에 엄마 얼굴이'라는 반공 영화에도 출연했는데, 이 영화의 주인공은 《 소나기》의 석이(소년) 역의 이영수로 조윤숙의 분량은 거의 없다.[1]
여의도중학교 3학년 재학 시 이영우 감독의 《 하늘나라 엄마별이》에 주연으로 출연, 대종상 여자 신인상 수상이 유력했으나 아래 언급할 논란으로 인해 수상에 실패했고, 이 충격으로 영화계를 떠났다.
일반인으로 돌아가 서울예술고등학교를 마치고 1985년 이화여자대학교 무용과에 입학해 1989년 졸업했다. 1991년 무용가인 이화여자대학교 홍정희 교수와 경제학자인 서울대학교 김두희[2] 교수 부부의 장남 김성원과 결혼해 현재는 캐나다 밴쿠버에 살고 있다고 한다. #
3. 대종상 여자 신인상 논란
《 하늘나라 엄마별이》에서의 열연으로 1981년 제20회 대종상 여자 신인상 수상이 유력했으나 뜻밖에도 같은 작품에 단역으로 출연한 명정옥이 수상했는데 이를 두고 수상자가 바뀐 것이라는 논란이 있다.연기에 대한 평가란 것이 원래 주관적일 수는 있지만 명정옥은 영화에서 등장 씬이 다 모두 합쳐도 2분여에 불과하여 애초 연기를 평가할 만한 기본 분량조차 안 되는 말 그대로 단역이며, 영화의 플롯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 병풍 같은 역할로 별다른 표정 연기 없이 국어책을 읽듯 대사 몇 줄을 읽었을 뿐이다.
당시 시나리오 각색과 조감독으로 참여했던 김영한 감독의 회고에 따르면 조윤숙은 신인상을 예감하고 예쁜 옷을 차려 입고 시상식에 참가했는데 "《 하늘나라 엄마별이》에서 열연한 주인공이 수상자로 선정됐다"고 하여 벌떡 일어나는 순간에 엉뚱하게 단역의 이름이 호명됐다고 한다. 이에 이영우 감독, 김영한 조감독이 더 깜짝 놀라서 주인공이 바뀌었다고 집행부에 항의했지만 일사부재리 원칙에 의해 이미 불려진 이름을 바꿀 수 없다는 답변을 듣고 아연실색했다고 한다. # @ [3]
영하 30도를 오가는 대관령의 1월 혹한 엄동에 손발이 얼어터지는 맹추위를 이기면서 열연을 펼치고, 후시 녹음까지 본인이 스스로 마친[4] 조윤숙은 연기자로서 미래의 큰 비젼을 꿈꿨지만, 이 사건으로 꿈이 물거품이 되자 3년여에 걸친 짧은 연예계 생활을 접고 일반인으로 돌아갔다.
또한, 얼떨결에 신인상 수상자가 되어버린 명정옥도 이후 두어편의 작품에 단역으로 더 나오긴 했지만, 결국 영화계를 떠났다고 한다. 그리고, 이 작품의 이영우 감독도 영화계를 떠나는 이유가 되었다.
4. 출연작
4.1. 드라마
- 1978년 TBC 무쇠도령 이완대장
- 1979년 TBC 소년 홍길동 - 숙향이
- 1980년 TBC(KBS2) 바람돌이 장영실[5]
- 1980년 KBS TV 문학관 제1화 '을화'
- 1981년 KBS TV 문학관 제3화 '청춘극장: 민족의 비극'
- 1981년 KBS 날아라 새들아
- 1981년 KBS 뚝쇠장군 - 진달래
4.2. 영화
4.3. 기타
1981년 제작된 국정 홍보 영상 '나라살림 우리살림'. 김성원, 서우림, 조윤숙 출연.
[1]
주영훈도 나오는데 마찬가지로 비중은 없다.
[2]
일본
와세다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했으며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장을 역임했다.
[3]
당시는 엄혹한 독재 정권 시절이기도 하고, 또
스크린 쿼터제 아래
문화공보부가 선정하는 우수·추천 영화나 대종상 수상작에게 외화 수입 쿼터를 주던 시절이다. 외화 수입 쿼터를 따내면 눈 감고도 큰 수입이 보장되었기 때문에 제작사는 정부나 대종상 측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고, 주최 측에 더 이상 항의하거나 공론화하는 것은 불가능했다고 봐야 한다.
[4]
대종상 수상은 성우의 대역 녹음이 아닌 본인 녹음만 유효하다.
김지미는 허스키한 목소리 때문에 항상 성우가 더빙을 해 대종상과는 인연이 없다가 영화 '
토지'에서 처음 본인 목소리로 연기하여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5]
안정훈,
강수연과 출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