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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2-10-04 09:07:56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 상무위원회



1. 개요2. 연혁3. 참고문헌

1. 개요

1966년부터 1970년 사이에 존재한 조선로동당 정치위원회의 상위 기관. 오늘날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회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다.

2. 연혁

1966년 10월 12일, 2차 당대표자회에서 '당 및 국가 사업에서 제기되는 문제들을 일상적으로 협의하기 위하여' 조직되었다. 10월 12일 4기 14중전회에서 김일성, 최용건, 김일, 박금철, 리효순, 김광협 6인이 정치위원회 상무위원회 위원으로 선거되었는데, 2022년 4월, 김정은이 6인의 정치국 상무위원회 체제를 두기 이전까지 최다수의 상무위원회였으며 유일하게 짝수로 구성된 상무위원회이기도 했다.

정치위원회 상무위원회가 금방 없어졌고 그 구성원들도 대다수 숙청됐기 때문에 학계에서도 대단히 주목하진 않는데, 6인 전원이 빨치산 파벌, 혹은 범 빨치산 파벌이었다는 점에서 국내의 비 빨치산 파벌들의 숙청이 완료된 이후 빨치산 유일영도체계가 완성된 것이라고 생각해볼 수는 있다. 당위원장-부위원장 제도가 폐지되고 총비서 제도가 도입되면서 김일성 유일지도체제가 더욱 강화됐고, 김일성 우상숭배도 훨씬 더 세졌다. 하지만 1967년 초, 갑산파 사건으로 박금철, 리효순이 숙청되었으며 1970년 말에 김광협도 숙청되면서 정치위원회 상무위원회 중 무려 절반이 사라졌고, 갑산파나 자신의 혈통이 아닌 놈들 따위와 빨치산 정통성을 공유할 생각이 없던 김일성은 오로지 자신만이 빨치산 정통성을 향유하면서 김정일로의 세습을 준비하게 된다. 박금철 등은 숙청되기 직전까지 김일성 급은 아니지만 자신의 우상숭배를 어느 정도 시도하였으며, 일체의 공직이 없던 아내 서채순의 국장을 거행하는 등 과도한 세도를 부린 정황이 드러나는데 이러한 모습이 김일성의 비위를 상하게 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들이 숙청된 이후 1969년 12월, 박성철을 정치위원회 상무위원으로 보선하는 등 정치위원회 상무위원회가 완전히 의미가 없어진 것은 아니었으나 1970년 11월, 5차 당대회에서 폐지되게 된다. 현성일은 김일성이 자기에게 맞먹는 지위를 가지고 덤벼들 세력을 발붙일 곳을 원천차단해버리기 위해 정치위원회 상무위원회를 페지했다고 보았다.

이후 1980년 10월, 6차 당대회에서 김정일의 후계 세습이 준비되면서 다시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회가 설치되어 오늘에 이르게 된다.

3.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