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스탄티노폴리스 공방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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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방전 | ||
시기 | 서기 378년 | |
장소 | 콘스탄티노폴리스 | |
원인 | 하드리아노폴리스 전투의 패배로 인한 군사력 공백. | |
교전국 | 로마 제국 | 고트족 |
지휘관 | 도미니카[1] | 프리티게른 |
병력 | 불명 | 불명 |
피해 | 피해 규모 불명 | 피해 규모 불명 |
결과 | 로마 제국의 승리 | |
영향 | 테오도시우스 1세의 등극. |
제1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방전은 하드리아노폴리스 전투에서 승리한 고트족이 여세를 몰아 동로마 제국의 수도를 공격한 첫 번째 공방전이다.
공방전 자체는 견고한 성벽과[2] 동로마측 아랍인 전사의 활약에 질린 고트족의 후퇴로 싱겁게 끝났으나, 콘스탄티누스 1세가 콘스탄티노폴리스를 건설한 이후로 벌어지게 될 20여 차례의 콘스탄티노폴리스 공방전 중 첫 번째 공방전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전투다.(이전에는 테오도시우스의 삼중성벽에 막혔다고 적혀있었으나 삼중성벽은 테오도시우스 2세가 지은 것으로 테오도시우스 2세 즉위 전인 이 시기에는 삼중성벽이 없었다.)
당시 동로마 제국은 황제 발렌스가 전사하고 주력 야전군이 궤멸당한 상태에서 처음으로 수도가 공격받는 전무한 위기에 직면했다. 발렌스의 황후인 도미니카는 방어를 준비하는 한편 전투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인 아랍인들로 병력을 증강하며 서방에서 오는 지원군을 기다렸다. 이때 아랍인 병사 하나가 나체로 도시 밖에 뛰쳐나가 고트족을 상대로 무쌍을 펼쳤는데, 참수한 고트족 병사의 피를 마시는 엽기적인 행위를 벌여 고트족을 질리게 했다고...
게다가 겨울이 다가오고 있었고, 서방에서 발렌스 황제가 생전에 요청했던 지원군까지 동진하고 있어서 고트족은 포위를 풀고 퇴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