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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8:39:09

제이미 로맥/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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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SK 와이번스- SSG 랜더스 소속의 내야수 제이미 로맥의 선수 경력을 소개하는 문서.

2. 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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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MLB 시절

2.1.1.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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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의 마이너리그 생활 끝에 빅리그로 콜업되어 메이저리그 데뷔전을 치르는 모습. 오른쪽 옆에 류현진도 보인다.
민기자 코리안리포트 - 캐나다 거포 로맥의 야구와 인생

2014년 입단한 LA 다저스에서 11년의 마이너리그 생활 끝에 처음으로 콜업의 기쁨을 맛보았다. 2년 동안 다저스에서 27경기에 나서 36타수 6안타 타율 .167를 기록했다.

2.2. MiLB 시절

17세인 2003년 애틀랜타 브레이브스가 4라운드 127순위로 드래프트하였다. 브레이브스의 산하 구단에서 싱글 A 선수로 뛰다가 2007시즌 시작전 피츠버그 파이리츠로 트레이드되었다. 이후 캔자스시티 로열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1]에서 뛰었다. LA 다저스 시절 이후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의 트리플 A 구단에서 선수 생활을 지속했다.[2] 2015년 8월에 콜업돼서 애리조나 소속으로 MLB에서 뛰기도 했다.

2.3.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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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 유니폼을 입은 로맥의 모습.

2016년 아롬 발디리스의 대체 자원으로 약 68만 달러에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와 계약을 맺었다. 그리고 그후 발디리스는 다른 팀가서 먹튀로 전락한다.3루수로 기용하려고 계획했으나 처절한 수비력과 주전 우익수 카지타니 타카유키의 부상으로 우익수로 시작. 개막전에 5번 우익수로 선발 출전하며 큰 기대를 안았으나 부진한 모습을 보이면서 대타 요원으로밖에 나오지 못했다. 시즌 최종 성적은 30경기 71타수 8안타(.113) 0홈런 2타점. 한 시즌 뒤에 요코하마에서 뛴 투수 조 윌랜드보다도 못 쳤다.[3]

요코하마의 알렉스 라미레스 감독이 용병타자 출신이기도 하고, 그의 상황을 이해한다며 어떻게든 로맥에게 기회를 만들어 보겠다고 저렇게 처참한 성적임에도 불구하고 교류전 즈음 주전 외국인 타자인 호세 로페스가 부상당하자 로맥을 다시 중용해보기도 하고 또 망해서 2군으로 내려갔지만 어느 정도 순위가 결정된 9월 말미에 또 올려서 또 폭풍 삼진만 당하며 결국 팀의 클라이맥스 시리즈를 끝까지 지켜보지 못하고 정규시즌 종료 다음 날인 9월 30일에 투수 마이크 브로드웨이[4]와 함께 퇴단하게 되었다. 그의 부진에 요코하마 팬들은 해탈하여 오히려 웃음거리로 승화시키며 그가 대타로 들어왔을 때 엄청나게 열광한다던지 로막의 응원가 가사[5]를 인용하여 로맥은 '우리들의 별'이라고 부른다던지 그러고 놀았다. 이때 트위터에서 로맥 힘내라 라는 태그가 유행하기도 했다. 크보는 다르니까 잘하겠지, 일단 지켜보자 이적 후 요코하마 팬들 반응은 대체로 기왕 가게 된 거 잘했으면 좋겠다는 훈훈한 분위기였으고 실제로 잘하니깐 후술할 로맥과 로막이라는 어이없는 발언으로 놀고 있다.

2.4. SK 와이번스- SSG 랜더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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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서에 서명하는 로맥의 모습.

부상에 시달리던 외인 대니 워스를 방출한 SK 와이번스가 2017년 5월 7일, 총액 45만 달러(약 5억 1000만원·연봉 30만 달러, 옵션15만 달러)의 조건의 계약을 발표했다. 여담으로 로맥을 구단에 추천해준 사람은 다름아닌 이 당시 방출을 당한 대니 워스라고 한다. 워스를 당장 외국인 스카우터로

2.4.1. 2017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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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중반에 대체 외국인 선수로 합류했음에도 KBO 리그 역사상 최초로 규정타석 미만 30홈런에 역대 대체 외국인 타자 최다 홈런기록을 경신했으나 홈런 아니면 삼진식의 공갈적인 성향에 다소 아쉬움이 남았다. 허나 타격 능력을 인정받아 시즌 종료 후 재계약에 성공했다.

2.4.2. 2018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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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 리그 3만번째 홈런을 치고 난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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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과 달리 공갈포라는 이미지를 벗고 SK 와이번스 구단 역사상 최초 외국인타자 3할-40홈런-100타점-100득점-300루타의 위업을 이뤄[6] KBO 리그 정상급 타자 반열에 올랐고 불과 2년이라는 시간만에 인천의 장군이 되며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2.4.3. 2019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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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스타전에 출장해 더글라스 맥아더를 따라하고 타석에 들어선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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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4. 2020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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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TIP O'NEILL AWARD Win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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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mes "Jamie" Robert Romak
2020년 올해 최고의 캐나다인 야구선수에게 수상하는 팁 오닐 상의 수상자가 되었다. 지금까지 국대팀, 마이너팀 성적으로 받은건 있었지만 역대 최초로 해외리그에서 뛴 선수가 받았다. 2010년 들어선 조이 보토가 7번 수상하는 등 거의 독식체제였고, 보토가 에이징커브를 겪으며 저물어가던 2019년 마이크 소로카가 등장해 소로카의 독주체제로 넘어가나 싶었지만 2020년에 소로카가 아킬레스건 파열로 시즌아웃되면서 마땅히 줄 선수가 없던 차에 로맥이 틈새시장을 잘 공략했다.

2.4.5. 2021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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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시즌 연속 20홈런을 달성했지만 나이에 따른 하락세는 버틸 수 없었던 것인지, 성적이 뚝 떨어지면서 SK-SSG로 이어진 그의 마지막 커리어가 될 가능성이 높아졌을 정도로 좋지 못한 시즌을 보냈다. 같은 해의 박병호와 비슷한 시즌을 보냈다고 볼 수 있다.

이후 10월 31일 현역 은퇴 의사를 밝혔다. 로맥의 등번호 '27번'은 팀 주축 외국인 타자를 상징하는 번호로 남겨 다음 외국인 선수에게 전달하기로 했다.

2.5. 국가대표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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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 2007 야구 월드컵

청소년 시절에도 두각을 나타내 2002년 세계 청소년 야구 선수권 대회 등에 참가하는 등 2차례 국가대표 경험이 있었으며, 2007 야구 월드컵 엔트리에 포함되면서 성인 국가대표팀에 데뷔했다. 캐나다는 우리나라와 같은 그룹인 B조였고, 첫 경기부터 대한민국과 캐나다가 맞붙었으나 대한민국이 5-0으로 승리했다. 다음 경기인 캐나다 vs 태국전에는 타선이 대폭발하면서 캐나다가 18-0으로 콜드게임 승리를 가져갔고, 이후 남은 5경기 중에 3승을 챙겼지만 조별리그 5위로 아쉽게 떨어지면서 첫 국가대표 경험을 마무리지었다.

2.5.2. 2010 팬아메리칸 게임 예선 토너먼트

4년마다 열리는 아메리카 대륙 국가들을 위한 종합 스포츠 경기 대회인 팬아메리칸 게임의 예선 토너먼트 대표팀 명단에 포함됐다. 첫 경기인 니카라과 전부터 홈런을 기록하며 팀의 승리를 이끌었고, 푸에르토리코 전에서도 2루타와 홈런을 치면서 캐나다가 14-6으로 대승을 거두었다.

경기 내내 좋은 타격감을 펼친 결과 캐나다가 야구 월드컵 및 팬아메리카 본선 진출을 확정지었고, 로맥은 예선 토너먼트 MVP 및 올스타에도 선정되는 영광을 얻었다.

2.5.3. 2011 야구 월드컵

그리스와의 경기에서 2타점 3루타, 대만전에서 4회말 상대투수 린을 상대로 투런 홈런을 쳐냈다. 이후 캐나다가 네덜란드, 쿠바에 이은 동메달을 획득하면서 지난 2010 팬아메리칸 게임 예선 토너먼트에 이어서 좋은 분위기를 이어갔고, 신흥강호로 떠올랐다.

2.5.4. 2011 팬아메리칸 게임 본선

캐나다는 첫 경기부터 푸에르토리코를 상대로 1점차 승을 거두며 좋은 출발을 알렸다. 조별리그 최종전인 베네수엘라전에서 4-1로 승하면서 쿠바에 이어 B조 2위로 준결승에 진출했고, 준결승전에서 멕시코를 상대로 5-3 승리해 캐나다 대표팀 최초로 은메달 이상의 성적을 확정지었다. 10월 25일 미국을 상대로 결승전을 치렀고 3-2로 캐나다가 대회 첫 우승을 달성했다. 이후 공로를 인정받아 로맥을 포함한 2011 팬아메리칸 게임 엔트리 전원이 캐나다 야구 명예의전당에 헌액되었다.

2.5.5. 2017 WBC

한동안 국가대표에 합류하지 못하다가 6년만에 캐나다 야구 국가대표팀으로 복귀했다. 캐나다는 C조에 배정됐으며, 첫 경기인 도미니카 공화국과의 경기에는 대타로 출전했으나 삼진으로 물러났고, 팀도 2-9로 패배했다. 두번째 경기인 콜롬비아 전에 6번 타자, 우익수로 선발출전했다. 4타수 1안타를 기록했으나 팀은 4-1로 패배했다. 미국 전도 동일하게 6번 타자, 우익수로 선발출전했으나 출루에는 실패했고 팀이 0-8로 패배하면서 최종 4위로 WBC 2라운드 진출에 실패했다. 캐나다 대표팀은 이번 대회에서 부진을 면치 못했는데 특히 마지막 경기에 출전한 11명의 타자 중 9명이 1할대와 0할대의 타율을 기록하는 등 캐나다의 타선은 최악의 부진을 겪었다.


[1] 세인트루이스 AA에서 뛸 당시 최고 유망주로 발돋움하고 있던 오스카 타베라스, 2018년 NC 다이노스에서 뛰었던 재비어 스크럭스 등과 같이 뛰었고 감독은 현재 빅리그 감독인 마이크 쉴트였다. [2] 참고로 2015년에는 트리플 A PCL 리그에서 27홈런으로 홈런왕을 기록했다. 또한 일본/한국 기준의 규정타석을 채운 선수 중에서는 OPS 1위였다. [3] 조 윌랜드는 투수치고는 타격을 잘 해서 그 시즌에 부진한 야수들(...) 대신 대타로 나간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이후 기아타이거즈에 입단하기도 했다. [4] 이 선수는 대체 용병으로 와서 5경기 0승 0패 ERA 4.50을 찍었다.얼마나 못했는지 일본 용병들의 MLB 기록은 물론 KBO, CPBL 기록까지 적어놓던 일본 위키백과에서 이 선수의 MLB 기록을 안 적어놨다. 메이저 경험이 없는 줄 알았는데 있긴 있더라. 여담으로 일본 데뷔전 첫 타자 상대로 던진 초구에 홈런을 맞은(…) 기록도 있다. 이후 실책 등이 겹치면서 데뷔전부터 1이닝 5실점을 기록하며 장렬히 전사. [5] 일본 응원가 가사가 我らの星ジェイミー ビックなジェイミー大きな期待に答えて一発ホームラン~으로 '우리들의 별 제이미, 잘나가는 제이미, 큰 기대에 답해 일발 홈런!' 이런 뜻이다. [6] 호세 페르난데스가 2002년에 2할 8푼 1리 45홈런 107타점 기록 해 근접했지만 이루지 못한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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