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얼굴이 굳거나
무표정이 되는 것. 대개 심기가 불편하다던지, 무언가에 반대한다는 의미의 부정적 성격의 몸짓으로 받아들여진다. 인간의 표정은 본인의 의지로 어느 정도 컨트롤 할 수있는 영역이지만 그것이 항상 가능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본인도 의도하지 않은 속내가 이렇게 표현되기도 한다. 주로 심리적인 공격에 대한 방어기제로 나타난다. 인상에 따라 위압감이나 공포를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이것이 더욱 발전되어 공격의사를 갖추게 될 경우 흔히 말하는 화난 얼굴로 더욱 구겨지게 된다. 무표정은 이 단계 직전의 사전경고에 가깝다.
가만히 있어도 웃는 상이라고 평가받는 사람들이 있듯이 반대로 전혀 화나지 않았는데 정색하고 있는 듯한 얼굴 때문에 항상 화만 내는 것으로 오해받는 불운한 관상들도 존재한다. 이럴 경우 자신의 심리 상태를 겉으로 표현하는 것을 터부시하는 문화를 가진 단체에서 불이익을 많이 받는 편이다. 대표적으로
군대가 있다.
병영부조리가 점점 척결되면서 좋아지고는 있지만 웃는 상이든 정색하는 상이든 꼬투리 잡히기 쉬운 건 매한가지다. 어느 정도 짬이 쌓이면 후임들 앞에서
엄근진을 패시브로 달고 다닐 수 있지만 짬찌 때는 그저 묵념.
평소 조용하던 사람이 정색하기 시작하면 무섭다는 말도 있는데, 어느 정도 사실이다. 이는 그 사람이 어느 시점에서 어떤 것이 축적되어 한꺼번에 폭발했는지 자세히 관찰해 온 것이 아니면 알기 어렵기도 하고, 정색하는 본인도 어디서부터 끊어야 할지 실로 애매한 상황에 처하기 때문이다. 평소 이런 저런 장난을 주고받으며 어느 정도의 선에서 멈춰야 할지 익숙해진 사람들과 달리 남과 충돌해본 경험이 별로 없는 사람들은 그런 제한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1] 그런 리스크를 감수하고 용기 내서 부정의 의사를 표시하는 것이기 때문에 '예상치 못한 정색'은 정색하는 당사자나 상대방 모두에게 중요한 사건이 되기도 한다. 잘 되면 오해를 풀고 더욱 관계를 굳건히 할 수 있지만,
왜 그리 진지하냐고 일방적으로 무시하는 순간 감정의 골은 더 깊어지기만 할 뿐이다.바로 손절각이다
일시적인 감정 상태가 그 사람의 특징이 될 수 없는 것처럼 정색하는 것이 누군가의 정체성이 될 수는 없다. 특히 평소 표정 때문에 정색하고 있다고 오해받는 사람의 경우에는 더더욱 억울할 수밖에 없다.
자신의 표정이 항상 굳어 있다는 지적을 받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 신경이 많이 쓰인다면, 매일 아침 거울 앞에서 웃는 연습을 해 보자. 의식적인 웃는 표정이라도 상대방에게 호의를 표하기에는 충분하며 그 잠깐의 노력으로 자신의
평판을 바꿀 수 있다.
[1]
눈에 보이는 게 없을 정도로 화가 난 게 아닌 이상 정색하는 단계에서는 상대방의 반응을 살펴가며 수위를 조절하기 마련이다. 금방 풀자니 얕보일 것 같고, 그렇다고 계속 하자니 나만 졸지에 이상한 사람 될 것 같은 줄타기가 이어지는데, 이걸 어디까지 해야 하는지 누가 가르쳐 줄 리는 만무하다. 상대방의 감정을 읽는 타고난 센스가 없다면 경험으로 부대끼며 배우는 것이 최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