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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3-26 22:54:59

정구왕

정구왕의 역임 직책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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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2007년
1982 1983~1984
1985
1986
삼미
김구길
삼미
박준영
삼미/청보
정구왕
청보
김정수
1987 1988~1989 1990~1991 1992~1993
청보
양승관
태평양
김일권
태평양
김윤환
태평양
김동기
1994 1995 1996~1999 2000~2001
태평양
윤덕규
태평양
김용국
현대
김경기
현대
김인호
2002~2003 2004 2005 2006~2007
현대
이숭용
현대
전준호
현대
김동수
현대
이숭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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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8번
팀 창단 정구왕
(1982)
손상대
(1983)
{{{#ffffff [[삼미 슈퍼스타즈|삼미 슈퍼스타즈]]/[[청보 핀토스|청보 핀토스]] 등번호 17번}}}
이찬선
(1982)
정구왕
(1983~1985)
김신부
(1986~1989)
{{{#ffffff [[청보 핀토스|청보 핀토스]] 등번호 9번}}}
이영구
(1983~1985)
정구왕
(1986)
이연수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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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정구왕.png
정구왕
鄭丘旺 | Jeong Koo-wang
출생 1954년 3월 26일 ([age(1954-03-26)]세)
경상북도 성주군
국적
[[대한민국|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틀:국기|
파일: 특별행정구기.svg
행정구
]][[틀:국기|
파일: 기.svg
속령
]]
학력 경상중 - 경북고 - 중앙대
포지션 외야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 입단 1982년 삼성 라이온즈 창단멤버
소속팀 한국화장품 야구단 (1977~1978, 1981)
삼성 라이온즈 (1982)
삼미 슈퍼스타즈- 청보 핀토스 (1983~1986)
병역 육군 경리단 (1979~1980)

1. 개요2. 선수 경력3. 연도별 성적4. 기타5.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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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전 삼성 라이온즈, 삼미 슈퍼스타즈-청보 핀토스에서 활동한 야구 선수. 실업야구에서 이름 좀 날리던 테이블세터 형 타자였고 프로 입단 이후 노쇠화로 전성기를 누리지 못했으나 나름 삼미-청보에서 제몫은 했던 선수였다.

2. 선수 경력

1971년 경북고 입학 후 70년대 경북고 황금세대를 이끌던 정현발, 배대웅, 천보성 등과 함께 경북고 타선을 구성하던 타자였다. 중앙대 입학 이후에는 성적이 별로 좋지 않았던 중앙대에서 별 활약을 보이지 못했지만 실업 야구 한국화장품 야구단에 입단 후 2시즌 간 전성기를 보였다. 특히 78시즌에는 29경기 연속 안타 기록을 달성한 적이 있었다.[1]

파일:정구왕3.png
삼성 라이온즈 시절.

실업야구에서의 활약을 보고 삼성 라이온즈가 정구왕을 창단 멤버로 데려왔으나, 문제는 삼성에는 외야 자원이 차고 넘친다는 점이었다. 삼성은 창단 당시 바로 우승 전력으로 평가받을만큼 국가대표급 선수들이 차고 넘쳤는데, 오대석을 주전 유격수로 낙점하여 장태수가 외야수로 포지션을 변경하였는데, 장태수가 타율 .336으로 외야 한 자리를 꿰찬 것이다. 81시즌 실업야구 타격왕이었던 허규옥도 확고한 외야 주전이었고, 앞서 언급한 정현발도 정구왕과 비슷한 사정이었지만 이후 삼성에서 5시즌을 더 뛰며 정구왕보다는 더 경쟁력이 있던 선수였다. 또한 세계야구선수권대회 참가로 입단을 1년 미룬 장효조의 입단이 확실한 상황에서 정구왕은 82시즌 46게임 41안타 타율 .283 16도루로 나쁘지 않은 활약을 했으나 외야 자원의 교통정리가 필요했던 삼성은 정구왕을 삼미 슈퍼스타즈에 현금 트레이드로 이적시킨다.

삼미는 확실한 외야 자원이 양승관 밖에 없었을 정도로 선수난에 허덕이고 있었다. 김호인, 김경남은 부상에 신음하며 확고한 주전으로 낙점하기에 무리가 있었고 원년 시즌 도중 합류한 박준영은 말이 외야수지 사실상 지명타자였기에, 정구왕은 삼미의 주전 외야수로 출전하게 되었다. 그러나 83시즌 정구왕은 56게임 출장으로 지난 시즌보다 더 많은 경기에 출장하고도 29안타 타율 .186으로 매우 부진하였고, 주전 외야수는 갓 입단한 김대진이 가져가게 되었다.

파일:정구왕2.png
청보 핀토스 시절.

노쇠화로 인해 경기에 많이 출장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84시즌 이후 폭망 급 성적에서 벗어나서 외야 자원의 백업을 할 수 있는 선수로 자리를 잡았고, 85시즌 동안 삼미-청보의 주장을 맡으며 팀이 매각되는 과정에서도 팀을 받쳐주었다. 86시즌 후 팀에서 방출되어 은퇴하였다.

3. 연도별 성적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볼넷 사구 삼진 출루율 장루율 OPS
1982 삼성 46 .283 41 1 2 0 17 14 16 6 3 19 .325 .317 .642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볼넷 사구 삼진 출루율 장타율 OPS
1983 삼미 56 .186 29 0 0 1 11 8 3 5 1 15 .216 .205 .421
1984 45 .231 27 3 1 0 6 10 4 10 0 17 .289 .274 .563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볼넷 사구 삼진 출루율 장타율 OPS
1985 삼미 / 청보 49 .259 37 4 0 1 4 19 4 9 2 19 .312 .308 .619
1986 청보 92 .212 32 3 1 2 11 18 7 11 4 16 .281 .285 .566
KBO 통산
(5시즌)
288 .233 166 11 4 4 49 69 34 41 10 86 .284 .277 .560

4. 기타

이름 때문에 테니스를 했더라면 더 대성했을 것이라는 썰렁한 농담에 시달리기도 했다.

금광옥의 회고에 따르면 85년 삼미의 18연패 당시 주장으로서 선수단에 삭발을 하자고 제안했지만 장명부가 "성적과 머리가 무슨 상관인가" 하고 거절해서 없던 일이 된 적이 있다고 한다. 당시 삼미 선수단이 얼마나 장명부 중심으로 돌아갔는지 알 수 있는 대목.

이만수의 인터뷰에 따르면 은퇴 후 인천에 정착하여 정치 쪽 일을 했다고 하나 근황은 알 수 없다.[2]

5. 관련 문서



[1] 이 연속 안타 기록은 바로 다음 시즌인 79년 시즌에 상업은행 야구단 이원녕이 31경기 연속 안타 기록을 세우며 경신되었다. 프로야구에서는 1999년 박정태의 31경기 연속 안타, 2003-2004년 박종호의 39경기 연속 안타 기록이 있다. 다만 박종호의 기록은 두 시즌에 걸쳐 세운 기록이다. [2]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