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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21 01:58:22

전화앵



囀花鶯
생몰년도 미상

1. 개요2. 기타3. 기록

1. 개요

고려의 기녀. 동경(고려) 출신으로 사후 열박령(悅朴嶺)에 묻혔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이 고려 중기에 활동한 문인 김극기(1150? - 1209?)의 시를 인용한 것으로 보아 늦어도 고려 중기에 활동한 인물이었던 걸로 추정된다.

2. 기타

울산광역시에서는 전화앵을 신라 말 충절지사로 각색해 띄워주고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2011년 울산제일일보 기사 2014년 김종경 대기자의 전화앵 선양 사업에 대한 비판 의견, 2015년 울산문화 칼럼

2009년 울주군은 전화앵의 묘로 비정된 고무덤을 발굴조사한 적이 있는데 7세기 말 횡혈식 석실분으로 밝혀져서 해당 무덤이 전화앵의 무덤일 가능성은 없다. #

3. 기록

열박령(悅朴嶺)은 본부(경주부) 남쪽 30리에 있다. 동도(東都)의 기녀 전화앵(囀花鶯)이 묻힌 곳이다.[원주]
- 신증동국여지승람 경상도 경주부-
전화앵은 고려명기(高麗名妓)다.
최남선, 동경통지(東京通志, 1933)[2]

[원주] 김극기(金克己)의 시에, “옥 같은 얼굴 혼(魂)을 재촉해 간 지 오래인데, 하늘 끝에는 층층이 있는 산꼭대기만 보이네. 무협 신녀(神女)의 비는 무협(巫峽)에서 거두고, 미인의 바람은 낙천(洛川)에서 끊어졌네.구름은 춤추는 옷자락처럼 땅에 끌리고, 달은 노래하는 부채처럼 하늘에 떠 있네. 지나가는 길손이 몇 번이나 꽃다운 자질 슬퍼했던고? 수건 가득히 피눈물 흐른다네.” 하였다. [2] 최남선이 쓴 경주읍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