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전용재(田用在) |
출생 | 1968년 ([age(1968-12-31)]~[age(1968-01-01)]세) |
강원도 영월군 | |
가족 | 부모 |
죄명 | 살인죄 |
처벌 | 사형(형집행 무기한대기) |
수감처 | 서울구치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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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살인범. 1994년에 발생한 강태민 유괴 살인 사건의 범인이다. 1995년에 사형이 확정되어 현재까지 복역 중이다.2. 생애
강원도 영월군 출신인 전용재는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경기도 가평군으로 이주한 후 그곳에서 성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도 가평군의 모 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복무를 마친 뒤 1991년부터 1993년까지 경기도 부천시 도당동의 한 전자회사에서 공원으로 일하다가 실직했다. 이후 1993년 여름부터 1994년 1월까지 원양어선을 탔으며 원양어선에서 벌어들인 돈으로 1994년 1월 안산에서 이동통신 대리점 사업을 했으나 9개월만에 1,500만원의 빚을 지고 폐업한 뒤 생활고에 시달리게 되었다. 결국 사업자금 확보를 위해 범행을 계획하고 피해자로부터 환심을 사기 위해 자신의 애완용 강아지를 보여주며 데리고 놀게 하고 차를 태워 주는 등의 방법으로 얼굴을 익히며 사전에 치밀한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피해자에게 장난감을 사 주겠다고 접근하여 자신의 승용차에 태운 뒤 유괴 현장에서 6km 가량 떨어진 시흥시 장현동 모범산으로 끌고 가 입을 틀어막고 참나무에 묶으면서 범행을 실행에 옮겼다. 약 3시간 뒤 오후 7시 50분쯤 피해자의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아들 몸값으로 3천만원을 준비하라고 말한 뒤 끊었다. 이후 다시 전화해서 청량리역에서 오후 4시 20분에 출발하는 경춘선 기차를 타고 가다가 스프레이로 X자가 보이면 돈뭉치를 던지라고 전했다. 이어 피해자 어머니에게 오후 1시 30분쯤 경부고속도로 상행선 죽전휴게소에서 다섯번째로 마지막 전화를 걸어 오후 4시 49분 춘천행 열차를 타고 가다가 흰색으로 X표한 곳에 돈을 던져라고 마지막 전화를 했다. 하지만 돈뭉치가 없자 돈을 가져오길 기다렸고 오후 6시 10분 남양주군 화도읍 월산리 철길 주변에서 대기하다가 잠복 중이던 경찰에 붙잡혔다.피해자를 유괴한 이유에 대해 "평소 태민 군이 옷을 잘 입고 다녀서 부잣집 아이인 줄 알았다"고 했으나, 정작 피해자 태민 군은 안산의 서민아파트에 사는 공단노동자 부부의 아들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피해자는 유괴 당일 사망했으며[1], 체포 이후 극형을 면하기 위해 감금치사죄를 주장했으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죄가 인정되어 1995년 대법원에서 사형을 확정받았다.
3.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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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행 당시 같이 살던 동거녀[2]가 있었다고 한다.
- 검거 당시 이름이 전인재로 잘못 보도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