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북한의 외교관. 장성택의 누나 장계순과 결혼하여 장성택의 매형이었으나 그것 때문에 처형된 것으로 알려졌다.[1]
2. 생애
1937년 2월 11일 중국에서 태어났다. 국제관계대학 졸업 이후 전문 외교관 커리어를 밟아 왔으며 1973년 12월 아주국 국장을 거쳐 1978년 12월 포르투갈 대사에 임명되었고 1979년 1월에 부임하였다. 1983년 5월 10일 포르투갈 대통령과 작별방문한 후 귀국하였고 후임 대사로는 1983년 6월 김성준이 임명되었다. 1984년 4월, 정무원 외교부 부부장에 임명되었으며 1985년 12월 스웨덴 대사로 부임했고 1986년 5월에 아이슬란드 대사를 겸하였다. 상당히 오랫동안 스웨덴 대사를 역임하다가 갑자기 소식이 끊기더니 1992년 2월에 후임 대사 렴경식이 부임하였다.이 사정에 대해서는 태영호가 자세히 증언했는데 1992년 초 김정일이 북한 외교 고립을 극복하기 위한 창조적 방안을 제출해 보라고 하자 솔직하게 내부적으로는 붉은기를 지키되 외부적으론 공산주의 표현을 쓰지 않고 부드러운 임지를 조성하고 평양 시내에 자전거 통행을 허용하는 등 더 개방적 분위기를 조성해서 대외적 이미지를 개선하자고 제안했다. 그러자 김정일이 정신적으로 썩었고 제국주의자들의 공세에 겁을 먹은 반동이라고 길길이 날뛰는 등 처형당하기 일보직전까지 갔으나 강석주가 전영진은 장성택의 매형이라고 김정일을 말려서 목숨만 겨우 붙이고 북한으로 소환해 농장으로 하방되어 혁명화를 당했다.
2001년 6월, 대외문화련락위원회 부위원장, 조선-포르투갈 친선협회장 직함으로 다시 나타났다. 이후 북-네팔 친선협회위원장, 북-필리핀 친선협회 부위원장 및 위원장, 북-인도네시아 친선협회 위원장, 북-미얀마 친선협회 위원장, 북-베트남 친선협회 부위원장 및 부위원장, 북-말레이시아 친선협회 부위원장, 북-라오스 친선협회 부위원장, 북-몽골 친선협회 위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2003년 4월, 2006년 3월, 2008년 4월, 2008년 9월 중국을 방문하였으며 2008년 10월 몽골을 방문했다. 2009년 3월, 김영일 총리의 중국 방문을 수행하였으며 2009년 7월에도 북중 친선협회 대표단장으로 중국을 다녀왔다. 2009년 10월, 이란과 파키스탄을 방문했고 2010년 11월에는 베트남을 방문했다.
2011년 4월 6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에 따라 사회주의 강성대국 건설에 크게 기여한 일군으로 선정되어 노광철 등과 함께 김일성훈장을 받았으며 2012년 1월 신임 쿠바 대사에 임명되었다. 이후 베네수엘라, 트리니다드 토바고, 가이아나 등의 대사도 겸임하였으나 2013년 12월, 장성택이 처형된 후 대외활동을 금지당하다가 평양으로 압송당했다. 이후 장성택의 조카 장용철 부부와 함께 부부가 모조리 총살된 것으로 알려졌다.
3. 참고문헌
- 태영호, 3층 서기실의 암호(서울: 기파랑, 2018).
- 통일부 정세분석국 정치군사분석과, 북한 주요인사 인물정보 2017(서울: 통일부, 2016).
[1]
특이하게 조카며느리와 다르게 배우자인데도 친정과 함께 산골로 추방되거나 하지 않고 처형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