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pe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10-09 18:50:57

전계현

전계현
全桂賢
파일:external/image.cine21.com/K0000005_[W578-].jpg
출생 1936년 9월 28일
충청남도 공주군
(現 대한민국 충청남도 공주시)
사망 2019년 12월 20일 (향년 83세)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본관 천안 전씨 (天安 全氏)
학력 공주여자사범학교 (졸업)
종교 개신교( 순복음교회)[1]
가족관계 배우자 조경철[2]
자녀 1남 1녀
데뷔 1956년 연극배우
1957년 성우
1959년 영화 '가는 봄 오는 봄'

1. 개요2. 활동3. 출연 작품
3.1. 영화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 배우, 성우. 당시 명문학교인 공주여자사범학교(현 공주교육대학교)를 나온 재원이었다.[3]

2. 활동

최초의 TV탤런트 출신 영화배우로 원래 1956년 연극배우와 HLKZ-TV 1기 TV 탤런트로 데뷔했다가 1957년 특채 성우로 데뷔했다가 1958년 영화 어디로 갈까로 데뷔하여 이듬해 가는 봄 오는 봄으로 큰 흥행몰이를 하였지만 그 후로는 딱히 두드러진 활약을 보여 주지 않았다. 1960년에는 질투, 1963년에는 단종애사 등에 출연하기는 했지만 당시 정점을 찍은 여배우들이랑 비교했을 때 그렇게 눈에 띄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1968년 미워도 다시 한번에 주연급 조연으로 출연하여 인기를 얻으면서 본격적인 흥행배우로 인식되기 시작한다. 뿐만 아니라 당시 이혼한 뒤였는데, 조경철 박사가 미워도 다시 한번에 출연한 그녀에 반했으며 결국 결혼까지 이어져 백년해로하게 된다.

맡은 배역의 상당수가 첩이나 애인에게 남자를 뺏기는 부인 역이 많았다. 심지어 20대에는 맨발의 청춘이나 초우에서 엄앵란, 문희에게 신성일을 빼앗기고, 미워도 다시 한번 이후로 정점을 이루면서 화녀, 충녀에서도 그러한 역을 맡았다. 그녀는 조연으로 출연하기는 했어도 그녀가 출연한 영화의 상당수가 흥행 1위를 기록했다는 점[4]에서 현대의 오달수와 닮았다고 할 것이다.[5] 물론 미워도 다시 한번의 흥행 이후에 그녀의 단독 주연으로 흥행시킨 영화도 없지는 않았다. 1969년에 흥행몰이를 한 잊혀진 여인이 그 대표작이다.

3. 출연 작품

3.1. 영화



[1] 배우자 조경철 박사와 함께 여의도순복음교회에 출석하였다. 출처. [2] 모두 재혼이다. [3] 비슷하게 대구사범학교 출신이었던 방성자(1939~1979)도 있었지만, 이쪽은 비운의 인생을 보냈다. 동국대학교에 다니지 않았지만, 청강생으로 다니며 당시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였던 양주동 박사가 그녀를 상당히 아꼈다는 후문. [4] 무려 1968년에서 1972년까지! [5] 그녀만큼 5년 연속으로, 몇 회에 걸쳐 흥행 1위 영화에 출연한 여배우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