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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0 16:43:40

장영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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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3. 참고문헌

1. 개요

북한의 정치인.

개성시 당위원장, 책임비서를 역임했다.

2. 생애

초기 이력은 밝혀진 정보가 없으나 지방당위원회 출신으로 보인다.

2017년 6월, 황해북도 당위원회 부위원장 직함으로 로동신문 기자와 인터뷰하였으며 아첨조로 김정은이 제창한 만리마속도를 적극 추동하도록 매진하겠다고 다짐했다. 이후 별 소식이 없다가 2020년 2월, 조선로동당 제7기 제11차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개성시당 위원장 리태일이 량강도 당위원장으로 이임함에 따라 후임 개성시 당위원장에 임명되었다. 이후 2020년 4월 11일, 조선로동당 제7기 제12차 정치국회의에서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으로 보선되었다. 2020년 7월, 정치국 7기 14차 확대회의에도 참석했다.

2020년 10월 9일, 태풍으로 박살난 개성시 새집들이 행사에 참여했으며 80일전투 맞이 개성시 군민련합대회를 진행하였다. 2020년 12월에도 집들이 행사를 다녔으며 2021년 1월, 8차 당대회에서 중앙위원회 위원으로 승진하였다. 개성시 당위원장이 개성시 책임비서로 환원된 이후 유임되었다. 2021년 1월, 김정은 총비서 추대 기념 개성시 군민련합대회를 진행하였다.

2021년 3월, 1차 시군당 책임비서 강습회, 2021년 4월 6차 세포비서 대회, 2021년 6월, 8기 3중전회 및 정치국 8기 2차 확대회의, 2021년 7월 7차 전국로병대회 등에 참석하면서 활발한 활동을 보였다. 2021년 12월 17일, 김정일 사망 10주기 개성시 추도식에서 추모사를 읽었다. 2022년 1월, 조선로동당 8기 4중전회 결정관철 개성시 궐기대회에 참석했다. 2022년 5월, 현철해 장의위원을 지냈다. 하지만 이후 활동이 없으며 개성시 행사에는 당위원회 비서들이 대신 참석하고 있다. 그러다가 2023년 2월 16일, 광명성절을 기념하여 개성시 조선소년단 입단식에 참석한 것이 조선중앙텔레비죤을 통해서 보도되었다.

그런데 2024년 1월, 김영규가 신임 개성시 책임비서로 등장하면서 해임이 확인되었다. 대개 전원회의에서 인선이 이루어지면 그것이 공개되는 것이 원칙으로 자리잡힌 만큼 전원회의까지 기다리지도 못할 정도로 큰 사고를 쳐서 짤린 것으로 보인다.

3.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