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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5대 법제처 차장 장명근 張明根 | Chang Myung-kun |
|
출생 | 1938년 9월 27일 |
경기도 개성시 | |
사망 | 2023년 4월 21일 (향년 84세) |
재임기간 | 제5대 법제처 차장 |
1988년 3월 5일~ 1993년 3월 3일 | |
배우자 | 박숙향 |
자녀 | 장정환·장도환·장혜경 |
학력 |
동국대학교 법과대학 (법학 / 학사) 동국대학교 대학원 (법학 / 석사 수료) |
경력 |
법제처 법제관 법제처 2국장 민주정의당 법사전문위원 제5대 법제처 차장 ( 노태우 정부) 제2대 한국법제연구원장 ( 문민정부) 동국대학교 교수 국무총리행정심판위원회 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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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정무직 공무원.2. 생애
그는 경기도 개성시에서 태어났으며 6·25전쟁 시기 월남했다. 그리고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 시절하며 행정고시 시험준비를 하였고 1967년 5월 제5회 고등고시 행정과에 합격하였다. 이후 법제처로 발령 받았으며 1967년부터 1993년 퇴직당시까지 중간에 1987년부터 1988년까지 2년간 민정당의 법사전문위원으로서 활동한 기간을 제외하고 26여년간 법제처에서만 근무하였다. 그 기간 동안『법과 양귀비』라는 법제 칼럼집을 발간하기도 하였고 법제처 사무관으로 있을 당시인 1974년에 도미하여 조지 워싱턴 대학 로스쿨에서 1년간 미국의 법과 제도에 관하여 공부하였다. 이때 배운 것을 토대로 미국의 선진 법이론과 제도를 우리법제에 접목시키고자 노력하기도 하였다.[1] 그는 법제처로 돌아온 1988년도부터 퇴직시까지는 차장으로서 법제처 운영의 책임을 맡았으며 법제처에서 나온 후에는 한국법제연구원장직을 역임했다. 그리고 행정심판위원회 위원 정수가 35인에서 50인으로 증원되면서 김종필 국무총리에 의해 심판위원회의 위원으로 신규 위촉되며 국무총리행정심판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였다. 또한 동국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며 후배들을 위한 격언을 아끼지 않기도 하였다.3. 사망
2023년 4월 21일 사망했다.
[1]
당시 주로 일본의 법이론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고 일본의 법령을 그대로 가져 온 법령들도 상당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