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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04 22:22:21

장대일

대한민국의 前 축구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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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eeeee> 이름 장대일
張大一 | Jang Dae-Il
출생 1975년 3월 9일 ([age(1975-03-09)]세)
인천광역시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신체 184cm
직업 축구선수 ( 수비수[1] / 은퇴)
소속 <colbgcolor=#eeeeee> 선수 천안 일화 / 성남 일화 (1998~2000)
부산 아이콘스 (2000~2003)
양주시민축구단 (2008)
국가대표 15경기 ( 대한민국 / 1997~1998)

1. 개요2. 선수경력
2.1. 클럽팀2.2. 국가대표
3. 은퇴 이후4.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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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전 축구선수. 아버지가 영국인, 어머니가 한국인으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에 발탁된 최초의 혼혈 선수로도 유명하다.

2. 선수경력

2.1. 클럽팀

인천 출생으로 인천 동부초등학교, 만수중학교, 운봉공업고등학교를 나온 뒤 연세대학교를 졸업하였다. 고등학교때 까지는 공격수로 활약했으나, 대학 시절 김호곤 감독의 지도를 받으면서 수비수로 조련되었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1997년 연말에 있었던 98년 K리그 드래프트를 통해 부천 곽경근에 이어 1차 2순위로 천안 일화 천마에 입단하게 된다. 이후 2000년 시즌중에 성남 일화 천마에서 부산 아이콘스로 이적하였으며, 부산 아이콘스 이적 초기에는 괜찮은 평을 들었으나 2004년 부산 구단은 좋은 조건에 계약을 제시했음에도 부산을 떠나 다소 이른 나이에 프로 생활을 마감하였다.

당시에는 '내가 왜 인생을 축구에만 바쳐야 하나'라는 생각에 20년 가까이 축구만 했으니 다른 것을 해보고 싶어 축구를 일찍 그만두었다고 훗날 밝혔다. #

2008년 양주시민축구단에 입단해 오랜만에 현역 선수로 뛰기도 하였다.

2.2. 국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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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봄, 대통령배 전국축구대회에서 모교였던 연세대학교를 결승까지 이끄는 활약으로 당시 차범근 국가대표 감독에 의해 대학신분이었음에도 처음으로 발탁이 되었다.

이후 코리아컵에 참가한데 이어, 1998년 FIFA 월드컵 아시아 예선에서도 활약을 어어가며 차범근 감독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입증케 했다. 당시 언론은 장대일을 포스트 홍명보라 칭하기도 하였는데, 실제로 아시아 최종예선 우즈베키스탄 원정 경기에서 거의 맹활약을 펼친 뒤 1997년 11월 1일 잠실주경기장에서 펼쳐진 한일전에서 당시 경고누적으로 출전하지 못한 홍명보를 대신해 장대일을 대신 출전 시키기도 했다.

허나 이 경기에서는 경험 부족을 여실히 드러내며, 실점에 관여를 하며 0-2 패배를 막지못해 아쉬움을 남겼다. 이후 이듬해 프랑스 월드컵 본선 무대까지 뽑히긴 했지만, 홍명보 등 주전선수들에게 밀리며 아쉽게 경기 출전에는 실패하였다.[2] 이후 월드컵이 끝난 뒤 1998년 후반기 까지는 국가대표에 곧잘 차출되다가, 1999년부터 국가대표와의 연이 끊기게 되었다.

3. 은퇴 이후

은퇴 이후로 바로 이자카야 사업을 시작하였다가 여러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예능인으로 잠시 활동하기도 했으며, 특히 2004년에는 MBC에서 방영된 드라마 조선에서 왔소이다에 6회(12월 12일)부터 고정출연하며 배우로도 짧게나마 활동한 바 있다.

이후에는 건설업에 종사하며 주로 사업가로 활동했다고 한다. 이후 특종세상에서도 친한 지인와 같이 사업하다가 친한 지인에게 배신을 당하여 한동안 폐인 상태로 지냈다고 안타까운 모습을 이야기하였다.



2023년 1월 29일 일요신문의 스포츠 유튜브 썸타임즈를 통해 오랜만에 근황이 공개되었으며, 이후 축구전문 매거진 베스트일레븐이 영덕군에서 주최한 ‘풋볼페스타’ 행사에서 축구 지도 강사로 꿈나무와 호흡하며 오랜만에 축구인으로 활동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다. #

4. 기타



[1] 센터백 [2] 후에 장대일 본인이 직접 밝히기를 사실 벨기에전 마지막 경기를 남겨두고 차범근 감독이 이미 준비하라고 하는 등 경기출전이 거의 예정되어 있었지만 차범근 감독이 대회도중 경질당하여 결국 출전기회가 다시 수포가 되었던것이라고 아쉬움을 밝혔다. [3] 공교롭게도 후에 장대일에 이어 두번째로 혼혈출신의 국가대표로 발탁이 되었던 강수일 역시 음주운전으로 물의를 일으켰던 전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