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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바드 네쿠남/클럽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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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1. 초기1.2. CA 오사수나1.3. 그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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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자바드 네쿠남의 클럽 경력을 정리한 문서.

1.1. 초기

페르시안 걸프 프로 리그 팀인 파스 테헤란에서 유스 시절부터 7년 간 꾸준히 뛰다가 팀의 우승과 AFC 챔피언스리그 8강을 이루어 내고, 알 와흐다, 샤르자 등에서 뛰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 때까지만 하더라도 대한민국에서의 인지도는 거의 없었다. 애초에 네쿠남이라는 선수가 존재하는지도 모르는 축구팬들이 다수였다.

1.2. CA 오사수나

2006년 월드컵에서의 활약 이후 네쿠남은 분데스리가 헤르타 BSC, 리그 1 올랭피크 리옹과 링크가 있었으나 결국 2년 계약으로 CA 오사수나에 합류했으며 3년 + 1년 연장 옵션도 포함하여 500만 유로의 최소 릴리스 이적료 조항으로 이적하였다.

2006-07 시즌에는 27경기에 출전해 2골을 기록하였는데 라리가 15R 비야레알 CF와의 경기에서 이란 선수 최초 라리가 득점을 기록하였다. 그 밖에 UEFA컵 32강 토너먼트 2차전  FC 지롱댕 드 보르도전에서 연장 후반 120분에 마침내 결승골을 넣으면서 이적한지 첫 시즌 만에 준수한 활약을 펼쳤으며 다른 유럽 클럽, 특히 100만 파운드를 제안한 스코틀랜드 레인저스 FC의 관심을 끌었다. 이는 메흐디 마다비키아 알리 다에이에 이어서 이란 선수의 유럽 대항전 득점이기도 하다.
처음으로 이란 선수 UEFA컵 득점

어쨌든 순탄하게 오사수나의 핵심멤버가 될 수 있었지만 2007-08 시즌이 시작된지 얼마 되지 않은 2007년 8월 14일에 십자 인대가 파열되는 큰 부상을 겪고 대부분의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게 되었다. 독일 아우크스부르크에서 성공적인 수술을 받은 후 8개월 동안 출전하지 못했는데 그의 등번호 24번은 새로 영입된 야로슬라프 플라실에게 주어졌다.[1] 이렇게 다시 중동으로 돌아가나 싶었지만 저번 시즌에 보여줬던 활약이 꽤나 인상적이었는지 상당히 큰 부상에도 불구하고 오사수나의 감독은 네쿠남과의 계약을 2011년까지 연장시켰는데 부상 중인 선수를 4년을 재계약했던 걸 보면 그만큼 CA 오사수나가 네쿠남을 얼마나 아꼈는지 보여주는 대목.[2]

부상을 회복한 2008-09 시즌, 2008년 8월 31일, 네쿠남은 비야레알을 상대로 홈 경기에서 페널티킥으로 오사수나의 시즌 첫 골을 넣었다. 게다가 2009년 1월 19일 레알 마드리드 CF 원정경기에서 풀타임 출전하여 골을 넣었는데 팀이 비록 1-3으로 패했지만 아시아 선수로 유일무이하게 에스타디오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경기장에서 리그골을 기록했다.[3] 본인의 분전을 하였지만 팀은 강등권 언저리를 헤메던 시절이었는데 리그 최종전에서 레알 마드리드를 이기고 잔류가 확정되자 관중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오며 마치 유럽 대항전 우승이라도 한거 마냥 좋아라 하는 모습이 재미있다.[4]
2008-09 시즌에 35경기에서 8골 2도움을 기록하면서 라리가 진출 아시아 선수 단일 시즌 최다 득점 기록을 달성했으며 이 기록은 14년 뒤인 2023년 5월 23일이 되어서야, 레알 소시에다드 쿠보 타케후사 라리가 36R UD 알메리아전에서 리그 9호 골을 넣으면서 기록이 경신되었다.
레알 마드리드를 이기고 강등을 면하자 관중들의 대거 난입

2010년 10월 24일 말라가 CF와 경기에서는 1골 1도움을 기록하는 맹활약을 하였으며 이 날은 같은 팀에서 뛰는 이란 국가대표의 마수드 쇼자에이까지 득점에 성공하여 같은 팀의 이란 선수 두명이 골을 넣은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이후 CA 오사수나에서의 활약은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이라 항상 구단 역대 선수 순위에 오르고 있는데 오사수나에서 6년 동안 오사수나에서 라리가 149경기 24골, 합산 198경기 31골을 기록하고 팀에 크게 공헌하며 세계 최고의 리그들이 밀집해있는 유럽에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아올렸다고 평을 받고 있다.

1.3. 그 이후

2011-12년 시즌까지 오사수나에서 뛰다가 2012년 7월 21일, 거의 32세의 나이로 고국으로 돌아와 에스테그랄 테헤란 FC와 150만 달러 클럽 레코드 이적료로 2년 계약을 체결하여 이란 프로 리그 역사상 가장 비싼 선수가 되었으며 해당 시즌에 리그 우승을 이루어냈다.
2014년 1월 14일, 쿠웨이트 SC와 4개월 계약을 맺었는데 2월 2일에 첫 골을 넣었고, 알 쇼르타 SC와의 AFC 챔피언스 리그 플레이오프 1라운드와 레퀴야와의 3라운드 에서도 골을 넣었다. 네쿠남은 2014년 AFC 컵에서 3골을 넣었고 2013-14 시즌의 쿠웨이트 에미르 컵에서도 2번째 우승 트로피를 획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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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 오사수나로 복귀한 네쿠남
그렇게 이란과 중동에서 시즌을 보내다가 2014년 CA 오사수나로 복귀하였다. 오사수나는 2부로 강등되었지만 CA 오사수나에 대한 애정이 많다고 자주 인터뷰해 왔으며 오사수나를 라리가로 다시 승격시키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어느 덧 나이 만 34살이긴 하지만 오사수나에서는 서포터들에게 무척 인기가 높다.

이후 2015년 여름 오사수나를 떠나 자국리그의 사이파 FC로 이적했다.

2016년 7월 16일, 현역 은퇴를 선언하였고, 2016년부터 현재까지 이란 축구 국가대표팀의 수석코치를 역임하고 있다.


[1] 이 때까지만 해도 유리몸 기질이 상당한 부상빈도 높은 쓰기 어려운 선수였지만 이후 피지컬을 잘 활용 할 줄 아는, 예전보다는 훨씬 완화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2] 은퇴한지 오래되었음에도 생일을 축하하는 트윗을 보낼 정도로 클럽의 전설로 예우를 해주는 듯하다. # [3] 이 기록은 제법 오랜 세월 동안 2021년까지도 깨지지 않았다가, 2021년 9월 23일 바로 이강인이 골을 넣어 12년 8개월 만에 레알 마드리드 원정 라리가전에서 아시아 국적 선수가 골을 기록했다. 하지만, 소속팀 RCD 마요르카는 1-6으로 참패했다. 이후 딱 1주일 지나 2021년 9월 30일, FC 셰리프 티라스폴 소속인 우즈베키스탄 선수인 쟈수르벡 야흐시보예프 UEFA 챔피언스 리그 D조 조별리그 2차전에서 골을 넣으면서 아시아 국적 선수로 골을 기록하면서 아시아 국적 선수로 세 번째이자, 챔피언스리그 사상 처음이다. 덤으로 경기는 2-1로 FC 셰리프 티라스폴이 이기면서 사상 처음으로 레알 마드리드 원정에서 아시아 선수가 골을 넣고 승리한 기록이다. [4] 저때 상황이 극적이었는데 다른 팀의 경기결과까지 실시간으로 봐가면서 강등을 피하기 위한 경쟁을 하는 상황인데 하필이면 오사수나는 최종전이 라리가에서 매 시즌 우승경쟁을 하는 레알 마드리드였으며 곤살로 이과인에게 선제골을 내어주고 강등에 대한 공포가 현실이 되어가다가 처절한 사투를 벌이며 이기고 잔류를 확정지었으니 짜릿함이 배가 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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