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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16-08-20 19:55:19

일본서기/긴메이 덴노

1. 주의2. 권 18
2.1. 즉위전기(卽位前紀)2.2. 원년 : 540년2.3. 2년 : 541년2.4. 3년 : 542년2.5. 4년 : 543년2.6. 5년 : 544년2.7. 6년 : 545년2.8. 7년 : 546년2.9. 8년 : 547년2.10. 9년 : 548년2.11. 10년 : 549년2.12. 11년 : 550년2.13. 12년 : 551년2.14. 13년 : 552년2.15. 14년 : 553년2.16. 15년 : 554년
3. 권 19
3.1. 16년 : 555년3.2. 17년 : 557년3.3. 18년 : 558년3.4. 21년 : 561년3.5. 22년 : 562년3.6. 23년 : 563년3.7. 26년 : 565년3.8. 28년 : 567년3.9. 30년 : 569년3.10. 31년 : 570년3.11. 32년 : 571년

일본서기
일본서기 선화기 일본서기 흥명기 일본서기 민달기

일본서기 권 18, 19 긴메이 덴노.

1. 주의

제1품 좌평(佐平) 내신좌평(內臣佐平) / 내두좌평(內頭佐平) / 내법좌평(內法佐平) /
위사좌평(衛士佐平) / 조정좌평(朝廷佐平) / 병관좌평(兵官佐平)
제2품 달솔(達率)
제3품 은솔
제4품 덕솔(德率)
제5품 한솔(扞率)
제6품 나솔(奈率)
제7품 장덕(將德)
제8품 시덕(施德)
제9품 고덕(固德)
제10품 계덕 (季德)
제11품 대덕(對德)
제12품 문독(文督)
제13품 무독(武督)
제14품 좌군(佐軍)
제15품 진무(振武)
제16품 극우(克虞)

2. 권 18

2.1. 즉위전기(卽位前紀)

아메쿠니오시하라키히로니와노스메라미코토(天國排開廣庭天皇)는 워호도노스메라미코토(男大迹天皇)의 적자(嫡子)이다. 어머니는 타시라카노키사키(手白香皇后)라고 하는데, 덴노가 사랑하여 항상 좌우에 두었다. 덴노가 어릴 때 꿈에 어떤 사람이 나타나, “덴노께서 하타노오오스지(秦大津父)[1]라는 자를 총애하면, 커서 반드시 천하를 가지게 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잠에서 깨어 사람을 보내어 널리 찾으니, 야마시로국(山背國) 키노코오리(紀郡)의 후사쿠사노사토(深草里)에서 찾아냈다. 성(姓)과 이름이 과연 꿈꾼 바와 같았다. 이에 매우 기뻐하며, 아직까지 없던 꿈이라고 찬탄하였다. 그리고 “그대에게도 무슨 일이 있었는가”라고 물으니, (하타노오오스지는) “아무일도 없었습니다. 다만 신(臣)이 이세(伊勢)에 가서 장사하고 돌아오는데, 산에서 두마리의 이리가 서로 싸워서 피투성이가 되어 있는 것과 맞딱뜨렸습니다. 곧 말에서 내려 입과 손을 씻고 기도하며, ‘너는 귀한 (神)인데 거친 행동을 즐기고 있다. 만일 사냥꾼을 만나면 잡히게 될 것이다’라고 말하여, 억지로 싸움을 그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피묻은 털을 씻어주고 놓아 보내 다같이 생명을 보전하게 하였습니다”라고 말하였다. 덴노가 말하길, “반드시 이것이 그 보답일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가까이에 두어 섬기게하고 총애함을 날로 새롭게하니, 크게 부요함을 누리게 되었다. 덴노가 즉위하자 대장성(大藏省)에 임명되었다.

4년 겨울 10월에 타케워히로쿠니오시타테노스메라미코토(武小廣國押盾天皇)가 죽었다. 황자인 아메쿠니오시하라키히로니와노스메라미코토는 군신에게 명하여 "나는 어리고 학식이 미천하여 아직 정사에 능하지 못하다." 야마다노 황후(山田皇后)는 모든 정무에 능통하시니 즉위하여 처리하시라 청하라"라고 하였다. 야마다노 황후는 놀라 사양하며 "첩은 은총을 입은 바가 산과 바다와 같습니다. 어려운 국정을 어찌 부녀가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 황자는 노인을 공경하시고 어린 자에게 인자하시며 현자에게는 예로써 대하십니다. 또한 어렸을 때부터 재능이 뛰어나셔서 일찍부터 칭송하는 소리가 높았습니다. 성정이 관대하시어 힘써 주위를 안정시키신다 하십니다. 청컨대 여러 신하들은 빨리 제위에 오르시게 하여 천하에 군림하게 하십시오."라고 말하였다.

겨울 12년 경진삭 갑신에 아메쿠니오시하라키히로니와노스메라미코토가 덴노로 즉위하였다. 이때 나이는 천황이 대괴기에는 어린 나이였다. 황후를 높여서 황태후라 불렀다. 오호토모 카나무라(大伴大連金村)와 모노노베노오오무라지오코시(物部大連尾輿)를 대련으로 삼고, 소가노우마코노스쿠네(蘇我 馬子宿禰)를 대신으로 삼은 것은 모두 예전과 같다.

2.2. 원년 : 540년

2.3. 2년 : 541년

2.4. 3년 : 54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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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4년 : 543년

2.6. 5년 : 544년

2.7. 6년 : 545년

2.8. 7년 : 546년

2.9. 8년 : 547년

2.10. 9년 : 548년

2.11. 10년 : 549년

2.12. 11년 : 550년

2.13. 12년 : 551년

2.14. 13년 : 552년

2.15. 14년 : 553년

2.16. 15년 : 554년

3. 권 19

3.1. 16년 : 555년

3.2. 17년 : 557년

3.3. 18년 : 558년

3.4. 21년 : 561년

3.5. 22년 : 562년

3.6. 23년 : 563년

3.7. 26년 : 565년

3.8. 28년 : 567년

3.9. 30년 : 569년

3.10. 31년 : 570년

3.11. 32년 : 571년



[1] 하타노씨(秦氏)는 오진덴노 시기에 한반도에서 도래해 온 궁월군(弓月君)의 자손이라고 하는데, 중국계라고도 한다. 그들의 출자가 진한(辰韓) 즉 진한(秦韓)이었으므로 진씨(秦氏)라 불렸던 것이다. 이 기사는 킨메이덴노(欽明天皇)가 왕위에 오르기 전에 백제계(百濟系)의 도움을 받았음을 보여준다. [2] 현재의 나라시 [3] 금관국 또는 가야연맹체를 부르는 말. 임나라는 말이 가장 먼저 보이는 우리나라의 자료는 광개토대왕비(廣開土王陵碑)인데 ‘임나가라(任那加羅)’라는 단어가 보인다, 《삼국사기(三國史記)》 권46 열전6 강수전에 의하면 강수가 ‘신은 본래 임나가라 사람입니다(臣本任那加良人)’이라 적혀있는 것을 알수가 있다. 한편 봉림사지경대사비(鳳林寺眞境大師碑)에는 “俗姓新金氏 其先任那王族...遠祖興武大王”이라는 기록이 보이며, 본 항목인 긴메이 덴노 22년 봄 기사를 보면 "신라가 임라 궁가(官家)를 공격하여 멸망시켰다【어떤 책에서는 21년에 임나가 멸망하였다고 한다. 통틀어 말하면 임라이고, 개별적으로 말하면 가라국(加羅國),안라국(安羅國),사이기국(斯二岐國),다라국(多羅國),졸마국(卒麻國), 고지국(古嵯國), 지타국(子他國), 산반해국(散半下國) , 걸찬국(乞飡國), 임례국(稔禮國) 등 모두 열나라이다】." 한편 가야국의 명칭은 학계에서는 보편적으로 가야(加耶)를 사용하나, 각종 저술에서는 伽倻, 伽耶, 加羅, 伽羅, 迦羅, 呵羅, 加良, 駕洛, 伽落 등으로 다양하게 나타난다. [4] 28대 센카 덴노 [5] 한기(旱岐)는 가야 소국들의 지도자를 뜻하는 말이다. [6] 일본서기에만 나오는 직책으로 상좌평, 중좌평, 하좌평이 나타난다. 일각에서는 직책으로 분류되는 것이 아닌, 지배귀족의 신분 서열을 표현하는 방식일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한다. [7] 무관의 관직으로 추정된다. [8] 갑배는 칭호, 매노가 이름이다. [9] 일각에서는 영락 17년 전투를 말한다고 보기도 한다. 물론 이 전투에서는 고구려가 상대를 개박살 내버렸기 때문에 영락 17년 전투를 말하는 거라면 이 기록은 사실과 다르다. 역시나 일뽕맞은 역사서 [10] 하내직. 이름이 아니라 직책 명이다. [11] 아현은 칭호, 이나사가 이름인듯 하다. [12] 원래 금관국을 의미하는 단어였으나 이 시기에는 이미 신라 금관국이 병합된 상태이기 때문에 가야의 다른 소국들을 말하는 단어로 추정된다. 현재 섬진강 유역 혹은 경상남도 서남부 지역이라는 의견과 낙동강 유역의 신라와 안라 국경지역으로 보는 설로 나뉜다. [13] 신라에게 멸망한 남가라, 탁기탄, 탁순등의 부흥을 의미한다. [14] 백제 16관등중 9위였던 고덕을 의미 [15] 인도차이나 남부 메콩강 하류에 위치해 있던 나라. 3세기에는 매우 강력한 국력을 유지해 말레이반도까지 진출했지만 6세기 후반 몰락했고 7세기 전반부에 멸망했다. 이 기록을 통해 백제가 인도차이나 반도와 교역을 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16] 백제 신라를 방비하기 위해 국경을 넘어 한반도 남부를 직접 관리 했다는 기록으로 보기도 한다. [17] 위에 2년 7월조에는 전부 나솔 비리막고로 나온다. 덕솔이 16관등중 4등급 관직인것을 보면 2년새 진급한듯. [18] 백제관료중에서 왜계로 넘어온 사람으로 추정한다. [19] 아탁을 지명에서 유래한 백제의 복성으로 추정하는 학자도 있다. [20] 왜인과 한인 사이에서 태어난 백제 관료. 긴메이 덴노 8년에 원군을 요청하기 위해 다시 일본을 방문한다. [21] 왜인과 한인 사이에서 태어난 백제 관료. [22] 2월에 그 내용이 나와있다. [23] 백제 임라를 의미. [24] 현재 경상남도 함안군 칠원면 일대로 추정. [25] 현재의 경상북도 고령군 두곡면 하산. [26] 만주에 거주하던 숙신 출신의 사람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27] 모밀잣밤나무의 열매. [28] 궁중의 요리사로 일하던 관료였다. [29] 백제와 임나를 말한다. [30] 고구려를 의미한는 단어로 백제쪽의 사서에서 고구려를 향해 부르는 멸칭으로 등장한다. [31] 덴노에게 바치는 특산품 [32] 여기서 문휴를 대성팔족 중 하나인 목씨(木氏)에서 갈라져 나온 성씨로 추정하는견해도 있다. [33] 충남 예산지역에 위치한 것으로 추정되는 성이다. 삼국사기에는 비슷한 시기에 독산성이 고구려의 침입을 받았다는 기록이 남아있기에 독산성과 같은 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견해도 있다. 다만 현재까지는 독산성은 경기도 포천시 일대에 위치한 것으로 추정되기에 같은 성으로 놓지는 않는다. [34] 현재 충남 논산군. [35] 시덕 구귀의 관직명으로 추정된다. [36] 긴메이 덴노 5년에는 달솔이라는 직책으로 등장. 2등급 직책에서 6등급 직책으로 강등되었는데 아마 백제 내부에서의 문제 인듯 하다. [37] 현재의 평양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북한산 일대를 일컫는 말인 남평양을 의미한다. 아차산에서 발굴된 고구려 보루들이 이 남평양을 방어하던 시설로 보는 시각도 있다. [38] 삼국사기에는 백제본기 성왕조에는 나타나지 않고 고구려 본기와 신라본기에 짤막하게 기록되어있다. [39] 백제의 5부중 하부(下部)로 추정. [40] 불교에서 사용하는 깃발들 [41] 이 기록을 통해 백제에서 일본으로 불교가 전래되었다는 사실을 알수가 있다. 일본 내에서는 불교의 최초 전래가 긴메이 덴노 13년(552년)설과 538년 설로 나뉜다. [42] 중국에서 제후의 신하를 의미한다. [43] 우두방은 현재 정확한 위치를 알수 없으며 니미방은 현재의 동두천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44] 현재의 오사카만 일대. [45] 일본서기에서 주로 덴노의 측근을 일컫는 말로 사용된다. [46] 많은 목재를 조립해 만든 선박 [47] 백제계 관료로 신라가 이름이다. [48] 궁궐을 의미한다. 따라서 수도를 의미. [49] 신라를 일컫는 비칭으로 《양직공도》 백제국사조에서도 백제 사신이 양나라에가서 백제 주변의 작은 나라들을 열거한 기록이 남아있는데 이 기록에도 신라를 사라라고 칭하는 것을 확인할수 있다. [50] 위에서 등장하는 우치노오미(內臣)을 의미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위에서도 언급되었지만 내신은 덴노의 측근을 의미한다. [51] 관산성을 의미한다 [52] 현재의 九州를 말한다. [53] 현재 충청북도 옥천군 군서면으로 추정한다. [54] 충청북도 보은군에 위치한 마을로 추정. [55] 보통 축자국조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는데 일본에서 온 장수로 추정된다. [56] 나니와진을 말한다. 현재의 오사카 일대. [57] 당시 신에게 바치는 제사를 담당한 총 책임자. [58] 신사에서 제사를 담당하는 사람들. [59] 경상남도 남해도 일대로 추정. 弖는 현대에는 호라고 발음하지만 고대에는 저라고 발음했다. [60] 정부에서 파견한 둔창 관리 및 세금 담당자. [61] 둔전에서 경작을 하던 백성을 말한다. [62] 사신을 접대하는 관리. [63] 궁궐(=수도)을 의미한다. [64] 삼국사기에는 진흥왕 23년(562년) 9월에 가야가 반란을 일으키자 이사부 사다함이 이를 평정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65] 형벌을 담당하는 직위를 의미한다. [66] 전라북도 장수의 번암, 전라북도 하동 고소성 지역 중 하나로 추정된다. [67] 여담이지만 후일 미국 남북전쟁 당시 앤티텀 전투에서 똑같은 일이 일어나 남군의 작전계획이 북군에게 전부 누설된 일이 있다. [68] 백기의 의미도 알지 못할 정도로 일본 장수들의 수준이 낮았다는 의미로 볼수 있다. [69] 호적 [70] 다른 기록에는 81세로 나와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