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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하대학교/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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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25%> 역사 ||<width=25%> 재단 ||<width=25%> 상징 ||<width=25%> 출신 인물 ||
제도
입학 학부 학사 제도 대학원
||<-5><tablewidth=100%><bgcolor=#005bac> 생활 ||
학교생활 캠퍼스 교통 주변 환경 응원가
관련 기관
한진그룹
( 대한항공)
인하대병원
(인천 중구 인하대병원·국제의료센터·김포메디컬센터)
야구부
}}}}}}}}}}}} ||


1. 역사
1.1. 1950-60년대: 인하공과대학의 개교와 발전1.2. 1960-80년대: 한진그룹의 인수와 종합대학으로의 발돋움1.3. 1990년대: 꾸준한 발전1.4. 2000-2010년대: 전성기를 맞은 인하대학교1.5. 2020년대: 답보
2. 역대 총장

1. 역사

1.1. 1950-60년대: 인하공과대학의 개교와 발전

<rowcolor=#FFFFFF> 일자 내용
1952.12.01 이승만 대통령, 하와이 교포 이주 50주년을 기념하여 인천에 공과대학을 설립할 것을 제안.
1954.02.05 인하공과대학의 설립이 인가, 대학에 금속, 기계, 광산, 전기, 조선 및 화학공학의 6개 학과를 설치
1954.04.24 인하공과대학(IIT:Inha Institute of Technology) 개교
1958.01.28 병기공학과 및 응용물리학과(원자력공학 전공)를 추가하여 8개 학과 체제로 변경
1958.03.14 대학원의 설립이 인가되어 금속, 기계, 광산, 전기 및 화학공학 등 5개 학과에 석사학위 과정을 설치
1960.02.20 토목 및 건축공학과 추가 설치로 10개 학과 체제
1962.01.17 병기 및 원자력공학과를 폐과하여 총 8개 학과 체제로 복귀
1964.02.24 인하학원 재단법인에서 학교법인으로 변경
1966.12.28 응용물리학과 재개설로 9개 학과 체제
1967.12.06 정밀기계공학과 설치로 10개 학과 체제

인하공과대학 개교 영상
파일:인하대교표변천사.jpg
인하대학교의 교표 & 교기 변천사
...이 대학계획이 시작된 것은 50년 전에 한국 이민이 인천에서 하와이에 들어가서 아메리카 대륙으로 연결되여 한국 독립운동을 계속 진행하여 온 것을 기념하며, 따라서 그 이민들의 자녀들이 하와이와 대륙 각처에 경제와 사외 각 방면으로 유력한 권위를 가지게 된 것을 기념하며, 이 앞으로 한국과 하와이 사이에 연결과 우의를 돈독히 하여 그리로 달하여 미주(美洲)까지 연결하는 징검다리를 만들려는 목적으로 이 인천 하와이에 물질과 성심을 합하여 인하대학을 만들고 대학의 주지는 공과대학을 만들어서 마치 미국의 MIT와 같은 미국에 제일 유명한 공과대학을 의미한 것이니...- 1953년 담화문 "인하대학(仁荷大學) 설립에 관하여"

설립부터 하와이 교포들과 깊은 관련이 있는 학교로 이름인 "인하"도 천과 와이의 앞글자를 따와 지어진 것이다. 인하대학교의 전신인 인하공과대학은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공업 입국의 초석이 될 지도자 양성을 위하여 미국의 MIT와 같은 최고의 대학을 한국에 세우겠다는 뜻으로 설립이 추진되었다. 그래서인지, 인하대학교가 종합대학으로 승격하기 이전의 이름은 IIT (Inha Institute of Technology)[1]였다. 이승만 당시 대통령은 하와이 동포들의 성금과 하와이 한인 기독교학교 매각대금 등 15만 달러를 근본으로하여 정부 출연금 6,000만 환, 민간 기부금 2,774만 3,249 환, 인천시의 토지 기부 등으로 1954년에 인하공과대학을 개교했고 초대 학장에 한국인 최초의 이학박사인 이원철 박사가 취임하였다.[2] 당시 인하대의 설립자금이 되었던 하와이 한인들의 성금 15만 달러는 원래 하와이 교민들이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하며 번 일제강점기 독립운동 자금이었으며 광복을 맞은 뒤 고국에 공과대학이 생긴다는 소식을 듣고 피땀어린 자금을 기부한 것이었다.[3] 그렇게 민족대학으로 6개 학과, 180명의 신입생으로 시작한 인하대는 폐허가 된 조국 재건에 앞장서며 조국 근대화와 역사를 함께하며 현재에 이르렀다.
파일:인하대_1회_입학생.jpg

인하공과대학 1회 입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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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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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립 전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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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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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하공과대학 개교 기념 아치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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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정문 [7] }}}}}}}}}

중간에 개교하고 몇 년 지나지 않았을 때 학교가 문을 닫게될 위기가 있었는데 이것이 1958년에 일어난 학제개편 파동이다. 당시 한국은 전후 복구 과정에서 당장의 전선, 파이프, 철공, 목공 등을 만드는 단순 기술인력들이 대거 필요했는데 이런 것은 고등교육이나 연구가 필요한 일들이 아니었다. 그래서 정부는 O.E.C[8]의 원조로 중앙종합직업학교를 만들려고 했고 더 나아가 아예 인하공과대학을 폐쇄하고 중앙종합직업학교를 신설하려 했다. 당시 인하공과대학은 이미 1회 졸업생이 배출되고 대학원까지 설립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당연히 재학생들은 격렬하게 반대했고 학교 내에 부설로서 직업학교를 개설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있으나 인하공과대학의 폐쇄를 전제로 한 직업학교의 설립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결의문을 발표했다.

당시 조선일보는 "기술학교를 세우려고 대학을 폐지하는 것도 문화향상인가"라고 비판했고 경향신문도 5월 20일 사설에서 "O.E.C의 원조가 물론 우리의 실정으로서는 매우 필요하다 하겠으나 인하공과대학과 직업학교를 양존시키기 위해서라면 몰라도 교각살우의 졸책으로 나오는 것은 도저히 묵과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인천시 의회와 경기도 의회도 개편안 철회를 촉구하는 결의안을 가결하고 교수단에서도 반대 성명서를 내자 이사회는 기존 개편안을 철회하고 인하공과대학은 그대로 존속시키면서 부설로 2년제 직업학교를 개설하는 것으로 결정이 났다.[9]

1954년 개교 당시 학과는 기계공학과, 화학공학과, 전기공학과, 금속공학과, 광산공학과, 조선공학과 이렇게 6개였다. 이후 1958년에 병기공학과와 원자력공학과를 추가로 설치하였는데 국내 대학에선 기존에 존재하지 않던 최초의 전공들이었다. 1959년에는 토목공학과와 건축공학과, 공업경영학과를 신설하였다.

1.2. 1960-80년대: 한진그룹의 인수와 종합대학으로의 발돋움

<rowcolor=#FFFFFF> 일자 내용
1968.09.14 한진그룹 조중훈 회장이 인하학원 이사장으로 취임
1968.12.26 요업, 전자 및 공업경영학과 개설로 총 13개 학과 보유
1969.02.04 대학원 석사학위과정에 토목 및 건축공학과가 증설 인가
1969.12.24 광산공학과를 자원공학과로 개칭함. 섬유 및 고분자 공학과를 설치하여 총 15개 학과를 갖춤
1970.03.07 금속, 기계, 전기 및 화학공학 4개학과에 박사학위 과정을 설치
1970.12.31 공업경영학과를 산업공학과로 개칭하고, 통신공학과를 설치하여 총 16개 학과를 갖춤
1971.12.31 기존에 존재하던 공과대학에 항공 및 생물화학공학과를 설치하여 18개 학과를 갖추고, 수학, 화학 및 가정학과 3개 학과로 구성된 이과대학, 경영학과 1개 학과로 구성된 경영대학을 신설하여 3개 단과대학에 22개 학과를 갖춘 종합대학으로 승격함. 종합대학 승격에 따라, 학교 명칭을 인하공과대학에서 인하대학교로 변경
1972.12.26 사범대학을 신설. 국어교육과, 사회교육과, 외국어교육과 3개 학과를 사범대학에 설치
1973.12.31 경영대학에 무역학과, 사범대학에 공업교육과를 개설하고, 이과대학에 속하던 가정학과를 사범대학으로 이관하여 가정교육과로 변경
1975.12.30 이과대학에 생물학과를 개설
1976.12.31 경영대학을 법경대학으로 개편하고 법학과 및 행정학과를 추가함
1978.02.15 교육대학원 설치
1979.09.22 법경대학에 외교학과, 사범대학에 불어불문, 중어중문, 일어일문학과를 개설함
1980.10.02 공과대학의 요업공학과를 무기재료공학과로 변경. 법경대학을 경상대학과 법정대학으로 분리. 사범대학에서 문과대학을 분리하여 국어국문학과, 영어영문학과로, 사학과, 불어불문, 중어중문, 일어일문학과를 문과대학에 배속시킴
1980.11.03 경영대학원 설치
1981.10.20 공과대학에 환경공학과를 설치하고 공업교육과를 폐과함. 가정대학을 설치하고 가정관리학과, 식품영양학과 및 의류학과를 배속시킴
1982.10.05 법정대학의 외교학과를 정치외교학과로 개편
1982.11.20 이과대학에 물리학과 및 해양학과를 설치하고, 사범대학에 교육학과, 경상대학에 경제학과를 설치함
1984.10.05 의과대학을 신설하여 하위에 의예과를 둠
1985.07.19 미국 메릴랜드 대학교(University of Maryland)와 교류협정 체결
1986.04.01 프랑스 르아브르 대학(University of Le Havre) 교류협정 체결
1986.11.16 이과대학에 수학과, 통계학과, 경상대학에 상업교육과를 설치하고 의과대학에 의학과를 신설하는 것을 교육당국으로부터 허가받음
1987.10.15 의과대학에 부속병원 설립이 인가됨.
1987.10.15 영국 뉴캐슬 대학(University of Newcastle upon tyne)과 교류협정 체결
1989.02.17 미국 하와이 대학교(University of Hawaii)와 교류협정 체결
1989.03.13 조선공학과를 선박해양공학과로, 항공공학과를 항공우주공학과로, 일어일문과를 일어일본학과로, 중어중문과를 중국어중국학과로 학과 명칭을 변경

그러던 중 1960년 4.19 혁명이 일어났고 그 여파로 혼란스런 학내 분규를 거쳐 재단 이사들이 모두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 후 교수회, 후원회, 동창회 인물들로 구성된 과도 이사회가 만들어졌고 당시 재정적 기반이 안정적이지 못한 상황이었기에 과도 이사회는 새 재단 영입을 위해 물색에 나섰으나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이 과도 이사회 이후 1961년 5월 2일에 임시 이사회가 새로 구성되었다. 이후 7년간 임시이사장 교체만 반복하다가 1968년에 한진상사(현 한진그룹) 조중훈 회장이 박정희 대통령의 인수 권유를 받아들이면서 학교는 새 재단을 맞이하게 되었다.

종합대학으로의 발전 필요성을 느낀 학교는 '인하대학교 종합발전계획'을 수립하고 1971년에 종합대학으로 승격을 인가받아 현재의 인하대학교가 되었다. 1972년에 이과대학과 경영대학을 신설하고 1973년에는 사범대학도 신설하였다. 이후에도 70년대 이재철 총장 시절 동안 행정학과와 외교학과, 중문학과, 일문학과 등 여러 학과들을 연이어 신설하면서 교수들도 대폭 충원하였고 정원도 크게 늘었고 이에 따른 공간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여러 건물들과 경기장을 신축하였다.

1.3. 1990년대: 꾸준한 발전

<rowcolor=#FFFFFF> 일자 내용
1990.03.30 700 병상 규모의 인하대학교병원을 완공
1992.07.31 의과대학에 간호학과 설치
1995.09 ~ 11 학부제 전환 결정. 기계공학과, 항공우주공학과 등을 합쳐 기계항공자동화공학부로 화학공학과, 고분자공학과, 생물공학과를 통합하여 화공고분자생물공학부, 경영학과, 회계학과, 상업교육과를 통합하여 경영학부로 전환
1995.11.22 경상대학의 경제학과 무역학과를 통합하여 경제통상학부로 전환
1997.01.30 중국 칭화대학(淸華大學)과 교류협정 체결
1998.07.07 법정대학을 법학과, 산업재산권학과(야간)가 속한 법과대학과 행정학과, 정치외교학과, 언론정보학과가 속한 사회과학대학으로 분리하고, 가정대학을 생활과학대학으로 명칭 변경함
1998.10. 21 학부제의 대대적 실시. 공과대학 무기재료공학과, 금속공학과를 통합하여 재료공학부로, 환경공학과, 자원공학과를 통합하여 지구환경공학부로, 지리정보공학과, 토목공학과를 통합, 토목 및 지리정보공학부로 함.
이과대학 수학과, 통계학과를 통합하여 수학·통계학부로, 물리학과, 화학과를 통합하여 물리·화학학부로, 생물학과, 해양학과를 통합하여 생물·해양학부로 함
법과대학 법학과를 법학부로 명칭을 변경하고, 사회과학대학 언론정보학과를 주간으로 전환하여 행정학과, 정치외교학과, 언론정보학과를 통합하여 사회과학부로 함
문과대학 소속 국어국문학과, 불어불문학과, 독어독문학과, 중국어중국학과, 일어일본학과를 통합하여 어문학부로, 철학과, 사학과를 통합하여 인문학부로 함
1998.12.01 미국 듀크 대학교(Duke University)와 교류협정 체결
1999.10.14 공과대학 토목 및 지리정보공학부와 건축공학과를 통합하여 건설공학부로 함.
법과대학 산업재산권학과를 법학부에 통합함.
문과대학 어문학부, 인문학부, 영어영문학과를 통합하여 인문학부로 함.
생활과학대학 소비자아동학과, 식품영양학과, 의류학과를 통합하여 생활과학부로 함.

1970년대가 양적 성장의 시간이었다면 박태원 총장이 재임하던 1980년대는 내실화의 시기였다. 교수와 전임교원들을 계속하여 충원하고 연구기자재와 강의실, 연구실을 확충하는 한편, 다수의 연구소를 추가로 신설하여 연구소 기능을 강화시켰다. 1984년에는 개교 30주년을 기념하여 노벨화학상 수상자 초청강연회를 열기도 했다. 박태원 총장은 의과대학 설립도 추진하여 문교부의 인가를 받는데 성공하여 1986년에 의과대학 의학과가 신설되었고 1996년에는 인하대병원도 문을 열었다.

1.4. 2000-2010년대: 전성기를 맞은 인하대학교

<rowcolor=#FFFFFF> 일자 내용
2000.08.26 제1기숙사 개관
2001.03.15 정석학술정보관 착공
2001.05.03 화학공학부를 화공생명공학부로, 생물공학전공을 생명공학전공으로 명칭변경.
전자·전기·컴퓨터공학부를 전자전기공학부 및 컴퓨터공학부로 분리
지구환경공학부와 건설공학부 내의 전공을 조정하여 환경토목공학부와 건축학부로 개편하여 환경토목공학부에 토목공학전공, 지구환경공학전공, 지리정보공학전공을 두고, 건축학부를 신설하여 5년제 건축학전공과 건축공학전공을 신설.
경제통상학부를 경제학부와 국제통상학부로 분리
2001.09.14 하이테크관 착공
2002.05.21 벤처창업관 준공
2002.07.29 미국 워싱턴 대학교(University of Washington)와 교류협정 체결
2002.10.22 경상대학에서 경영대학을 분리하여 경영학부를 소속하게 하고, 경상대학에는 경제학부와 국제통상학부를 남겨둠
2002.12.31 기계공학부를 기계항공공학부로, 화공생명공학부를 생명화학공학부로 명칭 변경
2003.09.17 정석학술정보관 개관
2003.10.29 하이테크관 개관
2004.04.22 개교 50주년
2004.09.20 중앙일보 주관 전국대학평가에서 전국 9위를 기록
2005.02.21 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 주관 '전국대학종합평가'에서 4위를 기록
2005.03.01 이과대학을 자연과학대학으로 개칭
2005.10.06 본관 대강당(하나홀) 완공
2006.02.23 제2기숙사 및 제3기숙사 개관
2006.11.20 자연과학대학 소속으로 기초의과학부 설치
2009.03.01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개원
의학전문대학원 개원
경영대학에 글로벌금융학부 설치.
2009.10.09 QS 더타임스 세계대학평가 500위 이내 진입
2012.08.23 교육과학기술부 발표 취업률 4위 달성(입학정원 3000명 이상 종합대학 중)
2013.07.25 학교법인 인하학원이 학교법인 정석학원과 합병하여 정석인하학원 출범
2014.03.04 인하대학교 경영대학이 AACSB 인증 취득
2014.10.28 개교 60주년을 맞아 60주년기념관 착공
2016.02 60주년기념관 완공
2016.02.26 수인선 인하대역 개통
2017.03.01 공과대학과 IT공과대학을 합쳐 공과대학으로, 경상대학과 생활과학대를 폐지하고 소속 학과는 경영대학, 사회과학대학, 자연과학대학 등으로 소속 변경함
2000년대에는 대대적인 캠퍼스 리뉴얼이 있었다. 해마다 새로운 건물이 세워져, 캠퍼스의 경관이 바뀌었는데, 2000년을 맞이하여 제1기숙사(비룡재)가 개관하였고, 2002년에는 벤처창업관(현 로스쿨관)이 준공되었다. 이듬해인 2003년에는 당시 동양 최대 규모 대학도서관이었던 정석학술정보관과 하이테크관이 개관하였다. 다음해인 2004년에는 본관 대강당(하나홀)이 완성되었고, 2005년에는 제2기숙사(웅비재)와 제3기숙사가 개관하였다.

하드웨어적인 발전에 더하여 소프트웨어적으로도 도약하였다. 2004년에는 특성화 학과로 아태물류학부를 설치하였고, 2009년에는 경영대학에 글로벌금융학과를 설치하였다. 2008년에는 로스쿨 설치 대학으로 선정되었으며, 이듬해인 2009년, 로스쿨을 설치하였다.

1.5. 2020년대: 답보

<rowcolor=#FFFFFF> 일자 내용
2021.09.01 SW융합대학과 예술체육대학 설립
2023.02.27 자유전공학부 신설.
2020년에는 송도 항공우주캠퍼스가 완공되었고, 10년 이상 진행이 지연된 송도 캠퍼스도 개설이 확정되었다.

2. 역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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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하공과대학 학장
<rowcolor=#ffffff> 초대 제2대 제3대 제4대 제5대
이원철 최승만 김장훈 김병희 박철재
<rowcolor=#ffffff> 제6대 1971년 종합대학으로 승격
성좌경
인하대학교 총장
<rowcolor=#ffffff> 초대 제2대 제3대 제4대 제5대
성좌경 이재철 김희철 박태원
<rowcolor=#ffffff> 제6대 제7대 제8대 제9대 제10대
박태원 원영무 조성옥 노건일 홍승용
<rowcolor=#ffffff> 제11대 제12대 제13대 제14대 제15대
홍승용 이본수 박춘배 최순자 조명우
<rowcolor=#ffffff> 제16대
조명우
}}}}}}}}} ||

<rowcolor=#FFFFFF> 인하공과대학 학장
<rowcolor=#FFFFFF> 대수 재임기간 성명 약력
제1대 1954.3.~1956.12 이원철 연희전문학교 ( 수물과/졸업)
미시간 대학교 (천문학/박사)
제2대 1956.12.~ 최승만 동경관립외국어학교 (노어과/학사)
제3대 1961.9.~ 김장훈 니혼대학
제4대 1963.7.~ 김병희 대구사범학교 (졸업)
제5대 1964.9.~1968.9 박철재 연희전문학교 ( 수물과/졸업)
교토제국대학 (이학/박사)
제6대 1968.9.~1972.3 성좌경 일본동경공업대학 (화학공학/학사)
서울대학교 (박사)
<rowcolor=#FFFFFF> 인하대학교 총장
<rowcolor=#FFFFFF> 대수 재임기간 성명 약력
제1대 1972.3.~1976.2 성좌경 1942.9.일본동경공업대학 (화학공학/학사)
1964.2.서울대학교 (박사)
제2,3대 1976.3.~1980.2.
1980.3.~1981.8.
이재철 1948.8.서울대학교(학사)
1973.8.영남대학교 (법학/박사)
제4대 1981.12.~1983.12 김희철 1943.9.경성제국대학 (학사)
1962.2.서울대학교 (박사)
제5,6대 1983.12.~1987.12.
1987.12.~1990.2..
박태원 1949.7.서울대학교 (학사)
1969.8.서울대학교 (박사)
제7대 1990. 2.~1994. 2. 원영무 1958.3.인하공과대학 (학사)
1960.3.인하공과대학 (석사)
1974.2.인하공과대학 (박사)
제8대 1994.2.~1998.2. 조성옥 1956.9.서울대학교 (학사)
1961.6.서울대학교 (석사)
1977.2.동국대학교 (명예박사)
제9대 1998.3.~2002.2. 노건일 1962.2.서울대학교 정치학과 (정치학/학사)
1970.2.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행정학/석사)
1998.6.건국대학교 (행정학/명예박사)
제10,11대 2002.3.~2006.2.
2006.3.~2008.12.
홍승용 1972.2.고려대학교 (상학/학사)
1983.2.서울대학교 (경영학/석사)
1988.8.경희대학교 (경영학/박사)
1990.8.미국 MIIT대 해양정책센터 (박사후과정)
2004.4.프랑스 Le Havre대 명예 경제학박사
2005.5.미국 URI 명예 법학박사
제12대 2009.3.~2012.2. 이본수 1968.2.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응용화학/학사)
1970.2.서울대학교 대학원(석사)
1974.8.서울대학교 대학원(박사)
제13대 2012.3.~2014.12. 박춘배 1974.2.서울대학교 공과대학 (항공공학/학사)
1976.2.서울대학교 대학원(석사)
1989.8.서울대학교 대학원(박사)
제14대 2015.2.~2017.12. 최순자 1975.2.인하대학교 (화학공학/학사)
1982.12.미국 남가주대학교(USC) (화학공학/석사)
1985.12.미국 남가주대학교(USC) (화학공학/박사)
제15,16대 2018.9 ~2022.8
2022.8~
조명우 1983.서울대학교 (기계설계/학사)
1985.서울대학교 대학원 (기계설계/석사)
1992.Univ. of Illinois Chicago (CAD/CAM/박사)




[1] 여담으로 인도공과대학, 일리노이 공과대학과 약명이 같다. [2] 대학의 설립기성위원회 발기취지서에 "또한 이 대학은 국립이나 공립보다도 하와이 동포와 국내 동포의 합작으로 성립된 재단으로써 설립하는 것이 더 의의 깊은 바가 있는 것이다."라는 부분이 나오는데, 과학기술자 육성과 공과대학의 필요성을 절감한 대통령과 정부가 주도하여 설립하였으나 그러면서도 동시에 교포들과 인천 시민들의 도움을 받았고 국공립이 아닌 사립의 재단법인 형태로 만들어졌다는 점이 특기할 만하다. 사립의 성격을 지니면서도 운영은 정부의 관리를 받는 등 사립이면서도 사립이 아닌 독특한 케이스였다. [3] 설립 당시 김법린 문교부 장관의 담화문에 "...본 대학의 재단 확립을 위해서는 하와이 동포들의 눈물겨운 기부금 15만불..."이라는 표현도 등장한다. [4] 과거 인하공과대학 시절의 부지에는 현재 인하공업전문대학이 위치해 있다. 따라서 위의 사진을 자세히 보면 현재 인하공전의 건물/길 형태가 그대로 닮아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사진의 좌측 최상단이 02년까지 있었던 유네스코관이며 현재는 인하대 하이테크 관이 위치해 있다. [5] 왼쪽부터 대한민국만세(大韓民國萬歲), 중앙은 경(慶) 인하공과대학개교(仁荷工科大學開校) 축(祝), 오른쪽은 이대통령각하만세(李大統領閣下萬歲)가 적혀있다. 맨 아래 받침대에 적힌 내용은 흥한방적주식회사(興韓紡績株式會社), 중앙의 맨위 글자는 전서체 쓰인 인대(仁大)이다. [6] 파일:IMG_380인하대학교4.jpg 위치는 현재 학익 사거리 소성로이다. [7] 지금의 기숙사 앞 구 정문이다. 뒤로 뻗은 길이 지금의 학생회관으로 이어지는 우남로 [8] 유엔군 사령관 관할 하의 경제조정관실. Office of the Economic Coordinator [9] 이 직업학교가 나중에 분리 독립되어 현재의 인하공업전문대학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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