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周衍
(? ~ ?)
1. 개요
고려의 인물. 인종 시기 서경 세력에 반대되는 개경 세력의 한 명이었다.2. 생애
인종 4년(1126) 9월 형부시랑으로서 추밀원부사 김부식과 함께 송에 흠종이 새 황제로 즉위한 것을 하례하기 위해 다녀온다. 그러나 이때 송은 고려가 요를 섬기던 것처럼 금과 가깝게 지낼 것을 우려하고 있었다. 이주연 일행은 명주(明州)에 도착해서 표문만 올려보내고 황제는 만나보지 못한 채 사례품만 받고 돌아가야 했다.당시 고려의 국왕 인종은 승려 묘청 일당의 말을 따르면서 서경 천도를 계획하고 있었다. 지어사대사 관직에 있던 이주연은 인종 8년(1130) 임원준, 황보양, 고당유, 문공원 등 중신들을 모아, 왕이 서경 세력에 힘을 실어주는 것을 지적했다. 그러나 왕이 듣지 않자 이듬해 인종 9년(1131) 다시 우산기상시 정준후와 상소해 국사를 논의했다.
인종 13년(1135) 1월 서경 세력은 결국 반란을 일으켰고, 왕이 재추를 소집해 논의한 끝에 서경 토벌을 위한 3군이 꾸려졌다. 지어사대사 이주연은 우군을 이끌었고 진숙(陳淑), 양우충(梁祐忠), 진경보(陳景甫), 왕수(王洙)가 이주연을 보좌했다. 원수 김부식의 명에 따라 병력 2천 명을 나눠 동계의 각 성에 파견됐는데, 반란에 가담하려는 성을 효유하고, 왕명인 것처럼 꾸며 병력을 징발하는 묘청군의 사절들을 체포하기 위해서였다. 동계 여러 성들은 이주연과 진숙 등이 효유할 때까지만 해도 누구의 편도 들지 않고 형세를 관망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다 김부식의 중군이 성주(成州)를 통해 서경을 동쪽으로 돌아 청천강 이남 안북대도호부까지 올라가자 그제서야 나와서 토벌군을 맞이했다. 토벌군이 안북부에 이른 뒤 이주연도 동계에서 돌아와 본대와 합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