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이재난고(頤齋亂藁)》는 조선시대의 학자인 이재(頤齋) 황윤석(黃胤錫, 1729년~ 1791년)이 1738년( 영조 14년) 부터 1791년( 정조 15년)까지 53년간 쓴 일기이다. 총 57책. 전북 고창군 지역의 후손인 황병관이 보관하고 있으며, 전북특별자치도 시도유형문화재 제111호로 지정되어 있다.2. 내용
황윤석이 10세이던 1738년부터 사망하기 2일 전인 1791년 4월 15일까지 53년여간 듣고 보고 배우고 생각한 내용들을 담아낸 일기다. 총 57책, 원고지 2만 9천여장, 글자수 5백 27만 4천여자의 분량으로 현존하는 일기류 서적 가운데 최대 분량이다.개인적인 생활 외에도 문학(文學), 경학(經學), 예학(禮學), 사학(史學), 산학(算學) 등등 살아생전 겪었던 광범위한 학문적 내용들을 담아냈으며, 책마다 쓰기 시작한 연대와 끝낸 연대를 기록하고 난고(亂藁)라는 표제를 달았다.
황윤석 자신은 당대 대표적인 음악가로 1771년 봉조관(奉俎官)으로 수차례 종묘의 제향(宗廟祭享)에 참례하여 종묘제례악을 경험했고, 1784년 장악원(掌樂院)의 주부(主簿)가 되어 궁중음악을 실질적으로 경험하고 아악(雅樂) 관련의 악률, 악기, 악서를 섭렵했다. 이에 따라 이재난고에는 율려신서해(律呂新書解), 오음심변(五音審辨), 오음논고(五音論考), 칠현논고(七絃論考), 논오음소속(論五音所屬), 논고금안현지법부동(論古今按絃之法不同), 논십이율장단차서(論十二律長短次序) 등 당대 음악에 대한 모든 내용과 황윤석 자신의 악률론을 실어놓았다. 특히 논십이율장단차서에서는 남송시대의 대표적인 악률가 채원정의 율산(律算)인 9분척을 이용한 수치를 제시하고, 더하여 6변율(變律)의 수치까지 제시했으며, 변율의 사용 및 불용, 그리고 반성(半聲)의 사용 및 불용에 따른 수치까지 열거했다. 조선후기 악률론을 연구하는데 가장 중요한 자료 중 하나다.
3. 탈초화
2004년에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서 이재난고의 초서를 정서화하는 과정인 탈초화를 완료하였다. 기사기사에서는 이재난고의 탈초가 완료되었다는 소식과 함께 1787년 여름 장마에 대한 내용, 59세 때 의례 38책 전질을 7냥에 구입한 후 왼쪽눈이 보이지 않고 설사와 치통, 담통 등으로 고생하면서도 2년여동안 읽은 내용, 1786년 12월 호환(虎患)에 대한 내용 등을 소개하고 있다.
탈초 이후 2008년에 장서각에서 후속 연구 결과물로 책을 하나 펴냈다. 기사 이재난고에 수록된 국어학, 역사학, 성리학, 지리학, 천문학, 의학 등의 내용들을 언급하며 당시 조선에서 유행하던 다양한 학문 성향을 총괄한 학자라 평가했다.
4. 그 외
- 조선왕조실록에 정조의 후궁 화빈 윤씨가 임신했다는 기록만 있고 출산 기록이 없어 의문으로 남았는데, '이재난고'에 "화빈 윤씨의 산실청이 설치된 지 30개월이 넘도록 아이를 낳지 못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 정조의 후궁 의빈 성씨의 본명, 가족관계 등이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