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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희
Sung-Hi Le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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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70년 4월 1일 ([age(1970-04-01)]세) |
경기도
고양군 신도면 진관외리 (현 서울특별시 은평구 진관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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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신체 | 163cm, 48kg, 235mm |
직업 | 배우, 모델 |
데뷔 | 1993년 플레이보이 잡지 모델 |
학력 | 오하이오 주립대학교 ( 의과대학 / 중퇴) |
종교 | 무종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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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누드모델이다.2. 생애
서울특별시 은평구 진관동[1] 기자촌에서 태어나 1978년에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으며, 현재는 미국 시민권자다.대부분의 이민자 가정이 그렇듯이 엄청난 고생을 했으며, 가정사가 어두운 편이라 부모의 이혼과 재혼으로 불우한 청소년기를 보냈다. 학업 성적은 제법 우수하여 오하이오 주립대학교 재학 당시 Sports Medicine을 전공했고, 3년간 장학금을 받았지만 졸업은 못 한 걸로 보인다. 의학을 전공해서 원래 장래희망은 의사였다고 한다.
1996년에 플레이보이지의 모델로 데뷔했다. 당시에는 드물었던 아시아계 누드모델로서, 플레이보이지 최초의 아시아계 모델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이 아니다. 플레이보이에 아시아계 모델이 등장한 것은 1960년대부터이고, 이승희는 플레이보이의 자매지인 란제리 지의 모델로 데뷔했다. 이후 플레이보이와 몇몇 자매지, 비디오 등에 출연했지만, 플레이보이의 꽃인 '이번달의 플레이메이트' 에는 선정되지 못했다.
고로 최초의 아시아 모델 운운은 전형적인 위대한 한국인 컴플렉스와 황색언론이 과장해 보도를 한 것이다. 전여옥은 이승희가 " 대한민국 여성의 아름다움을 전 세계에 알린 알린 자랑스러운 한국인"이라는 개드립을 치다가 빈축을 산 바 있다.
1996년 데뷔 직후 본격적으로 보급된 인터넷을 타고 대한민국에서 빠르게 섹시 스타로 알려지게 되었다. 미국 문화나 사회에 대한 동경이 지금보다 강한 시절, 미국에서 누드모델로 활약하는 한국계 스타라는 이미지는 대중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누드모델이나 에로 영화 출연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수위도 그리 높지 않았던 한국과 달리, 이승희의 당당함은 아주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누드일 때가 자유롭고 아름다우며 순수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100% 본인 의지로 벗었다고 말했고 가슴성형이나 나비 문신을 하게 된 계기도 시원하게 털어놓았다. 그리고 언급했듯이 '이번달의 플레이메이트'까지는 선정되지 못했지만, 당시 플레이보이는 거의 백인 일색이었기에, 여러 자매지나 비디오에 혼자 유색인 모델로 출연한 적이 많았다. 본인도 그걸 의식하고, 화보 촬영이나 인터뷰에서 최대한 당당하고 자신에 찬 모습을 보여주려 노력했다.
게다가 유명 사진작가들을 고용해 꾸준히 누드사진을 찍어온 플레이보이답게 사진의 퀄리티가 당시의 국내 성인잡지 및 암암리에 유통되던 불법잡지들에 비해 훨씬 높았으며, 화보에서 비교적 자유롭고 도발적인 포즈와 가슴은 물론이고 음모까지 가리지 않고 나오는 제대로 된 누드를 선보였기에 더 섹시하고 멋지다는 평가를 받었다.[2][3] 국내에서 공식적으로 재출판된 화보에는 규제 때문에 음모를 다 가려놨는데, 이러한 규제가 있다는 사실을 잘 몰라서 처음에 자신의 국내판 화보를 보고 의아해했다고 한다. 물론 당시 막 보급되기 시작하던 인터넷을 통해 편집이 안 된 외국판 화보를 본 사람들도 많았다. 당시 국내에서는 비키니가 막 흔해지고 있었고 따라서 제모에 대한 이해도 거의 없었는데, 이승희가 국내에서 유명해진 이후 인터넷으로 누드화보를 본 많은 여성들이 비키니 라인에 맞게 예쁘게 다듬어진 이승희의 음모를 보고 제모 및 관리법을 많이 물어왔다.
대한민국에서는 1997년 5월, 1997년 10월, 1998년 3월, 1998년 6월 등에 방문해서 방송, 화보촬영, 기부 및 봉사등 다양한 활동을 했다. 첫 방한인 1997년 5월에는 자신의 사진집과 자서전을 펴내기도 했고, 싸인회도 가졌다. 그리고 나서 또한 거평패션의 속옷 브랜드인 '라보라'의 텔레비전 CF 모델로도 나왔다. 라보라 CF에서는 샤워를 끝내고 목욕수건으로 몸을 두른 채로 노래에 맞춰 춤을 추더니 수건을 집어던지면서 속옷을 보여준다. 이승희가 출연한 라보라 CF는 2가지 버전이 있는데 "벗는 것보다 입는 것이 아름답다."는 카피를 사용한 버전이 먼저 사용되었고 이승희가 "저는 라보라에요."라고 말하는 버전이 나중에 사용되었다. 또한 이승희의 상징이기도 한 노랑나비 컴퓨터 그래픽이 추가되었다.[4] 또한 뉴코아백화점의 지면 광고를 촬영하였는데, 그 당시 모델료로 1억 원[5]을 받았다고 한다. 광동제약의 광동 다이어트 홍보 모델로도 꽤 오래 활동했다.
"벗는 것보다 입는 것이 아름답다."는 카피를 사용한 버전. |
이승희가 "저는 라보라에요."라고 말하는 버전. |
노랑나비 컴퓨터 그래픽이 추가된 버전. |
이승희가 등장한 라보라 잡지 광고. |
이승희가 등장한 뉴코아 신문 광고. 해당 기사 |
이승희가 등장한 광동 다이어트 신문 광고. |
SBS에서 방영한 김혜수의 토크쇼인 "플러스 유"에 나와 한국어로 입담을 과시하기도 했다. 2번째 방문인 1997년 10월에는 KBS <특종 비디오채널>이 호텔 방과 속옷 촬영 현장까지 방문하는 밀착 취재를 했다. 방송 출연시 좀 어색하지만 대부분의 대답 및 질문을 한국어로 했다. 8살 때 이민 간 재미교포 치고는 한국어를 꽤 잘 하는 편이었다.
또한 두 번째 방문에서는 화보 및 방송 이외에 출시한 다이어트 에어로빅 운동 비디오도 홍보했다. 과거에 에어로빅 강사를 한 경력도 있기에 전문성을 발휘해 찍었다. 언론에서도 이승희가 방한시 묵고있는 호텔에서 바쁜 스케줄 와중에도 틈틈히 운동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건강미인 이미지와 운동 비디오 홍보에 힘을 보탰다. 방한시 만난 많은 한국 여성들의 무리한 다이어트를 보면서, 운동 마니아인 모델이자 전직 에이로빅 강사로써 올바른 다이어트 및 몸매 관리 방법을 알리고 싶다는 생각도 언론을 통해 전했다. 본인부터 먹는 것을 좋아해 무리하게 굶기보다는 다양한 운동으로 몸매관리를 한다고 언급했다.
다이어트 비디오는 어느정도 인기가 있었는지 케이블 동아tv에서도 5-10분짜리로 몇 편씩 나누어서 방영되었다. 모델은 몸매로 주목을 받는 직업이기에 모델 활동과 에어로빅 비디오 홍보가 서로 시너지 효과가 있었다. 게다가 후술하겠지만 고국인 한국에서는 모델 뿐 아니라 영화등 여러 방면의 의미있는 일을 하고 싶어했다. 누드모델이기도 하지만, 에어로빅등 운동 및 몸매관리 비법을 대중과 공유하고, 본인의 건강하고 아름다운 몸을 이러한 노력의 결과물이기에 더 당당하게 모두앞에 다 벌거벗고 과시하는 것이 이승희의 매력이었다.
1998년 3월에는 영화 "물 위의 하룻밤"의 촬영차 한국에 왔다. 예전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누드 및 광고 모델을 하면서도 언젠가는 배우에 도전하고 싶다고 언급했는데, 드디어 기회가 온 셈이다. 촬영은 한국과 캐나다에서 진헹되었다. 1998년 6월에는 지방 도시들도 방문하며 영화를 홍보했으나, 흥행에는 실패했다. 베드신과 신파의 어색한 만남이라는 평이 있었다. 1999년에는 대선주조의 C1 소주 극장용 광고에도 출연했다.
이승희가 출연한 대선주조 C1 소주 극장용 광고. |
2000년 이후에는 미국 영화계에 진출하여 주로 단역을 전전, 르네 젤위거가 나온 <Nurse Betty> 등의 여러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하였다. 그러나 별 성공은 거두지 못하고 그저 조연-단역으로만 맴돌았다. 김윤진이 나오는 로스트 3시즌 10번째 에피소드에도 리포터 역으로 잠깐 나온다.
1997년에 만들어진 승희닷컴(sung-hi.com)을 2011년 5월까지 운영했으나, 1살짜리 아이 때문에 바빠서 관리를 못 한다고 사이트를 폐쇄했다. 보도된 바에 의하면 2007년 오랫동안 사귄 남친인 제레미 베이커와 결혼했다고 한다. 정확한 정보는 불명이나 현재는 캘리포니아에서 개인 트레이너로 일하고 있다고 한다.
3. 여담
아시아계( 대만+ 일본) 포르노 배우인 코베 타이와 비슷하게 생겨서 이승희가 포르노에 출연했다는 것으로 오인되기도 하는데, 이승희는 소프트 코어 누드모델이고, 베드신이 있는 영화에만 출연한 것을 마치 직접적으로 성관계를 하는 포르노물에 출연한 것으로 오해에서 생긴 잘못된 루머다.[6] 외모적으로 코베 타이가 타투가 없고, 짙은 갈색 피부에 신체 전반에 잔근육이 많아서 구분이 쉽다. 사실 코베 타이는 몇 안되는 인기 동양인 포르노 배우라 이승희보다 미국 내 인지도가 훨씬 높다.미국에서 유명한 ‘승희’라는 이름이 두 명이 있는데, 한 명은 이승희고 다른 한 명은 이 범죄자이다.
[1]
당시에는
경기도
고양군 신도면.
1973년에
서대문구로 편입되었고, 이승희가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 직후인
1979년에
은평구로 떨어져 나갔다. 알다시피
은평구와
마포구 영역은 본래 모두
서대문구였다.
[2]
물론 어디까지나
음모를 가리지 않았다는 이야기지,
성기노출은 당연히 없다.
[3]
지금까지도 국내 발간되는 누드화보라면 음모 노출이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팬티를 입거나, 음모 부위를 손이나 촬영 각도 등으로 가려야 한다. 아무래도 음모를 가릴 필요가 없으니까 벌거벗고 더 자유롭고 시원한 포즈로 사진을 찍을 수 있다.
[4]
광고에 '누드모델 이승희'로 당당히 소개된다. 토종 한국 누드모델이라면 상상도 못할 일. 그래서 해외스타 이승희에는 열광하면서 오히려 국내에서는 '즐거운 사라'와 같은 작품을 외설 운운하며 검열하는 이중성에 대한 비판도 있었다.
[5]
당시 목동아파트 20평대 후반이 1억 2천만 원 정도였다.
[6]
교포 출신 한국계 포르노 배우가 좀 있긴 하다.
민카라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