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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8-31 22:44:26

이성봉

이성봉
李聖鳳 | Lee Seongbong
파일:이성봉 목사.png
<colbgcolor=#00B6EE><colcolor=#ffffff> 출생 1900년 7월 4일
평안남도 강동군
사망 1965년 8월 2일 (향년 65세)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창천동
학력 경성성서학원 (졸업)
경력 수원성결교회 담임전도사
목포성결교회 담임전도사
신의주동부성결교회 담임목사
봉천중앙교회 담임목사
신촌성결교회 담임목사
가족 배우자 이은실 슬하 3녀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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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 목사이며, 성결교회 대한민국 개신교 부흥의 한 축을 담당한 인물이다.

2. 생애

1900년 7월 4일 평안남도 강동군에서 출생하였다. 그의 어머니는 황해남도 신천군 신천읍교회가 세운 경신소학교의 교원으로 재직할 정도로 신학문을 접한 여성이었다. 1906년부터 감리교를 믿게 된 부모님을 따라 신앙생활을 시작했지만 중학교 진학 실패와 여러 문제로 신앙생활을 하지 않았고 1919년 3.1 운동 당시 '대동단'이라는 독립운동단체에서 활동하다가 유치장에 구속되었던 일도 있었다.

1920년 6월 24일, 과수원에서 수확한 과일을 싣고 평양으로 가던 중 기자릉 앞을 지날 때 쯤 오른쪽 넓적다리에 극심한 통증이 생겨 3년 간 투병하며 신앙생활의 소홀함을 깨달으며 철저히 회개하였고 1925년 증상이 완화되자 경성성서학원에 입학해 본격적으로 신학을 공부한다.

성서학원에 재학하면서 특히 어린이 부흥회를 많이 인도했는데 성서학원 졸업반 시절 그 경험을 살려 부흥사로서의 소명을 가지게 된다. 졸업 후 1928년 3월 28일 경기도 수원군 수원면 산루리에 수원성결교회를 처음 개척하였고 1931년 3월 25일 지금의 북교동교회인 목포성결교회에 청빙되어 1932년 목사안수를 받았다.

1936년 평안북도 신의주시 신의주동부성결교회로 청빙되었는데 이 교회는 원래 1927년 설립된 신의주성결교회가 지속적인 부흥으로 성도 수가 증가하자 1934년 신의주동부성결교회를 분립시켰는데 부임 첫 주 부흥회를 열어 성도 수가 130명 증가하였고 조직적인 전도로 인해 성도 1,000명과 직원 50명의 대형교회로 성장하였다. 또한 교회 자체적으로 신학교를 설치해 지방 교역자를 양성하고 지교회를 설립하였다.

1937년 평양성 중성의 북서문인 경창문[1] 밖에서 처음 대규모 부흥집회를 인도하였다. 또한 평안북도 의주군 의주읍 및 비현면, 용천군 양하면, 랴오닝성 단둥시 등을 오가며 크고 작은 부흥집회를 인도하여 그 소문이 장로교 감리교에도 퍼져 여러 교회를 다니며 부흥집회를 인도하였다.

1938년 조선예수교동양선교회 성결교회 총회에서 신설된 전국순회부흥사에 임명되어 평안남도 평양부를 출발해 전국 방방곡곡을 순회하며 부흥집회를 인도하다가 교단 간의 갈등과 사역지역을 한반도 이남지역으로 한정하는 것에 지쳐 결국 1939년 휴직하고 일본으로 도일한다.

일본에 건너가 재일교포 선교와 일본 여러 지역을 순회하며 부흥집회를 인도하였고 잠시 귀국하였다가 1941년 만주국 펑톈성 펑톈시로 들어가 봉천중앙교회 담임목사로 임명되었다. 이 후 가족들은 평안남도 강동군으로 귀국시키고 홀로 만주국 곳곳을 다니며 한인전도에 힘썼다.

1945년 9월 15일 해방과 더불어 귀국해 소련군정 치하의 북한 지역에서 교회 재건 및 부흥집회를 인도하다가 삼팔선 경계가 설정되고 교회에 대한 탄압이 점차 심해지던 찰나에 일본에 의해 해체당한 성결교단이 서울에서 재건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1946년 3월 월남해 일제강점기 당시 사유지로 팔려진 교회당을 되찾고 재건하는데 주력했다.

1950년 8월 2일 목포시에서 부흥집회를 하던 중 인민군에게 체포되어 심한 구타와 취조를 당하고 석방되는 일도 있었다.
1950년 9.28 서울 수복 이후 형무소, 군대, 한센병 환자촌, 고아원 등을 순회하며 부흥집회와 선교활동을 하였다.
1954년 임마누엘 특공대라는 이름의 교단 설립 50주년 기념 전도단을 조직하여 전도 활동을 '전투'로 명명하고 연간 70지역을 순회하며 전투적인 전도활동을 벌였다.

1961년부터 1963년 2월 27일까지 480개 교회를 순방하였고 1965년 7월 23일, 두 개로 분열된 성결교단이 마침내 역사적인 합동 총회를 개최하여 설교를 한 후 1965년 8월 2일 파란만장했던 40년의 목회 활동을 마치고 세상을 떠났다.


[1] 현재는 철거되었으며 보통교 보통강강안다락식주택구 보통강변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