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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1-10 22:11:53

이석록

파일:이석록.jpg
이름 이석록
출생 1958년
학력 충남고등학교 (졸업)
한국외국어대학교 (한국어교육과 / 학사)
한국외국어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 박사 수료)
경력 전) 화곡고등학교 국어교사
전) EBS 언어영역 및 국어듣기 강사
전) 서울시교육청 전국연합학력평가 언어 출제팀장
전) 강남대성학원 대성마이맥 국어 강사
전) 메가스터디 국어강사 및 학력평가연구소장
현) 한국외국어대학교 입학사정관실장

1. 개요2. 내용
2.1. 생애2.2. 국어 교사 및 EBS 강사2.3. 학원 강사의 길2.4. 대학교 교직원이 되다
3.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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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전 국어 교육인 및 대학 교직원. 이만기와 함께 EBS를 대표하는 강사였기도 했으나[1] 현재는 대학에서 교육관련 일을 하고 있다.

2. 내용

2.1. 생애

2.2. 국어 교사 및 EBS 강사

1985년 화곡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기 시작했으며 1998년부터 EBS 강의를 시작했다. 2003년에는 2004학년도 수능 언어영역 2개 지문을 강의 도중 언급해 ‘족집게’라는 별칭까지 얻었다.[2]

그 와중에 7차 교육과정 교과서 저술, 문제집 집필 50여권, 1년 평균 논술 언어 특강 60여회까지 소화했다. #

위와같이 엄청난 이력을 가졌어서 이전에도 학원에도 스카우트했어도 ''학원에서 돈 싸들고 와도 학교를 지키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2000년도 화곡고등학교 졸업자의 한 마디에 의하면, 수업시간에 수업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한다. 수업시간에 대충 시간 떼우고 EBS 강의 들으라고 하고, 수업시간의 50%는 자기자랑하고, 나머진 EBS 강의문제풀이만 했다는 평이다. 그나마도 책은 그냥 읽고만 넘어갔다고 한다. 그 땐 인터넷에 글 올릴시절이 아니라 PC통신 시대라서 그냥 조용히 넘어간거라고 알려지지 않았다고 한다. 학교는 엑셀타고 검소한 척하고, 실상은 다르다는 평이다.[3]

2.3. 학원 강사의 길

그러나 2004년 2월 16일 대성학원 온라인 계열사인 디지털 대성으로 자리를 옮겼다. 금전적으로 아쉬운 것도 없었으나[4] 그 이유는 교단에서 힘들어서.[5] [6]

그러나 대성학원에서 EBS강의 출연은 허락해줘서 2004년 국어듣기 강의와 인터넷 수능 강의 때 계속하기도 했다. 2004년 인터넷 수능 시절 박승동과 같이 이름이 알려지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후 메가스터디에서 제안이 와서 박승동과 같이 메가스터디로 자리를 옮겼다. 언변은 뛰어났으나 학교 스타일의 수업이다보니 강의 스타일상 인터넷 강의에서는 큰 인기를 못 얻었지만 강남 메가 현장 강의에서는 쪽집게 때문에 은근히 듣고 있었다고 한다.

대치 메가스터디[7] 부원장 및 메가스터디 학력평가연구소장도 하면서 입시연구 및 국어컨텐츠 개발에서 중심을 잡아갔다. 차츰 강의보다는 입시전문가로서의 비중을 높이면서 이만기와 같은 케이스가 되나 싶었는데...

2.4. 대학교 교직원이 되다

2011년 돌연 학원을 그만두고 모교인 한국외대 입학사정관이 되었다. # 2월 2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메가스터디 입시평가연구소장을 사직하고 한국외대 입학사정관으로 자리를 옮기게 됐다”며 마지막으로 공교육에 봉사할 기회라고 생각하고 각오를 다지니 앞으로 많은 지도와 편달을 부탁드린다고 했다.

메가스터디 측은 그의 사직에 대해 그가 최근 공교육을 위해 역할을 맡고 싶다는 의사를 피력했다며 이 분야에서 매우 큰 영향력이 있는 분이라 만류했지만 그의 의지가 강했다고 밝혔다.

2021년 현재까지도 계속해서 입학사정관 일을 수행 중

3. 여담


[1] 여담이지만 두 사람은 호형호제할 정도로 절친하다. 2012년의 동반 인터뷰 [2] 그 수필지문이 계용묵의 '게'라는 수필이였다 [3] 아래에서 학교를 그만두던 시절 원색적인 비난을 쏟았다는게 이런 이야기인듯 [4] 당시 그의 연간 수입이 1억3000만원에 육박했다. 교사 봉급 4500만원, 교육방송 강의료 3000만원, 참고서 인세 5500만원…. 디지털 대성에서는 일반 강의에 대한 연봉 6600만원에 온라인 강좌 수익이 더해진다 [5] 당시 학교에서는 빌어가며 수업을 진행해도 절반 이상이 잠자기 일쑤고, 조금만 야단쳐도 대드는 아이들을 보며 조금씩 지쳐온 것 같다”고 했다. ‘수업시간에 5명 이상 자면 수업을 안 하겠다’고 경고한 적도 있지만 조는 학생은 좀처럼 줄지 않더라고 그는 말했다. 교원단체 간 벽도 버거웠다고 했다. “같은 학교에 근무하면서도 소속된 교원단체가 다르다는 이유로 인사도 제대로 하지 않고 서로 밥 같이 먹기도 서먹했어요.” 이 교사는 “교육방송 강의와 논술특강을 다니는 나를 ‘입시교육의 원흉’으로 몰아가는 분위기도 괴로웠다”고 했다. [6] 당시 그의 학원행에 대한 학생과 동료 교사들의 반응은 착잡한 심정이였다고. 교육방송 사이트에 글을 남긴 한 학생은 “학원에서 돈 싸들고 와도 학생들이 불쌍해서 남겠다던 선생님께서 몇 달 만에 이렇게 마음을 싹 바꾸실 수 있냐”고 따졌다. 또 다른 학생은 “좋은 강의를 계속 부탁한다”며 “절대로 떠나지 마시라”고 부탁했다. 어떤 학생은 “선생님은 수업만 끝나면 책 쓰는 일에만 신경 썼지 학생들에게 별 관심이 없었다”는 원색적인 비난의 글을 올리기도 했다. [7] 강남 메가스터디 미네랄 멀티로 현재는 없다